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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민족의 건국신화 - 단군왕검
昔有桓因庶子桓雄이 數意天下하여 貪求人世하니
석유환인서자한웅이 삭의천하하여 탐구인세하니
父知子意하고 下視三危․太伯하니 可以弘益人間이라.
부지자의하고 하시삼위․태백하니 가이홍익인간이라.
乃授天符印三箇하여 遣往理之하니라.
내수천부인삼개하여 견왕리지하니라.
雄이 率徒三千하여 降於太伯山頂神壇樹下하니
웅이 솔도삼천하여 강어태백산정신단수하하니
謂之神市요 是謂桓雄天王也라.
위지신시요 시위환웅천왕야라.
《삼국유사(三國遺事》
<해설>
⇒ 昔(석 : 예, 옛날)
⇒ 桓因(환인 : 굳셀 환, 인할 인) : 천상을 지배하는 하늘의 임금 ☞ 참고자료
⇒ 庶子(서자) : 庶(서 : 서자, 무리), ① 첩에게서 난 아들. ② 맏아들 이외의 모든 아들. 衆子(중자).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환웅이 환인의 장남이 아니었다는 의미로 庶子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으로 보임. ☞ 장남이었다면 환인의 지위를 이어받았겠지만, 여러 아들 중 한 아들이었으므로, 자신이 다스릴만한 다른 세상을 뜻을 두었던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됨.
⇒ 桓雄(환웅) : 雄(웅: 수컷, 암컷은 雌).
⇒ 數意天下(삭의천하) : 자주(數) 천하(天下)에 뜻(意)을 두다. 數은 셈할 수, 자주 삭, 촘촘할 촉 세가지 음과 뜻. 意는 뜻을 두다. 뜻을 품다는 뜻의 동사로 쓰임. 환인, 환웅이 천신(天神)으로 설정되어 있으므로, 환웅은 천상(天上)이 아닌 하늘 아래 세계(天下)에 뜻을 두게 된다.
⇒ 貪求人世(탐구인세) : 인간 세상(人世)을 탐내어(貪) 구하다(求). 하늘 아래에는 인간 세상만 있는 게 아니다. 불교적 세계관에서 보면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하늘의 여섯 가지 세상이 있다. 전통 무속이나 도교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승, 저승을 비롯하여 바다 밑 용왕이 다스리는 세게도 있고, 신선들의 세계도 있을 수 있다. 환웅은 이 중 인간 세상을 탐내어 구한 것이다. 환웅이 ‘人世’를 탐냈다는 것은 통치 대상으로서 인간 세상뿐 만 아니라 그 곳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했다고 볼 수 있다.
⇒ 父知子意(부지자의) : 아버지(父, 즉 환인)가 아들(子, 즉 환웅)의 뜻(意)을 알고(知). 환인이 인간 세상에 대한 환웅의 뜻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후 내용은 아버지인 환인이 주체가 되어 하는 일이다. 모든 여건을 마련해 주고 환웅은 내려가 신시를 세우기만 하는 것이다.
⇒ 下視三危․太伯(하시삼위·태백) : 삼위·태백을 내려다(下)보니(視). 하늘에서 인간 세상을 봐야 하니 내려다보는(下視)는 것이다. 인간 세상을 두루 둘러보다가 삼위·태백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두산백과사전에 의하면 삼위산(三危山)과 태백산(太伯山)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삼위산은 중국 간쑤 성(甘肅城) 둔황 현(敦煌縣) 남쪽에 있으며 태백산은 장백산(長白山)이라고도 한다. 삼위는 태백의 수식어로 보기도 한다. 危가 위태하다, 높다 등의 뜻이 있으므로 세 개의 높은 봉우리가 있는 태백산으로 해석하기도 하는 것이다. 太伯은 삼국유사 註(주)에는 황해도 구월산이라 했는데, 역사학계의 권위자이신 익산 권익산님에 의하면 太伯은 고유명사라기 보다는 일반명사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즉 장소를 특정할 수 없고 太(클 태)하고 伯(맏 백)한 어떤 곳이라는 것이다.
⇒ 可以弘益人間(가이홍익인간) : 인간(人間)을 널리(弘) 이롭게(益) 할 만하다(可以).
* ‘可’자 단독으로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可以~’도 ‘~할 만하다’, ‘~할 수 있다’로 해석한다. 以(써 이)는 ~로써라는 뜻인데, 여러 가지 용법으로 쓰인다. ‘可以~’의 ‘以’는 以의 목적어 ‘三危․太伯’이 생략된 형태로 ‘삼위태백으로써(에서) 홍익익간 할 수 있다’로 해석될 수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以’의 용법을 따지지 않고 ‘可以’를 관용구로 해석한다. 以가 可와 함께 쓰이면서 어조(語調)를 돕기 위해 쓰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 홍익(弘益) : 弘은 넓다, 크다, 넓히다, 활소리의 뜻. 益은 더하다, 이롭다의 뜻. ‘널리 이롭게 하다’로 풀이하는 것은 弘을 부사로 益을 타동사로 본 것이다.
* 인간(人間) : 人生世間의 준말. 본래 ‘人間’이란 ‘사람들의 세상, 세계’를 뜻하는 것인데, 현재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이고 있다. ‘貪求人世’의 ‘人世’와 같은 의미인데, 人世라고 하면 인간들의 삶이란 측면이 강하고 人間이라 하면 사람들이 이루는 사회라는 의미가 강하다. 世는 世代라는 時間 개념이고, 間은 뜻이 사이이니 空間 개념인 것이다.
* 홍익인간(弘益人間) : 홍익인간이란 말이 우리 민족 최초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 나오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을 홍익인간이라 하게 된 것이다.
⇒ 乃授天符印三箇(내수천부인삼개) : 이에(乃) 천부인(天符印) 세 개(三箇)를 주다(授).
* 符印(부인) : 부절(符節 = 부신符信)과 인장(印章 = 도장圖章)을 아울러 이르는 말. 符와 印 모두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며 왕이 신하에게 하사하거나 지위와 함께 전승된다.
* 天符印(천부인) : 하늘 임금인 환인이 새로이 인간 세계를 다스릴 환웅에게 그 증표로서 符印을 준 것이므로 天符印이다.
* 부절(符節) : 예전에, 돌이나 대나무·옥 따위로 만들어 신표로 삼던 물건. 주로 사신들이 가지고 다녔으며 둘로 갈라서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다니면서 신분의 증거로 사용하였다. 符란 대나무(竹)로 만든 부절을 사람(人)이 손(寸: 마디 촌)에 들고 있는 것.
* 인장(印章) : 印이란 卩(절:병부,신표 = 節)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으로 손으로 표를 하는 것. 印은 죽간(竹簡)을 사용할 때 죽간에 내용을 쓰고 말아서 위쪽이나 옆의 끈을 묵은 쪽에 밀납으로 봉하고 표시를 하는 데 사용하였다. 이 때에 印은 음각(陰刻)을 주로 하다가 종이를 사용하면서 양각(陽刻)도 하게 된다. 지금 사용하는 도장은 거의 양각을 하는데, 서예에서 낙관(落款)은 음각도 많이 사용한다. ☞ 참고자료
⇒ 雄 率徒三千(웅 솔도삼천) : 환웅(雄)이 무리(徒) 삼천(三千)을 거느리고(率).
*率: 거느릴 솔, 비율 률, 장수 수. 실(玄: 검을 현자로 본래 검은 실을 뜻함)을 짜는 모양을 본떠, 한군데로 죄어치다, 정리해서 거느리다의 뜻을 나타냄.
*三千(삼천) : 3000이란 숫자는 보통 많음 나타내는 관용적 숫자로 쓰인다. 불교에서는 三千을 세상 모든 만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쓴다. 三千大千世界(삼천대천세계), 三千甲子(삼천갑자).
⇒ 降於太伯山頂神壇樹下(강어태백산정신단수하) : 태백산(太伯山) 꼭대기(頂) 신단수(神壇樹) 아래(下)에(於) 내려오니(降).
* 降(강) : 내릴 강, 항복할 항. 사다라를 발로 딛으며 내려오는 모양. 下視(하시)와 마찬가지로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하므로 내려오다는 뜻으로 降자를 썼음.
* 於(어) : 어조사로서 ‘~에, ~에서, ~에게, ~에 비해서(~과, ~보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 頂(정) : 정수리, 머리, 꼭대기
* 神壇樹(신단수) : 壇은 흙을 높이 쌓아 위를 평평하게 만든 제단(祭壇). 신단(神壇)이란 신에게 제사지내는 제단이란 뜻이 된다. 신단수는 바로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하는 신성한 나무다. 샤머니즘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나무를 매개로 신과 인간이 만나거나 신이 인간세계로 인간이 신의 세계로 이동하게 된다.
⇒ 謂之神市(위지신시) : 그곳(之)을 일러(謂) 신시(神市)라고 하다. 또는 ‘그곳(之)을 신시(神市)라고 하다(謂)’.
* 謂(위) : A謂B는 A를 B라고 이르다(말하다)의 뜻이다.
* 之(지) : ‘그곳’ 대명사로 쓰임. 환웅이 내려와 새로운 도시를 새운 곳.
* 神市(신시) : 신시는 신정시대(神政時代)에 도읍 주변에 있던 별읍(別邑)으로 삼한의 소도(蘇塗)와 같은 성격의 신읍(神邑) 또는 성역으로 해석된다. 또는 지명이 아닌 환웅을 가리키는 인명으로서 삼한의 신지(臣智)와 같은 존칭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신시'를 글자 대로 풀이하자면 '신의 시장(저잣거리)'이다. 신시를 신의 도시로 해석하는 것이 종래의 설이나, 시(市)가 도시의 개념으로 사용된 것은 근대 이후이므로 신시를 신불(市:슬갑 불; 巾-총4획)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불은 고대말로 현재의 땅이라는 뜻으로 '벌'이라는 현대어가 남아 '벌판'등으로 쓰인다. 후대의 신라, 서울과 동형으로 보기도 한다. <위키백과>
⇒ 是謂桓雄天王也(시위환웅천왕야) : 이(是)를 일러(謂)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고 한다.
* 是謂(시위) : 是는 옳다, 이것, ~이다 등의 뜻. 여기서는 이것이라는 대명사. ‘是謂~’는 ‘이것을 ~라고 이르다(말하다)’.
* 天王(천왕) : 하늘 임금. 하늘에서 내려온 임금이므로 天王이라 표현했을 것이다. 불교적 관점에서도 사찰 입구마다 사천왕(四天王)이 있듯 하늘마다 天王이 있다.
* 也(야) : 어조사. 평서형 종결사로 쓰인다.
<참고자료>
☞ 삼국유사 고조선 전문
古朝鮮 [王儉朝鮮]
魏書云. 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經云無葉山. 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卽太伯今妙香山.]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壇君王儉.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唐高卽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 都平壤城.[今西京.]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又名弓[一作方]忽山. 又今彌達. 御國一千五百年. 周虎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唐裵矩傳云. 高麗本孤竹國.[今海州] 周以封箕子爲朝鮮. 漢分置三郡. 謂玄菟(艸+兎], 樂浪, 帶方.[北帶方.] 通典亦同此說.[漢書則眞臨樂玄四郡. 今云三郡, 名又不同. 何耶.]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었다. 아사달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를 열어 국호를 조선이라 했다. 요(堯)임금과 동시대였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 있었다. 천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내어 구하니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아채고 삼위태백을 내려다 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였다.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고 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니 그곳을 일러 신시라 하고 이를 환웅천왕이라고 했다.
그는 風伯(풍백), 雨師(우사), 雲師(운사)를 거느리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을 주관하고, 인간의 삼백 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려 敎化(교화)시켰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神雄(신웅), 곧 桓雄(환웅)에게 사람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神(桓雄)이 신령한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忌한 지 21일(三七日)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忌(기)하지 못했으므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는 그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항상 壇樹(단수) 아래에서 아이 갖기를 축원했다. 환웅은 이에 임시로 변하여 그와 결혼해 주었더니, 그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檀君王儉(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처음으로 국호를 조선이라 칭했다. 또 백안산 아사달로 도읍을 옮겼다. 이름을 궁홀산 또는 금미달이라고도 한다.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호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 단군은 이에 장당경으로 옯겼다. 나중에 돌아와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 수명이 1908세였다」. 당 배구전에 이르기를 「고려는 본래 고죽국이다 주나라 때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 한나라 때 삼군을 나눠 설치했다. 현도, 낙랑, 대방이라 했다」. 통전에 또한 이와 같은 설이 있다. ( 원문의 [ ]안은 삼국유사 원문의 주석인데 생략함)
☞ 桓因에 대한 해석,
사학자 문정창(文定昌)씨는 단군고기(檀君古記)에 관한 연구에서 <환인>은 <환국(桓國)>으로 고쳐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 전하고 있는 삼국유사의 원본, 즉 이조 중종 7년(A.D1512)에 경주부윤(慶州府尹) 이계복(李繼福)이 중간(重刊)한 정덕본(正德本)에는 <환인>이 분명 <환국>이라고 되어 있었던 것을 일제 치하의 일인 어용학자 금서룡(今西龍)이 주동이 되어 우리 역사의 왜곡·날조·말살의 음모를 행할 때, <환국>을 <환인>으로 날조하여 세상에 퍼뜨렸다는 논거에서다. 실제 육당 최남선이 간행한 「삼국유사」에는 <인>자가 아닌 <국(囗+玉)>자, 또는 <국(國)>자를 박아 두고 있다. 환인에 대한 일연(一然)의 원주(原註)에는 <환인>은 <제석(帝釋)을 말한다.>고 했는데 제석은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忉利天)의 임금을 가리킨다.
일연이 굳이 <제석>으로 주석을 낸 것이나, 그와 동시대 사람인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帝王韻記)」에서 단군의 일을 읊은 대목의 주석과 본문에서 <상제환인>, 또는 <환인으로 기사(記寫)하고있는 것으로 보아 일연이 「유사(遺事)」를 편저하던 당시에도 역시 나라 이름 <환국>이 아니라 천제 이름 <환인>으로 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환인>은 <제석>의 범어(梵語) 음역에 의한 완전한 기사인 <석제환인타라(釋提桓因陀羅)>에서 차용해 온 것일 것이다. 일연이 주석이 불교적인 입장에서 나온 것은 이와 같이 <환인> 자체가 이미 불교적인 명칭이었던 데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 이상 <삼국유사 : 이동환역주> 9p
桓因을 우리말 ‘하늘’, ‘하느님’에 대한 음차(音借)로 보는 견해도 있음.
사람’에 대응되는 한자어는 ‘인간(人間)’이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한자어가 본래부터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여 온 것은 아니다. 이것이 ‘사람’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일본식 한자어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이후의 일로 여겨진다.
‘인간’이라는 한자어는 ‘인생세간(人生世間)’이 줄어든 말이다. 그 글자 뜻에 충실하여 해석하면 ‘인간’은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띤다. 그렇다. ‘인간’은 본래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지내는 ‘세상’이라는 의미로 존재했다. ‘천계(天界)’에 대해 이 ‘세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월인석보”에 나오는 “人間은 사 서리라(인간은 사람의 사이이다.)”라는 풀이가 그 본뜻을 더욱 분명히 해 준다.
‘인간’이 ‘세상’이라는 의미로 쓰였음은 다음의 표현에 보이는 ‘인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세상 어느 곳이나 청산이 있다.
※ 인간만사(人間萬事)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이다:세상의 모든 일은 새옹지마이다.
※ 인간은 고해(苦海)이다:세상은 고해와 같다.
※ 천상인간(天上人間):천계(天界)와 하계(下界).
그런데 지금의 ‘인간’은 ‘세상’이나 ‘세간’이라는 의미보다는 그 세상에 사는 주체인 ‘사람’이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이 ‘사람’이라는 의미는 그 본래의 의미인 ‘세상’과 관련하여 파생된 의미가 아니라 새롭게 첨가된 의미이다.
첨가된 의미 ‘사람’은 일본식 한자어 ‘人間’이 지니는 의미이다. 일본식 한자어 ‘人間’이 갖는 의미로부터 차용되어 전통적 한자어 ‘人間’에 첨가된 의미가 바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세상’을 뜻하는 ‘인간처(人間處, 사람이 사는 곳)’라는 잉여적 의미의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人間’이라는 단어는 본래의 의미보다는 차용된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인간’이라는 한자어가 많이 쓰이면서 상대적으로 고유어 ‘사람’은 훨씬 덜 쓰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합성어 형성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인간관계’는 ‘인간’을 ‘사람’으로 교체해서 표현해도 무방하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인간쓰레기’, ‘인간문화재’ 등은 그 교체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사람’의 쓰임이 제한되고 있는 반면 ‘인간’의 쓰임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인간’은 그 쓰임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기도 하였다. ① ‘사람의 됨됨이’라는 의미와 ②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이 어찌 그 모양인가?”의 ‘인간’은 ①의 의미이고, “이 인간아, 정신 차려라.”의 ‘인간’은 ②의 의미이다.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의미 가치가 하락한 것인데, 한자어의 의미 가치 하락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한자어의 경우는 의미 가치 변동이 그리 흔하지 않다.
☞ 상서원(尙瑞院) 옥새의 관리기관
http://blog.naver.com/sinbiga/30006115249
조선에서는 1392년 개국하자마자 상서사(尙瑞司)를 설치하여 새보(璽寶)‧부패(符牌)‧절월(節鉞) 등을 함께 관리하게 했고, 1466년(세조 12년) 상서원(尙瑞院)으로 개칭했다. 관원으로는 정(正:정3품 당상관) 1명을 두되 승정원(承政院)의 도승지(都承旨)가 겸직하고 판관(判官:정5품)·직장(直長:종7품) 각 1명, 부직장(副直長:정8품) 2명을 두었다. 상서원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장새관의 옥새관리
옥새의 관리는 새보를 관장하는 관원인 장새관(掌璽官)이 하였다. 장새관이라는 직책은 ‘중국 지관(地官)의 하관(下官)에 부절(符節)을 관장하는 장절(掌節)이라는 관직이 있는 바 그의 직무에 관해 기록한 문장에 금, 은, 비단, 포를 거래할 때는 새절(璽節)을 사용한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옥새를 관장하는 ‘장절’이라는 관직에 있는 장새관이 옥새를 관리하였던 것이다.
옥새는 대부분 상서원에서 관리하였지만, 모두 전임해서 관리한 것은 아니다. 세조는 궁내부가 상서원에 있는 옥새를 조사한 예가 있어 실질적으로 궁내에서 관리하는 경우도 있었고, 상서원에서 관리하는 예도 있었다.
상서원에서는 마패도 관리했다. 마패의 뒷면에는 연호·연월일과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 하여 옥새와 인장 및 병부(兵符)를 담당했던 기관인 상서원에서 발급한 내용이 적혀 있다. 특히 위조를 방지하기 위하여 이 중 글자 하나는 밀랍(蜜蠟)으로 특수하게 본을 만들어 조금씩 다르게 만들었다.
마패의 앞면에는 보통 부릴 수 있는 말의 숫자가 표시되어 있는데, 한 마리에서 열 마리까지 표시하게 되어 있다. 영조시대에 암행어사는 보통 세 마리의 말을 부릴 수 있는 삼마패를 가지고 다녔고, 열 마리가 그려진 십마패는 왕실에서 사용하였던 신표이기도 했다.
마패를 잃어버리거나, 위조하면 그 문제가 조종의 중심기관인 의정부에서 논의되고 문책 대상이 되었다. <승정원일기> 고종3년(1866년)의 내용을 보면 마패를 위조한 자를 문책하여 목을 잘라 걸어 놓는 효수형에 처하기도 하였고, <일성록> 정조10년(1786년)의 기사를 보면 마패를 주워 헌납한 사람에게 큰상을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마패의 뒷면에 새겨진 연호로 인해 외교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명(明)에서 청(淸)으로 왕조가 교체되면서 명나라 황제의 연호를 사용한 것이 청나라에게 빌미가 되어 외교문제로 비화되려했으나 조선에서 이를 급히 수정하여 위기를 모면한 일도 있었다. 힘없는 나라에서 명분론에 집착했을 때 겪어야할 운명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궁내대신이 관장
상서원은 그 중요성 때문에 궐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중요한 관정은 궐 밖에 있었다. 왕실과 직결되는 중요한 관청은 경복궁 내에 두었다. 춘추관도 왕실과 직결되는 역사를 편찬해야 하는 왕조시대의 중요성 때문에 임금이 거처하는 경복궁 내에 두었다. 상서원은 왕의 옥새를 비롯한 인장들을 제작 관리하는 중요성 때문에 궐내에 두었던 것이다.
옥새를 제외한 각 관청의 인장은 당상관(堂上官)이 있으면 당상관이 사용하고 3품 이하의 관청이면 행수관(行首官)이 사용했다. 행수관에게 사고가 생기면 다음 관리가 사용하는데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성균관, 훈련원에서도 이와 같다. 지방관리 인장은 관찰사의 경우 지경에서, 절도사, 첨절제사, 만호의 경우 진문에서 대면해 주고받는다.
조선말기인 1895년(고종 32년) 고종임금은 포달 제1호로 궁내부관제를 반포하여 궁내대신이 국새와 어새를 보관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궁내대신은 왕실의 일체 사무를 도맡아 처리했고, 옥새와 어새를 관리했다.
옥새의 관리에 대해서는 칙령 1호에서 8호까지 명시해 놓았다. 옥새에 대한 공문규정에 보면 옥새의 관리와 용도에 대해 구체적인 규정을 정했다. 5년 후 대한제국이 설립된 뒤 <원수부규칙>을 보면 군무국에서 옥새와 인장의 관리를 전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