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들이 흐른다 - 발랄한 초록색, 생기 넘치는 지느러미들이, 일제히 찰랑하고 흔들며, 쉼없이 들리는 생명의 속삭임. 물처럼 부서져, 초록색으로, 초록색으로 투명한 고기들이 저희 가운데서 헤엄치고 있다. 고기는 곧 물이다. 물은 곧 고기다. 겹쳐져 지나가는 흡사 일렁이는 물 속 비추인 그림자 같은 고기들. 그 촉촉한 잔등이, 산뜻이 젖은 이어짐, 초록색으로 흐르는 강. 지느러미 흔들리는 소리는 웃음소리 같다. 자기처럼 초록색으로 울리는 파도. 골골히 올랐다 내렸다, 바삐바삐 꼬리를 흔들며 웃음소리르 타고 헤엄치는 초록색 고기들. 싱그러운 초록색 - 속이 비쳐 보이는 맑은 초록색. 연두도 기껏 갓 난 새순처럼 부드럽고 투명하고, 깎아낸 에메랄드 조각처럼 연이어 가로질러간다. 초록색, 초록색, 초록색. 웃음소리처럼, 또르르 굴러내리는 물방울처럼, 초록색으로 흐르는 강. 초록색으로 헤엄치는 물고기. 찰랑거리는 생명이 어서가자, 가자고 초록색으로 속삭인다. 강은, 초록색 강은, 초록색 물고기의 강은, 웃음소리 속에서 속삭임 속에서 쉬지않고 헤엄쳐 흐른다. 강이 넓어진다. 물고기들이 불어난다. 물이 커지고 지느러미들도 한결 넓다. 진한 초록색 - 여름날 장마 가운데서 쉼없이 비를 맞고선 숲의 안쪽처럼, 깊고 어두운 초록색 물고기들이 힘차게 몸을 뒤챈다. 빨라지는 강 - 빨라지는 헤엄. 헤엄 가운데 이제는 훨씬 진하고 깊어진 초록색, 거침없이 막아낼 것 없이 흐르는 물고기들. 콰아 콰콰 폭포에 깎이는 바윈 듯 소리치는 웃음.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날으는 생명. 문득 강이 날아오른다. 물고기들이, 헤엄이 날은다. 진한 초록색은 짙어지고, 더 짙어지고, 깊어지고, 더 깊어지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물고기의 강. 더 커진 물고기들이 땅에서만 흐르지 않고 드디어 박차고 날았다. 커지는 물고기들. 거세지는 헤엄. 강은 묵빛으로 검다. 금새 뚝뚝 물이 흘러내릴 듯 번지는 먹장구름. 구불텅구불텅 용틀임치며, 고기들이 흐른다. 하늘을 덮으며 강이 난다. 묵빛의 헤엄, 깊은, 보이지 않는, 성나 외치며 용처럼 날으는 강. 고기의 잔등들은 그 용의 묵빛 비늘같다. 한폭 두루마리서 튀어나온 듯 묵빛의 강이, 묵빛 물고기들의 강이 흘러 날은다. 가장 큰 붓을 골라잡고 거침없이 내려긋는 일필처럼, 노도하는 물고기들의 외침은 차라리 하늘이 쪼개지는 천둥이다. 흰 하늘을 흘러 덮는 강 - 청산도 벌판도 그늘지고 숲가운데 술렁이는 소리 숨죽이고 움츠려, 강은 날고, 포효하고, 묵빛 물고기들, 묵빛 강, 넘쳐 흘러 솟구쳐 하늘로 하늘로, 뒤덮고 번지고 퍼지며 무섭게 흐른다. 끝간 줄 모르고 뻗은 하늘, 그 끝으로 치달리는 강, 자꾸만 커지고 넓어지고 깊어지고 짙어지고 - 우렁차게 호통치는 강. 묵빛 물고기, 구비구비 서리어 하늘을 헤엄쳐 날으는 흐름. 끝으로, 끝으로, 이제는 한뼘 만치 남은 조그만 하늘까지 온전히 덮으려 날으는 묵빛 물고기들의 강. 그러나 그 끝에 이르렀을 때, 그제야 잔뜩 맺혔던 묵구름은 물씬 물기를 내어 뚝 떨구고, 하늘 끝까지 휘돌아 다다른 묵빛 강의 끝에서 도로 맑은 물빛이 된다. 하늘 꼭대기서부터 봄비처럼, 작고 갸날프고 여리고 투명한 버들잎만한 고기들이 포드득 포드득 떨어져 하르르거리는 재잘거리는 웃음소리처럼, 이제 물빛인 생명처럼, 방울져 동그라미 동그라미로 퍼져 적시운다. --------------------------------------------------------------------- 이건 시입니다-_-. 스스로는 이미지를 중시해서 썼다지만, 읽다가는 숨차 사망할 우려도 있긴 합니다. 허나 발음도 생각해 가면서 쓰긴 했으니... 이것도 이 앞의 일기랑 비슷한 때 쓴건데(일기를 쓰고 나서 연습장에 옮겨 적은 다음, 그 뒷장에 이 시를 썼습니다.), 요즘에는 이렇다 하게 직접 쓰지는 않고 시상 같은 것만 모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