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단 근황 51번째, 2009년 3월 31일 3월 마지막 기록입니다. 이 기록은 3월 30일자
파트 연습 기록을 포함합니다. 공연까지 10주 남았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합시다. 지
금이 화요일이니까 내일부터 친다면 화요일이 9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6월 6일이 토요
일이니까 전체로 보아 9주 3일이 남은 셈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예상하는 연습 시간으로
본다면 월요일 파트 연습 9번 화요일 전체 연습 9번이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한 연습
이 레퀴엠 17번째 연습인데, 레퀴엠 연습을 26번 한다는 말이고, 지금 2/3쯤 왔다는 말이
되겠네요. 지금 우리 합창단의 초미의 관심사는 합창공연 참가 인원입니다. 그러니 그것부
터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월요일 참석인원은 15명이었고, 화요일 참석 인원은 25명이었습니
다. 만약 공연을 하려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확보해야 하는 최소한의 인원? 30명 이상입니
다. 아니 최소한 30명은 넘어서야 합니다. 대관식 미사를 할 때 솔로 빼고 합창에 참가한
사람은 31명입니다. 대관식 미사가 모차르트의 중기 작품이라면 레퀴엠은 모차르트의 최후
작품이고 분량도 대관식 미사의 두 배이고, 곡의 어려움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바로 보아
도 대관식 미사의 두 배를 훨씬 넘을 것입니다. 지금 이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입니다.
아!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해지는 기분! 그 기분으로부터 연습일지를 시작합니다.
먼저 우리집에서의 파트 연습부터 이야기합시다. 뮤클 합창단은 예를 들어 몇시까지 와
야 한다든지, 뭐 반드시 와야 한다든지하는 강제규정이 ‘全無한’ 합창단입니다. 그러기에 합
창단원이 준비를 완전히 해 둔 상태로 지휘자를 기다리는 보통의 합창단과는 달리 단원보다
지휘자님이 먼저 도착하십니다. 참 어찌 보면 지휘하는 사람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
이기도 하겠는데, 엄선생님의 입장으로는 아마 지금의 절박한 상황이 이것저것 자존심 따질
차원을 넘어서신 것 같습니다. 대단히 이른 시간에 지휘자가 오셨고, 우리는 간단한 식사를
한 뒤 바로 연습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이 연습 상태는 지휘자가 파트와 전체 연습을 전부
다 통활하는 형태입니다. 엄선생님은 베이스와 테너 그러니까 남성 파트의 소리를 먼저 다
듬은 뒤에 여성 파트를 불러 소리를 맞추어 보십니다. 그러니까 여성 파트는 어느 수준까지
올라 왔다고 간주하시고 남성 파트를 가다듬는 일에 주력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건 뭐
남성파트보다 여성 파트의 실력이 뛰어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레퀴엠이란 작품 자체가
남성 파트가 워낙 비중이 큰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도 막판에 소리를 맞추
어보니 그럭저럭 어울림이 이루어지는 듯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 하시더군요. “소리는
좀 나아졌는데, 인원은 여전히 문제네요.” 전 속으로 말했죠. ‘예! 선생님! 내일은 이 인원의
배쯤 되는 인원이 온다고 생각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최후의 선고를 기다리는 사람처
럼 오늘 31일 연습을 기다렸습니다. 레퀴엠 17번째 연습의 날
31일의 연습은 문자 그대로 시험의 시간입니다. 소프라노를 제외한 전 파트가 모두 앞으
로 나가서 자기 파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보는 것입니다. 레퀴엠 연습을 하면서 예전 대
관식 미사 연습과 다른 점을 찾아보라면 선생님께서 곡의 하나하나를 일일이 설명하고 따지
고 하는 식 보다는 우리 스스로 곡을 불러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찾아 가도록 방향타 조정
의 역할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곡 한 곡 따지면서 보기 보다는 전체를 불러보면
서 곡의 흐름을 찾고 스스로 부족한 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보완해 가도록 계속 간접적으로
채찍질을 합니다. 그런데 만약 단원들이 그에 반응을 하지 않으면? 결과는 계속 쳇바퀴 돌
듯 헛바퀴만 돌 뿐입니다. 아! 이건 정말 단원 개개인이 피말리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따라
할 수 없는 방식입니다.
노래의 순서는 앨토, 베이스 테너의 순서로 했는데, 오페토리움을 경계로 앞 부분 전체,
뒷 부분 전체를 차례차례 불러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 파트를 무려 3번씩 불러
본다는 말입니다. 다른 파트가 노래할 때 우리는 우리 파트를 소리 죽여 부르니까요. 그런
데 이상하게도 베이스가 전반부를 부를 때 상당히 혼란스럽습니다. 사실 계속 MR로 연습을
하다가 피아노 반주로 하니 헷갈리기도 하고, 이건 도대체 약간 방심하다가는 한 부분을 놓
치고 그러면 그 다음 페이스 찾기가 너무 어려워 시종 일관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어
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하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겠습니다. 정말 이래가지고는
안됩니다. 곡이 아무리 어려운 곡이더라도 만약 그 곡을 공연한다고 생각한다면 내 안에 그
곡이 들어 있어 내 마음대로 그 곡을 요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곡의 기본 골격 찾
기에 분주할 지경이니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런데 남은 시간은 아까 보다시피 9주와 3일
밖에 남아 있지 않으니.... 불철주야 연습할 도리 밖에 없군요.
남성 소리에 심각함을 느낀 지휘자는 다음 주 월요일엔 남성들만 모여서 파트 연습을 하
자고 합니다. 제 생각엔 남성 소리가 제대로 나오려면, 아니 우리가 남성 소리를 제대로 내
기 위해서는 여성 소리가 적당하게 감싸 주어야 될 것 같은데,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연습
하기가 한결 수월한데, 선생님은 우리가 건너야 할 연습의 길에 장애물을 하나 더 설치하는
기분이 듭니다. 마치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달고 달리기를 연습하는 육상선수처럼 말입니다.
여성 파트도 없이 남성 파트만으로 확실한 소리를 내려면? 처음이라는 기분으로 다시 각 파
트의 개인 연습에 몰두해야 합니다. 이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매일 두 시간씩 연습에
몰두해야겠습니다.
앞길이 암담한 듯 하지만 그래도 무조건 암담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늘 연습
에 파트 연습의 2배는 아니어도 그 비슷한 수의 인원이 나와 주었고, 우리가 확실하게 합류
하리라고 예상되는 사람들을 꼽아 보면 대략 30명 내외 인원이 될 듯 합니다. 자기의 꺼져
가는 생명줄을 잡고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 고혈을 짜낸 모차르트처럼 우리는 레퀴엠
을 위하여 우리의 마지막 고혈을 짜내고 있습니다.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승용차에
막연히 기대서서 앞을 멍청하게 응시하면서 생각에 잠기기를 ‘난 결코 이대로 쓰러지기 싫
다’는 다짐으로 가득 채웁니다. ‘내 기어이 이 작품을 완성하고 죽으리라’고 자기의 생명의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을 짜낸 모차르트가 결국 죽음 앞에서 작품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면 우
리가 그 완성의 위업을 달성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레퀴엠을 연주함으로써, 모차르트의 미
완의 예술(예술 수준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전달이 미완이었다는 말입니다)을 완성의 경
지로 올리는 최후의 몸부림에 우리를 기꺼이 내던지고자 합니다. 뮤클러 여러분들의 변함없
는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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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일지
합창단 근황51(레퀴엠 연습 17-2009.3.31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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