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나무위키 20250317
그리스 로마 신화 - 저승으로 가기 위해 건너는 다섯 개의 강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저승에는 다섯 개의 강이 흐른다고 한다. 인간은 죽으면 이 강들을 건너 저승의 왕 하데스가 지배하는 명계에 도달한다. 이 강들은 후에 단테의 신곡 저승편에서도 저승의 다섯 강으로 등장한다.
비통의 강 아케론(Ἀχέρων/Acheron) : 죽은 자는 저승의 뱃사공 카론(Charon)의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죽은 자들이 자신의 죽음을 비통히 여겨 울며 건너기 때문에 비통의 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아케론을 건너는 자는 뱃사공 카론에게 뱃삯을 주어야 했으므로 고대 그리스 인들은 시신의 입에 동전을 넣어주었다.(카론이 뱃삯을 철두철미하게 챙기기 때문에 만일 이 삯을 망자에게 챙겨주지 않으면 영원히 나룻터에서 헤매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전쟁 중 적에게 죽은 장수의 시신을 어떻게든 돌려받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
시름의 강 코퀴토스(Κωκυτός/Cocytus, Kokytus) : 두 번째로 지나는 강인데, 이 강을 건널 때는 강물에 자신의 과거의 모습이 비치기 때문에 시름에 젖게 된다고 한다. 밑의 퓌리플레게톤 강과는 달리 얼음장같이 차갑다고 전해진다.
불길의 강 플레게톤(φλεγεθων/Phlegethon) : '퓌리플레게톤'이라도 한다. 앞의 접두어 '퓌리'가 '불타는'을 의미하므로 보통의 물이 흐르는 강이 아니라 불길이 흐르는 강. 죽은 자의 영혼은 이곳에서 불태워져 정화된다.
망각의 강 레테(Λήθη/Lethe) : 플레게톤에서 불로써 정화된 영혼은 레테 강물을 마시고 자신의 모든 과거를 잊게 된다. 그래서 망각의 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원한이 너무 강한 영혼들은 레테 강물을 마셔도 생전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고 한다.
증오의 강 스튁스(Στύξ/Styx) : 명계를 아홉 번 휘감고 있는 강. 이 강은 다른 강과는 달리 신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스튁스 강에 대고 한 맹세는 신조차도 절대 깰 수 없으며 이를 어길 시에는 1년 동안 숨도 못 쉬는 상태로 잠들게 되고 깨어난 이후에도 9년 동안 신으로서 살 수 없다.(불멸하는 신들이 고작 10년 고생하는 걸 왜 그렇게 무서워하는 이유는, 신들은 각자 담당하는 영역이 있고 자의든 타의든 그 영역을 돌보지 못한다면 세계에 커다란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한 예로 데메테르가 딸이 하데스에게 납치당한 걸 알고 파업하자 그리스 전역이 난리가 났다. 만약에 데메테르가 스틱스의 맹세를 어길 경우 10년간 대흉년이 생기고, 출산을 담당하는 에일레이튀아아가 스틱스의 맹세를 어길 경우 출산해야 하는 산모가 10년 동안 출산을 못하게 된다.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 이 때문에 신들조차 죽음을 인식할 수 있고 두려워하는데, 보통 죽음을 표현할 때는 부정적인 감정을 곁들여 수식을 하므로 증오라는 명칭이 붙었다. 즉, 증오를 상징하는 강이 아니라 증오스러운 죽음의 강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또한 망자들 역시 이승으로 돌아가려 하면 스튁스 강이 이를 용납하지 않고 타르타로스로 보내버린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고.
스튁스 강까지 건너고 나면 미노스 3형제에게 재판을 받고 죄의 경중에 따라 이후 머물게 될 영역을 지정받는다. 저승의 영역에는 낙원의 들판인 엘리시온과 일반적인 저승인 하데스의 성채, 그리고 무한지옥 타르타로스가 있다(타르타로스는 그 자체로서도 신격을 지닌 태초 신으로 원시적인 저승의 신이다). 망자들은 이곳에서 저승의 백성이 되어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단, 엘리시온의 경우 크로노스가 관리한다는 설도 있다.
불교, 도교에 나오는 저승의 강
삼도천
삼도천(三途川, Sanzu River)은 불교에서 말하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강이다. 글자만 보면 내 천(川)자를 썼으니 냇물이어야 할 듯하지만[1], 다들 강처럼 크고 깊은 물로 여긴다. 삼도천을 달리 장두하(葬頭河)라고도 말하므로, 딱히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인 출처는 중국에서 나온 위경인 지장보살발심인연시왕경(地藏菩薩發心因緣十王經)이다.
그리스 신화의 스틱스강이나 고대 중국의 황천(黃泉)과 유사하다.
본디 삼도(三途)에서 도(途)란 길 도(道)와 같은 뜻이며, 삼도는 불교의 삼악도(三惡道)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삼악도는 각각 지옥도, 축생도, 아귀도를 뜻한다. 그러나 삼도천이란 단어에서는 삼악도란 뜻이 아니라 정말로 '건너는 길이 세 갈래 있는 물가'란 뜻으로 사용하였다. 이하의 설명은 지장보살발심인연시왕경에 나온 묘사를 따른 것이다.
죽으면 먼저 큰 산을 넘어 저승시왕의 첫 번째 영역에 들어선다. 첫 번째 영역과 두 번째 영역 사이에는 나하천(奈河川)이라는 강물이 있는데, 나하천이 바로 삼도천이다. 강가에는 의령수(衣領樹)라는 나무가 있는데 거기에 옷을 벗어두면, 현의옹(懸衣翁)과 탈의파(奪衣婆)라는 남녀 노인이 나타나, 죽은 자의 업을 평가해서 각각의 길로 보낸다.
산수뢰라 불리는 상천은 가장 얕은 곳으로 보통 사람은 이곳을 7일동안 걸어서 건넌다. 중천은 물이 깊지만 가운데에는 유도교라는 이름의 보석으로 장식된 다리가 있는데, 정말 극도의 선인들만 이쪽으로 건널 수 있다. 이것을 건널 정도면 일단 천상행은 확정이다. 마지막으로 강심연이라 불리는 하천은 깊어서 헤엄쳐서 건널 수밖에 없는데 그 안에는 물뱀들이 우글거리고, 위에서는 바위가 떨어져서 건너는 사람들을 박살내지만 이미 죽었으므로 다시 살아나서 고생고생하면서 건넌다. 물론 악인 전용 코스다.
황천
고대 동아시아에서 죽은 자의 혼이 간다고 여기는 세계. 노란 하늘(黃天)이 아니라 노란 샘(黃泉)이다. 구천(九泉)[1]이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흔히 '구천을 떠돌다'라는 표현에서 구천이 이 구천이다.(국어사전에는 구천(九泉)이 불교용어로 나온다. 하지만 전한시대에 쓰였다고 보는 연단자(燕丹子)에 저승이란 뜻으로 구천(九泉)이 나오므로, 불교 유입 이전부터 존재하던 단어를 불교계에서 받아들여 사용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삼도천과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삼도천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라면, 황천은 그냥 저승.
황천으로 이미지한 저승은 지하수가 흐르는 땅 깊은 곳이다. 고대에는 여기서 사후생활을 한다고 믿지 않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흔히 말하는 저승과 유사한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황천은 도교적, 불교적 세계관이 융합된 저승세계로 지옥에 가기도 극락에 가기도 미묘한 사람들이 환생하는 곳이라 전해진다(서구에서는 가톨릭에서의 연옥 개념과 비슷하다). 이승의 생활과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데, 황천에서 악한 짓을 한다면 바로 지옥행이니 적어도 치안은 좋지 않을까 싶다.
황천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중국 춘추시대 정(鄭)나라의 공작 장공(莊公)이 평소에 어머니와 사이가 매우 나빴다. 장공은 이름을 오생(寤生)이라 했는데, '태아의 위치가 거꾸로인 난산'이라고도 하고 '자다가 깨보니 애를 낳았다.'고도 한다. 어쨌든 출산시 불쾌한 기억 때문인지 혹은 고통스러운 출산 과정 탓인지 장공을 미워하게 되었다. 대신 어머니는 동생 단(段)을 몹시 아꼈는데, 끝내 단을 부추켜 반란을 일으키게 한다. 그런데 장공도 보통 인물이 아니라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좋은 영지를 내려주는 등 아주 좋은 대우를 해주는 척 하며 오히려 단의 반란을 조장했는데 무려 20년 넘게 기다렸는데 그의 바람대로 동생이 반란을 일으키자 기다렸다는 듯 때려잡았고 공숙 단은 위나라로 망명가고(소설 열국지 에선 언성에서 포위를 당하자 자신에게 헛바람을 넣어 일을 이지경까지 몰고간 어머니를 원망하며 자살하지만 실제로는 위나라의 망명객으로 있다가 죽는다) 장공은 내전의 또 다른 원흉이자 기어이 자식들끼리 상잔하도록 조장한 비정한 어머니, 무강을 영 땅에 유폐한다. 그리고 생모임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힌 그녀에게 분노해 내 황천에서나 만나볼까,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맹세해 버린다. 하지만 동생을 쫓아내고 어머니마저 내쳤으니 속이 편할 리가 없었다.
그러자 영성 땅의 하급관리인 영고숙(穎考叔)이 간언하러 결심했다. 먼저 올빼미를 구해서는 장공에게 사냥한 짐승을 바친다 하였다. 장공이 "올빼미가 아닌가?"하자 "올빼미는 어려서는 어미 젖을 먹지만, 커서는 어미를 쪼아대는 불효한 새라 사람들이 잡아먹습니다"했다. 영고숙의 의도를 안 장공은 묵묵부답이었는데, 마침 염소를 찐 요리가 나왔다. 두 사람은 같이 식사를 했는데 영고숙은 고기를 먹지 않고 맛난 부분을 골라 따로 쌌다. 장공이 왜 먹지 않는지 이유를 묻자 "집안이 가난해서 평소 노모에게 고기를 올리지 못하는데, 이참에 고기를 올리려고"하고 답한다. 효심에 감탄한 장공은 "나는 어머니를 봉양하고 싶어도 맹세 때문에 만날 수도 없다"고 탄식했고, 영고숙이 황천에서 모자가 상봉할 계책을 준다. 땅을 파서 샘물(泉)이 솟아나오면 곧 황천이니 거기에 방을 만들고 어머니를 모시라는 것. 그 덕분에 장공은 어머니와 다시 이승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 일화를 통해 황천이라는 용어가 3천여년 전부터 통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명칭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개명당한 동이 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黃金洞)이 그러한 사례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 손처눌이 피난 온 마을에 터를 잡고 곡식을 심어 들판이 황금빛으로 빛났고 근처 산림이 울창해 황청리(黃靑里)라는 이름이 붙었고 1914년 황청동(黃靑洞)이 되었으나, 하필 황천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1977년 황금동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강화군에는 실제로 황천포구라는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