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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일자...09년4월 12일06시
산행 장소...선운산(도솔산336m)
참 가...미림산악회원
산자락은
눈부신 햇살 머금은
하얀 꽃바다
겨우내
겹겹이 껴입었던 두려움과 근심
미움과 걱정들 훌훌 벗어버리고
연인들의 꿈 활짝 피는
봄날의 향연! . . . 바람 불면
나비처럼 후르르 날아가는
황홀한 흩어짐
못내 아쉬워~
(오두영)
온난화 때문일까. 해마다 봄이 조금씩 빨리 오는 듯하다. 찬 겨울이 가고 봄이 조금이라도
일찍 찾아오면 다들 반기는 것 같다. 하지만 반가워만 할 일인지... 자연의 섭리에 도발을
감행했던 인간들의 무분별한 행위가 상상을 초월한 재앙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하는 이들의 말처럼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몸을 웅크리는 겨울보단 역시 봄이 생기를 느끼게 해서 좋다. 여의도와 남산 허리에는 벌써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단다. 보도를 통해 알 뿐이지만 마음은 벌써 산으로 들로 줄달음을
치고 있다. 하얀 꽃잎파리 눈꽃처럼 날리는 산야가 우리를 유혹하는 봄이, 뜨락에도 골목어귀
에서도 손짓하고 있다. 겨우내 겹겹이 껴입었던 두려움과 근심, 미움과 걱정들 훌훌
벗어버리고 황홀한 봄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선운산을 찾아 미림산우들이 아침 일찍
화곡역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 모두들 어릴 때 김밥과 사이다 한 병 들고 마냥 즐거웠던
유년으로 돌아간 듯 환한 모습들에서, 오늘 산행은 성공적이리란 예감을 한다. 삼월은 늦봄이니 청명 곡우 절기로다
봄날이 따뜻해져 만물이 생동하니
온갖 꽃 피어 나고 새소리 갖가지라
대청앞 쌍제비는 옛집을 찾아오고
꽃밭에 범나비는 분주히 날고 기니
벌레도 때를 만나 즐거워 함이 사랑홉다
-농가월령가-
청명 한식 다 지나고 곡우를 며칠 앞둔 절기에, 만물이 생동하고 온갖 꽃이 피어나는 이때,
어찌 기쁨을 안으로만 삭이고 있겠는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몇몇 다정한 모습들이 보이지
않아 아쉽지만, 새로운 면면들이 외려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 같았다. 산신령님을
마지막으로 6시 20분 쯤에 출발했다. 서해안고속도를 들어서니 시원한 아침 공기가 온통
폐부를 시원하게 뚫어 주는 듯했다. 상쾌했다.차창으로 내다보니 여기저기
산야엔 꽃들이 무릴 지어 피어 있었다. 연년세세화상사 세세연년인부동(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이라고, 옛 시인이 읊었던 무상이 어찌 우리 인간에게만 한하는 일일까.
작년에 피었던 그 꽃이 올해 다시 피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 꽃이 그꽃인 듯 우린 단순한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인데...꽃이 피고 지듯 우리도 나고 죽고 하는 게 당연한 자연의
섭리인 걸.행담도 휴게소엘 잠시 들렸다. 바다와 섬들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선다.
아산만 삽교방조제를 지날 땐 잠시 지난 날의 어두운 기억들이 마음을 착잡게 하기도 했다.
다 지난 일인데... 당진 보령을 지나면서 차창으로 파노라마 치는 나직나직한 산과 들을
바라보노라니 논과 밭엔 벌써 봄을 준비하는 파란 이랑들이 삶의 희열을 선물한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산들이 나지막하고 동그스럼하게 보인다. 이곳 사람들의 순후하면서도
다정다감한 심성이 느껴진다.군산휴게소에서 어디론가 산우들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걸
보면서 넓은 주차장엔 빈 자리가 많은 걸 보니, 나들이하는 사람들도 많이 줄어든게
아닌가해서 마음에 잠시 그늘이 드리워졌다.
10시 좀 지나 선운산 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 강대장의 선도로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단체 사진도 한 컷 했다. 오늘은 다소 여유로운 산행으로 숲도 보고 나무도 보면서
수줍게 피어 있는 이름 없는 풀꽃들도 감상하면서 가자했다. 역시 산행대장을 따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선운사 진입로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많은 산꾼들과 어울려 진입로
양쪽으로 늘어선 노점들이 즐비한 길을 따라 오르자니, 유원지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들이 펼쳐진다. 탐방센타를 지나자 왼편으로 절벽엔 난생 처음 본 송악(내륙에서
제일 큰... 천연기념물367호)을 지나고 선운사 일주문을 지나니 경내가 말끔히 정리돼 있었다.
지난 날 보았던 고찰의 모습이 아니어서 조금은 낯설다.
계곡엔 물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온 겨우내 가뭄이, 이 심산유곡의 물마저도 흐를수 없게 했나보다.
옥류가 청아한 소릴 내고 발이라도 담그고 싶을 텐데, 골짜기엔 검은 물이 군데군데 고여 있었다.
도토리 삭인 물이 계류를 오염시켰기 때문이란다. 설악의 골짜기마다 폭우에 할퀸 자국을 여기에선
볼수 없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선발대는 벌서 도솔암을 지나 사자암을 지났단다. 계곡을 건너
산로를 따라 우리는 쥐바위 쪽으로 길을 잡고 산꾼들로 붐비는 등로로 접어들었다. 연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이름 모를 나무들을 보면서 장사송을 우측으로 지나 점점 가파른 길을 한 걸음씩
오르기 시작했다. 이 쪽 등로엔 표지판도 설치되지 않아 불편했다. 나직한 산죽들이 듬섬듬성 했고
곳곳에 진달래가 고운 웃음으로 우릴 반겨주는 듯한데 산까치들이 가끔 머리 위를 지나간다. 이름
모를 산새들도 보이고 멀리서 산꿩의 울음소리가 싱그러웠다. 험하진 않지만 육산으로 가파른 길이
산행을 더디게 한다.
산신령도 우리와 보조를 같이 해 속도를 줄여주었다. 잠수정이 오늘따라 맥을 못추는게 물을
떠난 탓인가. 이마가 닿을 것 같은 가파른 길을 몇 번이나 가다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산
중턱을 올라섰다. 맞은 편에 도솔암이 정겹게 마주하고 앉아 있다. 아늑한 산사의 모습이 어머니 품같아
그리로 달려가고 싶다. 대웅전 앞뜰엔 연등이 줄지어 있어 부처님 오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부처님 계신 곳이 곧 정토이고 피안일까.진불은 심불이라 했으니 내 마음
속이 바로 부처 계신 곳이길...
다시 한참 오르다 보니 멀리 쥐바위가 가물가물 보이고 밧줄을 잡고 오르는 산꾼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점심 시간이 다 된 것 같았다. 적당한 자릴 잡고 민생고를 해결하잔다. 쨍쨍 햇빛이 비치지 않고
바람도 적당해 산행엔 썩 좋은 날씨였다. 그늘진 곳엔 다른 사람들이 자릴 차지했고 할 수 없이
쥐바위봉 가까운 곳에 자릴 잡고 앉았다. 수원 사시는 김 부회장이 몸이 불편해 같이 오르지
못하고 선운사에 남아 있어 마음이 쓰였다. 알맞게 땀을 흘리고 산등성이에 앉으니 이슬만 있으면
신선 부러울 게 없을 것 같다. 땀을 식히는 동안 멀리 앞쪽으로 개이빨산, 낙조대, 천마봉,
배맨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산행대장 따라 낙조대에 올랐으면 눈앞에 펼쳐질 서해와
점점이 흩어진 섬들도 조망했을 텐데...조금은 아쉬웠다.
준비한 도시락을 게 눈 감추듯, 꿀맛이 따로 없었다. 준비한 참이슬 한 병으로 산상주 한 고푸씩 했다.
다들 신선이 되었단다. 손이 불편한 매천 선생과 하일 킴을 두고 신령님이 잠수정을 타고
쥐바위 꼭대기에 올랐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저 아래 저수지(도솔제)의 파란 물이 보인다.
진정 정상에 서면 호연의 기개란 어떤 것일까
直過長空入紫烟(직과장공 입자연하니)
始知登了最高巓(시지등료 최고전이라)
一丸白日低頭上(일환백일은 저두상이요)
四面群山落眼前(사면군산은 낙안전이라)
身逐飛雲疑駕鶴(신축비운 의가학하고)
路懸危磴似梯天(로현위등 사제천이라)
- 안축-
긴 허공 곧게 지나 붉은 안개 속 들어가니
최고봉에 올랐다는 것을 비로소 알겠네.
둥그렇고 밝은 해가 머리 위에 나직하고
사면 뭇 산들이 눈 앞에 내려앉았네.
몸은 날아가는 구름 쫓아 학을 탄 듯하고
높은 층계 달린 길 하늘의 사다리인 듯
해가 나직하고 뭇 산들이 눈 앞에 내려앉아, 몸이 학을 탄 신선인 듯 할까. 정상에서 한 컷 하고 곧바로 하산,
오던 길 되돌아 내려오는 코스는 한결 수월했다. 계곡을 건너 도솔암을 들렸다. 저 산 위에서 보던
도량은 아닌 듯, 세속이 진하게 물들어 있는 것 같아 서글펐다. 하지만 불당 앞에선 고개 숙여 합장,
역시 마음이 아닐까. 세속은 이내 마음에서 떨쳐버리면 되는 것, 누구나 불국을 염원하지만
그 길이 그리도 멀까. 여기서 바라보니 저 건너편 산이 피안인 걸... 앞뜰엔 찻집이 자리하고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오 자네 왔는가
이 무정한 사람아
청풍에 날려 왔나
현학을 타고 왔나
자네는 먹이나 갈게
나는 차나 끓임세
누구의 말일까. 설마 상인의 내밀한 마음은 아니겠지... 어디선가 묵향이, 은은한
다향이 찌들은 마음을 맑게 해주는 듯했다. 내려오는 길에 전설이 서린 진흥굴과
수령 600년의 장사송(천연기념물354호)도가 봤다. 선운사 경내로 들어섰다. 수려한
계곡과 울창한 숲으로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도솔산 자락에, 백제 위덕왕 24년에
세운 선운사는 89암자를 거느렸던 대찰이었으나 지금은 도솔암, 참당암, 동운암 등으로
유서 깊은 고찰로 남아 있다. 경내엔 수령 500년이 넘는다는 동백숲(천연기념물167호)
이 우거져 짓붉은 자태로 병풍치듯 절을 옹위하고 있다. 오백여 평 넓은 숲엔
삼천 그루의 동백이 장관을 이루어 선운사라면 으레 봄이면 이 숲과 가을엔 상사화를
떠올리게 한다. 숲 앞엔 수선화가 한껏 자태를 자랑하는 듯했다. 집합 시간이 촉박해
경내를 두루 살피지 못해 아쉽다. 일행들과 합류해 따끈한 찌개와 하산주로 피로를풀고
환담을 나누었다. 4시 반 쯤 귀경길에 오르려는데 어딘가 마음 한구석 허전함을 떨칠수
없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까이 있는 미당시 문학관을 찾아볼 텐데...
선운사 골째기로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미당 서정주-
목이 쉰 육자배기 가락에 남은 동백을 읊조리면서 발길을 돌렸다.
목 어 : 백 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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