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고궁에 갔다. 무더운 날씨에도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중·고등학생까지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왜 이렇게 아이들이 많을까 생각해보니 벌써 개학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방학 과제 중에 고궁이나 박물관 견학 숙제가 있어서이다. 고궁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설명서를 쓰고 사진을 찍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아이들은 지친 얼굴이었고 주위를 둘러보니 따라 다니는 부모들이 더 힘든 얼굴이었다.
부모들은 "숙제가 너무 어려워서 아이들 숙제인데 부모 숙제가 되어 엄마 아빠노릇 하기 힘들다"라고 푸념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가기 힘드니까 방학동안에 가보라고 하는 것이겠지만 무엇을 보고 오라는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한 번하고 그만할 것이 아니라면 학년의 수준에 맞게 세분화 시켜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고 오라는 것인지 알려주어야 한다.
더불어 참고할 만한 책도 같이 소개해서 공부를 하고 볼 수 있게 하면 아이들에게 더욱 좋을 것이다. 배경지식을 알고 가면 같은 것을 보더라도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본래 관심이 없는데다가 전혀 모르는 것을 보고, 적고, 사진을 찍어 온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나를 보더라도 알고 보는 것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 그렇다면 몇 가지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첫째, 고궁에 가기 전에 먼저 아이들과 함께 계획을 세워야 한다. 무엇을 볼 것인지 미리 정하고 가야 한다. 건물들이 다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문양을 볼 것인지, 건물의 의미를 알아 볼 것인지, 건물의 양식을 살펴볼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좋다.
이와 관련된 자료를 도서관이나 인터넷에서 미리 찾아보고 공부를 해야 한다. 아이들은 「보고 배우는 문화유산」(여명 펴냄), 「유적박물관」(웅진 펴냄), 「차차차 부자의 고궁 답사기」(미래M&B 펴냄) 등을, 부모들은 「빛깔 있는 책들」(대원사 펴냄), 「우리 궁궐 이야기」(청년사 펴냄) 등을 보고 가면 도움이 많이 된다.
그리고 준비물에 대해서도 부모가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미리 이야기해주는 것보다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실행해보는 것이 좋다. 그래야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둘째, 실제로 고궁에 갈 때는 아이들이 직접 찾아가게 하는 것이 좋다. 지도를 펼쳐서 위치를 확인하고 교통수단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부모가 이끄는 것이 아니고 도우미로 따라가는 것이 좋다.
요즈음 아이들은 혼자서 찾아다니는 것을 두려워한다. 세상이 험해서 마음놓고 혼자 보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견학 때만이라도 이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다.
집에서 출발할 때 시간을 확인하고 도착해서 다시 시간을 적어 두어야 한다. 아이들은 입장료를 내지 않지만 부모들의 표를 직접 사보게 하고 매표소에서 안내책자를 구입해서 찾아가면서 보게 해야 한다.
하루에 걸어서 볼 수 있는 한계가 있으니 시간배분도 해야 한다. 몇 군데 돌다 보면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먼저 지치게 될 수도 있다. 무엇을 먼저 볼 것인지, 예상시간을 어느 정도로 잡고 있는지 정해봐야 한다.
처음부터 설명서를 쓰느라고 힘을 다 써버리지 말고 사진으로 찍어 두는 것이 좋다. 고궁과 어우러진 풍경도 보고, 나무도 보고, 땅도 보면서 여기서 살았을 사람들을 아이들과 함께 상상해보기 바란다. 중간에 휴식시간을 가지고 이후의 진행계획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 '빨리 빨리'만을 말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고궁에 대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셋째, 아이와 견학을 다녀와서는 아이 혼자 견학기록을 쓰게 하지 말고, 부모도 같이 정리해보아야 한다. 처음 계획했을 때와 실제로 다녀왔을 때의 내용을 비교해 보고 준비한 것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다음에 갈 때 보충해야 할 것을 반드시 기록해 두어야 한다.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재촉하지 말고 참아내야 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이러한 경험은 아이들에게 유물 한 점을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 효과가 있다. 어떤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순서를 정해서 할 수 있는 논리력이 생기게 된다. 주제를 주고 그것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내서 필요한 것을 정리하고 실행에 옮겨보는 것이다.
총체적 교육, 열린교육이 이런 것이다. 견학 따로, 독서지도 따로, 글쓰기 따로가 아니다. 방학동안 아이에게 무슨 책을 읽힐까? 고민하지 말고 상황에 맡는 책을 골라 주면 된다. 견학 후에는 직접 경험한 것을 글로 정리하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쉽게 글쓰기를 할 수 있다.
부모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말고 부족하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