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의 코미디는 근본적으로 비대중적이다. 나는 그의 3번째 영화 [킬러들의
수다]가 대박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블랙코미디 는 지적인 위트와
주류 질서의 비틀림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코드와는
근본적으로 어긋나 있다.
[친구]의 대박 이후, 제왕들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올 여름 영화시장
전쟁에서도 [신라의 달밤][엽기적인 그녀] 등이 외화를 제압했고, 현재도
[조폭마누라]의 조폭 코믹 버전 영화가 기세등등하게 극장을 점령하고 있지만,
[킬러들의 수다]가 그 뒤를 이어 대박을 터트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장진이 주류 질서 내로 편입되기 위해 칼을 갈았지만 위와 같은 근본적 한계
때문에 역시 이번에도 그의 영화는, 엉성하고 허점투성이인 [조폭마누라]에
훨씬 못미치는 성적을 거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조금씩 사람들은 장진식
코미디에 길들여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장진식 코미디라니, 과연 무엇이 장진식 코미디인가?
그가 만들어내는 웃음의 빛깔은 종래의 슬랩스틱 코미디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얼굴 표정을 기묘하게 일그러뜨리는 것을 비롯해서 온 몸을 집어던지며
상황을 우습게 만들어가는 슬랩스틱류의 코미디는 가장 전통적이고 가장 낯익은
코미디였다.
그 다음이 언어의 희롱으로 인한 개그식 웃음의 창출이다. 가령 [넘버3] 같은
데서 한석규와 박상면의 두목인 안석환이 인터폴/인터폰/인터넷으로 웃음의
대박을 터트렸던 것이나, 불사파 두목 송강호가 부하들을 모아 놓고 사자성어를
써가며 일장 훈시를 통해 웃음을 만들었던 것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그러나 장진은 다르다. 장진의 코미디는 상황이 지나가고 난 뒤, 뒤늦게 웃음이
찾아온다. 그것은 그의 지적인 위트 때문이다. 그는 손쉽게 웃음의 코드를
보여주지 않는다. 바로 이점이 그를 주류 상업질서의 대중적인 코미디 작가로
위치하지 않게 만드는 핵심요인이다. 그것은 장진의 체질이다. 그는 체질적으로
상황을 정면으로 맞부딪쳐 깨부수는 것보다는 한 발자국 비껴 서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데 익숙해 있다.
[킬러들의 수다]는 타렌티노의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의 첫 장면에서 보석상을
털기 위해 모인 킬러들이 거사계획보다는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과 관련된
상스러운 농담을 진지하게 하고, 카페 종업원에게 줄 팁을 가지고 목숨 걸고
싸우려는 식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킬러라는 직업에 현실적 리얼리티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전문
킬러가 등장하는 영화에 관객들은 심리적 동화를 하지 못한다. 정우성이 킬러로
등장했던 [본 투 킬]도 그랬고, 컬트적 명화 [진짜 사나이]도 마찬가지였다.
[킬러들의 수다]는 킬러의 일상에서 현실적 리얼리티를 찾기보다는, 킬러라는
상황을 비틀어서 웃음을 주려고 한다. 진정한 웃음은 상황의 엇갈림에서 온다.
[조폭 마누라]가 형편없는 영화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기본적인 웃음을
주는데 성공한 것은, 어쩔 수 없이 순진한 노총각과 결혼해야 하는 조폭
여두목이라는 영화의 기본 설정 자체가 웃음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킬러들의 수다]에 등장하는 킬러들은 레옹 같은 완벽한 무결점의 킬러가
아니다. 목표 대상이 임산부라는 이유로 죽이지 못한다거나, 불가능한 임무를
의뢰한 의뢰인이 그들이 평소 즐겨보는 매혹적인 TV 여자 앵커라는 이유로
의뢰를 받아들인다거나, 장진은 킬러들의 냉혹한 직업적 모습이나 임무 수행보다는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더 찾아내려고 했다.
의뢰를 받아 사람을 죽이는 직업인 프로페셔널 킬러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찾는다? 역설적인 질문이지만 그 화두가 장진에게 넘어가면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간첩 리철진]에서도 무섭고 살 떨리는 간첩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 같은 고정간첩 박인환이나, 우리들 누구보다도 착하고 순진한
유오성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 역설의 언어가 대중들에게 먹히게 만드는
비법이 장진식 코미디이다.
장진 영화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뛰어난 재치와 유머 감각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영화 전편을 통제하는 거시적 시각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는
부분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무척 재미있다. 그러나 그 에피소드들이 서로
연결되었을 때, 파괴적인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리듬의
불협화음을 만들어 웃음의 에스컬레이터를 구조적으로 완결짓는데 방해를
한다. 이것이 장진의 딜렘마이다.
그러나 [킬러들의 수다]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장진표 영화중 가장 완성도를
자랑한다. [간첩 리철진]의 소박한 통일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러나 오히려
부분적으로 얼개를 열어 놓고 있다는 점에서 장진표 영화의 미래적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 [킬러들의 수다]라고 생각한다.
네 명의 킬러가 피 튀기는 연기 혈전을 벌인 [킬러들의 수다]에서 최후의
승자는 예상을 뒤엎고 신현준이 차지했다. 그는 [비천무]에서 눈에 힘만 주는
최악의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킬러들의 수다]로 다시 한 명의 배우로 재
탄생했다. 그의 연기 본령이 힘주는, 억지 카리스마를 만들려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런 자연스럽고 능청스러움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신현준의 동생 역으로 나온 막내 킬러 원빈은 무사히 스크린 신고식을 치뤘고,
신하균은 [공동경비구역JSA]에 비하면 빛이 가려지지만 역시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을 가진 배우의 면모를 드러냈다. 정재영 , 정진영, 김학철, 윤주상,
손현주 등 조연급 연기자들이 튼튼히 제몫을 하고 있기 때문에, [킬러들의
수다]는 그 어떤 영화보다 연기진의 안정감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러나 많은 예산을 투자한 폭파씬이나 대규모 군중이 동원된 [햄릿]씬이
의도한만큼 효과적이지는 못했다. 내용상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것으로
되어 있는 [햄릿]씬은 바깥 장면은 [예술의 전당]에서 찍었지만 내부는 LG
아트센타였다. 공연장을 가본 사람의 눈에는 금방 두드러지는 이런 불일치는
영화적 신뢰에 금을 가게 하는 일이었다. 사정상 예술의 전당 내부에서 촬영을
못했으면 애초에 [햄릿]씬을 LG 아트센터에서 공연하게끔 대사를 수정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