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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동호고택마을 기행기
향기 그윽한 고택 마을
아스라한 봄, 저만치 고택솔밭 손짓한다.
지도에는 없는 孤古의마을, 봄바람 저편에 떠있다.
민들레로 수놓은 파랗게 날 봄길,
돌담에 둘려 쌓인 古屋 봄빛에 졸고 있다.
이장무 서울대 前총장의 ‘벽을 넘는다’ 강좌의 뒤풀이로 옛 돌담을 누비며 ‘소통과 융합의 리더’의 꿈길을 걷는다.
<온 땅에 울려 퍼지는 희망의 노래들> <배려가 행복> <일등이 아닌 일품> <기후변화와 녹색문명을 생각하며> <창의적 모험이 가능한 사회> <과학기술과 창의사회>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이겨라> <미래를 위해 경계를 허무는 융합의 사고를 가져라> <시련을 극복한 인간 승리가 주는 감동> <청년의 꿈>을 골똘히 새기며 ‘벽을 넘는다.’
우리 곁에 고택이 있고 정조대왕의 글이 있고,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는’ 유연함의 원칙을 알리는 꿈이 벽을 넘는 장무(薔霧-장미안개 -長茂)의 향 가득하다.
세월에 삭아버린 남쪽 마을의 풍경은 적막했다.
귓가에 부서지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잃어버린 세월과 떠나간 사람들의 마음속에 서서 길을 멈춘다.
낙조의 파편을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걷고 싶은 考古의길이다.
연안 李氏 옛 집성촌 동호마을 기행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메마른 도시를 벗어나 세월을 견뎌온 고택 길에 우리의 그림자는 발짝마다 해가 시키는 대로 알고 모르게 어룽 인다. 우리 것을 외면하고 세월을 밖으로만 떠돌던 시간은 이제 우리에게로 와 새가슴 연다.
옛길을 걸으며 역사 속에 잊혔던 서툴고 낯선 오래된 나를 본다.
고택의 문예의 넋은 高古하였다.
대한민국학술원상 수상과 미국기계공학의 팰로우이며 鐘연구의 대가인 희망과 꿈을 안겨주는 碩學 者, 현실속의 이른바 ‘고택기행’을 생각하니 소설속의 주인공 같기도 하고, 실존의 모습 같기도 한 오버랩 된 인간다큐이야기 같기도 하다. 잠시도 쉬지 않는 지성의 파이어니어···
오늘만은 바람 되어 봄볕 속을 느리게 고택 뜰과 담을 엿보며 浮遊한다. 동호길 새천년의 아침··· 동호 마을이여, 종 연구의 독보적 長茂총장을 맞아 聖德王의 鐘을 울리며 이 나라의 통합과 소통의 길을 열자!!
풀과 꽃과 숲이 제 스스로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자라나는 자연을 연모하며 이 총장은 시간 나는 대로 산에 오른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스스로 살아가는 자연의 조화를 신비롭게 여기며 몸을 낮추어 자연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학자의 부드러운 모습이 일상의 평화로운 생활처럼 느껴졌다. 문명이 극도로 발달할 수 록 사람들 사이와 학문 간의 장벽이 높아지는 것을 우려하며 다양성을 통해 화해와 소통을 이루고저 남다른 功力을 쏟는 열정이 아름답다.
나는 ‘벽을 넘는다’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몇 번이고 읽었지만 그때마다 늘 새롭다.
한평생의 학문연구와 30여 년간의 대학교직과 폭넓은 국제교류 학문을 통해 학문공동체와 우리사회를 여유롭게 만들기 위한 소망을 꾸준히 펼쳐왔다. 한편으로 대학 밖의 그늘진 소외된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存在의 사회에서 生成의 사회’(From being to becoming)로의 巨視的 先進化를 위한 조직간 칸막이를 넘어 全體性을 띤 Grand theory적 未來方向을 조용히 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알려준다.
‘벽을 넘는다’ 책속에 이런 글이 있다.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이겨라.
세상에는 대부분 상식적인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는데, 때로는 역설적인 가르침이 있고 그 효과도 매우 크다. 예컨대. ‘사즉생死卽生’, ‘죽고자하면 살리라’, ‘마음을 비우면 채우리라’, ‘버리면 얻으리라’ 등 수없이 많은 경구가 있다. 배우는데 있어서도,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도.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도 오만함보다는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겸손함, 겸허함을 으뜸의 미덕으로 삼아왔다(77~78쪽)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箴言인 ‘물은 돌보다 강하고 돌도 갈아 낸다’를 첨언한다.
이총장의 ‘소박한 희망의 매듭으로 생을 단순화하자’라는 글귀를 떠올리며 문득 지나온 모든 생각을 이 길섶에 내려놓고 나를 본다..
<조상은 말한다··· 우리가 살던 고을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조상들이 어려운 살림과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이렇게 여유롭고 맑은 아름다움을 꾸밀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우리는 너무나 콤플렉스하고 사소한 것에 연연하고 있지 않은가?
늦은 저녁에 와서 다음하루를 못 채우고 떠나는 내가 원망스럽다.
고택마을 을 우리가 빼먹고 잊고 산지 오래다.
아니 아예 잃고 살아왔다. 불과 30분 동안 돌아보는 시간에도 ‘순간순간 샘솟는 흥분!!’에 휩싸였다. 삶과 느림과 자연과의 어울림으로 옛 정취의 風流가 아스라이 스미는 감동은 딴 곳에서는 어림도 없는 살아있는 인문학 기행이다. 내 평생에 이렇게 평온하고 고요한 刹那의 여정이 또 있었을까?
고택순례를 하며 100~200년을 단번에 거슬러 올라가 전에는 보이지 않던 벅찬 장르에 오싹해진다. 고택의 뜰은 옆집 마당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꽃밭 길이고, 돌담은 하늘과 산과 나무를 아우르는 非線型靜物이다. 담 넘어 나무는 내 집의 그늘이 되고 내 집의 꽃밭은 길손의 것이다.
흙돌담은 너와 나와의 벽이 아니라 이웃과 정을 나누며 영산홍사이로 애환의 조각을 엮는 나지막한 정겨운 하나의 예술품이다.
수십 년씩 묵은 매화나무들이 동시에 꽃을 피우는 황홀한 모습은 고택마을의 축재이다.
어떤 공원에서도 볼 수 없고 선진국 어느 ‘빌리지’에서도 볼 수 없
는 자연의 사치!! 우리의 이야기이다.
걷 핥기로 해온 나의 세계여행의 視覺이 부끄럽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노마드Nomad의 보해미안 생활을 미치도록 고집해온 연유로 나는 우리고유의 ‘線의 집’과 ‘넉넉한 정원’에 눈길을 보내지 못한 까닥이기도 하다. 나는 산에 그렇게 많이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조국강산의 마음’을 ‘정겹고 유연한 눈길’로 우리 마을 곁에 옮겨다놓을 생각은 못했다.
자연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병든 도시 속에서 불안한 그림자에 늘 시달려왔다.
산을 오르면서도 힘겨운 도전만이 다 인줄 알았다.
고색 찬란한 집 한 채의 뜰에 우뚝 선 고목나무에 초생 달 걸려 쉬어가는 구름을 못 보는 아쉬움은 나만의 恨인가?
고택 길을 걸으며 나 자신이 치유와 안식의 풍경이 되어 소풍 길 어린이가 되었다.
고목나무와 막 피어오르는 꽃나무 숲에 숨바꼭질 하며 생의 불꽃처럼 우리는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이 아름다음을 놓고 먼 옛날에 소멸된 육체는 영혼만이 집 어딘가에서 恨 맺힌 넋이 서성이는 것 같다.
양반의 세도가 불길처럼 드셨지만 이제는 모두 소용없는 일, 바뀌고 또 바뀌는 인간의 생애는 이런 것인가?
전설의 고택에서 쉴 새 없이 묻는다.
옛 주인 떠난 고옥을 지키는 느티나무만 홀로남아 잠든 영혼을 깨우는
여린 ‘喝’바람, 이름 모를 들꽃만 흔들린다.
눈물의 사연들은 오래된 빛에 바래, 흔적조차 없고 우두거니 서있는 고목은 마구 잎을 피어내고 있었다.
歸鄕의 노래 부르며 새 한 마리가 가지에 앉아 시린 가슴의 노래를 전해준다. 한의 노래, 봄의 노래, 고택의 노래, 이 땅의 노래···
나른하고 감동 없는 딱딱한 도시의 그림자를 말끔히 씻어 주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의 자유정신이 천년의 빗장을 열어준다.
걷는 내내 너는 ‘늙은 농부만 못하다’ 그렇게 고택이 알려주는 것 같다. 아픈 생을 임기응변으로 약산 빠르게만 산 삶을 이제서 알만하다.
물 맑고 산 좋은 이 아름다운 고장은 문명의 소용돌이 속에 잊혀지고 있지만 ‘심심하고 한가로움’ 외엔 아무것도 없는 空白의 풍경은 아무리 뛰어난 문필가라도 筆舌로 묘사는 어찌할 수 없을 것 같다.
장가계나 명승고적의 절경은 그림이나 사진등 기행문으로 묘사라도 가능하겠지만 ‘무형의 餘白’을 무슨 재주로 천연한 流水體色이나 글로 나타 낼 수 있단 말인가? 맑고 쓸쓸한 절제된 자신 안의 이는 餘白바람이 근심걱정 놓게 하였으리라. 심호흡하며 먼 하늘을 쳐다볼 일이다.
청정한 솔바람 몸을 훑고 지나며, 버려라!! 버려라!! 속삭인다.
古宅의 餘白 쓸쓸이 웃는다.
파랗게 날 고택마을지킴이 ‘이이화’의 한 발작 한 발작마다에 忍苦의 자국 가득하다. 실존적 자유를 외치던 그는 홀연히 서울을 떠났다.
귀향 농부 이이화씨라고도 하고, 인문학을 통해 삶의 뜻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파랗게 날’ 고집쟁이라고도 하며, 야성이 가시처럼 돋는 詩人이라고도한다.
그는 서울에서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를 마치고 전문 편집인으로 활동하다 2009년에 귀향해, 다 허물어진 고택에 의지해 ‘파랗게 날’ 인문학강좌를 준비해오며 2012년부터 인문학강좌를 개설하였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2013년부터는 월간지를 발행하며 인문학강좌를 전국규모로 펼쳐, 이 땅에 인간미 짙은 향기와 혼탁한 세상에 꿈과 온기를 불어넣는 詩쓰는 농촌지킴이다.
짧은 시간 내에 ‘파랗게 날’ 인문학강좌를 궤도에 올려놓은 배경에는 그의 티 없는 맑음과 가난을 마다 않고 꿈을 향한 삶이랄까?
안정된 삶을 버리고 진짜로 새로운 도전 ‘파랗게 날 머슴’으로 삶 전체를 바꿔놓았다. 자신만을 믿는 소 결음과 야성의 번뜩이는 성실함으로 개척보다는 겸손이 먼저인 그는 원래 ‘사람을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본고장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인문학을 위시해 여러 방면의 전문 편집인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최고의 지성인들과 폭넓게 교류한 지적자원이 강좌를 경영하고 월간지를 발행하는데 탄탄한 기틀이 되였다.
또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한발 뒤에서 몸을 낮추는 일꾼으로 ‘파랗게 날’ 장르의 꿈이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다.
그는 고생을 입 밖에 내놓지 않는다. 좀 답답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죽을 만큼 힘들다 해도, 그러니 인생이죠? 하며 작품 속 자기세계를 그리는 또 다른 갈림길을 기다리는 여유로운 미련퉁이가 예쁘다.
설사 일이 안 돼도 그는 누구를 원망하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가볍게 한숨짓고 ‘이이화’ 보다는 ‘이산’의 길로 접어들어 산을 향한다.
그는 ‘이산’이라는 이름으로 한때 산사람처럼 지냈다.
나는 그를 ‘이선仙’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市井의 사람이 아닌 신선한 품이 그렇다. 고집쟁이 ‘이仙’을 夢幻의 ‘이仙’이라고도 하고 싶었다. 맞대놓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늘 理想鄕을 꿈꾸는 별개의 세상을 그리며 幻燈을 쫓는 폼이 아득하게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이럴 때 야성이 돋는다, 가시처럼>의 詩집을 펴며 ‘詩인의 인사말’에 이렇게 적고 있다.
댓잎 사이로 노을이 지면
새들은 한줄기 바람처럼 사라진다.
저린 가슴에 낚인 시는
절박한 호흡이고 그리움을 견디려는 안간힘이고
견고한 테두리를 뚫어가는 전투력이다.
다시 우기가 찾아오고
젖은 날개를 털며 날아들 때까지
저문 새벽을 꿈꾸지 않은 순간이 없다. (끝)
꿈은 하늘을 찌르고 현실의 벽은 답답했다. 아니 너무나 가혹했다.
Ansology 詩選 하나들고 맥고모에 거문 고무신 차림으로 어딘가로 휘휘 바람에 맡기고 싶었으리라.
사람을 찾아 먼 길을 찾아 고택마을에 둥지를 튼 연유이기도하다.
그는 남달리 사람을 좋아해 가리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린다.
가끔은 이런저런 이야기로 한잔하는 재미를 즐기는 세속 속에서 ‘사람 내’ 나는 자기만의 무늬가 자연스레 몸에 밴 넉넉한 인품이 돋보인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도 남의 아픔을 같이하는 순정의 촌사람이다.
잡초가 우거지고 삭아버린 집을 夫婦가 발악을 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사투를 겪어낸 보람으로 이제 겨우 살만하게 꾸며놓았다.
도시사람들이 夫婦가 살려낸 고풍스런 고옥에 들려 너무나 좋다고 반기는 易地思之의 모습이 참으로 별날 것이다. 그 보람으로 이이화 夫婦는 오늘도 불가능에 도전해서 만들어낸 작품에 흡족해하며 보다 높은 꿈을 향해 매진하고 있으리라.
이제는 어떤 죽을 일이 닥쳐와도 무서울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자신들을 옥죄고 극도로 절약하며 자유를 구속하니 세상에 안 될 일은
없다 싶은 용기를 얻었음이 분명하다.
‘글과 그림 농사’ 외의 농촌 일에는 문외한인 夫婦의 극한 상황에서 마주친 인간의 진솔한 도전이 사람들의 가슴을 뜨끔하게 하는 실록의 승리이다. 이들이 무상의 가치에 만족하며 자기만의 길을 고집하는 아름다움은 내가 똑똑히 바라본 실존의 증인이다.
그들은 자신의 ‘글과 그림의 길’을 존중하며 삶의 고뇌를 몸으로 땅에 쓰는 ‘행위 하는 詩人이며 화가’이다.
‘파랗게 날’과 고택마을의 꿈을 눈물과 피와 땀으로 얼룩진 고매한 이간정신의 성취로 이뤄낼 기록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집안 살림을 챙기며 마을 공동체 일을 돕고 ‘파랗게 날’일을 뒤받쳐 주며 자신의 예술세계에 매진하는 ‘이이화’작가의 부인 ‘정해정’ 화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했고 서울예술고등학교와 홍익대학교 및 대학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마쳤다.
예원학교와 고려대 등에서 강사를 지냈다.
현재는 지역사회의 여러 학교와 단체의 미술지도강사로 맹활약을 하며 동시에 예술을 기초로 하는 인성교육에 전력을 기우리고 있다.
그의 작품은 출판편집계의 여러 매체를 통해 널리 아려진 장래가 유망한 뛰어난 작가이다.
<글을 맺으며> 한 사람의 살아가는 가치는 그 사람의 살아온 삶이 말해준다. 지식을 아는 걸로 만족하지 않고 아는 만큼 오직 행동으로 실천할 뿐이다.
사람과 자연의 융합을 행동하는, 깐돌이 박상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