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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광고 한누리 독토책 피터팬 입니다 ㅋ
9/25일 토요일 3시 입니다..;; ㅎㅎ
제목은 피터팬 이구요 ㅋ
피터팬(결말) 제임스 매튜 배리 원작
-그리운 집으로-
다음날 아침 기상 나팔이 두 번 울리자, 아이들은 모두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큰 파도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죠. 갑판장인 투틀즈는 밧줄을 손에 쥐고 담배를 질겅이며 아이들 한가운데에 서 있었어요.
아이들은 모두 해적들의 옷을 잘라내거나 접어서 맞춰 입었고, 진정한 뱃사람답게 보이려고 거칠게 행동했지요.
누가 대장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요? 닙스와 존은 일등항해사와 이등항해사가 되었습니다. 그 배에는 여자도 한 명 타고 있었죠. 나머지는 일반 선원들로, 선원용 숙소에서 지냈습니다. 피터는 이미 배를 운전하는 키에 매달려 있었죠. 그러면서 피터는 대장으로서 호루라기를 불어 선원들을 모두 갑판에 집합시킨 후, 짧은 연설을 했습니다. 선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제 임무를 다해주길 바란다며, 만약 대장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갈가리 찢어놓겠다는 것이 연설의 골자였죠. 워낙 험악하고 거침없는 말투였던지라, 선원들은 즉각 알아듣고 피터에게 열심히 환호를 보냈어요. 피터가 몇 가지 자세한 지시 사항을 덧붙인 후, 마침내 배는 웬디의 고향을 향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대장인 피터 팬은 항해 지도를 뜯어보면서, 날씨가 이대로만 계속된다면 6월 21일경에는 포르투갈 앞바다의 아조레스 군도에 닿을 수 있겠다고 계산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날아야 할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아이들 몇 명은 이 배를 평판이 좋은 배로 만들자고 했고, 나머지 아이들은 해적선으로 만들자고 했어요. 하지만 대장이 선원들을 개떼처럼 다루었기 때문에, 그들은 단체 항의서 방식으로도 원하는 바를 감히 표현할 수가 없었답니다. 즉각적인 복종만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죠. 슬라이틀리는 수심을 측량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난처한 표정으로 있다가 채찍으로 열두 대나 맞았다니까요. 선원들은 웬디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대장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해왔지만, 피터의 끈질긴 부탁에 못이겨 웬디가 사악해 보이는 후크의 옷을 줄여준 후부터는 이런 아이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후 아이들 사이에는 피터가 그 옷을 입고 선실에 앉아 입에는 후크의 담뱃대를 물고 집게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구부린 채 위협적으로 허공을 휘젓고 있더라는 소문이 퍼졌던 것입니다.
자, 배를 지켜보는 대신, 이제 우리의 세 주인공들이 오래 전에 미련없이 떠나가 버린 후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웬디의 집으로 돌아가 볼까요? 이제까지 그 14번지의 집에 이렇게나 소홀했다니 너무 심했잖아요. 그래도 달링 부인은 우리를 탓하지 않을 겁니다.
안쓰럽다는 동정심에 지금보다 빨리 달링 부인을 찾아갔다면, 부인은 이렇게 외쳤을 테니까요. “난 문제없어요. 그러니 어서 돌아가 우리 아이들이나 지켜봐 주세요.” 엄마들이란 늘 자신을 돌보기보단 아이들을 걱정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그저 아이들보다 한발 앞서 아이들의 침대가 잘 정돈되어 있는지, 달링 씨 부부가 저녁 외출을 하지 않고 집을 지키고 있는지 보려고 서두르는 겁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말예요! 하지만 세상에 왜, 말 한 마디 없이 그렇게 떠나버렸는데도 아이들의 침대가 뽀송하게 정돈되어있어야 하나요? 돌아왔을 때 부모님이 주말을 즐기러 교외로 나가버렸다는 식의 현실과 맞닥뜨리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게 아이들에게 필요한 도덕적인 교훈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달링 부인은 우리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죠.
난 정말로 달링 부인에게 아이들이 목요일까지는 돌아올 거라고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웬디와 존과 마이클이 기대했던 것들을 완전히 망쳐버리게 되겠죠? 아이들은 배를 타고 오면서 내내 뛸 듯이 기뻐하는 엄마, 기쁨의 탄성을 지르는 아빠, 자기들을 먼저 안아보려고 펄쩍펄쩍 뒬 나나의 모습을 그리며 기대에 부풀어 있더군요. 그런데 아이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미리 알려줘 버린다면 그 기대를 저버리기 딱 좋지 않겠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장엄하게 등장했을 때 달링 부인은 웬디에게 뽀뽀조차 안해주고, 달링 씨는 뿌루퉁하게 “이런, 요 녀석들이 다시 왔네.” 라고 말할지도 모르잖아요. 어쨌든, 그렇게 해봤자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할 거예요. 어차피 달링 부인이라면 아이들에게서 그런 즐거움을 빼앗았다고 우리를 나무랄 테니 말예요.
“하지만 친애하는 부인, 목요일까지는 열흘이나 남았어요. 그러니 미리 말해드림으로써 열흘 동안은 슬퍼하지 않아도 좋게 해드렸잖아요.”
“그래요. 하지만 그게 뭐가 대단해요! 우리 아이들에게서 10분동안의 즐거움을 빼앗아버리는 대가로 말예요.”
“오, 당신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신다면.......”
“다른 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나요?”
봤지요? 이런 식이라니까요! 난 정말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려는 마음뿐이었는데, 이제 말해 주려고 작정했던 것 중 어떤 것도 말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사실 이런저런 것들을 준비해 놓으라고 조언도 해줄 생각이었는데, 달링 부인은 그런 조언은 들을 필요가 없겠네요. 이미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거든요. 침대는 모두 잘 정돈 되어 있었고 절대 집도 비우지 않았으며 창문은 늘 열어놓은 채였어요. 당부하려 했던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으니, 이제 다시 배로 돌아가야 하려나 봅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여기까지 왔으니 잠깐 둘러보기라도 하면서 이런저런 잔소리나 좀 하고 가죠.
아이들 방에 눈에 뜨이는 유일한 변화는 아침 9시부터 오후6시까지는 개집이 그곳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날아가 버렸을 때, 달링 씨는 모든 것이 자기 탓이라고 자책했어요. 자신이 나나를 뒤뜰에 묶어놓았던 탓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나가 옳았다고 말예요. 우리가 이제까지 봐왔듯이, 달링 씨는 꽤 단순한 남자이죠. 사실 무미건조한 껍데기만 벗어버린다면 어린 소년과 다름 없을 거예요. 그에게는 또 정의에 대한 고매한 감각과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는 사자의 용기를 가지고 덤비는 용맹함도 있었죠. 아무튼 아이들이 날아가 버린 후 극도의 걱정에 시달렸던 달링 씨는 팔다리를 뻗고 쓰러져 개집으로 기어 들어갔답니다. 달링 부인이 아무리 달래고 애걸해도 달링 씨의 대답은 한결같았어요.
“싫소, 여보. 이곳이 나를 위한 곳이오.”
쓰디쓴 자책 속에서 달링 씨는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개집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답니다. 참 딱한 일이긴 하지만, 달링 씨는 무슨 일을 하든 지나치게 해야 직성이 풀렸어요. 아니면 아예 그만두었죠. 어쨌든 저녁에 개집 안에 앉아 아내와 함께 아이들에 대해, 그리고 아이들이 하던 예쁜 짓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보면, 한때 자존심 강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무척 소박한 사내로 보였답니다.
감동적인 것은 그가 나나를 아주 존중하게 됐다는 거였어요. 나나에게 개집을 돌려주지는 않았지만,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나나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따랐거든요.
매일 아침 출근할 때에도 달링 씨는 마차에 개집을 싣고 그 안에 들어앉은 채 사무실로 나갔고, 여섯시가 되면 똑같은 방식으로 집에 돌아왔죠. 예전에 얼마나 이웃들의 말에 민감했던가 떠올린다면, 달링 씨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달링 씨의 이런 행동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또 관심을 끌게 되었답니다. 마음속으로는 몹시 고민하며 고통받았겠지만, 겉으로 보기에 달링 씨는 어린아이들이 개집을 보고 놀릴 때조차 아주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고, 개집 안을 들여다보는 숙녀가 있으면 항상 예의바르게 모자를 들어올려 인사를 했습니다.
이런 달링 씨의 행동은 터무니없을지는 몰라도 숭고하게 여겨졌죠. 그 행동에 담긴 의미가 뭔지 알게 되자, 사람들은 크게 감동했습니다. 길거리를 달릴 때면 인파가 그의 마차 뒤를 따르며 힘차게 응원해주었고, 매력적인 소녀들이 그의 싸인을 받기 위해 몰려들었죠. 인터뷰 기사가 상류층 사람들의 신문에 등장했습니다. 여러곳에서 저녁식사 초대가 몰려들었는데, 초대장에는 이 한 마디가 꼭 붙었답니다. ‘꼭 개집에 누워 오세요.’
그 중요한 목요일에, 달링 부인은 남편이 집에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아이들 방에 있었습니다. 달링 부인은 지금 너무나 슬픈 눈을 하고 있군요. 아기들을 잃어버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전의 유쾌했던 모습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어요. 이제부턴 그녀에 대해 심술궂은 말을 할 수가 없을 것 같군요. 의자에 앉아 잠든 달링 부인을 좀 보세요. 입가는 활기를 잃고 메말라 있습니다. 손은 마치 고통이 느껴진다는 듯 불안하게 가슴 언저리를 만지고 있고요. 어떤 이는 피터를 가장 좋아하고 어떤 이는 웬디를 가장 좋아하지만, 나는 달링 부인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잠든 그녀에게 아이들이 곧 돌아올 거라고 살짝 속삭여줍시다. 아이들은 사실 창문에서 고장 2마일(약3km) 떨어진 곳까지 와 있었고, 모두들 힘차게 날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저 아이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 정도여야 하겠죠. 그것만이라도 말해 줍시다.
달링 부인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화들짝 잠에서 깼습니다. 방안에는 나나뿐 아무도 없었죠.
“오, 나나, 방금 우리 예쁜 아이들이 돌아온 꿈을 꿨어.”
나나는 눈물이 핑 돌았지만, 안주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앞발을 부드럽게 그녀의 무릎 위에 올려놓는 것뿐이었죠. 그리고 달링 부인과 나나는 개집이 집으로 실려올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답니다. 집으로 돌아온 달링 씨가 고개를 내밀어 아내에게 키스를 하네요. 달링 씨의 얼굴을 예전보다 훨씬 야위었지만, 표정은 훨씬 부드러웠습니다.
달링 씨는 가정부인 리자에게 모자를 건넸어요. 리자는 그를 멸시하는 표정으로 모자를 받아들었습니다. 상상력이 없는 리자는 달링 씨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바깥에서는 아직도, 마차를 따라 집까지 사람들이 격려를 보내고 있었어요. 달링 씨는 감격스럽다는 듯 말했어요.
“저 소리 좀 들어 봐. 아주 유쾌한데.”
“당연하죠, 철없는 꼬마 녀석들이니까요.” 리자가 비웃었어요.
“어른들도 몇 명 있었어.” 달링 씨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리자의 말에 토를 달았어요. 리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달링 씨는 그녀를 꾸지람하지 않았어요. 사회적인 성공은 그를 망치는 대신 더 다정하게 만들었답니다. 달링 씨는 한동안 개집 밖으로 절반 쯤 나와, 달링 부인과 이 성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달링 부인이 달링 씨가 사회적인 성공으로 인해 거만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자, 달링 씨는 안심시키듯 아내의 손을 꼭 잡았죠.
“하지만 내가 약한 남자였었다면...... 내가 약한 남자였었다면 이렇게 못 했을 거야!”
“여보.” 달링 부인이 머뭇거리며 말했어요. “당신은 그 어느 때 보다 자책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렇죠?”
“물론이지. 여보, 내가 어떤 형벌을 받고 있는지 봐. 개집에서 살고 있잖아.”
“그건 형벌인 거죠, 여보? 그걸 즐기고 있는 건 아니죠?”
“여보!”
착한 달링 부인은 그런 의심을 했던 걸 사과했습니다. 그런 후 달링 씨는 졸음을 느끼며, 개집 속으로 몸을 말고 들어가 버렸어요.
“내가 잠들 수 있도록 아이들 방에서 피아노를 쳐주겠소?”
달링 부인이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건너갈 때 달링 씨가 생각 없이 덧붙였어요. “창문도 좀 닫아주구려. 바람이 들어오는군.”
“오, 여보! 창문을 닫으라는 부탁은 절대 하지 말아요. 창문은 아이들이 돌아올 때를 대비해 항상 열어두어야 한다고요, 항상!”
이제 달링 씨가 부인에게 사과할 차례군요. 달링 부인이 놀이방으로 건너가 피아노를 쳐주자, 달링 씨는 곧 잠이 들었습니다. 자, 드디어 아이들이 방안으로 날아 들어오는군요.
오, 저런! 그들은 웬디와 존과 마이클이 아니었군요. 필시 무슨 일인가 일어난 게 틀림없어요. 방안으로 날아 들어온 것은 바로 피터와 팅커 벨이었기 때문입니다.
피터의 첫 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군요.
“팅크, 빨리 창문을 닫아걸어. 그래, 잘했어. 이제 너랑 나는 현관문으로 나가면 돼. 웬디가 도착해서 창문이 닫힌 걸 보면 아마 자기 엄마가 그랬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면 나랑 다시 네버랜드로 돌아가게 될 거야.”
이제야 아리송했던 점들이 확실해지는군요. 왜 해적들을 소탕한 후 피터가 섬으로 돌아가지 않았는지, 왜 팅크에게 아이들을 안내하도록 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나섰는지 말이에요. 피터는 내내 머릿속으로 이렇게 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거예요.
못된 짓을 하고 있다는 자책 대신 피터는 즐거워서 춤을 추었어요. 그러다가 놀이방으로 살그머니 건너가 누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지 보았습니다.
피터가 팅크에게 속삭였어요. “저분이 웬디의 엄마야. 예쁜 숙녀네. 하지만 우리 엄마만큼 예쁘진 않아. 웬디 엄마의 입에는 골무들이 무척 많구나. 하지만 우리 엄마만큼 많지는 않군.”
물론 피터는 엄마에 대해서라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때론 이렇게 자랑을 늘어놓곤 했답니다.
달링 부인은 ‘즐거운 나의 집’ 이라는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어요. 그게 무슨 곡인지는 몰랐지만, 피터는 그것이 ‘돌아와 웬디, 웬디, 웬디!’하고 외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신이 나서 외쳤죠. “다시는 웬디를 보지 못할 거예요, 부인. 창문이 잠겨 있거든요.”
갑자기 피아노 소리가 멈추었어요. 피터가 다시 방을 들여다보자, 달링 부인이 피아노 위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있는 모습이 보였죠.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답니다.
‘달링 부인은 내가 창문을 열어주길 원하겠지.’ 피터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안 할 거야. 절대로 그렇게는 안 할 거야.’
피터는 다시 한번 엿보았어요. 달링 부인의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이번 눈물은 아까 것이 아니었습니다.
“웬디 엄마는 웬디를 무척 좋아하시는구나.” 혼잣말을 하던 피터는 왜 웬디를 만날 수 없는지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달링 부인에게 화가 났습니다.
“나도 웬디를 무척 좋아한다고요. 둘 다 웬디를 가질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달링 부인은 체념하지 않을 것입니다. 피터는 불길한 기분을 느꼈어요. 달링 부인에게서 고개를 돌렸지만, 그 슬픈 얼굴이 계속 어른거렸어요. 사방을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우스운 얼굴 표정을 해봐도, 행동을 멈추는 순간 곧바로 자기 안에서 달링 부인이 노크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마침내 피터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어요. 그런 후 창문을 다시 열었죠. “가자, 팅크!” 피터가 외치며 다짐하듯 말했습니다. “우리에겐 바보 같은 엄마들 따위는 하나도 필요 없어.” 그리곤 멀리 날아가 버렸죠.
그래서 웬디와 존과 마이클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당연히 그 애들이 기대했던 대로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어요. 아이들은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마루 위로 사뿐하게 내려섰죠. 막내는 이미 자기 집을 잊어버린 듯하네요.
“형! 나, 예전에 여기 와본 것 같아.” 아리송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마이클이 말했어요.
“당연히 그랬지, 이 바보야. 이게 네 예전 침대잖아.”
“그렇구나.”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마이클은 ‘정말 그런가?’ 하는 표정이었어요.
“개집이다!” 존이 외치면서, 안을 들여다보려고 달려갔습니다.
“아마 나나가 안에 있을 거야.” 웬디가 말했죠.
“뭐야? 어떤 남자가 있어!”
“아빠야!” 웬디가 소리쳤어요.
“어디어디, 아빠라고? 나도 좀 보게 해 줘.” 마이클이 신이 난 듯 끼어들더니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무슨 아빠가 내가 죽인 해적보다도 작아?” 너무나 솔직하게 실망을 드러내며 마이클이 말했어요. 달링 씨가 잠들어 있었기에 망정이지! 자신의 어린 아들 마이클이 돌아와서 한 첫마디가 그거였다는 걸 알았으면 무척 슬퍼했을 거예요.
웬디와 존은 아빠가 개집 속에 들어가 있어 좀 당황했답니다.
“분명히, 아빠는 개집에서 자지 않았던 것 같은데.”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확실한지는 모르겠다는 듯 존이 말했어요.
“존, 우리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예전 생활을 많이 잊어버렸는지도 몰라.” 웬디가 더듬거리며 말했어요 아이들은 갑자기 소름이 끼쳤습니다.
“우리가 돌아왔는데도 엄마는 어딜 가신 모양이네. 태평하시군.”
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피아노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다! 놀이방에 계신가 봐.” 복도를 살짝 내다보며 웬디가 외쳤어요.
“맞아, 그렇다!” 존이 말했어요.
“그럼 웬디 누나는 진짜 우리 엄마가 아니야?” 벌써 졸음기가 가득한 얼굴이 되어 마이클이 물었어요.
“오, 이런!” 처음으로 웬디는 짙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답니다.
“몰래 들어가자.” 존이 제안했어요. “그래서 엄마 눈을 손으로 가리는 거야.”
하지만 흥겨운 소식일수록 차분하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웬디는 다른 제안을 내놓았어요.
“침대로 들어가 잠든 척하자. 엄마가 들어오면, 집 떠나 있었던적이 아예 없었던 것처럼 누워 있는 거야.”
그래서 남편이 잠들었는지 보려고 달링 부인이 아이들 방으로 들어왔을 때, 침대 세 개는 모두 아이들로 차 있었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기쁨의 탄성을 지르길 기대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달링 부인도 아이들을 보았지만, 아이들이 돌아왔다고 믿지는 않았어요. 워낙 꿈속에서 그 장면을 많이 보았던 터라, 달링 부인은 이번에도 꿈 때문에 착각을 했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달링 부인은 조용히 벽난로 곁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습니다.
아이들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곧 차가운 두려움이 엄습했답니다.
“엄마!” 웬디가 외쳤습니다.
“저건 웬디 목소리로군.” 그러면서도 달링 부인은 여전히 그게 꿈이라고 믿고 있었어요.
“엄마!”
“저건 존이네.”
“엄마!” 마이클이 외쳤어요. 마이클은 이제야 엄마를 알아보았답니다.
“저건 마이클 목소리야.” 그렇게 말하면서, 달링 부인은 팔을 뻗었어요. 작은 그녀의 아이들을 다시 안을 수 없었기에 늘 두르지도 못하고 뻗쳐만 있던 팔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일입니까? 이번에 달링 부인의 팔은 침대에서 뛰쳐나와 엄마에게 달려든 웬디와 존과 마이클 덕분에 꽉 차버렸던 거예요!
“여보, 여보!”
한참만에야 목이 터진 엄마는 아빠를 외쳐 불렀어요.
달링 씨도 일어나 그 기쁨을 함께 나누었답니다.
나나도 달려 들어왔어요. 그보다 더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풍경은 다시 없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스러운 풍경을 지켜보는 사람은 창문가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한 소년뿐이었답니다. 그 소년은 이제까지 다른 아이들은 절대 모를 기쁨을 아주 많이 경험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창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그 기쁨은 창살에 가로막힌 자신으로서는 영원히 느껴볼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웬디가 어른이 됐을 때-
그 동안 다른 소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른 아이들은 웬디가 자신들에 대해 설명할 수 있도록 한동안 저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5백까지 세고 난 후 위로 올라갔어요. 아이들은 계단을 통해 올라갔는데, 그래야 더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아서였죠. 해적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하면서, 아이들은 모자를 벗어들고 한 줄로 달링 부인 앞에 섰습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달링 부인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은 제발 자신들을 받아들여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어요. 달링 씨도 좀 봐줘야 했을 것을, 아이들은 달링 씨의 존재는 깜빡 잊고 말았답니다.
“이런 일은 간단하게 생각할 수가 없단다.” 이 마지못한 대답에 쌍둥이는 달링 씨가 자기들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첫 번째 쌍둥이가 얼굴을 붉히며 물었습니다. “우리 숫자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아저씨? 만약 그래서라면 우리는 돌아가겠어요.”
“아빠!” 웬디가 충격을 받아 외쳤습니다. 그래도 달링 씨의 얼굴에서는 그늘이 가시지 않았어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운 줄을 알았지만, 달링 씨는 스스로를 어쩔 수가 없었답니다.
“우린 둘씩 포개어 누울 수도 있어요.” 닙스가 말했어요.
“아이들 머리는 제가 직접 잘라주겠어요.” 웬디도 거들었어요.
“여보!” 달링 부인이 뭔가 마뜩찮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남편에게 도무지 못 참겠다는 듯 외쳤습니다. 그제야 달링 씨는 눈물을 터트리며 사실을 털어놓았어요. 자신도 달링 부인 만큼이나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일이 기뻤지만, 집안의 허수아비처럼 취급하며 자신의 허락은 구할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아 섭섭하다고 말이에요.
“난 아저씨가 허수아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투틀즈가 즉각 외쳤답니다. “ 넌 아저씨가 허수아비라고 생각하니, 컬리?”
“아니, 그렇지 않아. 넌 아저씨가 허수아비라고 생각하니, 슬라이틀리?”
“전혀 아니야. 쌍둥이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이제 누구도 달링 씨를 허수아비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자, 달링 씨는 흡족해졌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 들어갈지 모르겠지만, 손님방에 잠자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어요.
“다 들어갈 거예요, 아저씨.” 아이들이 그를 안심시켰죠.
“그렇다면 모두 나를 따르라!” 그가 명랑하게 외쳤어요. “우리 집에 손님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있다고 상상하자꾸나. 그러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테니까. 자, 가자!”
달링 씨는 손님방을 찾아 온 집안을 춤을 추며 돌아다녔고, 아이들도 모두 “자, 가자!” 외치면서 춤을 추며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손님방을 찾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내 모두들 어떻게든 공간을 찾아서 잠잘 곳을 마련했답니다.
피터는 멀리 날아가기 전에 웬디를 다시 한번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웬디에게 나와보라는 뜻으로 창문을 주욱 스치며 지나갔습니다. 피터가 기대했던 대로 웬디가 창문을 열고 피터를 불렀어요.
“안녕, 웬디! 잘 있어!” 피터가 외쳤습니다.
“피터, 이제 떠나는 거니?”
“그래.”
“피터.......” 웬디가 더듬거리며 말했어요. “너, 우리 부모님께 뭔가 허락을 구하고 싶은 거 없니?”
“없는데.”
“나에 대해서 말야, 피터.”
“없어.”
이제 한시라도 웬디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달링 부인이 창문가로 다가왔어요. 그리고 다른 소년들을 모두 양자로 들였으니, 피터도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죠.
“날 학교에 보내실 건가요?”
“그럼.”
“그런 후엔 직장에 가야겠죠?”
“그럼, 금방이지!”
“난 학교에 가서 심각한 척하는 것들을 배우고 싶지 않아요.” 피터가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웬디 어머니, 아침에 일어났더니 코밑에 수염이 나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피터, 넌 콧수염이 나도 멋있을 거야.” 위로를 잘 하는 웬디가 말했어요. 달링 부인이 그에게 팔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피터는 그녀를 뿌리쳤어요.
“물러서세요, 부인. 누구도 날 어른으로 만들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앞으로 어디에서 살 작정이니?”
“웬디를 위해 지은 작은 집에서 팅크와 함께 살 거예요. 요정들이 그집을 자기들이 자는 나무 꼭대기에 올려준다고 했어요.”
“어머나, 멋져!” 웬디가 기대감에 가득차서 소리쳤기 때문에 겁이난 달링 부인은 웬디를 꼭 붙들어야 했습니다.
“요정들도 죽고 나면 어쩔 거니?” 달링 부인이 물었어요.
“그곳에서는 매일같이 아기 요정들이 많이 태어나요.” 이제 네버랜드에 관한 한 상당한 전문가가 된 웬디가 설명했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처음으로 웃음을 터트릴 때마다 새로운 요정이 태어나거든요. 그들은 나무 꼭대기에 있는 둥지에서 살죠. 연한 자줏빛 요정들은 남자아이들이고요, 하얀색 요정들은 여자아이들이에요. 그리고 푸른빛이 나는 요정들은 자기들이 뭔지 확실히 모르는 약간 우둔한 아이들이고요.”
“재미있는 일이 정말 많을 거야.” 피터가 웬디에게 윙크를 보내며 말했습니다.
“저녁엔 좀 외로울 거야, 불 옆에 혼자 쓸쓸히 앉아서......” 웬디가 중얼거렸어요.
“팅크가 있잖아.”
“팅크는 처리해야 할 살림의 20분의 일도 못 할걸.” 웬디가 약간 톡 쏘아붙이듯 말했어요.
“비열한 고자질쟁이!” 공중에서 팅크가 빽 소리를 질렀습니다.
“상관없어.” 피터가 말했어요.
“오, 피터. 상관 있다는 거 알잖아.”
“ 그렇다면, 나랑 같이 작은 집으로 가자.”
“가도 돼요, 엄마?”
“안 된다, 얘야. 이제 막 집에 돌아왔는데. 이젠 엄마랑 같이 지내야지.”
“하지만 피터에게는 엄마가 꼭 필요해요.”
“너도 마찬가지란다, 우리 아가.”
“오, 됐어요.” 피터가 그저 예의상 물어봤다는 듯 말했습니다. 하지만 달링 부인은 피터의 입술이 비틀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귀가 뜨일 만한 제안을 한 가지 내놓았습니다. 해마다 일주일 동안 웬디가 가서 봄 대청소를 해주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죠. 웬디는 일주일이 너무 짧은 데다가, 또 봄이 오려면 한참이나 남은 것처럼 여겨졌어요.
하지만 이 약속으로 피터는 다시 쾌활해졌답니다. 피터는 시간 개념이 없었고, 또 매일매일 모험을 하느라 바빴으니까요. 이제까지 내가 해준 이야기들도 사실 그가 한 모험들 중 아주 조금에 불과할 정도니까요.
웬디가 피터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다소 구슬프게 들렸던 것은 웬디도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겠죠.
“봄이 오기 전에 날 잊어버리는 일은 없겠지, 피터? 그렇지?”
피터는 잊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한 후, 멀리 날아갔습니다. 가기 전에 달링 부인은 피터에게 키스를 해주었어요. 달링 부인의 입술 끝에 매달려 있던 그 키스, 누구도 얻지 못했던 그 키스를 피터는 아주 쉽게 얻었습니다. 달링 부인도 무척 만족스러워 보였죠.
이후,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갔습니다. 아이들 대부분은 3학급으로 들어갔는데, 슬라이틀리만 처음에는 4학급에, 그러다가 5학급에 들어가게 됐죠. 이곳에서는 1학급이 가장 높은 학급이었답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일 주일도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왜 섬에 남지 않았던가 후회했지만, 이젠 돌아가기에도 너무 늦어 버렸기에 다들 우리처럼 평범한 소년으로 자라게 됐답니다.
아이들이 점차 날아다니는 범을 잃어갔다는 것은 슬픈 일이에요. 처음엔 나나가 침대 기둥에 아이들의 발을 단단히 묶어 밤에 멀리 날아가지 못하도록 해죠. 그래서 낮 동안에 아이들은 작전을 짜서,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리려 했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 기둥의 족쇄를 풀려는 씨름도 그만두었고, 버스에서 뛰어내리면 다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때쯤은 심지어 날아가는 모자조차 잡지 못할 정도로 나는 능력이 없어져 버렸죠.
“연습 부족이야.” 아이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은 사실 자기들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음을 뜻했어요.
아이들의 놀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은 다른 아이들보다 좀 더 오래 자신의 비행 능력을 믿었어요.
그래서 약속된 첫해 겨울에 피터가 웬디를 찾아왔을 때에도, 웬디와 함께 갈 수 있었죠. 웬디는 네버랜드의 나뭇잎과 열매로 짠 코트를 입고 피터와 함께 날아갔답니다. 웬디는 자신의 옷이 짧아진 걸 피터가 눈치채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피터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죠. 자기 얘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웬디는 피터와 함께 예전의 위험하고도 재미있었던 사건들에 대해 얘기하려고 별렀지만, 피터의 마음 속에는 이미 옛 모험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모험이 가득 자리하고 있었답니다.
“후크 선장이 누구야?” 웬디가 갈고리 달린 악당 이야기를 꺼내자, 피터는 흥미를 보이며 물었습니다.
“난 내가 죽인 사람들은 잊어버려.” 피터가 대답했어요.
또, 웬디가 팅커 벨이 자신을 반가워할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피터는 도리어 “팅커 벨이 누구야?” 하고 물었습니다.
“오, 피터!” 충격을 받은 웬디가 팅커 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지만, 그래도 피터는 기억하질 못했어요.
“여기에는 요정들이 무척 많잖아. 그 요정은 죽은 모양이야.”
피터의 말이 맞을 겁니다. 요정들은 오래 살지 못하거든요. 하지만 짧은 시간도 작은 요정들에게는 꽤 긴 시간처럼 여겨지죠.
웬디는 지나간 일년이 피터에게는 어제 하루처럼 짧았을 거라는 생각에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웬디에게는 그 일 년이 기다리기에 무척 길고 긴 시간처럼 여겨졌거든요. 어쨌거나 피터는 예전과 다름없이 매력적이었고, 나무 위 작은 집에서 하는 봄 대청소도 무척 즐거웠습니다.
다음해에는 피터가 찾아오지 않았답니다. 몸이 더 많이 자란 탓에 예전 코트가 작아진 웬디는 새로운 옷을 입고 피터를 기다렸지만, 피터는 결국 오지 않았어요.
“어디가 아픈 모양이야.” 마이클이 말했습니다.
“피터가 아플 리가 없어. 너도 잘 알잖아.”
마이클이 웬디에게 다가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어요.
“세상에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누나!”
그때..... 마이클이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다면 웬디 자신이 울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다음해에는 피터가 봄 대청소를 하러 가자며 찾아왔어요. 한 해를 건너뛰고 왔다는 걸 피터는 전혀 몰랐답니다.
그것이 소녀로서 웬디가 피터를 마지막으로 봤던 때였어요. 그 이후로도 한동안 더, 웬디는 피터를 일해 자라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학교에서 상을 받을 때면, 피터에게 왠지 죄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이 무심한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동안 웬디는 점점 더 자랐습니다. 그래서 결국 빨리 어른이 되기를 원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 중 하나가 되었죠. 웬디에게 크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자, 웬디는 다른 소녀들보다 조금 더 빨리 자라게 되었답니다.
다른 소년들도 모두 자라 어른이 되었습니다. 쌍둥이들과 닙스, 그리고 컬리는 각각 작은 가방과 우산을 하나씩 챙겨 들고 회사에 다니게 되었어요. 마이클은 기관사가 되었답니다. 슬라이틀리는 명망 있는 집안의 숙녀와 결혼해, 명망 있는 사람이 됐죠. 철문에서 나오는 가발 쓴 저 판사가 보이나요? 그게 투틀즈였던 사람입니다. 자기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한 가지도 모르는 저 콧수염 난 남자는 한때 존이었답니다.
웬디는 하얀 웨딩 드레스에 분홍색 머리띠를 두르고 결혼을 했습니다. 피터가 교회로 뛰어들어와 결혼식을 반대하지 않았던게 이상하죠?
몇 년의 세월이 또 흘렀고, 웬디는 딸을 두게 되었습니다.
웬디의 딸아이 이름은 제인이었어요. 제인은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질문을 하고 싶어 안달하는 듯한 호기심 많은 얼굴을 하고 있었죠. 질문을 할 수 있을 만큼 자라자, 제인은 늘 피터팬에 대해 물었어요. 제인이 피터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웬디는 창문으로 나가 멀리 날아갔던 순간부터 기억나는 모든 것을 제인에게 이야기해 주었답니다.
그때의 아이들 방은 지금 제인의 방이 되었어요. 노인이 된 웬디의 아빠가 계단을 불편해 했기 때문에 싼 가격에 사위에게 집을 팔았던 거죠.
달링 부인은 이미 세상을 떠나 잊혀져가고 있었고요.
예전과는 달리 이 방에는 침대가 두 개밖에 없었어요. 하나는 제인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인의 유모의 침대였죠. 개집은 없었답니다. 나나도 죽고 없었으니까요. 나나는 꽤 오래 살았는데, 마지막 무렵에는 함께 지내기가 좀 힘들었죠. 자기를 제외하곤 누구도 아이 돌보는 법을 모른다고 고집부리며 참견하는 일이 많았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 제인의 유모는 저녁 외출을 나갔고, 그럴 때면 제인을 재우는 일은 엄마인 웬디의 몫이 되었답니다. 그때가 바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죠.
웬디와 제인은 이불 속에 들어가 텐트처럼 만들어놓고 깜깜한 가운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답니다. 그건 제인의 아이디어였어요.
“이제 무슨 얘기를 해주실 거예요?”
“오늘밤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구나.”
“생각나실 거예요. 엄마가 어렸을 때 말예요.”
“벌써 오래 전 일이구나. 시간이 어쩜 그렇게 화살같이 빨리 날아갔는지!”
“시간이 날아가나요? 엄마가 어린 소녀였을 때 멀리 날아갔던 것처럼?”
“그래, 내가 날아갔던 것처럼! 그거 아니, 제인? 때로 엄마는 내가 진짜로 날았던 것인가 궁금해진단다.”
“맞아요. 엄만 분명 날았어요.”
“날 수 있었던 그리운 옛날이여!”
“왜 지금은 날지 못하죠, 엄마?”
“이제 난 어른이 됐기 때문이란다. 사람들은 자라면 나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돼.”
"왜 그걸 잊어버리나요?“
“왜냐하면 어른들은 더 이상 쾌활하지도 순수하지도 않기 때문이지. 그리고 용기도 없어지고. 오로지 쾌활하고 순수하고 거침없는 사람만이 날 수 있단다.”
“쾌활하고 순수하고 거침없다는 건 어떤 거죠? 난 내가 쾌활하고 순수하고 거침없었으면 좋겠어요.”
웬디는 이제야 뭐가 생각났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 일은 분명 이 아가 방에서 시작됐단다.”
“분명 그랬죠.” 제인이 맞장구쳐 주었어요.
그들은 이제 피터 팬이 그림자를 찾으러 날아 들어오면서 벌어졌던 그 밤의 대모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바보같이 그 아이는 비누로 그림자를 몸에 붙이려고 하고있었어. 그런데 잘 되지 않자 울음을 터트렸지 뭐야. 그래서 엄마가 잠에서 깨어 그림자를 꿰매주었지.”
“엄마! 빠뜨린 부분이 있잖아요.” 이제 그 이야기를 엄마보다 더 훤히 아는 제인이 끼어들었어요. “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 그 애를 보았을 때, 엄마가 뭐라고 했죠?”
“난 침대에 일어나 앉아 말했지, ‘어머, 너 왜 울고 있니?”
“맞아요. 그 부분이 빠졌잖아요.”
큰 숨을 내쉬며 제인이 말했어요.
“그런 다음 피터는 우리 모두를 네버랜드로, 요정들과 해적들과 인디언들이 있는 곳으로, 그리고 인어들의 호수, 지하의 보금자리, 그리고 작은 집이 있는 곳으로 이끌고 갔지.”
“그래요! 그 중에서 뭘 가장 좋아했어요?”
“난 무엇보다도 지하의 보금자리를 가장 좋아했단다.”
“나도 그래요! 피터가 엄마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뭐였어요?”
“피터가 남긴 마지막 말은 ‘그냥 늘 나를 기다려 봐. 그러면 어느날 밤, 꼬끼오! 하고 내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였단다.”
“그렇구나.”
“하지만 아뿔싸, 피터는 날 까마득히 잊고 말았단다.” 웬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그래요, 그렇게 미소지을 여유가 생겼을 만큼 그녀는 어느새 자라 어른이 됐던 것입니다.
“피터의 수탉 소리는 어떻게 들렸어요?”
어느 날 저녁, 제인이 물었습니다.
“들어 보렴. 그건 이런 소리였어.” 웬디는 피터의 꼬끼오 소리를 흉내내보려 했어요.
“아니에요, 그런 소리가 아니에요.” 제인이 자못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그건 이런 소리라고요.” 그러더니 엄마인 웬디보다 훨씬더 비슷하게 꼬끼오 소리를 내는 게 아닙니까.
웬디는 깜짝 놀라면서 물었어요. “어머, 우리 아가...... 어떻게 알았니?”
“잠자면서 가끔 그 소리를 들었거든요.”
“오 그래? 많은 아이들이 잠자면서 그 소리를 듣는단다. 하지만 깨어 있는 상태에서 들었던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었지.”
“좋겠어요, 엄마는.......”
그러던 어느 날 밤,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답니다. 그 해의 봄 밤, 여느 때처럼 이야기를 나눈 후, 제인은 침대 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죠. 웬디는 난로 바로 곁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어요. 방안에는 난로불 외에 다른 불빛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앉아서 한참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꼬끼오!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곧 옛날처럼 창문이 활짝 열리더니, 피터가 바닥 위로 날아 들어와 섰어요.
피터는 하나도 변한 것 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 였어요. 웬디는 아직도 피터가 젖니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도 금방 알아보았답니다. 하지만 피터는 작은 소년이었고, 자신은 자라 어른이 되어 있지 않아요? 웬디는 움직일 엄두로 내지 못한 채 난로 곁에서 몸을 잔뜩 움츠렸죠. 커다란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죄책감이 속수무책으로 덮쳐왔으니까요.
“안녕, 웬디?” 피터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명랑하게 인사했답니다. 피터야 늘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잖아요. 게다가 침침한 난로 불빛에 비친 웬디의 하얀 드레스는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피터가 봤던 그 잠옷과 비슷해 보였을 거예요.
“안녕, 피터.” 웬디가 할 수 있는 한 몸을 작게 움츠리며 가냘프게 대답했어요. 마음 깊은 곳에선 ‘이 순간만이라도 다시 어린 소녀가 되게 해 줘!’ 하는 외침이 터져나왔죠.
“헤이, 존은 어디 있지?”
문득 침대가 하나가 없어진 걸 알아보고 피터가 물었어요.
“존은 지금 여기에 없어.”
웬디는 이제 숨이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클은 잠자고 있어?”
무심코 제인 쪽을 보더니 피터가 물었어요.
“그래.” 하지만 웬디는 피터에게뿐만 아니라 제인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얼른 말을 바꾸었죠. 안 그러면 죄책감이 들 것 같았으니까요.
“그앤 마이클이 아니야.”
“그럼, 이애는 새 아이야?”
“그래.”
“남자아이야, 여자아이야?”
“여자아이야.”
웬디는 이젠 피터도 분명히 무슨 일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하지만 피터는 아직도 깜깜한 표정이었습니다.
“피터.” 웬디가 머뭇거리며 말했어요. “내가 너랑 멀리 날아갈거라고 생각하니?”
“물론이지. 그래서 내가 온 거 아냐.” 피터가 약간 나무라듯 덧붙였어요. “지금이 봄 대청소 때라는 걸 잊어버린 거니?”
웬디는 그 동안 계속 봄 대청소를 잊어버렸던 것은 피터였다고 말해봤자 쓸모 없는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난 갈 수가 없어.” 웬디가 변명하듯 말했어요. “날아다니는 범을 잊어버렸거든.”
“내가 당장 다시 가르쳐줄게.”
“오 피터, 요정 가루를 나한테 낭비하지 마.”
웬디가 바닥에서 일어섰어요. 그러자 갑자기 두려움이 피터를 둘러쌌습니다. “뭐야, 왜 그래, 웬디?” 피터가 몸을 떨며 외쳤어요.
“불을 켜겠어. 그러면 네가 날 직접 볼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알고 있는 한 거의 처음으로, 피터는 굉장한 두려움을 느꼈답니다. 그래서 마구 외쳤어요. “제발 불을 켜지 마!”
웬디는 겁에 질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이제 웬디는 더 이상 피터를 사모하던 그 어린 소녀가 아니었답니다. 그녀는 이젠 이 모든 것을 미소지으며 바라볼 수 있게 된 어른인 것입니다.
웬디는 불을 켰고, 피터는 결국 웬디의 모습을 보게 됐어요. 피터의 입에서 고통이 담긴 신음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크고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을 안아 올리려고 다가오자, 거칠게 물러 섰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피터가 다시 외쳤어요.
이제 웬디는 사실을 말해주어야 했습니다.
“난 나이를 먹은 거야, 피터. 벌써 스무 살도 훨씬 넘었는걸. 난 오래 전에 어른이 됐어.”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난 벌써 결혼도 했어.”
“아냐, 그렇지 않아!”
하지만 피터는 웬디의 말이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자 단검을 쳐들고 자고 있는 아이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습니다. 물론 피터는 검을 내리치지는 않았어요. 그 대신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흐느꼈습니다. 이제 평범한 어른이 되어버린 웬디는 어떻게 그를 위로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요. 한때는 그렇게 쉽게 했던 일인데도! 그래서 생각을 좀 가다듬으려고 방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피터는 계속해서 울었고, 곧 그의 흐느낌 소리에 제인이 깨어났어요. 제인은 침대 위로 일어나 앉더니, 호기심을 드러내 보였어요.
“이봐요, 왜 울고 있죠?”
피터가 일어서더니 그녀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제인도 침대 위에서 허리를 굽혀 인사했어요.
“안녕, 내 이름은 피터 팬이야.”
“나도 알아요.”
“난 엄마를 네버랜드로 데려가려고 왔어.”
“그래요, 나도 알아요.” 제인이 말했어요. “그래서 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웬디가 조심스레 돌아와 보니 피터 팬은 침대 기둥 위에 앉아서 근사하게 꼬끼오 소리를 내고 있었고, 잠옷을 입은 제인은 흥분에 가득 차서 방안을 날고 있었답니다.
“이제 제인이 내 엄마야.”
피터가 설명해 주었어요. 제인은 바닥으로 내려서 피터 곁에 섰죠. 제인은 피터가 여자들에게서 원하는 바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피터에게는 엄마가 꼭 필요해요.”
“그래, 나도 알고 있단다.” 웬디는 쓸쓸한 목소리로 인정했어요.
“그 누구도 나보다 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단다.”
“잘 있어.”
피터가 웬디에게 인사하며 허공으로 날아올랐어요. 그리고 제인도 그 뒤를 따라 날아올랐죠. 나는 것은 벌써 제인에게 가장 쉬운 이동 방법이 되어 있었답니다.
웬디는 서둘러 창문 쪽으로 달려갔어요.
“안 돼, 안 된다!”
웬디가 울부짖었습니다.
“그냥 봄 대청소를 할 동안만 있을게요.” 제인이 말했어요. “피터가 나더러 봄 대청소를 도와 달래요. 그러면 좋겠대요.”
“내가 너와 함께 갈 수만 있다면!” 웬디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엄만 날 수가 없잖아요.” 제인이 말했어요.
결국 웬디는 피터와 제인이 멀리 날아가도록 허락해 주었어요.
창문 곁에 서서, 아이들이 점점 멀어져 별만큼 작아질 때까지 하늘을 지켜보던 것이 우리가 본 엄마 웬디의 마지막 모습이었답니다.
지금 웬디를 보면, 머리는 점점 하얗게 변해가고 손은 다시 어린 아이처럼 조그마해져 있답니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었거든요.
제인은 지금 평범한 어른이 되어 있고, 마가레트라 불리는 딸도 두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봄 대청소 시기가 되면, 피터가 잊지 않는 한 마가레트를 데리러 와, 둘이 함께 네버랜드로 떠났답니다. 네버랜드에서 마가레트는 사람들이 피터 팬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피터는 아주 신이 나서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가레트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그녀에게도 딸이 생기겠죠. 그러면 그 딸이 피터의 다음 어머니가 되어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모든 일이 반복되고 또 반복될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쾌활하고 순수하고 거침이 없는 한, 계속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