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깊으면 그것은 이미 운명이다.초라한 것도 그윽해 보이고 게으른 것마져도 여유로 나타난다면 질긴 운명의 시작이다.하지만 그녀와 나는 게으른 것도,초라한 것도 서로에게 보일 틈도 없었다.
작년 3월. 그 때 나는 히말라야 동쪽 카첸충카를 올려다 볼 수 있는 펠링 이라는 아름다운 산악 마을에 있었다.동인도 다질링에서도 열 시간 이상을 집차로 가야만 하는 곳,독립을 위한 테러가 잦게 일어나 퍼밋을 따로 받아야만 방문이 가 능한 곳이다. 해발 4천 미터......
인도 전체가 폭염으로 시달리는데도 그곳만은 여전히 겨울이었다.그러면서도 한켠에서는 봄 꽃을 피우는데, 할미꽃을 보고는 눈물을 쑥 빠트렸다.한국의 봄,내 고향의 뒷산이 홀연히 사무친 것이다. 소쩍새가 울었다.뻐꾹이도 울었다.모두 내 고향에서도 이미 사라진 소리였기에 나의 가슴은 가눌수 없을만큼 가위를 눌렀다.
그녀는 그곳 티벳 망명 정부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의 교사였다. 학교라 하기에 너무도 초라한......문짝도 유리창도 없는 창고,하지만 그곳에서도 가르침은 있었다. 키가 작은 여자......나이는 도저히 가늠이 안 되는......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은......
그 여자는 수업을 하다 말고 교실에서 나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일본사람입니까?-
물론 나는 한국사람이다.그러나 인도나 서남 아시아 혹은 유럽을 가더라도 일본 사람이냐는 질문을 먼저 받는다.그게 싫었지만 어쩔수 없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한국에 대해서도 잘 안다고 대답한다. 스므명 남짓한 교실의 아이들은 일제히 이 낯선 이방인에 대해 관심어린 눈빛을 보낸다.하지만 영어를 못하는 그들은 지네들끼리 눈짓만 서로 보낼 뿐, 선생님은 나와 나눈 이야기를 다시 티벳어로 열심히 통역해 준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여선생님은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왔다.뜻 밖의 방문이었다.혼자 오기가 뭐해 서인지 낮에 잠시 보았던 여자 아이를 앞세우고 나를 찾아 왔는데......
그녀의 손 에는 체리가 한봉지 들려있었다.새까맣게 익은 알 큰 체리가 듬뿍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는 내 배낭을 유심히 둘러보았다.임시로 걸어 놓은 빨랫줄 여기 저기 널려 있는 빨랫감에도 관심을 보였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다가 가끔 내 신변의 이야기들도 묻는다. 직업은 무엇이며, 식구는 몇이고, 어디에서 사는지...... 그러다가 낮에 내가 숲에서 불었던 악기 이름이 뭐냐고 한다.하머니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질문을 받는 순간 뭔가 아릿하게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도대체 선생님이 하머니카를 모르다니......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학교엔 음악 시간이 없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 들에게는 음악수업이 없다.그러니 악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무슨 노래가 어느 나라의 민속음악인지 알 리 없다.
나는 여행 중에도 악기를 들고 다닌다.여정이 길지 않을거 같으면 기타나 바이올린 같은 것도 들고 다니지만 여정이 길면 하머니카 몇 개만을 들고 다닌다.가급적이면 무게를 줄일 심사로......
그 날 낮, 전나무 숲에 앉아 눈녹아 흐르는 히말라야의 서정에 묻힌 채 하머니카를 불고 있을 때 멀리서 나를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악기 소리가 하도 좋아 다시 들을 수 있을까 하고 왔다는 그녀의 말이 얼마나 감격...... 아니 조금은 슬프기도 했다.하머니카 소리를 한번도 들어 본 적 이 없다니......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서 하머니카를 하나 선물로 선뜻 건네 주었 다.그리고 부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다음 날 나는 카첸충카 트레킹을 떠났다.거기서도 사흘이 걸리는 장정이었다. 야크 털로 만든 모자와 장갑을 끼고 피켓까지 하나 구해 짚어가면서 6천 미터까지 오를 수 있었다.
카첸충카가 바로 잡힐 듯 눈 앞에 나타났을 때 그 신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눈물을 흠뻑 쏟아내는 감격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 온 펠링, 놀랍게도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양고기로 만든 우리 나라의 찌개와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놓고 밀가루 빵을 구워 놓고 있었다.
나이 서른 하나의 얼굴이 거친 여자.50 여년 전의 우리 나라 시골 사진 속에서나 나올 듯한 순진한 얼굴, 그러나 우리와 얼굴 모습이 같아서인지 더욱 정겹다.
시간은 히말라야 계곡의 물살처럼 흘러 허락 받은 보름이 이틀 남았을 때 마침내 나는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비자는 연장이 가능해도 퍼밋은 한번 발급되면 6개월 후에나 다시 받을 수 있다. 이메일에 대한 개념도 서 있지 않는......그래서 학교 주소를 적어 준 것을 끝으로 그녀와의 이별은 시작되었다.
-돌마-
그녀의 이름이다. 티벳에선 아주 일반적인 이름이다.
약혼자는 카첸충카 산악등반안내자였다.그러나 한국 등반대원의 안내를 하다가 사 고로 죽었다고 한다.그의 시신이 아디엔가에 있는 카첸충카를 결코 떠날 수 없을 거라는 손이 예쁜 여자였다.
그 후 나는 남인도와 서인도로를 거쳐 터키에 갈때까지 그 흔한 엽서 한번 보내지 않았다.그리고 이스탄불,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길목의 싸구려 호텔에서 딱 한번 엽서를 보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여자의 뜨거운 눈물의 이별은 아직도 내 속눈썹 가까이 있다.
첫댓글한돌님 웬지 동요책을 내신 그 한돌님이 아니신가요. 전교 꼴등의 기록을 가지 신 그분이 아닌가요. 농사짓다가 간첩신고받은 그 분이 아니신가요. 웬지 곱고 깊은 서정성이깃든 그분의 노래가 행간으로 흐르는 것같기만해서요. 사람들이 가는 길에 흔들려 할 때마다 '이런 사람'으로 들먹이던 그 한돌님 같아서요.
첫댓글 한돌님 웬지 동요책을 내신 그 한돌님이 아니신가요. 전교 꼴등의 기록을 가지 신 그분이 아닌가요. 농사짓다가 간첩신고받은 그 분이 아니신가요. 웬지 곱고 깊은 서정성이깃든 그분의 노래가 행간으로 흐르는 것같기만해서요. 사람들이 가는 길에 흔들려 할 때마다 '이런 사람'으로 들먹이던 그 한돌님 같아서요.
순수한 어느시골길.... 아련하고 아름다운추억같아요... 너무순박한삶인가요? 하모니카를모를정도의삶이, 너무소박하게 전해지네요....^^
격려...파이팅.../
멋지신 분이시네여...돌미 애잔해유
인연이 깊으면 그것은 이미 운명이다.
초라한 것도 그윽해 보이고 게으른 것마져도 여유로 나타난다면 질긴 운명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녀 와 나는 게으른 것도,초라한 것도 서로에게 보일 틈도 없었다.
인연이 평생으로 이어진다면... 아름다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