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임에도 며칠 차가운 날씨가 계속되더니만
토요일부터 날씨가 다시 완연한 봄날로 돌아왔습니다.
주말에 다녀온 대구에는 벌써 라일락까지 피었지만
가뭄 때문인지 그 진한 향기를 맡지 못하고 흐드러진 꽃만 보게되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일요일인 오늘, 구미 낙동강변에서는 구미시장을 모시고
다채로운 행사와 함께 벚꽃축제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덜 붐비리라 예상되는 금오산길의 벚꽃구경을 택했는데
차들도 얼마나 많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꽃구경, 사람구경, 차구경 잘 했습니다.
꽃길을 산책하면서 보는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꽃비가 내리는 정경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꽃 사이로 파랗게 촉터오르기 시작하는 잎을 보니
오늘을 절정으로 벚꽃은 이제 서서히 져 가려나 봅니다.
아직 봄나늘이 못하신 분들은 더 늦기 전에 밤벚꽃구경이라도 하면 좋겠지요.
지난 1년여를 컨설팅 한답시고 어디 매이지 않고 생활하였는데
3월말부터 중진공에 출근하다보니 하는 일이 아직 많지는 않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어
매주 수요일에 보내드리던 좋은 글을 일요일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니 앞으로는 일요일에 보내드리는게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주말이라 시간 여유가 있으니 글 쓰는데 쫓기는 마음도 없을 것이고
주말을 보내고 쓰는 글이니 내용도 여유가 더 있을 것이고
(최근 쓴 글을 돌아보면 국가적 위기상황이 반영되어 심각한 얘기들이 많았지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한주일을 시작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봐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어제는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부설 전통예절교육원에서
전통예절교육 첫 수업을 들었습니다.
'예절교육의 지향과 기대과제', '퇴계선생의 자기혁신' 두 과목 강의를 들었는데
참으로 마음에 와닿고 새로운 지식과 감동을 주는 내용이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함께 수강하시는 분들이 50대~70대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20대 3명, 30대 서너명, 40대 서너명, 그리고 82세 할아버지까지 계셨는데
직업도 정년퇴임 교수/교장, 현직교수/선생, 변호사, 공무원, 회사원 등등 참으로 다양하고
수업시간에는 얼마나 열중하여 들으시는지, 마음이 흐트러질 수 없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내용을 들었지만 그 중에서 오늘은 몇가지만 추려 공유하고자 합니다.
먼저, 맹모삼천지교는 우리가 어릴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씀이지요.
공동묘지에서 시전으로, 글방 인근으로 옮긴 맹자 어머니의 지극정성이 항상 핵심이었고
환경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인식이 주된 교훈이었습니다만
어제의 강의를 통하여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성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환경에의 적응이 중요한 포인트라기보다는
그러한 어머니의 노력과 교육에 대한 열성이
맹자로 하여금 공부에 매진하게 하는 자각을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맹자의 자각이 없었다면
맹모의 삼천의 노력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나 스스로가 자각을 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제 강의하신 분 중 국제퇴계학회대구경북지부이사장 이동건님의 열정은 특히 대단하셨습니다.
재학 중 화학실험을 하시다 폭발로 전신을 다친 와중에 왼팔은 의수를 하였고
만학에 퇴계학 강의까지 전국을 누비다보니 목이 굳어지는 불치병까지 걸린 와중에도
50이 넘어 석박사과정을 시작하여 환갑이 지난 이제서야 박사과정을 수료하신 분이지요.
50 넘어서 대학원과정을 시작한 이유도 감동적입니다.
건설업을 생업으로 하던 중 퇴계학회에 관여하게 되었고
수년전 후쿠오까 소재 황실 아악원 정원에 세워진 '퇴계선생 헌정비' 제막식에 참석하여
일본 최고의 지성인들이 퇴계에게서 배우고 연구하려는 자세,
일본이 현재 처한 어려움에 대한 해결책을 퇴계의 학문 속에서 찾으려는 노력에 충격을 받아
퇴계학 관련 석박사과정을 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분의 이러한 노력하는 자세를 들으면서 수년 전에 읽었던 글이 떠올랐습니다.
95세된 할아버지가 생신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고하는 내용인데
언제나 어디서나 노력하는 자세로 살아가기를 당부하는 진솔한 얘기입니다.
매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좋은 회고담이어서
오늘은 이 글 말미에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일 열심히, 더욱 노력 하되
제 주어진 일에 '열심히'만이 아니고 '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까 합니다.
다시 강연 내용으로 돌아가서,
연말까지 있을 이번 예절교육을 통하여 형식이 아닌 본질을 배울 것을 주문받았습니다.
그래서 4회까지와는 달리 이번 5기 교육에서는 전통예절의 비중을 줄이고
현실적인 생활예절을 강화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중에서,
세상에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군인가를 생각하고
그사람에게 정성과 사랑을 다하면 그 정성과 사랑이 내게로 돌아오고
주변의 가까운 이들에게 전파될 것이며
이러한 변화의 시작이 우리나라가 바로 서고
올바르게 발전하는 바탕이 될거라는 말씀 깊이 새겼습니다.
강의 들으며 느꼈던 감동과 의지를 잊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수차 다짐하였습니다.
나 혼자만 느낄게 아니라 그 느낌을 행동으로 실천하여
내 가족부터,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해 나가야겠다고 깊게 다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건 덤으로....
제가 교육받는 곳이 동아쇼핑과 만경관 사이에 있는 담수회관이란 곳인데
인근지역에 추억의 장소들이 많이 있고 특히 추억의 밥집, 선술집들이 많이 있어
이번 교육을 받는 동안 꼽아가며 돌아볼 예정입니다.
혹 대구에서 토요일을 보내시는 분은 연락 주시면 아래, 추억의 그 장소에서
한잔 마시며 정담 나누어도 좋습니다.
그 유명한 영생덕의 만두, 곡주사의 지짐과 막걸리, 소두불식당의 돼지국밥과 수육,
복해반점의 고추굴짬뽕, 종로초밥/미성초밥의 오뎅탕과 따끈하게 데운 정종 한잔과 함께 말이지요.
어느 95세 할아버지의 회고(모셔온 글)===============================
나는 65세에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30년 전이지요.
내 분야는 특수한 전문직이어서 남들보다는 더 오래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불경기에 직장에서 명예퇴직이니, 구조조정이니 하는 퇴직의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불 때도
내가 64세까지 끄덕없이 버티며 정년에 명예롭게 퇴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직장에서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나는 젊어서 직장에 들어가기 전에
그 분야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인정 받는 실력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힘을 기울였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끝없이 실력을 닦았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덕에 아무도 그 분야에서 내 실력을 능가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떤 젊은이도 나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덕분에 나는 무척 명예스럽게 퇴직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정년이 되자 직장에서는 내게 좀 더 기회를 주려고 했지만 나는 사양했어요.
65세의 나이쯤 되고 보니 나도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연금을 받으며 안락한 여생을 즐기다가
남은 인생을 마감하고픈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평생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기에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세 생일 때 자식들에게서 생일 케이크를 받는 순간
얼마나 내 인생에 대해 통한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그 이후 30년의 삶은 가장 부끄럽고 후회가 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정년퇴직 후에 ‘이제 나는 다 살았다.
남은 생애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덤으로 주어졌을 뿐이다’
하는 그저 그런 생각만 하면서 하루하루를 허송세월했던 것입니다.
죽기를 기다리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던 것입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은 지금의 내 나이 95세로 따져 보아도
생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시간입니다.
내가 95세 생일을 맞으면서 가장 후회한 것은 왜 30년이라는 소중한 인생을
무기력하게 낭비하면서 살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만일 내가 정년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나 스스로가 다른 무엇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고,
늙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건강하고 정신이 또렷합니다.
혹시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을 더 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내가 혹시 10년 후에라도
왜 95살 때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글 중에서
첫댓글 계산성당 부근의 이상화 선생 고택에서부터 대구역 앞 이중섭 화가가 머물렀던, 지금은 늙은 매춘부의 삶터인 수원하숙까지 대구시내 골목길을 중심으로 의미있는 옛 흔적이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끔씩 관광코스로 안내되기도 하지요. 우리 카페지기님께선 특히 내용을 잘 알고 계실것 같아 언제 같이 대구의 골목길을 돌아다니고 싶네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