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호는 레스토랑 전용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 뒤
FELLING(필링)이라고 쓰여 있는 레스토랑의 간판을 한번 올려다보며 빙긋이 웃고는
단숨에 2층 계단을 뛰어 올라가 문을 열고 들어서며 카운터 쪽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 들 하십니까?,
오랜만이네요 재수 씨,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어머머...테호씨, 테호씨가 여긴 웬 일이에요?,
이게 얼마만 이에요?,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이십대 중반에 들어서는 주인인 듯한 여자가 카운터에 앉아 있다가
테호가 들어서며 인사를 건네 오자 그녀는 무척이나 반갑고 놀라워하는 표정으로
카운터를 돌아 나오며 테호를 반갑게 맞아 준다.
"재수 씨?, 요즘 장사 잘되고 있나요?, 그 동안 나보고 싶지 않았어요?,"
태호가 그녀를 향해 가벼운 농담을 건넨다.
"에그그 주책이야, 아직까지도 그 싱거운 농담 소리는 여전하군요....
어서 이쪽으로 앉으세요."
그녀는 테호의 팔을 잡아끌며 실내 앞부분에 있는 테이블로 그를 안내한다.
테호씨 그런데 갑자기 연락도 없이 대구엔 웬 일이에요?,
"지금 창원에 계신다면서요?,
팀들은 속 썩히지 않아요?,"
"예, 재수 씨, 재수 씨가 보고 싶어서 이렇게 달려 왔잖아요....,
말 마세요, 팀들이 속썩이는 게 어디 한 두 번인가요....,
그냥 그러느니 하고 맘 편하게 지내야지요....,
그런데 제수씨?, 동혁이는 어데 갔어요?,
안보이네...."
"아....동혁씨는 내일 장사 할 때 쓸 재료 사러 갔어요,
아마 조금 있으면 올 거 에요, 간지 한참 되었으니까요..."
그때,
동혁이가 양손에 물건을 잔뜩 들고서 문을 열고 들어선다.
"동혁씨, 여기 봐 바요 누가 왔는지, 테호씨가 왔어요...."
"어, 그래?. "
동혁은 들고 있던 재료들을 바닥에 내려놓은 후 테호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온다.
"야 임마 테호야, 너 안죽고 살아 있었냐?,
자식이 자주 좀 들르지 꼭 잊을 만 하면 나타난다니까."
동혁이는 태호를 보자 반가워하며 악수를 나누고 테호를 껴안고서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그렇다.
레스토랑 주인은 과거 테호가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에
같은 팀에서 함께 연주하면서 드럼 파트를 맞고 있다가,
같은 팀 동료 여자 싱거 파트를 맞고 있던 소영 이와 서로 눈이 맞아 결혼을 한 이후
지금은 음악을 그만 두고 부부가 함께 레스토랑은 경영하고 있는
박 동혁 이라는 테호 친구의 가게 였으며,
테호와 동혁이는 일년 전에 테호가 대구에서 연주할 때 자주 본 이후,
테호팀이 부산으로 스카웃 되어 내려 간지 꼭 일년만에 다시 보는,
태호 와는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 였던 것이다.
테호와 동혁이는 한참 동안을
그 동안 서로 지내 온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태호가 은주에 대하여 간략하게 그 동안 만났던 과정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야 동혁아, 올 시간 다 됐다. 나 저기서 기다릴 테니까
너가, 그 여자 들어오면 어떤지 자세히 한번 살펴봐 줘라 알겠지?."
태호는 레스토랑 구석 쪽에 간이 칸막이로 둘려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정하고 앉는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레스토랑 안은 조용하였고,
한쪽 구석에서는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 한 쌍이 무엇이 그리도 좋은 지
서로는 연신 웃어 가며 손을 마주잡고 장난치기에 여념이 없다.
테호는 담배 한가치를 꺼내어 불을 붙이고는,
들고 있던 신문을 읽는 듯 마는 듯하며 문 쪽과 신문을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그때 레스토랑 출입문 위에 달아 놓은 작은 종처럼 생긴 딸랑 이가, 딸랑딸랑 이며
명쾌하고 밝은 금속류 특유의 그 청아함을 담아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면서 들어서는
단정하고 품위가 있어 보이는 정장 차림에 그녀의 모습이 태호 눈에 들어온다.
태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누구를 찾는 듯한 모습으로 레스토랑 안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 그녀에게 다가간다.
"은주씨 여깁니다. 빨리 오셨네 요, 이쪽입니다."
태호는 미처 인사도 못한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서 테이블로 향한다.
조용하고 감미로운 흘러간 옛 팝송을 들으며 테호와 은주는 탁자를 마주 하고 앉은 채
서로를 마주보며 웃음 띤 얼굴로 잠시 아무런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앉아 있다가
태호가 먼저 그녀에게 인사를 한다.
"은주씨, 오랜만이죠?....,
그 동안 잘 지내셨지 요?."
"네, 테호씨...,
테호 씨도 잘 지내셨어 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대구까지 오셨어요?,
저 태호씨 전화 받고 무척 당황했어요..."
"하하하, 아네 죄송합니다. 갑자기 은주씨가 보고 싶기도 하고,
볼일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해서, 저도 갑자기 마음먹고 왔습니다."
태호와 은주는 그 동안 지내 왔었던 서로에 대한 근황들을 주고받는다.
태호와 그녀의 재미있고 따뜻함이 넘치는 단 둘만에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테호가 그녀에게 정중한 자세와 심각한 말투로 자신의 심정을 고백한다.
"은주씨?, 그 동안 난, 은주 씨와 헤어지고 난 후,
나는 단 하루도 은주 씨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테호는 잠시 말을 끊으며 머뭇거리다가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며,
"사실은..., 은주 씨가 무척 보고 싶었습니다."
테호가 조금은 쑥스럽고 어색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고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는 순간....
순간 그녀는,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그 어떠한 벅차 오르는 진한 감동과 뜨거움을 어찌하지 못해서 인지
두 눈동자가 잠시 파르르 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수정과 같이 밝고 맑은 투명한 눈물이 커다란 두 눈에 글썽인다.
서로의 말없는 침묵에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에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뭔지 알 수 없는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나에 가슴이 떨려 온다.
그에 보고 싶었다는 그 한마디가,
나에 가슴속을 파고들어 나에 눈에 눈물짓게 한다.
나도 그가 보고 싶었었다. 나 또한 그를 한순간도 잊지 않고 있었었다.
그랬다.
사실 그 동안 자신도 그에게 향하는 자신의 사랑하는 감정들을
그가 보고 싶어 질 때마다 종이 학처럼 예쁘고 곱게 접어
자신의 가슴속 한켠에 감추어 두고 묻어 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이에 입술을 타고 달콤하고 향기로운 꽃가루가 되어
자신의 가슴속에 뿌려지듯 흘러나오던 보고 싶었다는 그 말 한마디에,
초조하고 답답했던 가슴속에서 확신 할 수 없었던 사랑이란 이름으로
날개를 접어 두고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려 왔던 종이 학들이
그가 자신에게 사랑을 확인해 주는 생명과도 같은 날개를 붙여 주자,
무지개 빛으로 물들이여 지며 열리는 자신에 가슴을 딛고 힘차게 날개 짓하며 날아올라,
새로운 생명을 얻어 사랑을 전하려 비상하는 한 마리의 학이 되어
사랑의 고백을 싣고 그에게로 날아가 그의 품에 안기는 자신을 발견하고,
흐르는 눈물과 떨리는 가슴을 애써 감추며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어 버린다.
"저도 테호 씨가 무척 보고 싶었어요, 나도 태호씨 생각을 많이...."
그녀는 다음 말을 이으려다 말고
부끄러운 듯 테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허공 한 곳에 고정하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려 무진 애를 쏟고 있었다.
그때....
동혁이가 물 잔을 들고 테호와 은주가 자리하고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테호야?, 너 아직 식사 못했지, 뭐 먹을래?,
오늘은 이 형님이 너를 위해서, 네가 주문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최고급으로 공짜로 대접해 줄께....."
동혁 이는 태호에게 어떤 음식을 먹을 건지 물어 보고
태호와 은주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며 웃음 띤 얼굴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전 태호 친구, 박 동혁 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아 참 은주씨, 두분 인사 나누세요,
저놈은 저하고 가장 친한 친구인 이곳 레스토랑 주인입니다."
태호가 그때서야 동혁이가 생각이 나는지
자리를 조금 안쪽으로 이동하며 동혁이 에게 않은 것을 권한다.
"아니다....아니다 테호야,
내가 그렇게 눈치 없는 놈 인줄 아니?,
내가니 맘 다 알아 임마, 나중에 다시 올게..."
그가 손을 내저으며 태호의 권유를 뿌리치며 막 돌아서려 하자,
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전 김은주 라고 해요,
앞으로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녀가 동혁이 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리에 앉자
동혁이는 싱글벙글 웃음 띤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듣던 대로 미인 이 시군요, 아무튼 태호 저놈은 복도 많아,
어디서 이렇게 예쁘신 은주씨를 만났을까....
은주씨?, 저희 가게에 자주 놀러 오세요,
태호가 없더라도 제가 맛있는 거 많이 드릴 태니까요, 아셨죠 은주씨?, 하하하..
야 태호야?, 그런데 식사는 언제쯤 할래?..., 나중에 할래?,
그래 그럼, 나중에 해라...
은주씨?, 그럼 천천히 태호와 예기 나누세요, 전 바빠서 나중에 올게요."
동혁 이는 그녀에 대한 칭찬과 함께 테호를 바라보며 만족한다는 듯이
한쪽 눈을 찡긋이 감아 보이며 이내 주방 쪽으로 사라진다.
동혁 이가 자신의 궁금증을 풀고 주방 쪽으로 사라지자
태호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너무나 아름답다.
너무나 아름답고 청순한 모습에 그녀이다.
그녀가 너무 예뻐 보인다. 아니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녀를 안아 보고 싶다. 아니 안아 주고 싶어진다.
테호는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은주 쪽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말없이 그녀에 두 손을 꼭 잡는다.
테호가 잡은 그녀에 두 손이 가늘게 떨려 온다.
그리곤 두 사람은 아무런 말없이 한 참 동안을 그렇게 있었다.
그녀가 보고 싶었었다. 한달 여를 참아 왔다. 이 순간을 기다려 왔었다.
사실 테호와 그녀는 서로에 가슴속에 서로에 대한 뜨거움을 간직 한 채
길고도 보고 싶었던 한 달 여를 참아 가며 이 순간을 기다려 왔었지 않았는가....
테호는 아직도 떨리고 있는 그녀의 하얀 손을 살며시 잡아끌어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손등에다 가볍게 입을 맞추어 주고
다시 자신의 얼굴에다 그녀의 손등을 어루어 주며 사랑을 전해 준다.
가슴 벅찬 그들만에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 둘만에 시간은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달콤한 시간이다.
그녀가 떨고 있었다.
태호는 자신의 따뜻한 손길이 닿을 때마다,
부드럽고 달콤한 솜사탕처럼 녹아들어
짜릿함으로 온 몸이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환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그녀를 살며시 끌어안는다.
그리고 또다시 그들만에 뜨거운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은주는 황홀했다. 아니 곧 숨이라도 멈추어 질 것만 같았다.
이런 느낌이 사랑이구나....
아...행복하다. 행복하다....
그이의 품이 따듯하다....
정신이 혼미하여 온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자꾸만 눈물이 흘러나온다. 멈추지 않는다....
아... 이대로 영원 할 수만 있다면, 영원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테호에게서 흘러나오는 강한 자석과 같은 흡입력으로 인하여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테호에게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으며
한참 동안을 그에 품에 안겨 있다가
주위를 의식한 탓인지 테호의 품에서 살짝 빠져 나오며
테호의 어깨 위에 자신의 머리를 묻고 테호의 손을 잡는다.
레스토랑 안에서 잔잔하게 들려 오는 음악 소리와 함께
은은하게 배여 나는 조명 빛들은, 마치 테호와 은주 만을 위한 사랑의 세레나데처럼
그들에겐 천상에서 들려 오는 감미롭고 아름다운 천사들의 합창 소리처럼 들려 온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확인한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 어떠한 사랑의 속삭임과 어떠한 몸짓들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다....
마주치는 눈빛만 봐도 가슴이 떨려 온다...
아무런 말이 없어도 서로를 느낄 수 있다...
아...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여 제발 이대로 멈추어 주소서....
테호와 은주는 서로의 뜨거운 사랑을 확인한 채,
그곳에서 그들만에 시간이 그렇게 흐르는 것도 잊어 가며
그들은 늦은 오후까지 시간을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