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시학>, 2014년 겨울호.
<집중 조명>
꽃, 지다 외 4편
서상만
꽃 한번 피운 것이
절명(絶命)의 이유일까
몰아치는 밤비에
홍화당혜(紅花唐鞋) 벗어놓고
소리 없이 묻히는
귀가 파란 꽃잎들
춘몽(春夢)
지평선 수평선을 직선이라 해서 가보면 내 눈엔 늘 곡선이다 지난 밤 꿈에 말을 타고 어느 과수댁에 맞선을 보러가는 길, 곧바로 내려가면 그 마을이라 해 언덕에 올라보니 직선 길은 없고 꼬불꼬불 돌고 도는 꼬부랑길이라 꿈에서도 아, 내가 이 나이에 이런 짓거릴! 혀를 툭툭 차다가 그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반쯤 읽다 머리탁자에 올려놓은 노자(老子) 왈 “봄도 아닌 주제에 직선을!” 내 꼴이 하도 같잖았는지 잠을 깨운 것이다
사랑에 벌서다
귀향을 생각하니 난감하다
마음속에 집이 있다 한들
객지 땅에 아내를 묻어두고
훌쩍 혼자 떠나다니,
구름도 따라오지 않고
장롱에 붙박인 백동나비도
우두커니 바라만 본다
불임의 새
산다는 길에 생무덤을 파고
수심 깊은 출세 따윈 잊은 지 오래
이제는 예수도 부처도 안 믿지만
천국 얘기에는 그래도 귀가 솔깃해
개 푼도 없는 시인이라서
가치 따윈 없어진 지 오래
돌래돌래 시 몇 줄이 좋아서
끼리끼리 목청 깨다 오는 저녁
찾아갈 나무도 둥지도 없어
눈 어두운 신에게 길을 묻는다
그래, 벌써 사는 일이 식상해졌다
스치는 사람마다 표정도 없고
번다스런 옷매무새도 그냥 그렇고
가나보다 오나보다 낯선 길에서
부르거나 쫓는 이 없는 새가 되었다
죽은 것과 산 것이
돌고 돌아 다시 여기 오기까지
귀 찔린 내 고전은 닳고 닳아,
이런 날은
고요히 유서 같은 속울음만 운다
탄월(彈月)
공산(空山)에
나뿐인 줄 알았더니
대숲에 짐짓 스민
달빛 따스하다
서상만(徐相萬)
경북 포항시 호미곶에서 태어나 1982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시간의 사금파리 그림자를 태우다 모래알로 울다 적소 백동나비, 동시집 꼬마 파도의 외출 너, 정말 까불래? 등이 있다. 월간문학상, 최계락문학상을 수상했다.
<대담>
적소(謫所)에서 부르는 순애의 노래
서상만․맹문재
맹문재 : 선생님, 안녕하세요. 2011년부터 현재까지 3년 동안 시집 3권과 동시집 2권을 간행할 정도로 아주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게 되어 기쁩니다. 선생님의 작품 세계는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가 안 된 상황이기에 이 자리에서 차분하게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간행한 시집들을 놓고 차례대로 들으면 되겠네요. 근황은 어떠하신지요?
서상만 : 어쩌다보니 시집, 동시집을 한꺼번에 내게 되어 좀 분주했습니다만 그럭저럭 한 매듭을 풀고 나니 또 다른 매듭이 기다리고 있어 늘그막에 일복이 터진 것 같습니다.
맹문재 : 선생님의 첫 시집은 『시간의 사금파리』(시학, 2007)입니다. 1982년 『한국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니 25년 만에 간행한 것이네요. 첫 시집을 간행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린 데는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서상만 : 부끄럽습니다. 그동안 별 성과 없이 글쓰기 50년, 등단 30년이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1960년대 초 청마, 목월 선생님 같은 분들과의 조우를 통해 문청(文靑)의 꿈을 얼마든지 이룰 수도 있었는데 시시한 세월 타령만 하며 제대로 된 고뇌의 한복판에 서질 못하고 세속적인 몽리에 한눈을 팔았지요. 그러나 이미 시마(詩魔)에 든 스스로를 방기하기란 커다란 고통이었습니다. 그 진통으로 1982년 『한국문학』으로 등단하여 『현대문학』『심상』『현대시학』 등 유수 문예지에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지요. 아마 1986년까지 그랬을 겁니다. 그 후 직장 문제, 아내의 간병 문제 등으로 자의반 타의반 약 20년을 절필에 들었지요. 어느덧 저에게 시는 바람처럼 왔다가 가버리는 존재였습니다. 너무 오랜 공백으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창구마저 막혀버려 어쩔 수 없이 등단작을 포함해 미발표 작품을 정리해서 시집으로 묶었습니다. ‘언어의 격투’를 재개하기로 결심한 것이지요.
맹문재 : 『시간의 사금파리』의 주제는 이가림 선생님께서 시집 해설에서 밝혔듯이 ‘잃어버린 시간 찾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추억이 많은데 우선 두 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볼까요? 또 몰개울․구만리․구룡포․다무게 등 선생님의 고향인 경북 포항의 호미곶 지명들이 소개되고 있네요. 저도 20대를 포항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러한 지명들이 그립네요. 선생님의 시세계에는 이와 같이 바닷가 마을 또는 바다가 토대가 된다고 볼 수 있는데, 선생님의 시세계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요?
서상만 : 제 시의 가장 큰 질료는 바다(고향)와 어머니(아버지) 그리고 아내를 통한 삶과 사랑과 죽음에 대한 성찰입니다. 아버지는 한학자셨지만 젊으셨을 때는 지역의 정신적 지주로서 치산의 능력도 출중하시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만년에는 병고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위해 향리에 돌아가 십 수 년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준엄한 선비셨고 어머니는 상당한 달변으로 시원시원한 여장부셨습니다. 전혀 시골 분들이 아니셨죠. 저의 시세계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몰(生沒)이 다 들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헌신과 사랑이 우연찮게 저와 아내와의 여정과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마치 유전된 숙명처럼 말이죠. 이와 같은 면이 제 시의 토대입니다. 언젠가 한국시인협회 사화집에 발표한 저의 졸시가 이를 알려줄 것 같습니다.
달빛 갈라놓은 분월포(芬月浦) 노두길
성근 왕대울타리 안 병든 아내위해
당신 몸이야 아낌없이 허물던, 막막한
아버지의 부복(俯伏)뿐인 집 한 채
해질 무렵, 멀리 영일만 노을이
울금빛 물결로 넘실넘실
어머니 살 속에 파고들고
아버지 가슴에 피 눈물이 고이던
오월 초이레, 낡은 문설주를 흔들며
저승 돌개바람이 어머니를 빼앗아갔다
그 아스라한 적막의 빈집을, 아버지는
길을 넓히라고 마을에 내주고
끝내 세상을 떠나셨다
훤히 뚫린 길
덧없이 떠나가신, 내 어머니 아버지의
황혼 사랑과 이별
무시로 드나든 겨울바다바람도
조용히 잦아들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길을 찾아 간다
아버지와 꼭 닮은 나의 길
―「잃어버린 시간」 전문
맹문재 : 잘 들었습니다. 아내를 위한 두 분의 헌신에 가슴이 저며오네요. 선생님의 두 번째 시집은 『그림자를 태우다』(천년의시작, 2010)입니다. 이야기 시가 좀 늘기는 했지만 첫 시집과 유사한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네요. 그중에서 「분월포」 연작시가 있는데, 장소애(TopoPhilia)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지요. 쓰신 의도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서상만 : 맹 시인도 20대를 포항에서 보냈다니 그쪽의 지명들이 낯설지 않고 가끔 그리울 때가 있을 겁니다. 호미곶에는 가깝게 대보리․구만리․앞구만․까꾸리게 등 아주 작은 마을과 해변이 있고, 좀 떨어진 마을로 석병리․다무게․대동배 등이 있지요. 그곳들을 포함해 영일만을 내안으로 하는 장기갑 전체를 통칭 호미곶이라 하지요. 분월포(芬月浦)는 구만리에 소재한 작은 포구인데, 저녁이면 울금빛 노을이 창호지를 물들이고 밤이면 달빛이 밤물결에 굽이치며 천파만파 놀아나지요. 그 발광을 보고 있노라면 가히 방외세계라고 할 수 있지요. 멀리 영일만 너머 육지를 바라보면 어느 낯선 고도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들 정도입니다. 대학을 중도에 접고 그 분월포에서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간병해오다 끝내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아버지도 결국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셨지요. 그날부터 분월포는 제 시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시집인 『그림자를 태우다』에 분월포 연작시 8편이 실려 있고, 시집『적소(謫所)』에도 1편이 있고, 계간 시전문지인『문학청춘』에 봄호부터 겨울호까지 28편의 연작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발표 작품을 포함하면 60여 편이 넘습니다만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맹문재 : 두 번째 시집에서는 「돈황 개구리」나 「고비사막」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곳에 여행하신 적이 있네요. 소감을 들을 수 있을까요?
서상만 : 그렇습니다. 또 하나의 새로운 근원에 접근하는 세계 인식을 경험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보았습니다. 나라마다 시시로 일어나는 세기적 갈등을 공감하면서 여행 중 가끔은 짧은 호흡으로 뜻하지 않았던 가작(詩)을 생산하기도 했습니다만, 역시 역사가 짧은 미국보다는 중국이나 아프리카, 유럽, 러시아 쪽에서 수확이 더 컸습니다. 특히 시안과 둔황의 막고굴, 실크로드, 사하라 등과 찬란했던 제정러시아 예술의 현현을 보면서 자연과 인간이 서로 대립하고 조응하고 환류하는 이치를 확인해보았습니다. 또한 무한초극의 세계를 맛보면서 나 자신도 초극의 의지로 살고 싶은 강렬한 욕구에 감염되었습니다. 아마 그 에너지로 지금껏 잘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체험은 창작에서 모티프를 발아시키는 씨앗이지요. 앞으로도 여건이 되면 인도, 중앙아시아 같은 천축 길을 돌아 새끼 잃은 몽골 낙타의 눈물을 마두금으로 닦아주며 동서 문화의 접점을 찾아 새로운 시의 시료들을 한껏 주워오고 싶습니다.
맹문재 : 『그림자를 태우다』라는 시집 제목이 관심이 가네요. 우리의 생(生)이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것일 텐데, 그림자를 태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요?
서상만 : 거년(去年)의 마지막 날 중앙일보의 <시가 있는 아침>에 실린 나의 시 제목을 시집 제목으로 차용했습니다. 그동안의 비굴과 방만, 줄기차게 따라다닌 자학의 그림자까지 몽땅 태워버리고 싶었습니다. 명암이 엇갈리는 생사의 문턱에서 회생 불가능한 아내를 바라보며 지난 삶에 대한 나의 성찰은 하나의 위선 같았습니다.
맹문재 : 세 번째 시집이 『모래알로 울다』(서정시학, 2011)입니다. 앞의 시집들에서 보여준 시세계가 여전하면서도 작품의 미학이 한층 더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아내’를 제재로 한 작품들이 그러합니다. 두 번째 시집에서도「총 맞은 새처럼」 같은 작품은 큰 울림을 주는데, 세 번째 시집에 들어 있는 「놋쇠 요령」「조팝꽃 눈물」「다섯 평에 잠들기」「하늘동에 전입신고 하러가다」「아내의 발톱」「적소」 등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아내’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볼까요? 시를 한 편을 읽어보겠습니다.
한 십 년
내 손으로 아내의 손톱 발톱을 깎아주었다
한 오 년은 힘없어도 겨우겨우
예쁜 손톱을 내밀며 조금은 자신 있게
못생긴 발톱을 내밀며 조금은 부끄럽게
넌지시 미소를 건네주던,
그 후 한 오 년은 미소마저 잃어버린 채
맥없이 처져버린 그녀의 손톱 발톱
그 긴긴 날들이 한순간의 꿈같다
그럼 누가
무덤 속에 자란 손톱 발톱을 깎아줄까
어느새 내 슬픔도 이만큼 자랐는데
어디쯤 갔을까
이제는 따라가지 못할 이승의 밖
당신과 나는
수억 년을 건너뛴 공간 밖이라는데
―「아내의 발톱」 전문
서상만 : 맹 시인이 굳이 제 아내를 소개하라 하니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몇 말씀 드리면 아내는 전주 이씨 양녕의 후손인 지방 사업가의 딸입니다. 아들 셋 낳아 훌륭하게 키워놓고 시름시름 20년도 넘게 병마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뜬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대갓집 맏며느리처럼 사람도 넉넉하고 인물도 넉넉해서 전형적인 현모양처였지요. 삶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는데, 사람의 운명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닌가봅니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 어떤 시와 예술이 한 인간의 드라마틱한 생몰 이상일까요? 사실 젊었을 때 내가 시를 쓰는 일에 아내는 동의하지 않았어요. 사업가의 딸다운 기질이 강했어요. 방구석에서 원고지를 만지작거리면 그 시간에 어디 여행이나 다녀오라고 나를 슬며시 밀어냈어요. 내가 직장을 버리고 본격적으로 아내의 간병을 들고부터 나에게 다시 시를 쓰라고 마음을 열어주었어요. 역설적으로 아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저는 영판 다른 길을 걸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맹문재 : 말씀을 들으니 참으로 안타깝네요. 그래서인지 『모래알로 울다』라는 시집 제목은 물론이고 「울음나무」「조팝꽃 눈물」「모래알로 울다」「종다리 울음으로」 등에서 보듯이 ‘울음’이라는 제재가 관심이 가네요. 선생님의 어떤 자의식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서상만 : 주위에서는 저의 작품을 두고 좀 어둡고 우울하고 눈물이 많은 저녁의 시라고들 합니다. 그동안 살아온 시간의 불모성이랄까 그런 것들을 가슴으로 치유하려는 노력이 아프게 나타난 것이지요. 원래 늦깎이로 등단한데다 중간에 절필 공백이 길어 결국 남들은 다 추수를 하고 쉴 때 나는 열심히 밭을 갈아야 하는 각박한 시간에 놓이게 되니 자연 울음이 커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장인 정신과 예술적 자의식을 견지하면서 스스로 울음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맹문재 : 네 번째 시집이 『적소』(서정시학, 2013)입니다. “적소”(謫所)란 죄인이 유배되는 곳인데, 왜 시집의 제목으로 삼았는지요?
서상만 : 그동안 너무 많이 울어서 이제는 울음을 마음에서 비우기로 했습니다. 인간이 언젠가 입소해야 할 그 고요로운 적소, 나는 거기에 내 시의 독자들을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잔느처럼 시의 수채화를 오래도록 그리고 싶었습니다.
맹문재 : 선생님의 시세계는 「용산 질경이」「동두천 일기」 등의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사회적 참여는 적은 편이에요. 시의 사회적 참여에 관해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계시는지요? 또 현재 추구하시는 서정시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네요.
서상만 : 사실 저도 1960년대 문청(文靑) 때는 당시의 시대 상황에 절망해서 꽤나 긴 저항시 또는 현실 참여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 후 상당 기간 절필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시의 사회적 참여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인간의 삶의 문제, 원형적인 인간성의 회복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의 미발표 시초 속에는 사회 참여 성향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어느 시대든 왜곡된 사회를 비판하는 선봉에는 언제나 시인의 직언이 있지요. 그렇지만 시인의 현실의식이나 역사의식도 중요하지만 탁월한 예술의식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시인의 현실 참여는 어디까지나 시다운 시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봅니다. 좀 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시, 삶에 충실한 시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큽니다. 더불어 기계 산업이 고도화되고 사회가 너무 혼란스러워 서정시에 대한 동경이 더욱 저를 사로잡습니다. 이 시대의 우리는 사회적 오염 때문에 오히려 자아를 상실한 채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 원형을 다시 찾는 데는 서정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시는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서정에 있지요. 우리 곁에서 사라져버린 것들의 존재에도 분명 사랑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연약한 우리가 나락 속에 빠져들지 않도록 좌절과 도전에 맞서 꿋꿋이 견뎌내야 하는 책임도 있습니다. 난해시를 넘어 새끼 꼬듯이 말장난을 비틀어 놓은 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 같지만 저는 늘 쉬운 말로 쓰되 의미의 두께가 뼈처럼 단단하고 두터운 서정시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투명하고 명징한 시보다 구리거울에 비치는 은은한 묵화처럼 내재율이 있는 시를 원합니다. 또한 시인은 말을 잘 부릴 줄 아는 장인입니다. 그러나 말을 아껴야 합니다. 그동안 시를 써오면서 말과 삶의 간격, 언어의 사기성과 허구성 등 참다운 내적 교감을 솔직하게 전달해주지 못해 수없이 절망하곤 했습니다. 이 지면에 실린 저의 짧은 시 하나를 자평해보겠습니다.
꽃 한번 피운 것이
절명(絶命)의 이유일까
몰아치는 밤비에
홍화당헤(紅花唐鞋) 벗어놓고
소리 없이 묻히는
귀가 파란 꽃잎들
―「꽃, 지다」 전문
위 작품의 꽃을 단순히 지는 오브제로만 보지 말고 인간의 가치와 동등한 자리에 올려놓고 보면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인간과 물건이 다 같은 사물이라는 인식에서 볼 때 교감의 세계는 어떤 신비주의적 우주관에 기대어 있기보다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대상, 즉 사랑으로부터 오는 현상학적인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맹문재 :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다섯 번째 시집이 『백동나비』(서정시학, 2014)입니다. 아무래도 이 시집에서는 「백동나비」 연작시에 관심이 가네요. 쓰신 의도를 들을 수 있을까요? 연작시의 첫 번째 작품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젖은 마음
모처럼 봄볕에 말리고
집에 들어서니
아내의 장롱에 살던 백동나비 한 마리
마지막 아내의 손 무게로
사풋이 내 어깨에 날아 앉았다
차마 눈짓이라도 되고픈
알 수 없는 파문을 그으며
―「백동나비․1」 전문
서상만 : 사실 백동나비 연작은 시집 『적소』에서 이미 뚜껑을 열었습니다. 하얀 수의만을 걸치고 따라갈 수 없는 저편으로 사라진 아내의 곳간 장롱에 붙박여 떠나지 못하고 내 마음속에 오롯이 남아 있는 백동나비는 그 간의 내 삶과 사랑과 죽음에 대한 강렬한 시적 질료입니다. 그리하여 단순한 망부가(亡婦歌) 사부가(思婦歌)이기에 앞서 오매불망! 질긴 인연의 고리가 승(乘)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후생의 재회까지도 염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떠난 사람을 내 상념에서 조금씩 지우고 싶은 간절한 헌사이기도 하지요.
맹문재 :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시행이 짧습니다. 우리 시단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경향과는 다른 모습이지요. 특별히 의도한 바가 있는지요?
서상만 : 2000년대에 들어와서 서로 다른 양상의 시들이 저마다 독자적인 영역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 내막에는 많은 원론적 속성(서정)이 숨겨져 있어 그 서정의 정수를 별도로 긁어모으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제된 초월적 미학을 모색하려는 소위 극서정시학(최동호 교수)이 어쩌면 하나의 유파적 성격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하나의 포괄적 장르로 논의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기존의 서정과는 차별화된 고도의 긴장과 사유, 은유와 상징으로 압축되면 그 시는 대단한 매력과 파괴력을 지녔다고 봅니다. 특히 점차 분화되어가는 시대 상황에 맞물려 시도 차츰 분화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 가닥 희망 같은 순수성을 보존하고자 하는 욕구는 우리 시단의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반 독자들이 이 바쁜 시간에 소설 같은 시를 누가 읽어주겠습니까? 사람들은 보통 나이가 들면 잔소리가 많아지지만 시인은 말수가 적어져 시의 호흡도 자연 짧아지기 마련이지요. 그동안 정통 순수시의 본령을 꾸준히 고수하고 있는 ‘서정시학’에서 세 권의 시집을 출간하면서 스스로 극서정의 지평을 넓히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부족합니다. 다만 하루하루 꺼져가는 재(災) 속의 불씨(極)를 헤적여 좋은 시 몇 편을 남기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맹문재 : 선생님의 시세계는 어머니, 아버지, 아내, 고향 등을 서정시로 그려낸 것으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다소 자연 발생적인 차원으로 출발했지만 형상화의 깊이를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열심히 쓰신 결과이겠지요. 시를 창작하는 데 남다른 방법이나 습관이 있는지요?
서상만 : 글쎄요. 제가 시를 쓰는 데 남다른 방법이나 어떤 특별한 심미안을 가진 것은 없어요. 습관이랄 것까지는 아니지만 쓰고 싶은 어떤 모티프가 착상되면 뜸들이지 않고 바로 작업에 들어가지요. 물론 그 이후에 두고두고 퇴고는 하지만 우선 좀 덜 익고 어눌해도 하나의 작품으로 형상화시켜 놓는 거예요. 그런 과정에서 가끔은 더 손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들고 탄력 있는 작품이 생산될 때도 있지요. 어느 시인은 한 줄의 시행을 붙잡아놓고 오늘 내일 고래 심줄 당기듯 쓴다는 분도 있다는데 제 경우는 다릅니다. 제 첫 시집에 「나의 작시(作詩) 버릇」이라는 시가 있습니다만, 그 버릇이 나이 들면서 순해질 수도 있고 독해질 수도 있지요. 저에게 시는 너무나 인색해서요.
맹문재 :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다섯 권의 시집에 더해 『너, 정말 까불래?』(아동문예, 2013), 『꼬마 파도의 외출』(청개구리, 2014)라는 두 권의 동시집도 간행하셨습니다. 동시를 쓰시는 동기 혹은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서상만 : 피카소는 자기 그림의 자유분방한 천진성 즉 동심을 회복하는 데 무려 8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특히 그가 그린 추상화는 마치 어린이가 종이에 환(幻)칠을 한 듯 난만한 것으로 그의 말을 대신하는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특별히 작심하고 동시를 쓴 것이 아니라 자유시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동심이 자극되는 문장이 떠올라 작품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아마도 저에게는 소위 유년 동경(childhood) 같은, 유년의 그리움이 진하게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입니다만 동시 창작에 재미를 붙이면 헤어나기가 힘듭니다. 가끔 동시를 만만하게 보는 분들이 주변에 계시는데, 동시를 쓰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이번 두 번째 동시집을 낼 때 출판사에 거의 100편의 작품을 보냈는데 실무 편집인들이 많은 작품을 솎아냈어요. 작품이 어른들 시에 가까워 아이들이 읽기에는 너무 어렵다고 했어요. 아이들 마음으로 아이들 눈높이로 아이들 목소리로 써야 된다는 거였어요. 동시는 어떤 것에 의해 쓰이는 것이 아니고 오직 동심으로 쓰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아이들이 기계문명에 안주해서 자연과 만물의 이치를 잊은 채 메마른 감성으로 커가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많은 동시 시인들이 유행처럼 남발하고 있는 말놀이 수준의 동시보다는 우리의 우주, 대지를 일깨워주는 동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실제로 아이들의 눈은 희망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도 부족함이 많아 미발표 동시초 뭉치를 보물처럼 숨겨놓고 자주 꺼내보곤 합니다. 이 나이에 아이들 목소리로 놀아보는 행운이 크지요. 그리고 평생 시인이었으니 동시집 한두 권쯤 손자들에게 선물로 주고 가고 싶네요.
맹문재 : 선생님께서는 근래에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계시는데,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서상만 : 가끔은 이것저것 다 부질없다 싶을 때가 있지만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쓸 것입니다. 쓰다보면 언젠가는 길이 나지 않을까 해서요. 솔직히 이 나이에도 나만의 시적 승부 근성이 살아 있어 그냥 지나가는 하루해가 아깝습니다. 한때 산업현장에서 피투성이 전투를 벌였던 일이나 병고에 든 아내를 살리려고 죽자 살자 매달렸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그것들이 다 내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업보이자 필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게 세상 공부를 제대로 시켜줬고 나의 시를 숙성시켜주는 자양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써놓은 자유시 작품들이 좀 있어 퇴고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문예지에 연재되고 있는 「분월포」 연작시의 시집 묶기와 가칭 「간(間)」과 「적분(積分)의 시」라고 묶어놓은 2권의 시초집도 출간해야 합니다. 또한 시선집과 동시를 포함한 시전집의 간행도 건강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등단도 늦게 했고 심호흡(절필 공백)도 길게 했지만 아직 짱짱한 문청이라고 욕심을 부리고 싶습니다. 끝으로 이 대담을 계기로 새로운 시의 이데아를 모색하고 한층 더 유연한 시의 길에 천착하길 스스로 빌어봅니다.
맹문재 : 여러 가지로 귀중한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내내 건강하세요.
맹문재 |시인, 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