投票! 事故 속에 騷亂
입력 : 1960-03-15 00:00:00 부산일보
저마다 귀한 주권 행사 3시간 만에 벌써 40% 완료
제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을 뽑는 3·15 총선거 투표의 날 이른 아침부터 유권자들은
저마다의 한 표를 가지고 투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겨레의 역사와 더불어 길이 기록된
이 심판의 날을 맞는 유권자들의 표정은 「귀중한 주권 행사」를 하기에 주위의 정상은 비록
착잡하고 있기는 하나 한 표 한 표가 쌓여 정·부통령 입후보자의 당락을 결정짓는 단위가
되는 것임엔 틀림없는 것이었다.
53만 399명의 유권자들이 참가하는 부산의 정·부통령 선거 역시 3·15 전국 선거의 하나의
축도를 현출하여 표면상 지극히 평온리에 투표가 진행되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모두가 정
상적이었다고만도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른 새벽부터 부산의 거리는 뭔지 삼엄하였고
날이 밝기 시작하면서부터 투표 분위기는 각 투표소마다 정렬한 공무원들로부터 조성되
기 시작하였다. 자유당, 반공청년단의 완장은 이왕의 영일을구를 비롯한 민의원 재선거 때
부터 등장되었지마는 부산 시내의 일부 투표소엔 「공무원」 완장의 소위 자유당의 3인조
투표를 그대로 나타낸 붉은 색 푸른색 노랑색의 3색 「리봉」을 1조로 투표장에 들어가는
등 색다른 풍경도 있는 각 투표장엔 「민주당」 완장은 단 한 사람도 볼 수 없고 자유당 일색
의 투표 풍경이었다. 일부 유권자들로부터는 「번호표」를 받지 못하여 투표를 못 하고 있다
는 항의와 칼과 구타의 「테로」도 있었다는 부산의 투표일을 부산 시내 6개 구청별로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부산진구
정·부통령 선거 투표는 산발적인 학생 「데모」가 일어나기는 했으나 대체적인 평온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군인 독립 투표소 5개처와 일반 투표소 45개 처인 이 구에서는 투표가 시
작되기 한 시간 내지 30분 전에 여·야 양측 선거위원들의 투표함 검함을 끝내고 아침 7시
를 기하여 투표를 시작했다.
그러나 평온할 것만 같았던 이 지구에서도 자유당 부산진 갑구당 일부 지역에서 낮 12시
현재까지 두 차례에 걸친 학생 「데모」 소동과 민주당 선거위원에 의한 투표소 부정 시설의
파괴 소동이 있었으며 남녀 학생들의 「데모」 기세는 온종일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침 7시 정각 전포동 「로타리」에 부정선거 규탄과 경찰에 연행된 「데모」 학생들의 석방
을 요구하는 또 하나의 학생 「메모」가 감행되려 했으나 즉시 출동한 경찰 기동대에 의해
해산되었고 이어 상오 9시경 범천동 「로타리」에서 동 「데모」단은 그들의 이루지 못한 시
위를 재개하려 했지만 역시 경찰에 의해 저지됐다. 이 소동으로 또다시 12명의 여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어 부산진서에 붙잡힌 학생의 수가 52명(남녀 각 26명씩)으로 늘었다.
◇군부대
재부 부대 군인들도 이날 상오 7시부터 투표를 실시했다. 군인들은 대부분이 오전 내로 투
표를 끝마쳤는데 병력을 많이 가진 부대에서는 부대 내에 설치한 투표소에서 그 외 부대에
서는 일반투표소에서 투표를 실시했다. 이날 영내에다 투표소를 설치한 부대는 다음과 같다
◇부산진= ▲당감1동 (통신기지창) ▲당감2동1 (공병기지창) ▲범천 3동1 (차량재생창)
▲우암동 3 (제8병참기지창) ▲대연동 1 (220자동차대대) ▲전포1동 (의무기지보급창)
▲문현1동1 (병기기지사령부) ▲감만동 2 (병기기지보급실) ▲양정동 3 (군수기지사령부)
▲부암동 2 (총포재생창) ▲가야동 1 (화학기지창)
1972년 부산진구 지역 군부대와 주요 기관들 (전포동 의무기지보급창은 못찾겠네요)
◇동래= ▲연산2동 (제3육군병원) ▲반여동 2 (병기학교) ▲부곡동 2 (1206공병 단)
▲광안동 3 (제7 피복창) ▲중1동 3 (051탄약창) ▲우동 4 (경비중대)
◇서구
어둠이 완전히 가시기 전인 새벽 5시 40분경 부용동 제1투표소인 부민국민학교 주변에는
반공청년단의 완장을 한 청년들과 공무원, 자유당 완장을 한 사람들이 서성거리기 시작했
다. 그 속에는 정복 순경 한 사람도 섞여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5시 반경 투표소인 학교에
서 삼삼오오 밖으로 나와 투표소 입구와 주변에 별말도 없이 늘어섰다. 반공청년단 완장을
두른 20세가량의 청년은 「투표함을 경비한다」고 말하였다. 인근 부용동 2, 3투표소도 새
벽 6시가 되자 완장을 두른 선거민들이 모여들었는데 그 태반이 부부 동반이며 자유당, 공
무원의 완장을 한 부인네들이 많은 것이 유달리 눈에 띄었다. 공무원들이 어느 구역보다
많은 서구는 7시가 되기 전 투표소 앞은 「공무원」, 「자유당」 완장의 선거민들로 질서정연
(?)한 줄이 지어졌으며 7시가 되기 무섭게 투표에 들어섰다. 투표소마다 입구에 반공청년
단원들이 늘어서 있었고 이들은 기자 출입을 엄중히 막았다.
민주당 서구 을구당 위원장 황영식 씨 부인은 도처에서 공개투표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면
서 아미동 3동회 5투표소에서는 공개투표가 한창이니 기자가 보아 달라고 애원했다. 괴정
동 1동 2투표소에서는 어떤 중년부인이 「짝이 빨리 안 온다」고 투덜거리는 광경을 볼 수
있었는데 세 사람씩 한 짝이 되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중구
별다른 이상 없이 아침 7시부터 투표가 시작되었다. 각 투표소 100「미터」 거리에는 새끼
줄이 쳐 있어 일반인의 통행은 완전히 금지되었고 유권자만이 조용히 투표소 내로 들어가
고 있었다. 중구 관내는 특히 다른 일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완장 두른 청년들이 눈에 띄지
않았으나 역시 모 여관 앞에 수 명의 낯선 청년들이 서성거리고 있어 행인들의 주목을 끌
었다.
◇동구
관내 42개 투표소의 분위기는 오전 11시 현재 2, 3건의 불상사를 일으켰을 뿐 비교적 평온
한 분위기 속에서 투표가 진행되었다. 이날 아침 투표가 시작되기 전 6시 30분까지는 각
투표소마다 선거위원들과 투표소 근처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이 눈에 뜨일 뿐 차가
운 아침의 공기는 살벌하기만 했다. 7시 10분 전 초량2동 2투표소에는 내무부 지방건설국
직원 수십 명이 한꺼번에 쇄도하는 것이 특히 눈에 띄었다.
◇영도구
아침 7시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투표가 시작되었다. 2,30분이 지났으나 별로 사람들이 오
지 않았던 대교동 4, 5가 동회에 비해 봉래동 1동회 제1, 2투표소엔 표를 찍으러 온 사람들
로 들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