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두더지가 땅굴을 파헤치듯 달리는 지하철 안은 천태 만상의 사람들이 함께 탄다.
무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사십 대 후반쯤 보이는 여인이 만신창이 된 된 채 바위 같은 눈꺼풀이 내려앉아 있다. 자갈치 시장에서 버겁도록 짐을 겨우 끌고 들어오더니 앉자마자 눈꺼풀이 철석 내려앉았다.
파와 잔 배추, 상추, 고추, 야채들을 보니 집 앞에 구멍가게를 열어 장사를 하는 사람 같이 보인다. 동네 사람들에게 부식을 팔며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을까? 남편이 행여 중병이 들었을까? 사별을 했을까, 논팽이를 만났을까, 공연히 혼자서 그 여인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자식들을 끌어안고 억척같이 살아가는 여인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가슴이 찡하게 아파 왔다. 나이답지 않게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고난이 지난날 내 모습을 재연 해 보는 것 같았다.
아들 넷을 키우던 시절 쌍둥이를 업은 채 머리에 옷 봇짐을 이고 행상을 할 때다. 어느 날 비도 오는데 버스를 태워주지 않아서 한 시간 동안 비를 맞고 차를 기다리던 모습이 지금 여인의 모습이다. 엄마가 없는 동안 눈이 까만 아이들이 얼마나 엄마를 기다릴까, 저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며 전기와 연탄불도 위험하니 엄마는 아이들 걱정에 늘 좌불안석이었다.
아들 넷을 집에 두고 장사를 할 때 저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마루 앞 큰 유리문을 깨어버렸다. 유리문이 박살이 날 때 아이들은 얼마나 놀라고 긴장 했을까? 당시 아홉 살 일곱 살 네 살 쌍둥이 아이들이 벌벌 떨며 하루 종일 엄마에게 혼이 날 것을 겁먹고 있었다.
어둠이 물들면 아이들이 배가 고파 밥부터 먹여야 하니 반찬 챙기며 아이들을 씻겨야 하고 정신이 없다. 유리가 박살이 났는데 파편 조각 속에 어떻게 아이들이 무사 할 수 있었을까, 순간 화가 불쑥 났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고맙고 아무 탈 없이 잘 자라 주어서 감사할 뿐이다. 때로는 물건을 팔다 보면 저녁 시간이 좀 늦어질 때도 많이 있다. 무거운 옷 봇짐을 이고 걸음을 재촉하여 집에 오면 난장을 쳐놓은 집에 막내 쌍둥이는 자고 있다.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된 채 밥도 먹지 않고 자면 속에서 돌 같은 것이 올라온다. 아이를 깨워 옷을 버겨 씻기고 잠을 깨워 밥을 먹인다.
지하철에서 본 여인을 보던 순간 지난 날 내 모습이 눈앞에 나타 난다.
새벽 첫 지하철은 안은 모두가 힘든 인력들이다. 남자들은 대체로 현장 노동자들이 많고 여성들은 그의 중노인 들이다. 식당이나 자갈치에서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 또는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허름한 옷 차림에 눈을 감고 있다. 피로에 지친 사람들은 세상의 고민을 다 끌어안은 채 화난 얼굴 또는 우는 모습도 있다. 사람마다 얼굴에 이력서를 쓰 놓고 한 장씩 펼쳐 보는 사진 같다. 한낮에 지하철을 타면 노소 모두 눈썹이 꼭 같다. 문신한 눈썹이 좀 넓게 한 사람 짙은 사람 숯으로 그린 조각 같이 보이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보톡수를 맞았는지 퉁퉁 부운 얼굴이 마치 땅을 고르다가 그냥 밀쳐 놓은 텃밭처럼 울퉁불퉁 하다. 얼굴 맨 위에 위치한 눈썹은 얼굴 전체를 대변해 주기도 한다. 눈썹은 종교와 같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이 떠 오른다. 눈코 입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눈썹은 하는 일이 없다. 그러나 얼굴의 위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기에 제자리에 없으면 얼굴 구실을 할 수가 없다. 문신을 잘 하면 보기가 좋은데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문신을 보면 얼굴 따로 눈썹 따로 마치 인조 인간 같이 보이는 사람도 있다.
시골 노인들도 머리는 하얗고 검은 얼굴에 굵은 주름이 졌는데 눈썹만 새까맣게 문신을 하고 있다. 부모님으로 물러 받은 본 모습은 간곳이 없고 허울을 벗겨내고 가면을 쓰고 다니는 로봇 인간들을 보는 느낌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20대 까지는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얼굴이며 40대는 본인이 만드는 얼굴이라고 한다. 60대를 보면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는지 얼굴이 이력서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삶의 얼굴이 역사를 만들어 가기 때문일 것이다.
좀 못나고 잘생기지 않아도 성실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푸른 나무처럼 당당하며 빛이 난다. 거짓 없는 자신감은 인생의 참 맛을 실현 한 사람일 것이다.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은 희긋희긋한 머리카락이며 넓은 상판 주름진 곳에 덤성 덤성 검버섯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초롱하던 눈빛은 어디로 갔는지, 축 늘어진 눈언저리가 영락없는 노파다.
젊었을 때 무엇이든지 잘 먹어 뚱뚱한 내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곁에 고향 친구들은 누구 덕택에 명문 여고를 다니며 예쁜 얼굴에 날씬한 몸매까지 부러움 그 자체였다. 어른들은 늘 부잣집 맏며느리 감이며 큰 살림 살 사람이라고 부추기던 말도 귀에 거슬렸다. 가는 세월 속에 인생 고개에 서보니 뭇사람들의 유혹을 받던 친구들도 물기가 빠져 허축한 몸매며 휘어진 다리 주름진 얼굴이 노인일 뿐이다.
제 아무리 양귀비도 세월 앞에 이기는 장사가 없는가 보다. 남은 인생 욕심을 내려놓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살기를 기원하다.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그 날까지 가면을 벗고 상대를 편하게 웃는 얼굴로 만들어 사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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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가야대로 284번길 12 주례럭키 아파트 10동 1006호 김윤선 입니다.
현제 한국어 강사로 복지원에서 문예작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