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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송림
 
 
 
카페 게시글
★여행작가두산거사방-(찰라의 섬진강일기 후편) 스크랩 섬진강 일기 구례구역에 내리면 누군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다①
challa 추천 0 조회 185 10.08.27 12:36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구례구역에 내리면

누군가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다

 

 

▲구례구역 

 

 

구례구역에서 기차를 타다

 

구례구역에 내리면

누군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다

사람만이 아니다

 

아침 8시 31분, 구례구역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오늘은 네팔 트리뷰반 대학 밀란 석가 교수의 전시회 초대를 받아 서울에 가는 날이다. 구례 섬진강변 산골 마릉에 내려와 살다보니 서울에 올라간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히말라야의 귀한 화가 밀란 교수를 초청하여 전시회를 여는 이근후 선생님(가족아카데미아 이사장)께서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도 있고, 또한 밀란 교수의 가네시 전을 꼭 관람을 하고 싶기도 하여 아내와 함께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기로 했다.

 

밀란 교수는 석가족의 후예로 힌두 신 가네시에 대한 세계적인 연구자이며, 네팔 트리뷰반 대학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불교학 교수 겸 화가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부인은 샌드 만다라(Sand Mandala)를 제작 시연하는 전문가이다. 밀란 교수는 세종문화회관 광화랑에서 8월 11일부터 가네시에 대한 그림만 개인전을 17일까지 전시를 하고 부인과 함께 만다라 제작시연, 고려사이보대학 초청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여간 우리는 밀란 교수의 가네시 전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사를 하고나서 한 달에 한번 아니면 두 달에 한 번 서울에 다녀오기는 하였지만 이제 자동차를 몰고 서울에 가는 것이 더럭 겁이 난다. 그 동안에는 이런 저런 이삿짐을 옮겨 오느라 부득이 자동차를 몰고 갔지만 이번에는 아예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승용차를 몰고 가면 피곤하기도 하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기름 값이며, 통행료를 합하면 최소한 15만 원은 넘게 들어간다. 그러나 기차를 타고 가면 낮잠도 잘 수 있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어간다. 그래서 앞으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서울에 갈 때에는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신호등이 없는 녹색 길

  

 ▲신호등이 없는 녹색의 길

 

▲사방이 푸르러 눈이 저절로 좋아진다 

 

배낭에 기차에서 먹을 간식거리와 읽을 책을 챙겨들고 우리는 아침 8시 31분에 출발하는 새마을호를 타기 위해 구례구역으로 갔다. 구례구역까지는 자동차를 몰고 갔다. 간전면 수평리에서 구례구역까지는 15km 정도 되는 데, 가는 길 내내 신호등 하나 없다.

 

순천으로 이어지는 865번 도로를 타다가 간전면 사무소가 있는 마을에서 좌회전을 하면 861번 도로로 이어진다. 이 길 오른 쪽에는 섬진강이 은은하게 흘러내린다. 양편에 벚나무터널을 이루고, 왼쪽에는 계족산, 오른쪽에는 지리산을 끼고 그 사이에 섬진강이 오선지처럼 흐르고 있다. 상쾌하기 그지없다.

 

"아빠, 이 파란 색만 보아도 속이 시원하고 눈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지금은 유럽에 스케치여행을 떠나있는 둘째 경이가 댕기러왔다가 이 길을 따라 구례구역으로 기차를 타러가며 한 말이다. 경이의 말처럼 매일 파란색만 보며 지내여서인지 아침에 일어나도 눈에 눈곱이 별로 끼지않고, 방과 거실을 걸레로 닦내도 먼지가 별로 없다. 구례구역까지 논스톱으로 이어지는 길, 자동차는 마치 오선지에 악보를 그리듯 천천히 달렸건만, 20분도 채 안되어서 구례구역에 도착한다.

 

“세상에 이런 곳을 두고 왜 지금까지 서울에서만 살았을까요?”

“그게… 글쎄, 삶이란 다 때와 시절인연이 있는 아니겠소? 이제야 섬진강에 살아갈 시절이연이 우리에게 닿은 거겠지.”

 

섬진강변에 펼쳐지는 풍경을 신통방통한 듯 바라보던 아내는 왜 이제야 우리가 섬진강으로 이사를 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삶이란 먹고 사는 벌이가 있어야 하고, 가고 싶은 곳도 시절인연이 닿아야 하는 모양이다. 그 동안 먹고 사는 벌이를 위해서 서울에서 살아가야 하기도 했지만, 섬진강과의 시절인연도 이제야 닿은 것이 아니겠는가.

 

 ▲예절이 바른 고을 구례로 들어가는 입구인 구례구역

 

▲역사에 열리고 있는 지리산 사진전시회

  

▲돈을 받지않는 널널한 구례구역 주차장이 여유롭다

 

추억의 기차역에서

 

구례읍 쪽에서 섬진강을 지나면 바로 구례구역(求禮口驛)이다. 예절이 마른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을 가진 구례구역은 놀랍게도 순천시에 속한다. 구례구역을 보는 순간 아지랑이 같은 향수가 피어오른다. 섬진강변을 따라 온 철길, 기다림과 그리움이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이다.

 

"아주 널널한 주차장이군요."

"그러게 말이요."

 

한적하고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역 안으로 들어가는데 평행선을 긋는 철길이 끝 간 데 없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서울과 여수로 가는 길, 아니 북한을 통해 몽골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으로 이어지는 철길이 아닌가.

 

구례구역 안에는 지리산을 주제로 한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젤에 받쳐진 사진들이 자연스럽게 갤러리를 연출하고 있었다. 지리산 등산을 다녀온 사람들과 보따리를 짊어진 구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기 시작했다. 역사 안은 에어컨디션을 가동하여 시원했다.

 

시차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제 시골역도 문명의 이기인 엘리베이터가 들어서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곳마다 설치가 되어 있었다.

 

여수에서 출발한 새마을호는 8시 31분 정각에 도착했다. "4호차 좌석번호 39~40", 지정좌석을 찾아가 자리를 잡으니 공간이 넓었다. 오히려 KTX보다 쾌적한 공간에 의자도 편했다. 

 

 ▲서울가는 새마을호를 기다리고 있는 한적한 구례구역

 

▲구례구역에 도착하는 새마을호 

 

 

 ▲새마을호 좌석이 KTX보다 넓고 편하다

 

"48년 전 석탄을 때는 완행열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왔던 생각이 나요. 한 친구가 차멀미를 심하게 하여 목포에서부터 난간의 발판에 쪼그리고 앉아 구례구역까지 왔었는데…… 그 때 구례구역은 아주 작은 간이역이었어요."

"저런!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럼 그때부터 구례와 인연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지도 모르지요"

 

아내는 과거를 회상하듯 눈을 갸름하게 뜨고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아버님이 고등학교에 가는 것을 포기하라고 하며 대신 수학여행을 보내 주었다고 한다. 장녀인 아내는 밑으로 남자동생들이 셋이나 있어서 남아선호 사상이 뚜렷한 그 당시 아들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니 여자인 아내는 중학교만 졸업을 하는 것으로 만족을 하라는 것이었다는 것.

 

이야기를 하는 동안 기차는 섬진강을 오른쪽에 끼고 달려갔다. 낮은 구름이 산허리에 걸려있고, 푸른 들과 초록이 우거진 나무들이 차창으로 지나갔다. 나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제3의 삶을 살아고있는 아내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가 아닌 마치 다른 나라나 어느 혹성으로 떠나는 여행 길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생명이란 꿈과 같고, 환상과 같으며,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번개처럼  아주 짧은 것 같으면서도 또 이렇게 질긴 것이다. 그러니 찰나는 영원한 것이며, 영원한 시간도 또한 찰나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아내를 육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아오게 되었다. 아내의 육신은 다른 사람의 장기가 들어가서 아내의 생명을 살리고 있다. 그러나 마음은 그대로이다. 마음과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육체란 허망한 것이고, 마음은 영원한 것이라면, 마음과 육체가 합한 영혼은 이 둘의 업에 따라 윤회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본인의 마음과 육체가 스스로 지은대로 현재와 미래에 과보를 받는 다는 것이다. 

 

문득 '상(相)을 취하지말고, 여여부동(如如不動)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는 시비를 하지말고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라는 것이며, 아?에 출입함이 없고, 어디에 향하거나 흔들림이 없어 일체 모든 것에 평등하다는 말이다. 놀라지않고 진솔하며, 바른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생사에 걸림이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인데, 사바세계를 상아가는 중생의 중생살이가 어찌 그렇게만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곡성역에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엇! 망상을 멈추자. 기차는 곡성역에 도착했다. 곡성역은 '추억의 기차'로 뜨는 역이다. 요즈음은 '철로 위를 달리는 철로자전거'를 타러 연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곡성역 가까이 가니 철로자전거를 타는 연인들이 줄지어 철길을 달리고 있었다.

-하편에 계속-

 

(2010.8.12 구례구역에서 서울로 가는 새마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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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8.28 08:50

    첫댓글 하얀 눈이 펑펑 내리던 구례구역에서 어두어 가는 하동쪽 하늘을 멍하니 바라만 보던 그 날, 57년전의 애띤 소녀의 추억이었지요 그 곳은...
    [1]'토지면'까지만 간다는 어느 할아버지의 달구지를 얻어타고 가는데 갑자기 세명의 고등학생이 함께 타고 갔습니다 전주 성심여고생 한명, 전주고교 남학생 한명, 저와 셋이서 40여리 길을 한마디도 아니하고 서로 등을 대고 걸터 앉아서 ,할아버지의 묻는 말씀에 대답으로 서로의 신분이 살그머니 조금씩 밝혀지던 날...참 재미있는 추억입니다...(계속)

  • 10.08.28 11:07

    [2] 할아버지曰/" 비슷한 동갑들 같구마이~" 셋이다 아무 대답이 없이...묵묵부답,"광주서 오는 버스를 기다린게야?~ 두어시간 있어야 올것이여~" 나는 광주출발 대구?행 기차를 타고가면 중간지점 하동에서 내리면 되었었다~함께 전주성심여고생도 도착지가 하동이어서 동행자임에 반가웠다....전고생도 역시 마찬가지엿겠지만, 가까운 토지까지 간다고 날씨가 좋으면 걸을 생각이었다 한다....(그 당시 3~40 리정도는 으례히 걸어가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 거리를 도보로 매일 통학하는 산간지방 학생들도 많았으니까...)

  • 10.08.28 11:13

    [3] '~총각은 토지 어디께여?~"~ 예~(? 지명이 기억안남)인데요"~아~王씨댁 ()()이구만~ " 모두가 겨울방학이라 고향에 오는 일이란다 나는 크지 않은 종이꾸러미- 중앙일보 신문을 구례구역 사무실에서 받아오는 길이었다..근무하던 신기자님이 집안일로 결근중이라 대신 방학중에 아르바이트 겸 다녀온 길이었다...성심여고생은 하동금융조합에 근무하는 형부 큰언니댁에 놀러간다한다. 새로 태어난 조카 옷을 사가지고서...그 때 부터 두 여학생은 이야기를 소통하며 어깨를 나란히 다가앉았다 .하지만 나의 용무는 그들에게 심부름이라고만 말했다 (계속)

  • 작성자 10.08.28 10:28

    동심에 젖어든 추억의 걸음길이었군요. 달구지 얻어타고 가던 시골길의 정취가 상상이 됩니다. 꿈 많은 오영희 소녀가 신문을 받아들고 걸어오든 그 길은 참으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바로 어제의 일입니다~

  • 10.08.28 12:34

    하하~ 어느새 챨라님, 답글로 오셨네요~[9] 그 이후 보름쯤 지났을까~ 다시 구례구역에서 버스를 탔는데, (전인순 전주행 배웅으로 함께 왔던날,)한번 동행했던 그 王家生이 뒤 따라 버스에 오르더니 내가 앉은 자리 앞에 코트를 벗고 구루곤색 말끔한 교복에 인물은 허연 학생이 버티고 서서 토지까지 오게 되었지요 깜짝 놀라서 ~ 말없이 창밖을 보며 오던 중 토지마을 앞에서 내린 그는 창문을 똑똑 두드리더니 한쪽 눈을 찡끗하고 길을 내려가데요 어이없어서 '멀쩡하니, 불량학생이구나' 생각했던일...요즘 홍콩배우 주윤발?같이~우째 여지껏 기억하고 있는지???ㅎㅎㅎ(終)

  • 10.08.28 11:11

    '구례구역, 구례구역에 내리면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것만 같다'...어느 시인이 말한 유명한 시구인것 같으네요...
    영혼을 믿으며 인연있는 구례땅에서 살게 된 새로운 시절인연도 아름답습니다 두 분~!

  • 10.08.28 12:25

    [4] 전인순은 겨울 교복에 하얀 성심여고 카라가 인상적인 단정한 모습으로 학구적인듯 말없이 영어책을 읽고 있었다
    王家生은 제법 콧노래를 흥얼대기도 하고...눈은 더 세차게 내린다 나는 반 코트를 입고있어서 모직 사각마후라를 벗어 전인순머리에 둘러주었다 그는 사양하지는 않고 미소지으며 고맙다고 한 모습이 참 솔직하고 정갈한 성품같았다 우리는 지리산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앉아서 어깨를 나란히 귓속말처럼 대강의 소개를 나누었다 내년 高 3 이 되기전 까지 열심히 펜팔을 하자고 약속도 했다 피아골 검문소가 다가오니 할아버지는 두 처자를 화개장터 까지라도 데려다 주신다 하여 둘이서 합창하듯 고맙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 10.08.28 11:35

    [5] 조금전 토지마을 앞에서 왕가생은 내리며 꿉벅 절하고 한 손을 높이 흔들며 들판을 향해 걸어간다 둘이서 갑자기 웃음이 툭 터졌다 우리보고 '빠이' 하는것 같아 '용기도 좋으네~'하면서...어느새 화개장터에 도착, 되돌아가시는 할아버지께 막걸리드시라고 차비겸 드린 돈을 끝내 아니받으셔서 지금도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남아 그 옛날의 어른들의 아름다운 선심을 잊지않는다 인심 좋은 남도지방의 훈훈한 우리들 살아온 이야기는 삭막한 현실에 단비처럼 내리는 교훈이기도 하다

  • 10.08.28 12:28

    [6] 광주서 오는 버스를 기다리며 화개장터에서 부터 하동까지 나눈 우리들의 이야기 속에는 앞날에 대한 부푼 꿈과 이상을 쏟아내고 허물없이 읽은 책 이야기로 웃기도 했다 열일곱 처녀들은 쉽게 마음을 열고 친해져서, 우산을 들고 마중나온 그의 언니가 나까지 집에다 데려다 주셨다 우리는 약속한 날이 오면 단팥집에서 몇차례를 만나고 송림에서도 노래부르고
    즐거워했다 그가 떠난다는 보름 후에 나도 배웅해 주러 구례구역엘 버스를 타고 함께 갔을 정도로 친해버렸다

  • 10.08.28 12:24

    [7] 겨울뱡학이 끝나고 3학년 졸업반이 되어서도 5월 까지 목련꽃 진달래꽃 빛, 아카시아꽃 향기, 이야기로 다정한 편지가 오고가며 펜팔이 계속되었는데 그의 편지에는 늘 섬진강 이야기와 송림 백사장 추억을 간단한 시처럼 적어서 보내주었다 가을이 들면서 어느쪽에선가 소식이 두절되고 우리들 진학의 시기가 오고... 그 언니댁 형부는 타지로 전근을 가셔서 더욱 소식을 전할길이 없어졌다 주소는 각자가 학교로만 했었으니까...세월이 수없이 흘렀건만 그 겨울의 눈내린날 달구지에서 맺어진 순수한 인연을 잊을 수없는데..누군가가 구례구역 이야기만 꺼내면 소낙비처럼 이 사연이 들추어나와진다...

  • 10.08.28 12:21

    [8]몇십년 동안 서울에서 고향을 찾아 올적엔, 전주 남원 구례를 지나오는데 토지면을, 피아골을 통과할때엔 생각이나는 추억이다 어디에선가 전인순은 고결한 삶을 살아 왔을 것이고 이상대로 꿈을 실현한 그는 어느 강단의 교수님으로 은퇴를 했을것이라고 믿는다 나만 짝사랑한 세월이었을까....아름다운 친구가 있음은 생애에 기쁜 축복이란걸 오늘도 간절히 그리워하며 감사한다 혹시 그대여~ 성스런 수녀님으로 생애를 살고 있는지도? 정말 궁금하구만...보고싶다 전인순!

  • 10.08.29 22:56

    전주 성심여고는 카톨릭재단에서 설립한 학교여서 졸업생들이 제법 수녀로 일생을 봉직하는 선배들도 많다고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들의 길을 갔음직 하기도 하고...

  • 작성자 10.08.28 16:12

    전인순님이 어디선가 이글을 읽고 불쑥 나타날것만 같군요 ㅎㅎ

  • 10.08.30 00:47

    제목도좋고 글도 아주좋습니다
    섬호정 선생님의 전인순님 이야기도
    제목 만큼이나 좋습니다
    참 좋은글을 읽었습니다.

  • 10.08.31 08:27

    소설 토지를 읽고 경남이나 전라도 쪽은 일가 친척이 전무인 저는 미국땅에서
    오로지 하동과 섬진강 평사리를 찾아 소낙비가 억수로 솥아진 날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비를 맞고 다녀온일이 있습니다.

    지금 도 찰라님이 올리신 이 아름다운 구례때문에 저는 요즘 어서 한국에 나갈일만
    생각하고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요즘은 전국 방방곳곳이 관광지군요.
    참으로 깨끗하고 무엇이나 광활한 미국에서는 꿈도 못 꿀 우리나라 옥토입니다.
    잘보고갑니다 .

  • 10.10.21 19:17

    박꽃님을 떠올리며 성당에서 미사 올리는 맑은 피부의 단아하던 전인순 옛 친구를 그립게 연상합니다 보고싶은 박꽃님!!! 친구와의 가을 여행에서 하마 돌아오셨는지요? 유타주의 가을 하늘빛은 여전히 청명하겠지요...지금쯤 손녀의 귀여운 재롱이 엄청 활발해 졌을터인데...쏘피아 할머니는 어느여행지에서 무얼 하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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