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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
(0.1km) |
매표소 |
(2.4km) |
노고단산장 |
(2.7km) |
피아골3거리 |
(0.5km) |
(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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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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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0) |
↔ |
(0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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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걸령샘터 |
(1.3km) |
반야봉3거리 |
(1.0km) |
삼도봉 |
(1.0km) |
뱀사골산장 (화개재) |
(1.0km) |
(08:35) |
↔ |
(09:20) |
↔ |
(09:40) |
↔ |
(10:0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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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봉 |
(3.0km) |
연하천산장 |
(점심) |
연하천 |
(2.1km) |
형제봉 |
(1.5km) |
(10:55) |
↔ |
(12:35) |
↔ |
(1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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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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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령산장 |
(2.4km) |
평덕봉 |
(1.9km) |
칠선봉 |
(1.4km) |
영신봉 |
(0.6km) |
(15:15) |
↔ |
(16:25) |
↔ |
(17:40) |
↔ |
(1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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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산장 |
(비박) |
세석산장 |
(0.7km) |
촛대봉 |
(일출) |
촛대봉 |
(1.9km) |
(18:40) |
↔ |
(05:00) |
↔ |
(0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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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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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봉 |
(0.8km) |
장터목산장 |
(급수) |
장터목 |
(0.6km) |
제석봉 |
(0.6km) |
(06:55) |
↔ |
(07:15) |
↔ |
(07:40) |
↔ |
(0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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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문 |
(0.5km) |
천왕봉 |
(1.7km) |
장터목산장 |
(아침) |
장터목산장 |
(1.5km) |
(08:10) |
↔ |
(08:30) |
↔ |
(09:30) |
↔ |
(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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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바위 |
(1.3km) |
소지봉 |
(0.4km) |
참샘 |
(2.6km) |
백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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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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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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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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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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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산행동기
언젠가는 한번 해보리라는 지리산 종주... 드디어 성공했다.
광주백암산악회의 회원으로 21명의 대열에 끼어 들뜬 마음으로 출발하여
다음날 종주를 끝냈을 때의 기분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7월의 무더위 속에서 하루 12시간이 넘는 산행으로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치고
세석산장 밖에서 비닐과 침낭으로 노숙하였지만 종주를 끝내고 난 후의 기쁨을
그 어디에다 비기랴.....
종주후 산 밑에서 마시는 막걸리 한잔....
대장정을 마쳤다는 대견함에 술술 넘어간다.
한 많은 우리삶이 고스란히 묻혀있는 지리산....
이 시대 그곳에 가면 세파의 힘겨움을 이기려 몸부림치는 나와 우리의 초상이 있다.
세상만사에 힘들고 지친 자들이여, 지리산 종주를 해보자.
그러면 훨씬 힘이 솟구쳐 오를 것이다.
지리산은 백두대간의 남쪽 끝자락에서 훨훨 일어난 거대한 산괴이다.
서쪽으로는 전남 구례군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전북 남원시에 접하며,
동북쪽으로 경남 함양군과 산청군, 동남쪽으로는 경남 하동군에 접하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대의 단일 산악지대이다.
지리산에서 발원한 물이 덕천강과 엄천강, 횡천강을 이루고,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20여개, 재가 15곳에 이른다.
또, 지리산에서 솟는 샘과 이름을 갖고 있는 전망대, 바위의 숫자만도 각각
50여 개, 마야고와 반야도사, 호야와 연진 등의 설화에 이상향과 신선의
전설을 안고 있는 지리산...
천왕봉 일출, 반야봉 낙조, 세석의 철쭉, 벽소령 달밤, 피아골 단풍,
노고단 운해, 연하봉 설경, 불일폭포, 칠선계곡, 섬진강의 맑은 물로
대표되는 지리산10경을 들먹이지 않고도,
한때 지리산에 350여 군데나 절과 암자가 있었다는 기록, 지리산은
그 자체로서 이미 산으로 충분하다.
지리산은 아무 수식이 필요 없는 산이다.
반란의 산 - 지리산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빨치산과 반란군일 것이다.
1948년 여순사건 이후 한달이상 노고단의 외국인 별장촌은 반란군 김지회의 근거지였다.
반란군이 물러가고 난 후 국군 토벌대가 다시 들어와 이곳이 또다시 빨치산 거점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불태워 버렸다. 노고단고원이 황폐해진 직접적인 이유이다.
이 사건으로 현재까지 노고단 산장 서측에는 흉물스런 별장촌의 잔해가 남아있고, 외국인 별장촌은 노고단 남쪽 왕시루봉 기슭으로 옮겨져 다시 세워졌다.
6.25 이후 빨치산 잔당들은 또다시 지리산으로 모여들었고, 이는 국군 토벌대의 무차별 포격, 방화로 이어지고 만다. 피아골 산장터에서 한트럭분 이상의 인골(빨치산의 것으로 추정)이 나왔다는 사실은 얼마나 토벌작전이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에 불과하다. 1952년 빨치산 대몰살의 현장이었던 대성골, 거림골, 빗점골, 의신부락등은 잿더미가 되어 버렸고 오늘날까지도 대성골의 숨은 골짜기에서 인골이 종종 목격되곤 한다. 당시 빨치산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죄없는 양민이 국군 토벌대에 의해 학살되었던 것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역사로 남아있다.
□ 산행 :
06:05분, 성삼재 주차장 입구
새벽길을 따라 지리산 성삼재 주차장 입구에 내려 국에 말은 밥 한술로 아침을 대신했다.
모두가 씩씩한 모습이었고, 조를 이루어 짐을 재분배하여 배낭을 메었다.
배낭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려니 아찔하다.
06:20분, 성삼재 매표소 통과
주차장을 지나 매표소를 통과하여 잘 닦아진 임도를 따라 약 1.5km를 가니 화엄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화엄사에서 약 5.7km임)
앞으로 1km 정도를 지나면 노고단 산장에 도착한다.
07:00분(07:30분 출발), 노고단대피소(산장) 도착
가벼운 마음으로 성삼재를 출발하여 첫 도착지이자 지리산 종주의 시점인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였다.
노고단(1,507m)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의 3대 주봉으로 꼽힌다.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이며 북쪽으로 심원계곡을 남쪽으로 화엄사 계곡과 문수 계곡, 피아골 계곡에 물을 보태는 크나큰 봉우리다. 노고단 산자락의 끝에 천년 고찰 화엄사가 자리해 한층 위엄을 갖추었다.
노고단에 마치 호텔처럼 보이는 3층 벽돌건물의 호화산장이 들어선 것은 지리산의 본격적인 관광지 개발 서곡이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무장비 등산'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 점과 자동차를 타고 맨몸으로 노고단을 오르더라도 이 산장에 들르기만 하면 산상생활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게끔 한 것도 큰 의미를 갖는다.
이 산장의 건립이 천은사~반선의 서부 지리산 종단 관광도로 개설과 연계되어 이루어 진 것도 그 때문이다.
노고단산장은 건평 115평의 본관 외에도 취사장 화장실 등의 부속시설과 5천여 평의 방대한 야영장을 갖추고 있다. 본관에는「노고단」,「반야봉」,「종석대」라고 명명된 2백명 수용의 대형객실 3개와 샤워실, 매점, 직원용 식당, 보일러실, 관리사무실이 들어 있다. 객실은 2층 침상으로 난방장치가 되어있는데다 침구도 제공된다.
이 산장의 객실에 들면 여관처럼 편안한 잠자리를 차지할 수 있고, 단체산행이든 가족단위이든 전화예약(☏ 061-782-8663)으로 만사 OK라고 한다.
노고단 산장을 지나 노고단(통제되어 문이 굳게 닫혀 있음)으로 길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후 본격적인 종주의 길(노고단 ~ 천왕봉, 25.5Km)에 올랐다.
약 30여분을 지체하다가 7시 30분에 출발하였다.
08:20분, 피아골 삼거리 통과
노고단을 출발하여 50여분이 지나 피아골 삼거리를 통과하였다. 아직까지는 모두가 씩씩한 모습들이다.
08:35분, 임걸령(해발 1,320m) 샘터 도착
출발한지 1시간이 조금 지났는데 더운 날씨에 온몸이 땀으로 가득하다.
모두들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물 한 모금씩 하는 모습이다.
임걸령은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3.2㎞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1,320m의 높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의 능선이 동남풍을 가려주어 산속깊이 자리한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이며 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맛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 이곳은 옛날에 의적이나 도적들의 은거지였던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의적 임걸(林傑)의 본거지였다 하여 임걸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샘터에서 피아골쪽 암벽 밑에 막(幕)터가 있는데 이곳을 '황(黃)호랑이 막터'라고 부른다.
옛날에 약초를 캐는 황장사가 눈 내리는 겨울밤 이곳에 천막을 치고 자다가 호랑이를 잡았다는 전설이 있다. 임걸령에서 반야봉을 향해 가파른 능선을 한동안 오르다보면 평지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면 약2㎞지점에 노루목 삼거리가 나온다.
09:20분, 반야봉삼거리(노루목) 도착
벌써 성삼재를 출발한 지 3시간이 지나고 노고단에서 4.5km 지점인 노루목에 도착했다.
노루목은 반야봉에서 내려지르는 산줄기가 산중턱에서 잠깐 멈추어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천연의 암두가 전망대를 이루고 있어 부르게 된 이름이다. 해발 1,500m의 노루목 암두에서 피아골을 내려보노라면 원시림속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여기에서 1km를 오르면 반야봉이다.
반야봉(般若峰)은 그 높이와 관계없이 지리산의 제2봉이며, 지리산을 상징하는 대표적 봉우리이다. 주봉(1,732m)과 중봉이 절묘하게 빚어낸 지리산의 대표적인 봉우리답게 노고단은 물론 멀리 천왕봉에서도 선명하게 조망돼 그 독특한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많이 한다. 그 누가 보아도 두 봉우리의 정다운 모습을 보면 금방 지리산 사진임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또한, 신비로운 낙조(落照)의 장관을 연출해 내는 지리산 8경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특히, 여름날 작열하던 태양이 지루한 하루를 보내고 저편 너머로 숨어들 무렵이면 반야의 하늘은 온통 진홍빛으로 물들어 보는 이들을 감동케 한다.
작년 9월에 여기를 올랐을 때는 힘이 덜 들었는데 여기까지 오는데 제법 힘이 벅차다.
잠시 휴식 후 다시 길을 재촉했다.
09:40분, 삼도봉(해발 1,550m) 도착
노고단을 떠나 5.5km 거리의 삼도봉(三道峯)에 도착했다. 벌써 출발 3시간이 훨씬 지났다.
모두 짐을 내리고 잠시 물로 목을 축이고 삼도봉의 푯말에서 사진을 찍는다.
지리산은 우선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전라북도라는 삼도의 큰 경계역할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다 경상남도의 산청군∙함양군∙하동군 등 3개군과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등 5개 시와 군, 그리고 15개 면의 행정단위로 그 구역을 구분짓고 있다.
그 광활한 지리산 자락은 또한 이들 3개 도, 5개 시·군, 15개 면단위에서 계곡과 산등성이를 기점으로 해 수많은 자연마을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듯 지리산의 역할은 경계로서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이러한 지리산의 특성을 단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산봉우리가 있다. 바로 경남과 전남∙북을 구분짓는 삼도봉이다.
반야봉 바로 아래 해발 1,550m로 지리산의 수많은 준봉 가운데 특이할만하게 눈에 띄는 봉우리는 아니다. 반야봉의 그늘에 가려 아주 이름없고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는 산세지만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기점이라는 데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경남은 삼도봉~불무장대~통족봉~촛대봉~섬진강으로 이어지는 불무장등능선을 경계로 해 전남과 구분되며, 전북과는 삼도봉~토끼봉~명선봉~삼각고지~영원령~삼정산을 연결하는 능선을 경계로 하고 있다.
전남과 전북 경계는 삼도봉~반야봉~도계삼거리~만목대~다름재 구간으로 이 경우는 능선으로 경계선을 만들다 계곡을 건너 다시 능선이 경계선이 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삼도를 나누는 삼도봉의 지명은 그동안 삼도봉이란 지명으로 불리지 못하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리산 일원에 이정표를 세우면서부터 삼도봉으로 명명됐다.
'낫날봉' '날라리봉' '늴리리봉'등 다양하게 불리던 이 봉우리가 삼도의 경계기점이라 해 '삼도봉'으로 명명되고 정착된 것은 매우 적절한 것 같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 낫날봉으로 불렸다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이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 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조금 천박한 느낌의 날라리봉 등보다 삼도의 경계기점이란 뜻의 삼도봉이 훨씬 어울린다.
10여분을 지체하다가 다시 길을 재촉했다.
10:05분, 화개재(해발 1,315m) 도착
삼도봉을 지나 1km를 지나니 옛 물물교역의 루트인 화개재가 나타난다.
여기에서 200여m를 내려가면 울창한 숲속 평지에 뱀사골산장과 야영장이 나온다.
1978년10월8일 '반야봉산장'이란 이름으로 조립식 철제건물에 지나지 않았던 뱀사골산장은 그 후 보수 개축하여 지금은 80여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149평방미터 면적의 아담한 건물로 변했다. 1989년 12월 개통된 뱀사골 산장의 전화번호는 (063)626-1732번이다.
반야봉의 큼직한 덩치 아래에 위치, 샘물이 풍부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10:55분, 토끼봉(해발 1,533m) 도착, 노고단에서 7.5km 지점
화개재에서 토끼봉으로 오르는 길은 점차 경사를 더해가는 매우 힘든 길이지만 울창한 구상나무, 전나무숲을 지나 관목지대가 펼쳐지는 정상에 오르면 전망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또, 4월말경이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진달래가 토끼봉 정상을 온통 붉게 물들여 진한 꽃내음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뒤돌아보면 듬직한 반야봉과 뒤쳐져 따라올 듯한 노고단이 훤하고 천왕봉, 세석, 명선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연봉의 위용도 가관이다.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가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다.
한편, 토끼봉은 정상초원에 지보초가 군생하고 있어 일명 '지보등'이라고도 불린다.
토끼봉 남쪽 능선길을 따라 20여 리 내려가면 칠불사(七佛寺)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 능선길은 가끔 하산시 지름길로 이용되기도 한다.
토끼봉에서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구상나무숲을 내려서면 갖가지 잡목숲을 지나 완만한 능선안부에 이르렀다가 고목나무가 쓰러져 나뒹구는 경사길을 오른다.
능선 평지길이 한동안 계속되다가 돌밭길을 서서히 오르면 총각샘 이정표 앞에 도착한다.
이제까지 오던 길은 울창한 수해를 이뤄 더없이 시원하고 청량감있는 행보가 이어진 길이었다.
총각샘은 이정표 남쪽 언덕 너머에 있으며 커다란 벼랑 밑에서 신기하게 샘이 솟아나는데 지난 1970년 7월경 지리산악회 사람들이 수소문 끝에 발견한 샘이다. 옛날 심마니 노총각이 처음 알고서 이용하던 샘이었다고 하는데 이 소문을 듣고 재차 발견한 샘이다.
재차 발견한 사람이 지리산악회 노총각 2명이었기 때문에 혹은 심마니 노총각에서 각기 유래돼 총각샘이라 이름 지었지만 명명할 때는 장터목의 산희(山姬)샘이 여성적이라서 이것과 대비시킨다는 뜻도 있었다고 한다. 총각샘은 갈수기에 말라버리는 게 흠이라 한다.
총각샘으로부터 경사도 있고 힘도 드는 길이 나온다.
12:35분, 연하천산장(해발 1,440m) 도착 (점심식사후 13:10분 출발)
총각샘을 지나 미끄러운 바위벼랑을 기듯이 오르면 차츰 완만해지다가 명선봉 부근의 울창한 침엽수림 지대를 지나면 내리막 흙길로 변하고 잘 만들어 놓은 나무계단을 따라 내리면 연하천산장에 이른다.
명선봉 능선길은 하늘을 가린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여 숲속에서는 낙엽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숲속 평지 연하천(烟霞泉)에 이르면 마치 요정들의 별천지에 온 듯하다
연하천산장에 도착하여 물도 채우고 인근 그늘에 모여 점심식사를 하였다.
지리산 주능선상의 명선봉(해발 1,462m) 바로 아래 자리한 연하천산장(☏ 063-625-1586)은 다른 산장들과 견주어 「첩첩산중의 고도」처럼 생각된다.
이 산장만이 바로 연결되는 하산 또는 등정 루트가 없기 때문이다.
연하천산장은 동쪽의 삼각봉이나 서쪽의 토끼봉을 거치는 등정 또는 하산 루트가 있다.
뱀사골입구인 반선에서 연하천산장에 닿으려면 뱀사골을 따라 화개재까지 12km를 오른 뒤 다시 주능선을 따라 토끼봉 면선 봉을 지나는 8km를 더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반선에서 이 산장까지 11km의 짧은 거리로 바로 오를 수 있는 직행루트가 숨겨져 있다. 이 코스의 열쇠는 뱀사골 지류에 은밀하게 자리하고 있는 와운마을이다. 이 마을은 뱀사골 입구의 와운교를 건너 편편한 오솔길 3km로 30분이면 닿게 된다.
와운마을 앞을 흐르는 계곡은 이 마을 동남쪽의 삼각봉과 면봉 사이에서 발원하여 면성봉 지맥을 감돌아 뱀사골에 합류한다. 뱀사골과 와운 지계곡 사이의 능선을 따라 연하천산장에 닿는 오솔길이 곧 직행루트이다.
여기에서 30여분의 휴식을 취하고 13:10분 다시 길을 재촉하였다.
15:15분, 벽소령산장 도착
무더위와 함께 점점 발길은 무거워지고, 선두와 후미와의 차이도 점점 벌어진다.
벽소령산장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고 물을 채우려고 음료대를 찾으니 60m 아래라는 푯말을 믿고 내려갔는데 별로 물도 좋지 않고 그 내리막길을 다시 오르는데 상당히 힘이 들었다. 물을 뜨러 가는데 후회를 했다.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5km에 달하는 지리산 종주 등반코스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고도가 가장 낮은 산령으로서 예로부터 화개골과 마천골을 연결하는 산령으로 유명하거니와 지금은 화개에서 마천까지 38km의 지리산 중앙부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횡단 도로다.
벽소령은 광대한 지리산 중심부의 허리처럼 잘룩한 고개로서 그 주위에 높고 푸른 산능들이 겹겹이 쌓여 유적한 산령을 이루고 있다.
벽소령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마치 자신이 신선이 된 양 착각을 하게 한다.
산이 낮고 구름이 주위를 뒤덮고 있어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벽소령에서 가장 뛰어난 볼거리라면 밤하늘의 달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옛부터 이곳을 벽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벽소령의 달은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다.
16:25분, 평덕봉(해발 1,522m) 도착
지리한 오름은 계속되고 무더위 속에 평덕봉에 이르렀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다.
누군가가 칠선봉이라는 말에 믿었는데.....
17:40분, 칠선봉(해발 1,558m) 도착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이제사 칠선봉이다.
아직도 오늘의 목적지인 세석산장까지는 2.1km가 남아있다.
18:30분, 영신봉(해발 1,651m) 도착
계속되는 오르막, 지리한 계단의 오르막....
드디어 오르막의 마지막인 영신봉에 도착하였다.
이제 내리막 600m 정도만 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세석산장에 도착한다.
18:40분, 세석산장 도착
아! 세석산장...
지친 몸을 이끌고 드디어 세석에 도착했다.
먼저 온 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세석산장은 신라 때 화랑도의 수련장으로 이용됐으나 6.25를 전후해서는 공산 빨치산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평화의 땅으로 말끔한 모습의 산장이 서 있다.
세석산장도 장터목산장과 함께 전화가 가설되었다.(055-973-1600)
세석고원의 철쭉꽃이 유별나게 많고 아름다운 데는 여진이란 여인의 슬픈 넋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있다.
먼 옛날 지리산에 가장 먼저 들어온 호야(乎也)라는 남자와 여진여인은 대성계곡에서 보금자리를 열었다. 그들은 씨족사회의 모든 간섭으로 벗어나 지리산의 대자연속에서 인간적인 자유를 찾은 것. 이 한쌍의 남녀는 산채와 산과를 따먹으며 원앙새처럼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둘 사이에 자녀가 없는 한가지 아쉬움이 따랐다.
어느날 남편이 없는 사이 검정곰이 나타나 여진에게 "세석평원에는 소원대로 아들딸을 낳게 해주는 음양수라는 신비의 샘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여진은 너무 기뻐 남편과 상의할 틈도 없이 단숨에 음양수 샘터로 찾아가 샘물을 실컷 마셨다. 그러나 곰과 사이가 좋지 못했던 호랑이가 곰과 여진이 주고받는 말을 엿듣고 지리산 신령님께 고해 바쳤다. 지리산 신령은 음양수의 신비를 인간에게 발설한 것에 크게 노하여 곰을 토굴 속에 감금 조처하였고, 그 사실을 알려준 호랑이를 백수의 왕으로 군림하도록 특별 배려를 했다. 또 음양수 샘물을 훔쳐 마신 여진여인에게는 무거운 벌을 내려 평생 잔돌밭에서 혼자 외로이 철쭉을 가꾸게 하였다.
그날부터 여진은 뜻하지 않았던 스스로의 불행한 운명을 저주하며 세석평원에서 날이면 날마다 손발이 닳도록 꽃밭을 가꾸어 철쭉은 무럭무럭 자라서 아름다운 꽃이 피고 지게 되었다. 여진의 애처로운 모습을 닮아 유별나게 청초하게 아름답고, 또 여진의 슬픈 넋이 꽃잎마다 서려있어 애련하게 피고 진다는 것이다. 또 여진여인은 밤마다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의 산신령을 향하여 죄를 빌다가 그대로 돌이 되었는데, 촛대봉의 앉은 바위가 바로 가련한 여진의 굳어진 모습이란 전설이다.
세석고원에선 지난 72년부터 매년 6월 첫째주 주말에 철쭉제를 열어왔다. 진주 산악회가 주최해 왔던 이 산상축제는 전국 산악인들의 큰 잔치로 자리를 잡았으나 철쭉밭의 훼손 등을 염려하여 88년까지 5년동안 중단을 했다. 이 기간에는 공식행사는 중단한 채 진주산악회원들만이 세석고원에 올라 산신제를 모셔 왔다.
철쭉제가 중단된 5년동안 철쭉밭이 거의 원상복구가 되었다. 89년6월3일 18회 철쭉제는 5년만에 부활시키고, 축제도 자연보호 경진대회로 성격을 바꾸어 '지리산 제모습 찾기'운동을 벌였다. 또 '미스 철쭉'선발대회를 열어 산아가씨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 철쭉제의 제문 낭독은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해가 저물어 오고 마지막 후미가 도착했을 때는 밤 8시가 다되어서였다.
한 사람의 부상자가 발생하여 지체된 것 같다.
저녁은 라면과 밥 등으로 때우고 술을 몇 잔 하고나니 거나하다.
지친 몸으로 비박을 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자갈밭에 침낭하나에 몸을 묻고 비닐로 감싸고 나니 한기는 가신 것 같다.
산상의 별빛 밤하늘은 한층 아름다워 보인다.
9시가 조금 넘어 모두가 지친 탓인지 잠자리에 들었다.
05:00분, 세석산장 출발
새벽 4시가 되니 기상하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짐을 꾸려 5시가 되어 촛대봉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어제 부상당한 한사람이 있는 조는 여기에서 백무동계곡을 따라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05:25분, 촛대봉 도착(05:45분 출발)
세석을 출발하여 700m 정도를 오르면 촛대봉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일출을 보고 출발하기로 하였다.
구름이 조금 끼어 있으나 그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촛대봉에서 보이는 세석의 묘미는 사뭇 대자연의 신비가 느껴지는 듯하다.
더욱이 6월의 촛대봉은 고산대 특유의 황량함이 감도는 곳으로 붉으스레한 철쭉꽃 봉오리들이 곧 철쭉의 향연임을 암시한다고 한다.
일명 세석골로도 구분되어져 불리는 골을 따라 시루봉, 촛대봉, 세석코스를 등반하는 묘미는 색다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촛대봉 ~ 시루봉 구간에서 보는 천왕봉의 웅장함과 발아래 도장골의 아름다움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06:55분, 연하봉(해발 1,730m) 도착
이른 아침이지만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 산행은 계속된다.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걷고 또 걷는다.
세석고원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은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어울러져 운무가 이 봉우리에 머물다가 바람처럼 흘러가곤 하여 이곳 에 앉아 있으면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천왕봉의 일출광경과 신비한 반야봉의 낙조를 영겁의 세월동안 간직한 채 대자연의 섭리를 알듯 말듯 인간에게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연하봉은 늘 그렇게 변함없이 지리산에 있다.
07:15분, 장터목산장 도착(출발 07:40)
연하봉에서 잠시 휴식 후 내리막길을 800여m 내려가니 장터목산장이다.
고천왕봉의 자매봉인 제석봉의 남쪽능선 고갯마루를 장터목(☏ 055-973-1750)이라 한다.장터목은 해발 1,653m로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사천주민과 북쪽의 마천주민등이 매년 봄가을에 이곳에 모여 장을 열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한 장터가 섰다는 것은 지리산에 기대하고 삶을 영위했던 옛사람들의 강렬한 생의 의지를 엿보게 해 준다.
이곳은 남쪽의 중산리에서 9km, 북쪽의 백무동 마을에서 9km의 거리이다. 덕산이나 인월에서 등짐을 지고 올랐던 사람들에게는 그 거리가 더욱 멀고 힘이 들었을 것이다.
길게 늘어선 행렬을 뒤이어 물을 받은 후 다시 정상으로 향하였다.
일행중 5명은 천왕봉 행을 포기한 상태였다.
07:55분, 제석봉(해발 1,806m) 도착
장터목에서 600m를 오르니 고사목 군락지인 제석봉이 나타났다.
장터목~천왕봉 1.7km 구간은 제석봉의 고사목지대와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 등의 경관이 특출하고 낭만적인 길이 이어져 있다. 제석봉은 높이가 1,806m로 지리산에서 중봉(1,875m) 다음 세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천왕봉은 동쪽에 중봉을, 서쪽에 제석봉을 나란히 거느리고 있다. 제석봉은 옛날 산신의 제단인 제석단이 있어 더한층 유명하다. 이 제단은 양지바른 곳에 자리했고 옆에는 맑고 시원한 물이 항시 콸콸 솟아나는 샘터가 있어 명당임을 알 수가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군락이다. 10만여평의 완만한 비탈에 고사목들이 서 있고 바닥은 풀밭일 뿐이다. 고사목 그 자체는 재난으로 생명을 중도에 마감한 나무들의 시체여서 살벌한 느낌을 갖게도 한다.
그러나 고사목들이 한두 그루도 아니요, 10만여 평에 걸쳐 듬성듬성 서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특이한 경관이 되고 있다.
이곳은 전나무 구상나무들의 고사목 군락지로 고사목 자체가 귀중한 자연경관이다.
고사목의 훼손금지는 물론 이곳에서 야영과 취사행위를 금지한다.
등산로 이외 지역의 출입도 금지한다.
그러나 이곳의 고사목들은 해마다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방화로 한번 죽었던 나무들이 또 다시 살해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곳의 고사목들은 해발 1,700m 이상의 높은 곳에서도 재질이 뛰어난 나무들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편 50년대의 지리산의 아픔을 40년째 침묵의 증언을 하고 있는 것에도 많은 뜻이 있다.
고사목들도 「살아있는 자연경관」으로 잘 보전이 되어야 할 것은 물론이다.
제석봉에서 고사목 사이로 서쪽을 바라보면 반야봉과 노고단이 선명히 떠올라 있는 모습이 일품이다.
오르는 길에 먼저 출발했던 일행은 하산중에 있었다.
08:10분, 통천문 도착
천왕봉 500m 전방인 통천문에 도착했다.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과 통한다는 마지막 관문인 통천문이다. 이 문은 예로부터 부정한 자는 출입을 못한다는 전설이 있다.
통천문은 노고단쪽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마지막 관문으로 「하늘을 오르는 문」다운 위엄을 갖고 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의 풍경화 같은 비경에 흠뻑 젖어 걷다 보면 눈앞을 가로막은 문이 바로 통천문이다.
통천문은 자체가 천연 암굴로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고는 지날 수 없다.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을 못한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지금은 철제사다리를 놓아 등반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통천문의 위용은 시인 고은의 말에서 절정을 이룬다.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서는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는 반드시 통천문을 통하지 않고는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 신선조차도 이 관문을 거쳐야 할 정도이니 우리 인간들은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왕봉은 동쪽으로 개천문(일명 개선문), 남서쪽으로는 통천문을 두어 이들 관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거쳐 들어오게 하고 있다. 이들 두 관문 이외에 천왕봉을 향하는 길목은 칠선계곡을 거쳐 마천에서 깎아지른 듯한 날카로운 비탈길과 멀리 대원사에서 치밭목∼중봉을 거쳐 오를 수 있는 험난한 두 길이 있으나 모두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듯 해야만 주봉에 닿을 수 있으니 천왕봉은 쉽게 등정을 허락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개천문은 법계사를 거쳐 정상으로 향하다 보면 나타나는데 원래 좌우로 두 개의 바위기둥이 서 있어 위용을 자랑 했는데 한쪽은 벼락을 맞아 없어졌다한다.
하늘을 여는 문이라 해 개천문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개천문은 그러나 통천문에 비해 위엄은 부족하다.
천왕봉은 이 처럼 두 관문을 두고 있을 정도로 위엄을 갖추고 있으나 이들 두 관문의 역할이 있기에 천왕봉은 더욱 신비함을 간직 할 수 있으리라 본다.
08:30분, 천왕봉 도착(출발 08:40)
드디어 꿈에 그리던 천왕봉에 올라 우리의 땅을 내려다보니 가슴이 벅차다.
지금까지의 힘들었던 모든 것을 잊고.......
바로 이 맛이야 !!!
아!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여, 천왕봉이여 !!!
한국인의 기상이 여기에서 발원된다는 지리산 천왕봉이여 !!!
지리의 천왕봉은 언제 찾아도 웅장한 모습을 달리 하고 있다.
때로는 어머니 가슴처럼 넉넉하고 아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짙은 운무에 돌풍이 몰아칠 때면 속인들의 분탕질에 분노하듯 준엄함을 보여준다. 천왕봉은 또한 구름바다 속을 헤치고 떠오르는 해돋이의 장관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대 자연의 위대한 섭리를 헤아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가 하면 화려한 석양 낙조를 연출해 삶의 이치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해발 1915m, 지리영봉의 제1봉인 천왕봉,
아래로 땅을 누르고 위로는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찾는 이를 알도록 한다.
거대한 바위를 예로부터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의미를 풀이해 천주라 불렀음인지 서쪽 암벽에 「천주」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남명선생이 일찍이 「萬古天王峰 天嗚猶不嗚」이라며 「하늘이 울어도 아니 우는 뫼」로 지리영봉의 장엄함을 찬탄했듯 그 위용은 아직도 변함없다.
천왕봉은 반야봉과 노고단 등 1백10여개의 우뚝 솟은 준봉을 거느리고 그 아래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하선경에 울창한 원시림과 골골마다 용솟음치듯 흐르는 물보라 등 태고의 숨결을 발아래 숨겨둔 채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행정구역상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이 경계를 이루는 천왕봉은 함양방면으로 칠선 계곡을 빚어내 물줄기를 토해내며 산청쪽으로는 통신골, 천왕골(상봉골)을 이뤄 중산리 계곡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들은 세갈래로 헤어졌다가 진양호에서 다시 한데 모여 남강을 거쳐 낙동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흐르면서 경남인의 젖줄이 된다.
운무에 휩싸인 채 말없이 억겁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천왕봉은 흐르는 물줄기를 통해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터전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이 아닐까 여겨진다.
천왕봉정상에는 현재 82년 여름 경상남도가 세운 1.5m높이의 표지석이 서있는데 전면에는「智異山 天王峰 1915m」, 후면에는「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새겨져 있다.
우리 민족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이곳 정상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지리산 신령을 봉안했던 성모사가 자리해 있었으나 속인들의 끊임없는 욕심으로 자취를 감추고 빈자리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성스러운 모습을 하며 인간을 자연으로 부르는 천왕봉은 나무도 제대로 자랄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한 바위들로 이뤄져 있으면서도 큰 바위 틈새에서 샘물을 빚어내고 있으니 자연의 오묘함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해주고 있다. 중산리에서 법계사를 거쳐 가다 보면 정상 바로 아래에 자리한 이 샘물은 천왕샘으로 불리고 있는데 명산을 찾는 등 반객들의 갈증을 한꺼번에 해소해 주기에 충분하다.
천왕봉은 정상의 신비함과 수려함을 만천하에 자랑하기라도 하듯 뭇 인간들을 보내지를 않는다.
천하제일경이라는 천왕일출과 석양낙조를 빚어내는 천왕봉은 3대에 걸쳐 적선을 하지 않은 이에게는 천지개벽을 연상케하는 일출광경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속설과 함께 반드시 관문을 거쳐 들어오도록 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10여분을 관망하다가 다시 내림의 길을 택하였다.
09:30분, 장터목산장 도착(출발 10:10)
오던 길을 지나 다시 장터목산장에 도착하였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5명이서 라면을 끓여 요기를 하였다.
이제 내림의 길만 남았다.
그러나 모두가 지쳐 있어서 내림의 길도 결코 수월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총 11명의 완전 종주자중 5명(남자 3명, 여자 2명)이 이제 마지막 내림의 길에 섰다.
10:55분, 망바위 도착
장터목에서 1.5km지점인 망바위에 도착하는데 무려 45분이 걸렸다.
이대로라면 결코 목표시간인 1시에 도착이 불가능할 것 같다.
여자 1명이 지쳐 계속 처지고 있다.
11:30분, 소지봉(해발 1,312m) 도착(출발 11:40)
앞으로도 3.0km를 더 가야 하는데 최후의 1인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는다.
10여분을 기다리다가 2명이 더 기다리기로 하고 나와 여자 1명은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목이 시큰거려오고 내림의 길이지만 더디기만 하다.
11:50분, 참샘(해발 1,125m) 도착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따라 10여분을 내려오니 참샘이 나타났다.
병에 물을 담고 목을 축이고 다시 출발하려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2.6km의 내리막이 더 남았는데.....
13:20분, 백무동 도착
지리한 내리막은 계속되고 이젠 한계상황에 온 기분이다.
하동바위를 지나 백무동야영장(해발 540m)을 거쳐 매표소에 도착하니 13:20분이다.
먼저 도착한 팀들은 주차장 옆 가게에 앉아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있다.
박수세례를 받으며 도착하여 막걸리 한잔을 들이키니 모든 피로가 가신 것 같다.
아... 이렇게 지리산 종주의 끝을 맺는가....
사나이 태어나서 지리산 종주 한번 꿈꾸어 보는 것이 어떤가...
첫댓글 동상 드디어 산사나이가 되었네 그려.... 축하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