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은 정토종의 기본적인 수행 방법이다.
중국의 동진시대에 여산 혜원이 동림사에서 백련결사를 세워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했다.
이들은 『반주삼매경』에 의지하여 수행하고 있었는데 ‘반주’란 마주 서 있다는 의미이다.
즉 “사문이나 속인이 어떤 장소에서나 서방 아미타불의 국토에 관해 듣게 되면 마땅히
그곳의 부처님을 생각하라.
계를 소홀히 하지 말 것이다. 일심으로 염원하길 하루 밤낮, 혹은 7주야를 경과한 뒤에는 아미타불을 뵙게 되리라.
깨어 있을 때 보이지 않으면 꿈속에서 이를 보게 되리라”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삼매 중에서 염불삼매가 최고라고 극찬하고 있다.
이래 동위 분주의 현중사 승려 담란이 보리유지의 영향을 받아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에
전념하여 서방정토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제창하게 된다.
담란은 다섯 가지 염불의 방법을 체계화시켰는데 그것을 5염문이라 부른다.
왕생을 위해 염불을 닦는 사람들이 행해야하는 실천인데 예배, 찬탄, 서원, 관찰, 회향 등이 그것이다.
수당 사이의 승려인 도작은 현중사에서 담란의 비문을 보고 감동하게 되며,
정토교에 귀의하고 사람들에게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도록 권유했다.
도작의 뒤를 이어 선도가 나와 장안에서 염불법을 홍포하게 되며 정토교의
교의와 의범을 완성하게 된다.
선도는 염불수행의 방법을 크게 정행과 잡행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정행에는 일심으로 아미타불의 명호에 전념하는 정정업과 예배와 독송을 하는
조업이 있다고 보았다.
잡행으로는 일체의 선행이 서방극락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수행의 하나라 간주했다.
뒤이어 등장한 가재는 심념(心念)과 구념(口念)을 제창하게 된다.
심념이란 마음으로 부처의 색신을 생각하는 것과 부처의 지혜를 생각하는 것으로
구분하는데 관상염불의 일종으로서 반주삼매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다.
구념은 부처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서 아직 수행자의 마음에 수행의 힘이 없고,
그래서 곧바로 부처의 색신을 생각할 수 없을 때나 장소에서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않게 가라앉히고 칭명염불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염불법은 장소나 시간을 불문하고 쉽게 행할 수 있었으며, 특정한 교리나 문자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동시에 자신을 범부라 전제하고 출발한다는 점에서 일상에 매여 살 수 밖에 없는
대중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며, 급기야 중국불교 전반의 흐름을 좌우할 정도로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
염불선이란
염불선이란 염불과 선종이 융합된 것을 말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의 입장에서 염불을 흡수한 것이다.
즉 염불삼매를 참선과 동일한 가치가 있는 수행법으로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화두를 들거나 좌선을 하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다는 전제가 내포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처음부터 염불선이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선종과 정토종의 염불이 각각 별도로 발전하다가 상호의 필요성에 의해 융합하게 되며,
그런 뒤에야 염불선이란 이름이 출현하게 된다.
선과 염불을 동일한 가치로 파악하기 시작한 것은 송나라 때이다.
이 시대의 명승인 영명연수선사는 『선정사료간』이라는 책을 저술한다.
그는 이 책에서 “선만 닦고 정토를 닦지 않으면 열사람 중에 아홉 명은 길을 잘못 들어 5음의 경계가 눈앞에 홀연히 나타나면 그것을 따라가고 만다.
선이 없이 정토만 닦아도 만인이 수행하여 정토에 들어갈 수 있고 아미타불을 만날 것인데 어찌 깨닫지 못할 것을 근심하랴. 선도 닦고 정토도 닦으면 머리에 뿔이 난 호랑이 같아
현세에서는 인간의 스승이 되고, 내생에는 부처나 조사가 될 것이다.
선도 닦지 않고 정토도 닦지 않으면 구리로 만든 침상에 있는 쇠기둥과 같은 것이요,
억겁 천생을 지나더라도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선사인 영명연수가 이상과 같은 주장을 하게 된 이면에는 참선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힘에만 의지하고 부처님의 가피력을 찾지 않기 때문에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그 피해가 막심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염불을 닦는 사람들은 진실한 믿음과 발원으로 제불보살을 염송하기 때문에
샛길로 빠질 염려도 없거니와 옳고 그름을 따질 생각조차 끊어진다고 보았다.
염불을 꾸준히 닦아 순수해지면 “온 마음이 부처이고, 온 부처가 마음이 되어, 마음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마음과 부처가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것을 유심정토론이라 말한다. 정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각자의 청정한 자성에 있다는 주장이다.
“일체의 현상과 본질은 모두 마음을 근본으로 삼고 있다. 즉 본체[理]는 진여관으로서
진실한 마음을 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현상[事]은 화가가 각종의 세상을 그리듯이
우리들의 인식으로 관찰하는 것[識觀]이요 연려심(緣慮心)으로 근본을 삼는다.
이 중에서 진실한 마음은 본체이고 심진여문이며, 연려심은 작용이고 심생멸문이다.
그러나 본체가 바로 작용이므로 작용은 본체를 벗어나지 않으며,
작용이 바로 본체이므로 본체는 작용을 벗어나지 않는다.
오직 일심뿐이며, 이 일심이 평등하면 법계가 평탄하고, 이 일심에 차이가 있으면
천차만별이 다투어 일어난다. 이 마음이 능히 부처가 될 수 있으며, 중생이 될 수도 있다.
이 마음은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
이 마음 이외에는 어떠한 존재도 없다. 이처럼 정토도 오직 마음이 드러난 것일 뿐이다”는
주장을 통해 선의 입장에서 정토를 수용하고 있다.
연수선사가 여기서 활용한 논리는 『대승기신론』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는 일원론적인 진리관에 입각하여 전 불교를 통합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만선동귀집』에서는 “불법은 바다와 같다. 모든 것을 포함한다. 궁극의 진리는 허공과 같아서 어느 문에서나 들어갈 수 있다”고 선언하게 된다.
이후 전개되는 염불선의 이론적 기초는 여기서 초석을 다지게 되며, 이것을 기반으로 각자의 개성과 사회의식에 따라 약간의 방법론적인 차이를 보이게 된다.
염불선이 등장한 이유
선이란 말을 초기불교시대에는 삼마타와 위빠사나로 구분했다. 한문으로는 지관(止觀)이라 말한다. 지에 해당하는 삼마타는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것 내지 번뇌 망상을 그치는 것이며, 관은 자신의 내면과 심리상태를 면밀하게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대승불교의 발달과 함께 대승 공관법으로 발전하게 된다. 불교의 중국 전래와 토착화, 그리고 남종선의 발전은 깨달음을 얻는 최고의 수단으로 지관법을 활용하게 된다. 문제는 깨달음의 당체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느냐 하는 접근방법과 인식의 문제였다. 이러한 점에 대한 시각적 차이는 평이하고 접근이 용이했던 수행법을 점차 전문화 내지는 관념화시켜 일반인들의 접근을 불허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당송 이후 유심론적 관념화 내지는 사상적 경직성은 선종의 사회성을 탈각시켰으며, 이로 인해 대중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선종의 부파화 혹은 선종의 철학화라 말할 수 있는 사상적인 경직은 수행자 자신들까지 수행의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희미하게 만들었으며, 수행의 본질을 왜곡하는 현상까지 노정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연명연수와 같이 선과 정토를 융합하여 상실된 대중성을 회복함과 동시에 수행의 목적과 의의를 명확하게 하려는 선승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영명연수 이후 많은 선승들이 선과 정토사상의 융합을 지지하게 된다. 소위 염불선의 주창자들이 줄을 잇게 된다. 송대에 『임간록』을 저술한 운문종의 불일계숭, 같은 운문종의 선승이자 『권수정토설』의 저자인 천의의회가 있다. 이외에도 원통법수와 조원종본 등이 선정일치를 주장하게 된다. 이후 염불선은 선종의 역사에서 점차 비중 있는 실천법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근대에도 중국 계몽주의 불교운동의 선각자 중 한 사람인 인광대사, 중국 선종의 중흥조로 추앙받고 있는 허운화상 등이 공통적으로 염불선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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