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대동 안막마을 맛 표류기
대동할매국수. '할매국수'와 '대동'은 이렇게 붙어서 하나의 고유명사가 돼 버렸다. 대동을 말할 때 국수를 뺄 수는 없다. 그러나 대동에 할매국수만 있을 뿐이랴. 이번 주에는 경남 김해시 대동을 찾았다. 가서 보니 강 보고 맛 보는 재미가 있다. 유유히 흐르는 강의 주변에는 화려한 구경거리가 없었지만 '역사는 흐른다'는 대하(大河)의 정서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것을 천천히 느끼리라. 제방 너머 강에는 화명동과 대동면을 잇는 현수교 모양의 다리가 놓이고 있었다.
·옛 안막장 일대의 맛집들
지난 9일, 조금 헤맸다. 이름이 특이하다 싶은 '조눌(鳥訥)마을'도 지나고, 비닐하우스 단지도 나타난다. 저 앞으로는 양산으로 이어지는 551번 고속국도가 보인다. 뭔가 이상하다. '일미돌곱창' 집에 전화를 해 보니 너무 올라갔단다. "안막마을로 오면 돼요." 대동할매국수 집을 찾아 들어가는 그 마을의 입구다. 안막마을? 1920년대에 낙동강변을 농지로 개척할 때 기러기를 쫓는 '기우막'이 여러 곳에 있었는데 기러기 '안(雁)' 자를 넣어 '안막'으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 마을 이름이 됐다. 1980년까지 이곳에 5일장인 안막장도 있었다.
'일미돌곱창' 집에 들어가니 웬 평일 점심시간에 이렇게 사람이 많나 싶다. 이 동네에서 꽤 소문이 난 집인 것이다. 이 집을 소개해 준 이는 대동면에서 26년을 살았던 신진(동아대 교수) 시인이다. "사람 좋고 음식솜씨 좋다고 이웃들이 알아주는 집입니다. 대동면 사람들은 음식 '짭질맞다'고 소문난 이 집에서 20년간 곱창요리 오리요리 등을 먹습니다."
·"음식은 마음을 먹는 일"
2년 전 삼랑진으로 이사간 신 시인을 애써 청했다. 그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는 "이 집 주인 부부는 참 사람이 좋다. 그러면 맛 이야기는 다 하질 않았느냐"고 했다. 그랬다. '일미돌곱창' 집의 주인 이용준(54)씨의 마음씨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부산대 59학번이라는 이 마을 박신길(69)씨는 이씨를 '동생'이라 칭하면서 "동생은 열심히 노력하고 인정이 깊어 이제 대동 사람이 다 됐다"고 했다.
이씨는 식당의 상에 오르는 갖은 채소 농사뿐 아니라 벼농사, 복분자 농사를 꽤 규모 있게 짓고 있었다. 내친김에 둘러본 복분자 비닐하우스는 그의 땀과 정성이 탱글탱글한 복분자 알이 되어 영글어 있었다. "어떻게 이 많은 농사까지 지어요?" "잠을 몇 시간 자지 않지요." 세상을 움직이는 힘, 땅속에 땀을 뿌려 열매로 거둬들이는 노동의 단순한 진리를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음식들이 놓인 식탁과 저 열매들을 키우는 땅. 그것 둘의 관계는 먼 것 같지만 꽤 가까운 것이었다. 낙동강이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옛 안막장은 이름난 국수골목으로
대동수문(혹은 강서수문) 밑으로 낙동강 본류에서 큰 가지를 치는 서낙동강이 시작되고 있다. 지도의 경계다. 수문을 경계로 남쪽은 부산 강서구, 북쪽은 경남 김해시다. 수문 근처가 안막마을. 옛 안막장은 이제 골목이 되어 있다. 국수골목이다. 골목 안팎에 열대여섯 집이 있다. 웬 대동의 국수. 옛 구포국수의 명맥을 강의 이쪽에서 잇고 있는 것이다. 유유히 흐르는 강의 물살이 국수 면발을 그대로 닮았다던가, 아, 아!
지난 11일 또 안막마을에 갔다. '대동기러기' 집이 잘 보이질 않는다. 인터넷 지도에 위치가 영 잘못돼 있다. 또 헤맸다. '일미돌곱창' 집 40~50m 인근. '대동기러기' 집은 신진 시인이 장어구이 맛집으로 소개한 곳. 맛이 깔끔했다. 우리는 부른 배를 안고서 인근의 문화재를 답사했다. 조선의 큰 유학자 남명 조식이 30년간 글을 가르쳤다는 산해정(문화재자료 제125호)과, 편두 풍습을 확인할 수 있는 인골이 나온 가야시대의 예안리고분군(사적 제261호)을 둘러봤다. 좀 쓸쓸했다. 자동차로 30분을 내달려 김해 봉하마을을 갔다. 막막한 허기가 느껴졌다. 우리는 다시 기러기처럼 안막마을로 날아들었다. 오리탕을 잘한다는 집을 찾아갔는데 간이 지나쳤으며 밑반찬이 깔끔하지 않아 소개하지 않기로 한다. 안막마을 맛의 표류기가 이러하다. 글·사진=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