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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올렸던 글의 2부입니다.
벌써 써놨고 발표된 것을 이제야 올립니다.
너무 부지런해서 죄송합니다.. ^^
참고로,
이 글에 등장하는 개조 중인 한옥의 주인인 지방 모 대학 교수께서 이 글을 보시고 댓글을 주셔서,
오해가 있었던 사진 설명 부분을 바로 잡기도 했고, 이에 대한 네티즌의 진지한 토론이 있었던 글입니다.
아울러 집 주인께서는 문제의 보일러실은 철거 후 정비할 계획이라는 말씀도 주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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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실에 주실이 없다
전통 풍광이 사라지는 주실 마을의 현재
모함으로 사약을 받은 조광조의 연좌를 피하려는 특이한 연유로 한양 조씨가 입향한지 350년이 지난 주실 마을의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지금 모습으로 미뤄 짐작해보는 주실 마을의 미래는 어떨까.
가슴 답답한 얘기지만 역사로 기억하는 주실 마을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주실 마을도 젊은이들이 대처로 떠나가기는 마찬가지여서 나이 60살이면 청년 소리를 듣는 것은 한국의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다. 마을 구성원의 평균 연령 분포를 묻는 필자에게 토박이 문화유산해설사 조석걸(71)씨는 “똑똑한 사람은 다 도시로 나갔다”는 상징적인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지역의 농협에서 평생을 근무하다 정년 퇴임 후 마을에 남은 자신을 '똑똑하지 못한' 사람에 넣은 것이다. 조씨의 대답은 일찌기 외지로 나가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 자신에 대한 한탄일지도 모른다. 그는 대화 중에 "나는 한가한 사람이니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한가하다'는 말의 속뜻이 자괴감으로 들려 씁쓸하다.
주실에 주실은 없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살아있는 민속문화 자료로서의 주실 마을의 가치를 망가뜨리는 것은 역시 사람들이다. 사람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는 말은 주실에서도 유효한 말이다.
▲ 신작로에서 본 주실 마을. 사각형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주실의 경관을 제대로 망쳐놓고 있다.
위 사진의 마을 중간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서서 마을 전체를 압도하는 사다리꼴의 허연 콘크리트 덩어리는 교회 건물이다. 처음에는 군부대 벙커로 알고 이곳에 왜 저런 군사시설이 필요한가 하고 의아해 했다. 이 콘크리트 덩어리 교회는 마을 중앙 제일 높은 곳에 자리잡고 마을을 압도하며 350년 역사의 주실 마을 경관을 제대로 망쳐놓고 있다.
교회가 저 위치에 저런 모양으로 있어도 어르신들이 묵인할 만큼 마을에 기독교 신자가 많느냐는 질문에, 조석걸씨는 미안한 얼굴로 손사레를 친다. 교회가 자기 땅에 예배당 짓겠다는데 누가 막을 수 있느냐며 필자와 눈을 맞추지 못한다. 후손으로서의 도리를 못하고 도도한 선비정신이 이어내려온 마을을 본래 모습대로 지키지 못한 죄스러움의 표시일 것이다.
교회가 교회 땅에 자기네 예배당을 짓겠다는데 누가 막으랴. 그러나 주실은 예사 마을이 아니다. 한양 조씨의 집성촌으로 한 때는 한양 조씨 가문만의 마을이었으나 , 지금은 답사객들의 사랑을 받는 국민의 문화유산이 주실이다.
최소한의 문화적 안목이 있는 목사라면 교회를 저 위치에 저런 모양으로 지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도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지만, 저런 모양으로 지으라는 것이 예수의 계시였다고 교회 쪽에서 우긴다면 나는 즉시 팔을 걷어부치고 예수와 담판을 지을 것이다. 내가 아는 예수는 저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저건 마을 자체가 민속문화유산인 350년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후안무치다. 다음 방문 때는 반드시 저 교회 목사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려 한다.
점차 사라지는 전통 한옥들
주실 마을에 대한 문화적 학대는 교회뿐 아니라 일반인의 마구잡이 가옥 개조도 한 몫 거든다. 인구가 줄어드니 빈 집이 많다.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가옥들이 비바람에 방치된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 가옥들은 외지인들에게 팔려 마구잡이로 개조되거나 아예 헐려버린다.
▲ 출향 인사가 매입해 공사 중인 주실의 한 고가옥. 사랑채 마루의 난간은 없던 것을 새로 붙인 것.
▲ 윗 가옥의 뒷면. 여름에 한옥 특유의 과학적 기능을 하는 분합문을 판넬로 만든 보일러실이 막고있다.
저 집의 대청마루는 반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전통 한옥에서 안채 뒷쪽 마당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공간이나 이 점은 철저히 무시된 공사다.
위 사진의 공사를 맡은 목수는 일을 하면서도 난감해하고 있었다. 문화재청의 한옥 복원 공사도 따라다녀봤다는 그는, 이건 아니다 싶지만 주인이 고쳐달라는데 어떻게 하겠냐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목수는 마루바닥을 가리키며 에피소드를 전한다.
마루 전체를 뜯어내고 새 나무로 바꿔달라며 자재도 다 들여왔단다. 시키는대로 공사를 하면 목수 벌이도 더 낫겠지만 들여다볼수록 옛 마루가 아까워 주인을 설득했단다. '이런 나무는 돈 줘도 구할 수가 없다. 탄탄히 잘 짜여진 문화재급 마루다. 내가 겉을 잘 갈아낼테니 원형을 보존하자'고 해서 겨우 살려냈단다.
그 목수는 "제가 문화재 하나 지켜낸 거 아닌가요?"하며 웃었다. 이론을 많이 배운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으나, 우리 문화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존경스러웠고, 막일로 거칠어진 그의 손은 한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무명 '목수'의 마음 씀씀이가 콘크리트 교회 '목사'보다 백 배는 낫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 표면을 긁어내고 갈아내 옛 향취가 다시 살아난 마루. 문화재급 마루가 보존된 것은 순전히 무명 목수
의 공이다. "제가 문화재 하나 지켜낸 거 아닌가요?"하던 목소리가 들린다..
곳곳에서 주실의 신음소리만
마을 전체가 민속문화의 유물 유적인 주실은 현재 서서히 망가져가고 있다. 적어도 필자의 눈엔 그렇다. 이는 마을 유지들도 대체로 시인하고 있었다. 삼불차를 비롯해 대대로 주실에 내려오는 선비 정신은 아직도 퍼렇게 살아있으되 눈이 보이는 실체들은 차츰 사라지고 있다.
지금의 변화 속도대로라면 주실의 일상 모습은 아마도 십 년을 버티기 힘들 것이다. 호은종택(조지훈 생가), 월록서당, 학파헌, 창주정사 등 주실에 널린 문화재만 지키면 전부가 아니다. 주실마을은 마을 모습 그대로가 문화재다. 관청의 문화재 유지보수 정책에 대해 주민들의 견해를 묻자 거의 고개를 가로 젓는다. 기대를 않는다는 답이 가장 많다. 이해 관계가 얽혀있는 부분이 많아 깊은 얘기는 여기서 줄인다..
많은 전통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나무 낡아 아주 위태로운 경우가 아니면 옛가옥을 보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이 집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다. 사람이 떠나면 집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민속자료로 지정된 강원도 삼척의 너와집이 좋은 예다.
지자체에서 너와집을 매입하고 살던 이를 내보낸 후 너와집은 급격히 망가지고 있다. 2~3년 주기로 둘러보면 파손의 정도가 눈에 뜨이게 가파르다. 전국에 온전히 남아있는 너와집은 서너채 뿐이다. 그 중 가옥의 형식이 가장 온전한 삼척 너와집이 문화재 보호정책에 의해 망가지고 모순에 빠져있는 것이다.
주실마을도 마찬가지다. 주실이 망가지면 겨우 살아있는 350년 역사는 영원히 역사책으로 들어가고 말 것이다. 아직도 선비 정신이 반듯한 아름다운 주실을 보고자 찾아갔으나, 주실의 신음 소리만 듣고 왔다.
흔히 "마지막 선비"로 불리며 지조를 꼿꼿이 지켰던 고려대학교 교수 조지훈의 지조론도, 주실 출신 공직자로 뇌물 받아먹고 교도소 간 이는 한 명도 없다는 주실의 청빈 정신도, 주실마을과 함께 낙하산을 타고 마구 흔들리고 있는 지금이다.
(끝)
첫댓글 개인적으로 젤 좋아라하는 여행과 고건축을 동시에 볼수있어 넘 좋았습니다...특히 마루이야기 감동입니다...주실마을이야기 잘읽고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강원지부가 활성화되면 캠프지로 좋을 곳이 부근에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