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간마을
-신라건국 신화가 깃들어 있는 마을-
서남산 기슭에는 아홉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첫 번째 마을이 남간이다. 옛날 이곳에 남간사라는 절이 있어서 마을 이름이 남간이라고 지어지지 않았나 생각되는 이 마을은 신라 건국 신화가 깃들어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나정(蘿井)이 나온다. 나정(蘿井)은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탄강지로 전해오는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부터 2,000여 년 전, 고조선의 유민들이 경주분지로 남하하여 산곡간에 여섯 마을(六村)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그 어느 날 고허촌장인 소벌도리공이 양산 기슭 나정 숲 사이에 말 한 필이 무릎을 끊고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상하게 여겨 그곳으로 가 보았더니 말은 간곳이 없고, 큰 알 한 개(大卵)가 남아 있었다. 그것을 갈라 보니 그 속에서 한 어린아이가 나왔다. 소벌도리공은 그 아이를 잘 길렀는데 나이가 10여 세가 되자 유달리 숙성했다. 육촌 사람들은 그 아이의 출생이 신기하므로 받들어 왕으로 삼았는데, 이것이 신라의 건국설화이며, BC 57년의 일이었다. 이때 왕의 나이는 13세였다. 진한 사람들은 표주박을 박이라고 하였는데, 왕이 박과 같은 알에서 났다고 하여 성을 박(朴)이라고 하고, 밝게 세상을 다스린다[光明理世]는 뜻으로 혁거세(赫居世)라고 하였다.
이상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이지만, 『삼국유사』에는 왕을 선출하고자 6촌장이 모여 회의를 하던 중 그들에 의해 박혁거세가 발견되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시조 탄생설은 신라인이 갖는 치국의 이치와 국민적 신앙을 나타낸 것이다. 박(朴)은 ‘밝음’ 즉 광명을 뜻하는 것이며, 혁거세(赫居世)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광명이세(光明理世)의 염원에서 온 것이다.
나정일대는 신라시대의 양산 지역이며, 나라의 신( 國神)을 모신 나을신궁(奈乙神宮)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나정에는 시조 아기의 몸을 씻겼다고 하는 우물과 시조 탄생의 사실을 적은 비가 있고, 이를 보호하는 작은 비각이 있을 뿐이다.
경주시에서는 신궁(新宮)으로 추정되는 유적 복원으로 역사현장을 재현하기 위해 지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사업비 71억 원을 들여 경주나정복원정비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는데, 네 차례의 발굴조사를 거친 결과 팔각건물지(300.27㎡)와 부속 건물지, 복랑형 건물지, 우물지, 담장, 명문기와 등이 확인되어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나정이 옛 모습을 되찾으면 새로운 관광코스로 각광 받지 않을까 자못 기대가 크다.
나정을 지나면 신라 건국 이전 육부촌장을 모시는 육부전(六部殿)이 나온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애 의하면 신라 건국이전 진한 땅에는 고조선의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면서 육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기원전 57년에 여섯 촌장이 알천에 언덕에 모여서 알에서 탄생한 박혁거세를 신라의 초대 임금으로 추대하였다. 이 해가 바로 신라의 건국연호이다. 이 사당은 1970년에 육촌장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인데, 처음에는 양산제(楊山齊)라고 부르다가 2019년에 강당을 새로 증축하고 육부전으로 이름을 고쳐 부르고 있다.
육부전을 지나면 남간마을이 나온다. 한 오십여 호가 됨직한 이 마을은 한옥마을이다. 햇볕이 잘 들고 전망이 좋아서 인지 최근 고래등 같은 한옥이 몇 채 들어설 정도로 전원 주택지로서는 최적지로 손꼽힌다. 마을 중간 지점 오른 쪽에 남간사 당간지주가 우뚝 서 있다.
남간사는 신라 문무왕 때 자신의 몸을 학대해서 불법을 얻고자 했던 신라 해동진언종의 개조인 혜통의 생가터로 알려져 있다. 7세기 초 헌덕왕 때 남간사에 머물던 일초스님이 “염촉이 자신의 몸을 던져 불교를 받아들이길 청했다.”는 <촉향분예결사문>을 지었는데, 여기에 나오는 염촉은 이차돈의 다른 이름이다. 이차돈이 법흥왕 때 순교로서 불교공인을 받았던 기록을 일초스님이 남간사에서 지었다고 한다. 그만큼 남간사는 유서 깊은 절이다. 그러나 정확한 창건연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남간사지는 현재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고 다만 남간사지 석정(돌우물)과 당간지주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남간사지 ‘석정’은 땅을 파고 내부를 돌로 짜 올린 다음 화강암의 다듬은 자연 석재로 우물의 외벽을 짜 맞추었는데, 위쪽은 남북으로 합쳐지는 2매의 다듬은 돌로 원형틀을 덮어 마감했다. 분황사의 석정이나 재매정과 같은 통일 신라 우물 형태를 잘 보여 주고 있는데,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
‘당간’은 절에서 불교 의식을 할 때 부처와 보살의 공덕을 기리거나 마귀를 물리칠 목적으로 달았던 ‘당’이라는 깃발을 말하며, 이 당간을 받쳐 세우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남간사지 당간지주는 동서로 70cm의 간격을 두고 마주보고 서 있는데, 바같쪽 옆면 모서리 윗부분에만 모죽임(角)이 있다.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깍아낸 간구(杆溝)가 있는데, 특히 절상의 안쪽면에는 여느 당간지주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십(十)‘자형 간구가 있다.
이 당간지주는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구와 간공, 바같쪽 옆면 모서리의 모죽임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간단한 모습의 당간지주로 보물 제99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