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是我讀(“나는 이렇게 읽었다”의 뜻)
〖3월에 읽은 책들〗
강남국 읽음
『만 가지 행동』
김형경 지음 사람풍경 刊
오랫동안 김형경의 책들을 읽어오면서 이제는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대조적인 여주인공 두 명을 통해 여성의 삶을 들여다 본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으면서 난 저자의 독자가 됐다. 그 이후 그녀의 책이 나올 때마다 읽게 됐는데『사람 풍경』,『천 개의 공감』『좋은 이별』까지 그의 심리에세이들은 많은 도움이 됐고 지인들에게 여러 권 추천하기도 했다. 또 다른 책을 기다리던 중 읽게 된 이 책은 심리훈습에세이라는 조금은 낯선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은 마음의,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을 찾는 얘기다. 사람이 자기 내면을 안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있을까. 마음(정신)이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이면서도 모든 사람이 다 다른 것이기에 그만큼 읽는다는 것이 어렵다.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깊은 안목이 없이는 불가능 할 터. 그만큼 개개인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도 난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한세상 제대로 살아가려면 날마다 부딪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게 어찌 쉽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마음의 표면이라도 읽으려 늘 애쓰며 사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읽지 못해 서운한 감정이 쌓이고 그 골이 깊어지면 금이 가기도 하고 급기야는 갈라서는 일조차 부지기수가 아니던가.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이렇게 심리에세이를 몇 권 읽었다고 당장 해결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숱한 심리학자가 있지만 그들이 모두 인간사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각도에서 생을 바라볼 수 있는 제시쯤은 할 수 있으리라. 공통분모가 없지 않지만 사람은 제각기 다른 문제와 씨름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하겠다. 물론 이 한권의 책에서 내 모든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과욕이겠지. 세상에 그런 책은 없으니까. 예배당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가당치나 한 것인가. 쉼이 없는 시대에 심리에세이는 그 쉼의 쪽문을 열어주는 것 같다. 저자는 자기가 열은 쪽문의 한 분깃을 보여주면서 마음의 쉼을 얻으라고 한다. 이 책은 모두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하던 일 하지 않기>2장에서는 <하지 않던 일 하기>3장은 <경험 나누기> 마지막 4장은 <정신분석을 넘어서>. 여전히 날카로운 안목으로 심리의 한가운데를 걸어온 저자의 역량이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까다로운 성격의 일면도 엿볼 수 있어 범인(凡人)들은 어디 접근이 쉽겠는가 싶기도 하다. 큰엄마 같은 느낌은 없지만, 이미 앞의 책들에서 보여준 김형경이라는 이름만은 새롭게 그리고 더 단단히 각인되는 것 같다. 마음이 좀 더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야 할 텐데 논리에 치중하다 보면 그것을 놓칠까 두렵기도 하다. 두리 뭉실 그냥 살 수도 없고 잘 산다는 참 어려운 숙제다.
『맑은 행복을 위한 345장의 불교적 명상』
정효구 지음 푸른사상 刊
전 3권으로 이뤄진『시 읽는 기쁨』이란 책을 통해서 만났던 충북대 정효구 교수의 저서다. 목록을 참고하다가 발견했고 급히 주문해서 단숨에 모두 읽었다. 이 책에 실린 단상들은 아주 짧다. 사자성어처럼 그렇게 짤막한 단상이지만, 그 깊이는 결코 짧지 않다. 우주 만물과 생과 사를 넘나드는 현현한 세상의 단상들이 질퍽하게 펼쳐진 언어의 숲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벌써 오래전부터 저자의 다음 책을 기다리다 만난 책이어서 더 각별히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생이 갈급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원초적인 갈급함에 늘 허기진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저들이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터득한 진리로도 중생들은 여전히 타는 목마름으로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이 냉혹한 현실은 무엇을 말할까. 태초부터 인간은 외로운 존재이고 삶이란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면 너무 단순한 논리일까. 어느 특정 종교에 귀의해야만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냉정히 나만의 문제를 세상의 누가 풀어줄 수 있단 말인가. 이 책 또한 짊어진 인생의 무게를 내려놓게 하진 못한다. 어찌 그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다만 지금 내가 짊어진 짐의 무게를 조금은 가볍게 해 줄 수 있을 뿐! 삶을 긍정하는 자세가 퍽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차분한 명상 속에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기쁨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피로사회 』
한병철 지음 문학과지성사 刊
생각보다 어려운 책이었다. 낯선 저자의 이름도 그렇지만 이 작은 책이 독일의 주요 언론 매체를 떠들썩하게 했다는 서평을 읽고 구입하게 됐는데,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피로사회’라는 제목부터 어려웠으니까.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로 시작되는 이 책은 <왜 우리는 여전히 진정 자유롭지 못한가,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한가에 대한 답을 구하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끊임없이 삶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데 산업사회의 각박한 현실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소중한 가치의 기준조차 모호하게 만드는 아픈 현실을 진단하고 있다. 진단을 했으면 처방이 있어야 할 터. 그렇담 저자의 처방전은 무엇일까. 그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이미 새로운 종류의 문화 비판의 개척자로 묘사되고 있다지만, 이미 문화 비판은 니체, 프로이트, 아도르노, 벤야민 등 독일 사상의 중요한 전통을 이루고 있는 틈바구니에서 한국 출신의 철학자에게 문화 비판의 혁신자라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싶다. 짬나는 대로 다시 읽으면서 나름대로 제시된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우울증이 지배하는 세대에 대한 저자의 명석한 해답을 다 깨닫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일단 동양계 한 철학자에 대한 찬사가 그냥 헛된 것은 아닐터. 고딕으로 처리된 낱말에 주목하면서 다시 읽어야겠다. 책값이 무려 1만원이나 한다는 것은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 또한 없지 않다.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
김선우 지음 창비 刊
김선우(42) 시인이 네 번째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는 시인의 변모를 엿보게 한다. 이제 갓 40을 조금 넘긴 나이지만 시인의 세상을 보는 안목의 변화는 결코 작지 않다. 한마디로 시가 과격해졌다고 할까. 시가 거칠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시인의 가슴속에 상처투성이인 현실이 보였다는 것이다. 현실에 바짝 다가선 느낌이랄까. 시인은 세상의 아픔을 가슴으로 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시인의 가슴이 차가울 때 따뜻한 시는 탄생할 수 없음을 믿기 때문이다. 시인이 아픈 세상을 위해 울어 줄 때만 세상은 썩지 않고 제대로 흘러가리라. 시인이 울지 않는 세상이 어찌 좋을는지. 그래서 시인은 "동체대비(同體大悲ㆍ남의 고통에 공감하며 자비를 베풂)의 마음이 문학, 특히 시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란 말을 했을꼬? 시인이 한결 철들고 어른스러워졌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이른바 '에코 페미니즘'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한, 생태에 대한 섬세한 관심을 담은 시편들도 시인의 성숙을 엿보게 해준다. 시인은 언젠가 시 청탁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적이 있는데 그것이 익은 시만을 세상에 내 놓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몇 권의 시집을 냈느냐가 중요하지 않을 터. 알맹이로 꽉 찬, 그래서 돈이 아깝지 않는 시집을 만나는 기쁨을 끝까지 전해줬으면 좋겠다. 저자의 소설은 읽어보고 싶고, “아름답고 아픈 세상에 이 시집을 바친다”란 <시인의 말>이 참 곱고 따뜻하다.
『너는 가능성이다 』
안병무산문집 사계절 刊
오랫동안 신학자인 저자의 책을 읽어온 탓에 이 책은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저자는 이론과 실천을 아우르는 신학을 추구했고, 시대의 흐름에 가슴으로 저항했던 신학자였다. 서남동·현영학 등과 함께 한국적 상황신학으로서의 민중 신학을 탄생시키고, 그 체계 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하기도 했던 저자. 향린교회를 창립했고 투옥과 교수, 월간〈현존 現存〉 발행인 등을 거친 저자는 유신정권에 맞서 저항운동을 전개하다 투옥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한국신학연구소'를 창설하여 민중 신학을 낳은 교두보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1922년 평남 안주에서 태어나 1996년 신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그는 <신약성서개론〉(공저)·〈역사와 증언〉·〈해방자 예수〉·〈성서적 실존〉·〈시대와 증언〉·〈역사와 해석〉·〈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등을 세상에 내놓으며 성찰 깊은 지성이자 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다른 신학자의 시각으로 세상과 오늘날의 교회다 당면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고 있다. 때로는 혜안이 번뜩이는 저자만의 단상들이 페이지 곳곳에 보이며 얼마나 큰 안목으로 세상을 봤던 분인가를 다시 체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중 신학>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시절에 뿌리를 내리고 토대를 닦은 저자의 역량이 세월에도 퇴색하지 않음은 그의 또 다른 저서들에서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목메는 강산가슴에 곱게 수 놓으며 』
문익환 옥중서신 사계절 刊
모처럼만에 저자의 책을 읽었다. 한마디로 목사라고 다 같은 목사가 아니구나 싶다. 요즘처럼 기독교가 땅에 떨어졌던 때가 있었던가 싶은데 이렇게 큰 어른이 우리 땅에 살다 가셨다는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시대의 아픔을 가슴으로 앓으며 통절히 기도했던 노목사의 삶이 한편으론 애리고 아프다.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예사고 교인 수에 따라 값을 달리 매기며 교회를 사고 팔기도 하는 시대에 진정한 목회자의 상은 무엇일까. 예수를 팔아 배를 불리고 있는 이 땅의 숱한 사람들에 늦봄 문익환은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그런 면에서 보면 성경은 참 오묘한 책이다. 독사의 자식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외치셨던 예수의 함성이 들리는 것 같다. 너나없이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을 팔아서 자기 치부를 일삼는 사람들은 목사가 하나의 직업이요 생업수단이지 그 외는 아무것도 아니리라. 저자는 진정한 목회자였다. 이 책은 고(故)문익환 목사가 여섯 번째로 수감생활을 하던 시기(1991년 6월 ~ 1993년 3월)에 쓴 옥중서신을 모아 엮은 책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인간다운 고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사회와 민주화에 대한 글, 우리말과 문학, 예술에 대한 생각, 종교와 신학에 대한 성찰이 한 아름 담겨있다. 신학적 거목을 만나는 기쁨은 잔잔한 글속에 올올히 살아서 꿈틀대게 했으니 저자는 죽어서도 힘이 세다.
『로렌스의 성과 사랑』
로렌스 지음 정성호 옮김 범우사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저자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는 영국 소설가이다. 『아들과 연인』『무지개』가 노골적인 성(性) 묘사를 이유로 발매가 금지되면서 숱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저자는 오죽했으면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자비로 펴냈었을까. 이 책이 섹스에 관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조판공은 "그런 건 매일 하는 게 아닌가"란 전언이 회자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미국은 물론 본국에서조차 외설 시비로 인해 오랜 재판을 거친 후 1960년에야 비로소 최초의 무삭제판이 펭귄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니 사연이 많은 작가임엔 틀림없다. 44세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긴 너무 아까운 작가였는데, 솔직히 저자의 책을 끝까지 읽어보고 외설스럽다고 하는지 의문이 많다. 저자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고집하였고, 한마디로 설교자(Preacher)였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편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성적인 묘사는 이성의 지배로 황폐화되어 가는 현대 기계문명의 대한 그 나름의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제시된 것이었는데도 많은 오해가 있었다고 하겠다. 그의 작품 『Sons and Lovers』를 학기에 원서로 읽었던 탓에 작가는 나에게 아주 친숙한 저자가 되었다. 저자의 성관은 결단코 외설스럽지 않다. 사람들이 그렇게 읽을 뿐이다. 선입감이 한껏 부풀려 진체로!!! 그는 영국일 빛낸 훌륭한 작가 중 한명이었다.
2012. 3. 28
청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