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8.-새재사랑산악회 157차 산행] <지리산-피아골> 단풍 산행 (1)
*[산행코스] 성삼재(04:30)→ 무넹기→ 노고단 고개→ 임걸령(아침식사)→ 피아골 삼거리→ (내리막길)→ 피아골→ <피아골대피소>→ 피아골 연곡천→ 구계포교→ 삼홍소→ 표고막터→ 직전마을 <지리산 식당>→ 연곡사 / (주차장)→ 귀경
♣[프롤로그] — 깊어가는 가을, 목마른 대지에 깊어가는 시름
☆… 시월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하늘은 높고 신선하고 청명한 기운이 미만한 계절이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결이 계절의 감각을 느끼게 한다. 예로부터 시월은 연중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때라고 하여 ‘상달’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작금 우리나라의 많은 지역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농심(農心)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충청남도 지역은 40여 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라고 한다. 농사뿐 아니라 식수도 구하지 못하는 절박한 곳도 많다고 한다. 기상대의 예보에 의하면 앞으로도 당분간 비가 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하니 여간 걱정이 아니다.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어쩔 수 없다고 하나, 평소의 수자원을 유효하게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앞으로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문제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천시(天時)는 불여지리(不如地利)라 했다.
하늘의 때가 우리의 삶에 제대로 맞지 않으면 땅의 이로움을 잘 이용하여야 한다. 그 동안 건설과정에서 비판과 여러 가지 문제들이 제기되었지만, 4대강 개발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금 금강(錦江)의 부여 <백제보>에 저수된 물을 가뭄이 극심한 <보령댐>으로 송수(25km)한다는 비상대책도 나왔다. 그리고 4대강 사업에 반대했던 안희정 충남지사가 금강의 <공주보>의 물을 활용하기 위하여 예산의 <예당저수지>와의 용수 공급관로(30km)를 건설해 달라고 정부에 제안했다.(10월 21일 가뭄대비 관계기관 대책회의) 그러므로 무슨 정책이든 크게 앞을 내다보고 기획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어디 국토의 물 관리 문제뿐이겠는가.
♣[오늘의 산행-지리산] — 야심한 밤, 산으로 가는 남행 길
☆… 이번 10월의 산행지는 무박(無泊)으로 <지리산>에서 진행되었다. 지리산은 한반도를 종주해 온 백두대간의 대맥이 남도의 정기를 머금고 포진하고 있는 영산(靈山)이다. 이번 산행에는 41명의 대원이 참석하여 <신정관광> 리무진 버스의 전 좌석을 가득 채웠다. 서울 군자역에서 17일 밤 11시 40분에 출발하여, 중부·대통(대전-통영)고속도로를 경유하여, 경상남도 함양에서 88고속도로에 타고 서진(西進), <지리산톨게이트>에서 국도로 내렸다. 그곳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에서 861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산내면을 경유하여 뱀사골계곡의 입구를 지나 성삼재에 도착했다. 새벽 4시 30분이었다. 차에서 내려서니 바람결이 차가웠다. 캄캄한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총총 빛나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거의 보지 못하는 별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백두대간의 대맥을 마무리하는 지리산] —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영산(靈山)
☆… 백두산을 시작으로 하여 지리산에서 끝나는 산의 큰 줄기를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고 부른다. 지리산은 한반도 남부를 대변하는 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덕유산(德裕山)에서 육십령을 넘어온 백두대간은 전라북도 장수와 경상남도 함양의 경계를 이루며 서진하다가 남원의 봉화산-여원재를 통하면서 남으로 이어진다. 전라북도 운봉의 고기리 마을을 지난 산줄기가 큰고리봉으로 올라가면서 백두대간 지리산 구간의 능선을 이룬다. 대간은 정령치에서 만복대(萬福臺:1,433m)를 거쳐 성삼재에 이르고 그 산줄기는 비로소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노고단(1,507m)을 밀어 올린다. 통상적으로 성삼재-노고단은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이다. 노고단-임걸령-반야봉(般若峰, 1,732m)-삼도봉-화개재-토끼봉-명선봉(明善峰, 1,586m)-덕평봉(德坪峰, 1,522m)-칠선봉(七仙峰, 1,576m)-천왕봉의 능선을 이룬다.
☆… 신라 5악의 남악(南嶽)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렀고, 또 ‘멀리 백두대간이 흘러왔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며, 옛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으로도 알려져 있다.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천왕봉(1,916.77m)을 주봉으로 하는 지리산은 서쪽 끝의 노고단(1,507m), 서쪽 중앙의 반야봉(1,751m) 등 3봉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100여 리의 거대한 산악군을 형성한다. 지리산은 산형이 다기다양(多奇多樣)하고 고준광대(高峻廣大)하면서 중후인자(重厚仁慈)하여 웅대한 산악미를 가지고 있다. 1967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다.
☆… 천왕봉(天王峰)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을 중심으로 해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는데, 하나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南江)의 상류로서 함양·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에서 흘러온 섬진강(蟾津江)이다. 이들 강으로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 개의 하천이 흘러들며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지리산 12동천’을 이루고 있다. 통상적으로 지리산 10경[十景]으로 노고운해(老姑雲海)·피아골단풍(丹楓)·반야낙조(般若落照)·섬진청류(蟾津淸流)·벽소명월(碧沼明月)·불일폭포·세석(細石)철쭉·연하선경(烟霞仙景)·천왕일출(天王日出)·칠선계곡(七仙溪谷)을 꼽는다. 지리산의 지형은 융기작용 및 침식·삭박에 의해 산간분지와 고원·평탄면이 형성되어 있고 계곡은 깊은 협곡으로 되어 있다. 지리산은 대부분이 변성암류로서 편마암이 거의 전부 덮고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이 분포되어 있다.
☆… 지리산은 또 현대사에서는 좌익·우익의 격전으로 뼈아픈 상처를 안고 있다. 1948년 10월의 여순반란사건에서 패퇴한 좌익 세력의 일부가 지리산으로 입산하였으며, 1950년 6·25 때에도 북한군의 패잔병 일부가 노고단과 반야봉 일대를 거점으로 하여 양민 학살, 촌락 방화, 산림 남벌 등의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 이러한 처절한 지리산의 상흔은 수많은 문학작품을 낳기도 했다. 이병주(李炳注)의《지리산》문순태(文淳太)의《달궁》과《피아골》, 서정인(徐廷仁)의《철쭉제》등의 소설이 있는데, 이들은 거의가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좌우 대립에 따른 민족의 뼈아픈 과거를 묘사하고 있다. 이는 지리산이 현대사에서 차지하였던 첨예한 이념 대립의 공간적 현장성의 반영인 것이다.
♣[성삼재 주차장] — 캄캄한 새벽 하늘에 빛나는 별들
☆… 미명(未明)의 시간, 오전 5시에 캄캄한 새벽 산행이 시작되었다. 어둠 속에서 별이 빛나는 새벽이었다. 대원들은 모두 미리 준비한 헤드랜턴을 이마에 장착했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지상의 산길에는 연이은 랜턴의 불빛이 어둠을 흔들었다. 부드러운 바람결에 실려 오는 새벽 공기가 청정하여 야간 산행 특유의 호젓함이 있었다. 오늘 산행(山行)은 승조 김화영 대장이 선두에 서고 지평 민창우 대장이 후미를 수습하여 오기로 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는 완만한 산간도로가 닦여져 있어 걷기에 아주 쾌적했다. 무넹기에서 우회도로를 가로 질러가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가파른 길에는 나무테크의 계단도 설치되어 있었다. 어둠 속의 노고단대피소에는 매점과 식당이 있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데,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이곳에 지리산국립공원분소가 설치되면서 무척 번잡해진 느낌이다. 여기서 노고단 고개까지는 경사진 돌계단을 치고 올라가는 길이다. 어둠 속에서 묵묵히 걷는다. 다리에 무게가 실리면서 은근히 땀이 나기 시작했다.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여명] — 어둠 속에 새날의 빛을 기다리는 마음
☆… 새벽 6시, 노고단 고개에 도착했다. 그 오른 쪽에 위치한 정상은 오전 9시에나 개방을 하므로 이곳에서 지리산 일출의 여명(黎明)을 맞기로 했다. 아직은 캄캄한 밤이었다. 땀이 난 몸에 스며드는 고산(高山)의 바람결은 차가웠다. 옷을 따뜻하게 챙겨 입고 동녘하늘을 바라보며 한참을 기다렸다. 6시 10분, 장대한 지리산 산줄기 위에 진홍빛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 은은한 빛살로 하여 장대한 지리산의 윤곽이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줄기와 하늘 사이, 그 경계의 산너울 위로 진홍의 물이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 10월 18일 새날의 아침을 여는 지리산의 여명(黎明)이다. 아, 광막한 우주의 시간, 늘 자고나면 맞이하는 하고많은 날들이지만, 오늘의 특별한 시점은 지리산 노고단이다. 어둠과 빛 사이, 죽음과 같은 적막한 밤을 밀어내는 저 붉은 빛이 서서히 개벽을 하는 시간이다. 새벽의 순결한 햇살을 맞는 시간이다. 날마다 열리는 아침이지만 오늘의 빛은 또 하나의 은총이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생명(生命)의 빛인 것이다. 아, 무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오늘 이 한 순간, 생명이란 무엇인가, 분명한 건 엄연한 목숨의 시간이다. 그 근원으로 따지자면, ‘하늘’내리는 빛이요, 대기에 순환하는 물이다. 지상은 생명의 땅이 되는 것이다. 하늘에는 태양이 솟고 산은 물을 품는다. 그리하여 천지 만물이 생육하는 것이다.(天地位焉 萬物育焉). 그것이 우주 대자연의 이치일진대, 이 놀라운 은총인 빛과 바람과 물을, 우리는 일상 잊고 사는 것이다.
☆… 어둠을 밀어내고 떠오르는 빛은 참다운 인간[君子]의 밝은 덕(德)이 세상에 드러내는 표상이다. 이 아침의 순결한 아침의 빛으로 겸허하게 내 자신을 비추어본다. <주역(周易)>의 진괘(晉卦)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밝음이 세상에 나옴이 진(晉)이니, 군자(君子)가 보고서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힌다.(象曰 明出地上 晉 君子以 自昭明德)”고 했다. 지상에 떠오르는 태양(太陽)을 보며 군자(君子)는 자신의 밝은 심덕을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정이천(程伊川)의 <역전(易傳)>에 이르기를 ‘군자의 밝음이 지상으로 나와 더욱 광명정대한 상을 관찰하여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힌다. 가려진 것[어둠]을 제거하고 앎을 극진히 함은 밝은 덕을 자신에게 밝히는 것이요, 명덕(明德)을 천하에 밝힘은 밝은 덕을 밖에 밝히는 것이다. 명덕을 밝히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스스로 밝힌다고 말한 것이다.(君子觀明出地上而益明盛之象 而以自昭其明德 去蔽致知 昭明德於己也 明明德於天下 昭明德於外也 明明德 在己 故云自昭)’
♣ [지리산 노고단] — 거기, 지리산 지킴이 함태식 선생이 있었다
☆… 오전 6시 40분, 아침의 여린 햇살이 거대한 노고단(1,507m)의 산체를 비추기 시작하면서, 노고단 사위(四圍)의 풍경이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리산 노고단 하면, 필자에게 두 가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 하나는 지리산 십경(十景)의 하나인 선경을 방불케 하는 노고단 운해(雲海)의 장관이요, 또 하나는 1970년대 초 노고단 산장지기로 평생 지리산을 지켰던 함태식 선생이다. 1928년 전남 구례 출신인 선생은 지리산산악회 부회장으로 지리산을 오르내리던 1960년대 중반 ‘험한 산자락에 등산객을 위한 대피소가 필요하다’고 정부에 건의, 71년 처음 노고단 대피소가 설치되게 했으며 이듬해 초대 관리인으로 임명됐다. 1987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생기면서 피아골 대피소 관리인으로 자리를 옮긴 뒤 2009년 4월 은퇴 후엔 피아골에서 해설사로 활동했다. 선생은 산에서 소란 피우는 일부 등산객을 혼내 '지리산 호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선생은 2014년 4월 14일 새벽 2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세.
♣[호산아(好山兒)와 지리산의 함태식] — 운평선(雲平線)이 그리는 지리산 비경
☆… 1970년대 초 청량리 대왕코너(현재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에 거점을 둔 호산아(好山兒) 그룹이 결성되었다. 대왕코너에서 산악장비점을 경영하는 다묵(多黙) 강운회(姜雲會) 선생을 중심으로 결의된 ‘호산아’ 멤버는 산(山)을 통하여 참다운 삶을 지향한다는 취지로 마음을 모은 산사나이들이다. 당시 <한국산악회> 회원이었던 서울의 강운회(당시 40세), 오상수(21세), 이당철(25), 박홍우(24) 등이 그 중심이었는데, 그런 뜻에 동참한 멤버가 지리산의 함태식(노고단산장), 한라산의 서재철(당시 제주신문 사진기자), 치악산의 함연종(산악인) 등이었다. <한국산악회>는 노산(露山) 이은상(李殷相) 선생이 회장으로 활약하던 전국 규모의 산악회였다. 1976년 다묵 선생이 작고하기 전까지 연중 서울의 호산아가 지리산, 한라산, 치악산의 호산아를 찾아 순례 등반을 하면서 몇 차례 함께 회동하고 등반을 하기도 했었다.
☆… 필자가 다묵 선생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 당시 홀로 지리산을 지키는 산장지기 함태식 선생과 하룻밤을 지내면서 산과 인생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이튿날 아침 노고단 운해의 장관을 관망하였다. 첩첩이 이어진 거대한 산군의 너울이 실루엣처럼 이어지면서 그 산곡 사이에 깔린 하얀 구름의 바다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자연의 묘경이었다. 순백의 구름이 자로 잘라낸 듯 평형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때 함태식 선생이 그 운해(雲海)를 가리키며 ‘저게 바로 운평선(雲平線)이야’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삼면의 바다에는 수평선이 있고, 부안·김제의 호남평야에는 지평선이 있고, 여기 지리산 노고단에는 운평선이 있지” 이렇게 운평선이라는 말을 최초를 붙인 사람이 바로 함태식 선생이다. 당시 필자와 토요문학회 <삼장시(三章詩)> 동인 활동을 함께 하던 다묵 선생이 그 '운평선'을 주제로 하여 시를 남겼다.
운 평 선(雲平線)
강 운 회
수평 위에 지평 뜨고 / 태고부터 설친 바람
노고단 십 리 주변 / 다시 풀려 신명진 선(線)
운평선 신비를 품어 / 하늘 아래 고여라
운평선 둥실둥실 / 망망한 대해 아래
눈부신 저 햇살로 / 다도해 수(繡)를 놓고
노고단 이마를 짚어 / 하늘 뜻을 아뢰네
— 강운회 시집『山도 詩도 모두 情일레』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