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냄비 옆에 각이 선 모자를 쓴 아저씨들이 확성기를 들고 외치곤 했다. "사랑을 나눕시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웁시다." 구세군의 이미지는 여전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확성기 대신 헤드폰처럼 머리에 쓸 수 있는 소형 마이크를 쓰고,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사용해서 기부할 수 있도록 자선냄비 앞에 전자 결제 시스템이 달렸다는 것. |
"힘든 것은 추위보다 무관심이죠" |
해마다 12월 1일이면 시종식을 시작으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이 시작된다. "100여 명이 지나가면 한 분 정도. 아직까지는 많지 않아요." 웃는 얼굴로 종을 울리는 심지현(42) 사관학생의 말이다. 중년의 아저씨는 카드를, 할머니 한 분은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종이돈 한 장을 꺼냈다. 아이를 안고 가던 젊은 부부가 지나가던 발걸음을 돌려 자선냄비에 돈을 넣었다. 보기만 해도 훈훈한 풍경이지만, 한 시간 남짓 지나는 동안 자선냄비를 찾은 사람들은 이들이 전부였다.
구세군에게 가장 많이 말을 거는 사람은 관광객. 외국어로 쓰인 지도를 들이대며 길을 묻는다. 하지만 그들은 얼굴 한 번 찌푸리는 법 없이 친절하게 길을 알려줬다. 현장 취재를 위해 중무장을 하고 나섰지만, 30~40분이 지나자 한기가 느껴졌다. "기온이 몹시 떨어지는 날 추위를 견디는 것이 힘든 일이기는 해요. 하지만 추위보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입니다." 박성혁(35) 사관학생의 말이다. |
"성탄이 다가오면 천사의 마음이 됩니다" |
하지만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도 사람들이다. 구세군 자선냄비에 기부하기 위해 1년 동안 저금통에 모은 돈을 들고 온 꼬마, 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을 부끄럽게 넣는 어르신을보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잠시나마 추위를 잊을 만큼 보람도 느낀다. "자선냄비의 가장 큰 의미는 '익명' 이라고 생각해요. 많이 할 수 없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큰 기부를 했다 해서 원치 않는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되고, 남을 위한 마음 하나면 되니까요." 박 사관학생의 말이다. 해마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 고액을 기부한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곤 한다.
박 사관학생이 서 있는 자리도 익명의 1억 기부가 실현된 곳이다. 하지만 그는 자선과 나눔은 금액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적은 금액이라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기를 소망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자선냄비를 향한 손길이 뜸하지만, 성탄이 가까워올수록 늘어난다. 24일 저녁엔 기부의 손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 "성탄이 다가오면 다들 천사의 마음이 되나봐요" 라며 웃는 심 사관학생의 표정이 밝다.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
"선택적 청빈의 삶입니다" |
"소명이지요." 두 사관학생의 대답이 같다. 구세군을 봉사 단체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심 사관학생은 "구세군을 이끄는 두 바퀴는 사회사업과 목회"라며 "봉사를 통해 목회 활동을 하는 것이 구세군의 사명"이라 전한다. 구세군 부위(副尉)로서 사역을 시작하려면 구세군사관대학원을 마치고 임관을 받아야 한다. 박 사관학생과 심 사관학생은 내년 2월 임관을 앞두고 있다. 임관 후 그들이 받는 급여도 최소한의 생계비가 전부. 삶이 고달프지는 않을까 염려가 들었다.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 빈곤감이 든 적은 없다" 는 그들을 세상의 기준으로 염려한 마음이 부끄러웠다. 어두워지는 거리에 나눔의 종소리를 울리는 그들의 바람은 "나눔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는 것. 자녀들에게 나눔의 본을 보여주는 연말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미즈내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