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도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걸 알고서는
안심했다.
그건 내가 열 세살때의 일이다.
그 전까지는 뭔가를 쉴새없이 하고 있어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중학교에 들어갔을 무렵에
엄마는 런던에 살던 엄마의 동생뻘되는, 그러니까 나한테는 이모뻘이 되는, 내가 양엄마라고 부르는 분에게 나를 부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잘 된 일, 한편으로는 참 안된 일이 되었다- 그 즈음에 나는 사람들이 가끔씩은 혹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을 갖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전까지는 방학때면 책도 100권도 넘게 읽었고
태어나서부터의 성적은 마지막 한번을 빼놓고 반에서 항상 일등이었다.
영국으로 떠나기 바로전 시험에서
딱 한번 2등을 했는데
빌리브 미,
발바닥에 강력 접착체를 붙여놓은 것처럼 걸음이
무거워서
집까지 걸어 가는데 20분 거리가 1시간도 넘게 걸렸었다.
식은땀도 나고
집까지 걸어가다가 그냥 thin air로 소리소문도 없이 원래 나의 존재는 먼지나 작은 돌맹이라서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져가는 거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2등이나 3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라는 뜻이 아니다. 그동안 생각했던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이 짜잔하고 일어났던 것이다, 마치 그것은 지나가던 자전거가 나를 칠까 말까 하다가 나를 쳐버렸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거의 태어나서부터
태권도를 하고 발레를 하고 피아노를 치고
수학 영재반을 했다.
내가 태권도를 하면 야무지다며 상을 줬고
발레를 하면 유연성이 높다고 상을 줬고
피아노를 치면 음악성이 돋보인다고 상을 줬으며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면 암산을 잘한다고 상을 줬다.
한 방송국 어린이 퀴즈프로그램에 나가서 4주 연속 1등을 한 적도 있었다.
박수를 받고 소감을 얘기하고
상장을 목에 걸고 손에 쥐고 팔에 걸치고
칭찬을 바가지로 먹으면서도
우쭐하거나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지 않았던 것은
한 여자아이가 해낸 일련의 일들이
우쭐한 기분을 가져도 좋을 만큼
위대한 것이라고 믿기에는
그만큼 나는 순진하지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란 사람은 어렸을 때 운이 좋은 여러 어린이들 중 하나군,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있었다면 그 어린이 퀴즈 프로그램이었다.
4주 1등을 하는 동안 나를 지켜보고 있던 한 감독이
나는 한 일일 드라마 아역 배우로 캐스팅을 했다.
나는 이년 간 이 드라마 저 드라마로 옮겨다니며
혜민이도 됐다가 송이도 됐다가 민희도 됐다가 하며
뭔가를 찍었고 아이스크림 광고와 학생용 가방 티비 광고, 자전거 광고에도 나왔다 .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특별이 이쁜 구석이라곤 없었다.
이것은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사실이다.
그렇다고 연기력이 뛰어나서 그렇게 됐냐고 하시면
농담하시냐.
그렇게 방송국을 가고 지방에 촬영을 가고 티비에 내 얼굴이 몇몇과 함께 나와서
웃고 하면서도
나는 그때 이미 내가 그런 쪽에 아무런 재능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티비에 나오는 것은 번번히 이런 식이었다, 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캐스팅하기로 했었는데 일이 생겨서
못할 경우
내가 꿩대신 닭이되어 대충 때우는데 나의 연기라는 건
고작해야 가식적으로 울기,
턱없이 행복한 척하며 회전목마 타기 정도였으니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칠 만큼 한심한 게 아니었겠지.
그런 계기로 한 캐스팅이 끝나면 다른 걸 하고
그게 끝나면 다른 걸 또하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평범한 것을 빼놓고는 아무 것도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건 지금 생각해봐도 놀랄만큼 성숙한 생각이지만 분명히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기에 소질이 없고 특출난 외모를 가지지 않았던 나는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딱 이년만에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있었다.
나는 발레도 피아노도 암산도 하지 않고
친한 친구도 없는
또래보다도
한참이나 지루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런던으로 도피를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린애들이라는 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지
어른들처럼 친구가 없고 외롭다고 해서 자살을 하거나
정신병원엔 가지 않지 않는가.
가끔씩 내 주위에는 나를 이러테이팅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다.
어릴 적에는 깜찍하더니
그 인물이 아니네, 하며
상처를 주거나
어릴 때
방송이다 뭐다 해서 애를 다 버려놓았다면서 나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
하지만 그렇게 제멋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런던에 내가 보내진 건
양엄마의 자살소동이 있고 나서다.
양엄마의 외로움을 달래주라는 명목아래
내가 보내진 것이다.
말하건대, 나는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할 의무가 있었던 거지
쉽게 상상하듯 내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런던으로 떠난 건 아니었다.
내가 런던에 양엄마의 집에 왔을 때는 그 때가 열세살인데
전학이다, 뭐다 해서 두세달 간 학교도 가지 않고
늦잠이나 자고 티브이만 보고 엄마나 양엄마를 따라서 시장이나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것만 하면서
인생이라는 것이 지금 당장 이런 것을 안하면 이렇게 되고
저런 것을 안하면 저렇게 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런던에 있는 나의 첫 스쿨에 면접을 보기 위해서
늦으막히 아침을 먹고 나서는데
거리에 내 또래의 아이를 한명도 발견할 수가 없었고
면접이라곤 하지만
내가 교장 선생님 앞에서 내 자신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건
하와유 파인 땡큐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는
긴장감이랄까 걱정이 드는 것과는 정반대로
기분이 최고로 좋아졌다.
나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떄가 있다는 것을 열세살 떄 알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가끔씩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첫댓글 아..파란만장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