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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스님 자경문 - 시작하는 마음 제 12 강
言談次(언담차)에 不得高聲戲笑(부득고성희소)하며
非要事(비요사)어든 不得出於門外(부득출어문외)하며
有病人(유병인)이어든 須慈心守護(수자심수호)하며
見賓客(견빈객)이어든 須欣然迎接(수흔연영접)하며
逢尊長(봉존장)이어든 須肅恭廻避(수숙공회피)니라.
辦道具(판도구)호대 須儉約知足(수검약지족)하며
言談次(언담차)에 不得高聲戲笑(부득고성희소)하며,
言談할 때에, 얘기를 할 때에 高聲으로 戲笑하지 말아라. 소리를 높여서 희롱해 웃지 말아라. 얘기를 하더라도 점잖게 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점잖고 얌전하게 이빨을 드러내서 웃지 말라 이랬거든요. 이빨을 보이지 말어라. 이런 말들은 보통 말할 적에도 물론 이렇지만, 우리가 전화 같은 것 받을 적에도 하여튼 상대방이 누군지 모르니까 어떤 사람이었든지 전화를 점잖고 좋게 받아야 됩니다. 설사 여자가 받든, 시원찮은 사람인줄 알더라도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전화는 항상 점잖게 받는 것이 에치켓트입니다. 전화 하는 사람도 그렇고, 전화 받는 사람도 그렇고요. 자기가 누구라고 밝히면 좋을 텐데, 죽어라고 자기를 안 밝히데요.
무슨 일이라고 대충 얘기할 수도 있을 건데, 덮어놓고 바꾸라고만 소리를 질러대고요. 그것 참, 전화 하는 사람도 문제가 있긴 있어요.
그렇긴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받는 사람으로서는 항상 좋게 부드럽게, 전화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마음이 편안하게 그렇게 전화를 하라 이겁니다. 사람 상대해서 얘기 할 때에 소리를 높여서 히히덕거린다든가, 이것이 다 점잖지 못한 행위다.
非要事(비요사)어든 不得出於門外(부득출어문외)하며,
요긴한 일이 아니어든 문 밖에 나가지 말어라.
세존은 6년을 坐不動(좌부동)하시고, 달마는 소림에 9년을 面壁(면벽)하셨다. 그랬잖아요. 오늘 현묵스님이 차를 보내오면서 영산스님 한통. 통광스님 한통. 현묵스님한통 세 사람이 다 한통 씩 그렇게 보내왔어요. 현묵스님도 그림을 하나 그리고 시를 쭉 써가지고 멋지게 해서 보내 왔는데, 현묵스님이 태권도 4단인가 5단인가 된다 그러잖아요. 신체도 그렇게 좋고, 피가 펄펄 끓는 젊은 사람들이... 현묵스님 같은 이, 앞으로 그대로 가면 송광사 방장은 떼놓은 당상입니다.
딱 10년 아닙니까? 학식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재주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림 잘 그리지 시 잘 쓰지 그만하면 공부 많이 했고, 또 신제적인 조건도 그렇게 좋고요. 여러 가지 키도 크고 음성도 좋고 그러잖아요.
그런 사람이 10년을 그 산중에서 정진을 그렇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장한 일입니까? 전 식구들이 3년 동안 동구불출하고 지낸다는 것이 보통 고마운 일이 아닙니다. 가만히 그 사람들을 생각하고 보면요? 괜히 실없이 들랑거리고 우리 중노릇은 이거 오히려 그 사람들한테 뒤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非要事(비요사)어든, 요긴한 일이 아니거든 문 밖에 나가지 말어라 했어요. 문 밖에 나가면 속인하고 상대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속가하고 상대하는 것이니까요. 나가면 바로 속가 아닙니까? 나가 봐야 그 사람들한테 뭘 배울 겁니까?
중아들 대학 간다는 것. 중아들 대학가면 스님한테 배우나요?
다 속인한테 배우는 것은 속 법 밖에 더 배우나요?
속 법 배워서 뭐 할 겁니까? 중이 되어서 박사학위 받으면 뭐 할 겁니까? 중이 박사 되어서 대학에 가서 강의 할 겁니까? 뭐 할 겁니까? 옛날 스님들은 30년 40년을 동구불출한 스님들이 많거든요.
여산혜원 법사 같은 이들은 40년을 동구불출. 그런 스님들이 참 많잖아요. 그러니까 그 산 정기를 완전히 그대로 받고 그대로 도를 완성 하는 겁니다. 들락날락 속인 물 반 들고 중 물 반 들고, 언제 도를 성취하겠습니까? 그러니까 禪을 닦으려면 그 산을 떠나지 말아야 된다 이겁니다.
有病人(유병인)이어든 須慈心守護(수자심수호)하며,
병든 사람이 있거든 자비한 마음으로 수호를 하라. 오달 국사얘기(4강)가 대표적인 얘기지요. 간병복전이 제일 복전이라.
八福田中(팔복전중)에 看病福田(간병복전)이 제일 이라.
여덟 가지 복전 가운데 간병하는 복전이 제일 복전이다. 여덟 가지 복전이 있지요.
廣路義井(광로의정). 우물을 파서 갈증을 면하게 해주는 것도 복전이고,
建造(橋梁(건조교량). 깊은 물에 다리를 놓아서 사람들을 건너다니게 하는 것도 복전이고, 治平險路(치평험로). 험한 길을 닦아서 사람들을 다니게 하는 것도 복전이고, 孝養父母(효양부모).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복전이고,
佛法僧(불법승). 삼보를 공경하는 것도 복전이고,
給事病人(급사병인). 병든 사람을 간호해 주는 것도 복전이고,
救濟貧窮(구제빈궁). 빈궁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도 복전이고,
無遮法會(무차법회)를 열어서 공양을 시키는 것도 복전이고, 이것이 8복전인데요.
8복전 상이라는 것이 또 하나 있어요. 8복전이 있고, 8복전 상이라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요. 불 복전ㆍ법 복전ㆍ승 복전. 불ㆍ법ㆍ승ㆍ三寶(삼보). 세 가지가 다 복전인데, 공경을 받아야할 존재다 해서 敬田(경전)이라고 그러고요. 부모와 사승. 이것은 우리가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恩田(은전)이라고 그러고요. 빈궁한 사람.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ㆍ축생들. 이것을 잘 돌봐주는 것은, 悲田(비전)이라고 그러고요. 자비의 밭이다 이 말이지요.
아무튼 간에 양쪽에 다 간병 복전은 다 들어 있어요.
梵網經(범망경)에는
팔복전중에 간병복전이 제일 복전이다 그랬지요.자비스런 마음으로 수호해줄 것이며,
見賓客(견빈객)이어든 須欣然迎接(수흔연영접)하며,
손님을 보거든 欣然히 迎接하라 이 말입니다. 미운 사람이라도 欣然히 迎接하라 이 말입니다. 반갑지 않은 사람이라도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그 손님들을 欣然迎接 하는데서 말하자면 지족암(일타 스님이 계시던 곳) 이미지가 살고 안 살고가 있는 것이니까요. 옛날에 한암스님이나 동산스님이나 이런 스님들은 보살들이 오든지 객중이 오든지, “밥 먹었느냐?” 하고, 다 그렇게 묻거든요. 들어가라 하고 방 따뜻하냐 하고 다 그렇게 살펴주거든요. 어느 방에 들어가든가 말든가 밥 먹든가 말든가 누가 오라고 했나? 이래가지고 손님을 푸대접 한다는 것은 집을 가질 자격이 부족한 것이다, 그 말입니다. 암자를 맡아가지고 살든가 자기가 주지노릇 하는 이상에는, 어떤 손님이 왔던지 欣然迎接을 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밑의 사람이 잘못하면 주지가 욕먹는 것이지요.
欣然迎接(흔연영접)을 아니하려면 지족암 살 자격이 없으니까 살지 말아야지요. 괴로움이 많고 귀찮더라도 欣然迎接을 해야 되는 겁니다. 손님에 대해서 어쨌든지 간에 싫어함으로써 망하는 절이 옛날부터 많거든요. 통도사 너머에 간월사 라고 하는 큰 절이 있었는데, 객중을 자꾸 싫어하니까 객중이 “주지스님 소원이 뭡니까?”
“당신 같은 시시한 사람들 자꾸 제발 아니 왔으면 좋겠다.”이러니까 “그래요? 그러면 저~ 일주문 앞에 넓적한 저 바윗돌만 깨뜨려 버리면 손님 안 올 겁니다.” 그래서 바윗돌을 징으로 깨뜨렸더니, 거기서 학 두 마리가 푸르르 날아가더랍니다. 날아가고 나니까 불이 나고 해서 간월사는 대번에 망해 버렸지요.
그 학 두 마리가, 한 마리는 통도사 선자바위 속으로 들어가고,
한 마리는 범어사 두쥐재 속으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범어사 뒤에 두쥐재가 있거든요. 그 속으로 들어갔으니 범어사는 부자가 되고, 통도사가 만석군이 되었어요. 간월사는 완전히 망해 버렸거든요. 완전히 없어져버렸어요. 간월사판이 경판도 많고, 간월사 큰 구시, 되게 큰 구시. 통도사에도 있고, 석남사에도 가있고, 범어사에도 가있고 그렇지요. 전부 간월사 구시 입니다. 간월사라고 써져 있어요. 손님을 푸대접해가지고 절망했다는 그런 전설 가진 절들이 많아요. 그리고 빈대 때문에 망했다는 절도 숫하고요.
옛날에 그런 절들이 있어요. 그래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 도리로써,
사람이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은 절 가지고 있을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미운 사람이든 고운 사람이든 적당하게 잘 대접해서, 밥도 잘 먹여서 보내야 옳은 것이고, 정말 밉상한 놈이 있거든요. 성질 같아서는 이놈의 손을 당장 몽둥이 가지고 두드려 패서 내쫓고 싶은 생각도 있고, 고래고래 고함질러서 당장 보따리 쫓아내버리고 자동차 유리 몇 장 깨버리면 지까짓 놈이 안 도망가고 견디나요? 그럴 수도 있기는 있겠지만, 그래봐야 내 몸만...
좋을 턱이 있나요? 그래 놔도 기분 나쁘지요. 때가 되면 다 되겠지 하는... 선방에 열흘만 배기면 인간 되는 것 아닙니까? 사람이 열 두 번 되는 것이니까요. 미운 놈이라도 그냥 가만히 놔두면 때가 되면 다 제대로 되는 겁니다. 밉상스러운 사람이 와서 가지도 않고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저 녀석 왜 안 가나?’해도 때가 되지 않았는데 억지로 쫓으려면 그것 시끄러워요. 시끄럽고 기분도 안 좋고요. 때가 되면 다 가게 되어있어요. 때가 되면 오게 되어있고요. “내가 가면 어찌 사는가 보자.” 해도, 인연이라는 것이 다 그렇게 있는 것이니까 성급하게 처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자비스러운 마음. 흔연한 마음으로 사람을 상대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逢尊長(봉존장)이어든 須肅恭廻避(수숙공회피)하라.
尊長을 만나거든 마땅히 엄숙히 공손히 길를 피하라. 높은 어른을 만나면 딱~ 하니 肅恭廻避 해야지 어른하고 딱~ 하니 맞서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외나무다리에서 ‘네 가 비켜? 내 가 비켜?’ ‘네 가 비켜? 내 가 비켜?’ 하고 싸우면 안 된다 이 말이지요.
공자님이 三綱五倫(삼강오륜)을 만들 때, 다섯 가지 영물들을 보고서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서 삼강오륜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제일 처음에 父子有親(부자유친)하고, 아버지와 자식은 친함이 있고,
君臣有義(군신유의)하고, 임금과 신하는 의리가 있어야 되고,
夫婦는 有別(부부유별)하고, 부부 간에는 서로 친한 가운데도 예의가 있어야 되고, 朋友有信(붕우유신)하고, 친구끼리는 서로 믿음이 있어야 되고,
長幼有序(장유유서)라. 큰사람하고 작은 사람하고는 질서가 있어야 된다.
이것이 오륜인데요.
호랑이가 새끼를 가질 것 같으면, 10리 안에 있는 물건은 토끼 한 마리도 안 잡아먹는답니다. 자기 새끼를 사랑하는 뜻에서요. 새끼 낳고 나서야 잡아먹지, 굶고 새끼만 품고 있다는 겁니다. 새끼를 품었을 때는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다른 짐승들을 해치지 않는답니다. 父子有親이라.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라 이겁니다.
벌떼들이 여왕 벌 하나를 위해가지고 하루 종일 노력을 하거든요.
여왕벌을 기가 막히게... 여왕벌이 죽으라 하면 죽거든요.
君臣有義라. 임금과 신하는 그와 같이 의리가 있는 것입니다.
벌떼들을 보고 君臣有義를 정했대요.
당나귀ㆍ말들은 새끼를 갖기 위해서 발정기에, 딱 그때만 교미를 한다는 겁니다. 말들은 지 4촌까지 알아본답니다. 덮어놓고 아무나 않는답니다.
夫婦有別이라, 어떤 놈은 마누라가 임신을 했는데, 마누라가 곁에 못 오게 한다고 상사병이 생겼다고 하든가 어쨌다고 하든가 그랬답니다.
朋友有信이라, 개미떼들이 서로서로 맞잡고 물건을 끌어들이거든요.
그것을 보고 친구들 끼리 서로 믿음을 갖고...
기러기 떼들이 다 큰놈 작은 놈이 질서를 지키고 날아가거든요.
그것을 보고, 長幼有序라. 큰놈하고 어린놈하고 딱~ 질서 있는 것을 보고 長幼有序라고 하는 오륜을 정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尊長(존장)을 만나거든 肅恭廻避(숙공회피)하라.
지팡이를 짚고 다닐 때 자기보다 큰사람. 어른을 보면 지팡이를 끌어안고, 지팡이를 내버릴 수는 없고요. 지팡이를 끌어안고 인사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그냥 지팡이를 짚고 인사를 하고, 또 자기 아랫사람. 처자. 밑의 사람을 만나면 직~ 지팡이를 끌고서나가서 얘기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다 일종의 지팡이를 갖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어른을 만나면 언제든지 공손한 뜻을 표시해야 된다는 겁니다.
辦道具(판도구)호대 須儉約知足(수검약지족)하며,
道具를 마련하되, 道具라고 하면, 자기가 도 닦는데 있어서 필요한 기구가도구 아닙니까? 바느질 그릇에 바늘ㆍ실ㆍ가위 이런 것이 다 도구이고,
발우대ㆍ가사ㆍ장삼. 이것이 다 도구지요. 우리한테 소요되는 물건들은 다 도구 아닙니까? 그런 것을 마련할 때에, 辦자를, 어떻게 모두 마음에 들지 않게 모두 해놨더군요. “판단하되” 그랬는데 판단은 무슨 판단입니까?
옳은가? 그른가? 그것이 판단 아닙니까? “판단” 이 아니고, 이것을 잘 “마련한다.” “갖춘다.” “辦公費(판공비)” 라고 그러잖아요. 판공비. 대중의 공물을 위해서 마련하는 돈. 그것이 판공비 아닙니까?
“판별한다” 고 할 수도 있고, “판결한다.” “장만한다” 이 말입니다.
道具를 장만하되, 그런데 다른 이들은 “道具를 장만하되” 하는 것을 사중 물건을 주로 많이 얘기 했대요. 사중 물건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개인적인 얘기입니다. 자기 소지품을 장만할 때, 儉約을 知足(검약지족)하라 이 말입니다. 검소하고 약소한 것으로써 만족을 삼으라 이 말입니다. 이만하면 좋지 꼭 좋은 것만 갖고, “시원찮은 것은 나는 안 가지겠다.” 이러지 말고, “이 정도면 좋다.” 이정도 몇 천 원짜리, 몇 만 원짜리면 되는 것이지, “100만 원짜리 아니면 나는 안 쓰겠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뭣이든지 이 기구를 장만할 때에 꼭 고급으로만 하려고 하지 말고, 儉約한 것으로, 검소하고 약소한 것으로써 ‘이만 하면 좋다.’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 자세를 그렇게 가지라.
여기까지가 초심의 일반적인 총체를 다 얘기한 것이라는 겁입니다.
그 다음에는 식사하는 얘기. 예불하고 기도하는 얘기. 그 다음에 법문 듣는 얘기하고 마지막 결론지어서 초발심학인문이 끝나거든요.
齊食時(제식시)에 하는 이것은 공양하는 얘기 아닙니까?
住祠堂(주사당)호되 하면 사당에 주 할 적에, 대중처소에, 강원이나 선방에 주 할 적에 坐臥越次(좌와월차)하지 말어라 하는 그런 얘기가 있고요.
그 다음에 赴焚修(부분수)호대 예불하고 기도할 때 하는 주의 법.
그 다음에 若遇宗師(약우종사)의 陞座說法(승좌설법)이어든 할 적에는 법문 듣는 법이고요. 거기까지가 끝이고요. 마지막은 다 결론이거든요. 마음의 자세거든요. 초심에 그렇게 구담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거든요.
十八種物(십팔종물)이라는 것이 그 당시는 했지만, 지금은 꼭 다 해당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물 거르는 주머니인 녹수랑 같은 지금 여기서는 필요 없잖아요. 그 쪽에는 물이 나쁘니까요. 흙탕물 같은 것을 물주머니에다 부어서 걸러서 벌레 같은 것을 다 정수 시켜서 먹으라는 이런 말인데, 지금이야 그럴 필요는 없지요. 또 향로합 까지 다 가지고 다니라 그랬는데,
옛날에는 선향이 아니고 가루향이기 때문에 향합이 필요하지요.
또 옛날에는 원래가 큰스님한테 인사를 드릴 적에는 지금은 덮어놓고 절 하지만, 향로를 탁~~ 들고 와서 앞에다 놓고, 향을 올리고 절하는 그것이 본래의 예의입니다. 칼. 족집게 같은 것이 十八種物 가운데 그런 것이 다 드는데 그것이 다 도구입니다.
그때, 그때 따라서 필요한 물건들이 다 도구겠지만,
香罆(향관) = 차 끓여먹는 차 종반 한 개. 차관 한 개.
繩床(승상) = 돗자리 한 개.
斯此之外(사차지외) = 이것 외에는 更無所貪(갱무소탐) = 다시 욕심낼 물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그런 말씀을 했거든요.
繩床香罆은 坐道助具(좌도조구)라. 도를 自了(자료)하는 도구가 된다 이 말입니다. 斯此之外에는 更無所貪이라. 이것 외에는 다시 탐욕 할 바가 없나니, 慈雲懺主(자운참주)의 발원문 가운데 그런 것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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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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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福田中(팔복전중)에 看病福田(간병복전)이 제일 이라.(給事病人)...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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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께서 구수한 옛 이야기 들려주시듯 하십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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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대원성 님! 수고하셨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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