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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見諸衆生 爲生老病死憂悲苦惱之所燒煮 亦以五欲財利故
견제중생 위생로병사우비고뇌지소소자 역이오욕재리고
受種種苦 又以貪著追求故 現受衆苦 後受地獄畜生餓鬼之苦
수종종고 우이탐착추구고 현수중고 후수지옥축생아귀지고
若生天上 及在人間 貧窮困苦 愛別離苦 怨憎會苦
약재천상 급재인간 빈궁곤고 애별리고 원증회고
如是等種種諸苦衆生 沒在其中 歡喜遊戱 不覺不知 不驚不怖
여시등종종제고중생 몰재기중 환희유희 불각부지 불경불포
亦不生厭 不求解脫 於此三界火宅 東西馳走 雖遭大苦 不以爲患
역불생염 불구해탈 어차삼계화택 동서치주수조대고 불이위환
見諸衆生이 爲生老病死憂悲苦惱之所燒煮하며
모든 중생들이 生老病死 憂悲苦惱의 거기에 불타고 있는 것을 보며
亦以五欲財利故하며 受種種苦하며
또한 다섯 가지 욕망과 재물과 이익을 쓴 故로, 그것을 위한 故로 그런것 때문에 가지가지 고통을 받는 것도 또한 본다.
가만히 보니까 중생들이 生老病死 憂悲苦惱 거기에 불이 타고 있고 五欲 안, 이, 비, 설, 신 이것으로써 온갖 눈을 좋은 거 볼려고 하고 귀는 좋은 수리 들을려고 하고 일체가 다 몸은 부드러운 것 걸치려고 하고 더운 것, 추운 것 싫을려고 하고 五蘊으로써 하고자 하는 그런 것. 그걸 위해서 끊임없이 그렇게 우리가 예를 들어서 부자가 됐는데도 항상 배고프죠. 항상 헐떡거리는 거라.
지금 50년전하고 지금하고 비교하면은 세상의 그 경제적 발전이 1000배가 넘어요. 1000배, 50년전하고 지금하고 경제발전이 1000배가 넘습니다. 100배 넘게 더 잘살아요. 어떤 건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도 있습니다. 무역수지같은 거 예를 들어서 수출같은 거는요 4000배. 4000배나 더 많이 해요. 하여튼 뭐 100보 양보한다하더라도 1000배를 더 잘삽니다. 그래도 지금 그때도 배고프고 그때도 모자란 거 많고 그때도 부족한게 많은데, 지금도 배고프고 지금도 모자란게 많고 지금도 어려움이 많고 그래요. 이거 끝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욕심이 있는 한 끝이 없어요. 욕심이 있는 한 끝이 없습니다. 그 저기 저 선진국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잘 사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뭐 항상 만족하고 아무 불만이 없고 그래야 될거 아니요. 안그렇잖아요. 오히려 더하잖아. 한국 사람이 제일 선망하는 국가가 미국아닙니까? 거기가 더 한 거요 더. 거기 사람들 더 배고파. 마음의 배가 더 고파. 더 해야할게 더 많아.
그래 이게 불교적 관점과 세속의 관점이 차이가 이렇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걸 이제 중화를 시켜야돼. 중화를 잘 시켜서 중도적으로 우리 불자들은 살아야됩니다. 그게 이제 불교에서 배운 지혜에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어도 된다. 뭐 산중에 사는 사람도 최소한의 먹을 것은 필요한데, 지금 이 세상에 아이들 키우고 뭐 남 사는 거 만치 살려면은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갖추고 살아야 되는게 맞아요. 그건 갖추고 살아야 되는 거야.
그런데 불자는 지금 내가 말씀드린‘우리 욕심이 있는 한은 끝없이 배고프고 끝없이 부족하다.’란 이 사실도 또한 알고 살아야 돼. 그래서 그것을 잘 중화시켜서 중도적으로 우리가 조화를 이루면서 살 줄 아는 것. 열심히 일도 하고 열심히 돈도 벌면서 그러면서도 또한 우리 욕심이 이게 다가 아니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정말 마음이 편하고‘지족(知足)이 제일부(第一富)라.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제일의 부자다.’라고 하는 이러한 도리도 알고 살아야 돼. 그걸 중도(中道)라고 하는 거요. 그걸 중도라고, 중도적인 삶이라고 하는게 그렇게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 병신되게 살라고 하는 게 불교가 아니에요. 돈도 열심히 벌지만은 그렇다고 그게 다가 아니라고 하는 사실도 잘 알고 살아. 그래서 그야말로 헌신짝처럼 미련없이 버릴 수도 있는 그런 어떤 그 크고 넓은 그 마음자세도 갖추고 그러면서 또 한편 돈도 벌고, 그러면 그런 사람이 돈 버는 것은 달라요. 자세가 다른 거라. 거기에 목을 매지 않는다고, 이게 아니구나 싶을 때 탁 놓을 줄 알아. 그런데 그런 어떤 철학이 없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은데도 기어이 거기 매달려가지고 끝까지 이제 패가망신하고 완전히 망칠때까지 그걸 붙들고 늘어지는 거야. 그 차이가 있습니다. 이거 꼭 배워둬야 돼요. 완전히 망칠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거라.
근데 불교좀 공부한 사람은‘에이 이게 뭐 다가 아닌데 뭐 이까짓거 뭐라고 그냥 최소한 뭐 굶지 아니하고 헐벗지 아니하면 되고 정 뭐 옷 없으면 저기 누가 갔다 버린거라도 주워 입지.’하는 최소한도 그런 각오가 딱 돼있는 사람은 그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망하질 않습니다.
그래 이제 아까 부처님의 어릴때하고 내 어릴때하고 차이를 이야기했듯이, 세상을 보는 눈도 사람따라서 천차만별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대승경전을 공부하면서 부처님의 그 지혜를 조금이라도 억만 분의 일이라도 내 것으로, 내 살림살이로, 내 인격으로 만든다면 그런 어떤 사고, 그러 어떤 그 사상과 견해도 갖추고 있을 필요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이 부처님은 그러한 모든 그 우리가 그 앓고 있는 문제들을 전부 다 보고 다 안다 이거여. 그래서 五欲과 財物과 利益을 위한 까닭으로 가지가지 고통을 받으며
又以貪著追求故로
貪着하고 追求하는 까닭으로, 끝없이 탐착하고 끝없이 추구하잖아요. 아무리 많아도 또 탐착하고 아무리 많아도 또 추구하고 그렇게 하는 까닭으로
現受衆苦하고 後受地獄畜生餓鬼之苦하며
눈 앞에서 여러 가지 눈 앞에서 환하게 여러 가지 고통을 받고 뒤에는 가서 地獄의 고통, 畜生의 고통, 餓鬼의 그런 고통을 또 받으며
若生天上커나 及在人間에 貧窮困苦와
만약에 천상에 태어나거나 혹 인간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貧窮困苦해. 그러니까 잘 살아도 천상이라고 하는 곳은 아주 보통 평균수준이상으로 살아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야. 困苦 천상에 태어나도, 여기 이제 인간에 태어나도 하는 것은 보통 평균수준이고 그런 뜻입니다. 天上은 평균수준보다 더 잘살아도, 이런 말이야.
예를 들어서 무슨 저기 24평 아파트가 평균수준이라면은 34평에 살아도, 이런 말이라. 그래도 괴롭게 생각하는 거요. 貧窮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困苦 고뇌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 그런 고통과 그 다음에 그 뿐인가?
愛別離苦와 怨憎會苦인
애착이 가는 사람들하고 이별하는 고통 또 미운 사람‘아 저거하고 안 봤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그 한참 안보더니 어떻게 우리 아파트에 이사를 왔어. 하이고 죽겄어.’怨憎會苦 그 참 큰 고통이거든 그렇다고 또 그 어려운 이사를 말이야 손해까지 봐가면서 이사를 할 수도 없고, 이런 것도 있다구요. 살다보면은, 愛別離苦있고 怨憎會苦있고
如是等種種諸苦衆生이 沒在其中하야
이와같은 등 가지가지 여러 고통의 중생들이 그 가운데 전부 빠져있다. 우리 현실 이 사바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속에 전부 빠져있어서 그러면서 또 그게 좋다고
歡喜遊戱하며
불 속에서 아이들이 장난치는 것을 이렇게, 우리가 이게 이 세상에서‘아이고 뭐 살만하지 뭐’금방 잊어버리고 이렇게 사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 있으면서, 우리가 다 그런 속에 있잖아요. 그러면서 또 歡喜遊戱하며
不覺不知하고 不驚不怖하며 亦不生厭하고 不求解脫하며
깨닫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두려워도 아니해. 두려워도 아니하고 또 싫어하지도 아니해. 싫어한 생각도 내지를 아니하고 거기서 벗어날려고도 구하지를 아니해.
별의별 고통이 있는데도 그것을 그냥 무뎌가지고 벗어날려고 하질 않는다 이거여. 그러니까 부처님은 영혼이 아주 해맑은 분이고 아주 여린 분이니까 그런 어떤 그 벌레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서도 자기의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가슴에 멍이들어서‘어떻게 하면 저런 삶과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이런 생각을 한거요. 그러니까 그 영혼이 천지차이거든, 같은 영혼을 가지고도
於此三界火宅에 東西馳走하야
이 삼계화택에서 동으로 서로 내달리면서 날뛰고 논다 이거야.
雖遭大苦나 不以爲患이라
비록 큰 고통을 만나기는 했으나 그것을 근심이라고 여기지 아니해. 환란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해.
그 누가 대개 한 번 아프면은‘아 이거 생사해탈 얼른 해야지. 뭔가 지혜의 눈을 한 번 떠야지.’하는‘더 이상 아프기전에 지혜의 눈을 떠야지.’하는 그런 각오를 하나씩 해야되는데, 그 한 번씩 대개 아프고 나면은 고런 소득이 있어야 돼요. 그런데 아플때만 그러다가 나으면 그만 잊어버린다. 외국에 여행갔을땐‘돌아가면 틀림없이 내가 영어 할끼다.’이렇게 계획세우는 거야. 인천공항에 내리면 그때부터 잊어버린다. 조금 멀리가는 사람은 거기서 이제 영어학습하는 책 몇 권 사가지고 갔다놓고는 그냥 잊어버리고 또 어떤 사람은 그 한 페이지, 첫 페이지 이렇게 열심히 보다 잊어버린 사람도 있고 별별 사람들, 다 경험이 있는 모양이야? 웃는 거 보니까
그와같이 우리가 아플때는‘하 내가 이번에 이 병을 낫고나면 누구한테 잘못한것도 가서 사과하고 누구한테 빚진것도 얼른 갚고 또 참 마음도 넓게 쓰고 잘해야지. 남편한테 잘하고 자식들에게 잘하고 아내한테 잘하고 이웃에도 잘하고 해야지. 절에도 가서 그때 시주할려고 했던 거 마저 해야지.’이 생각하는데 그만 병 낫고나면은 다 잊어버립니다. 다 잊어버려.
참 부처님 그래 잘 알지. 이 보십시오.‘東西馳走해서’이리저리 날뛰면서‘雖遭大苦나’비록 큰 고통을 만나나‘不以爲患이여’환란으로 여기질 아니해 그만.
78 舍利弗 佛見此已 便作是念 我爲衆生之父 應拔其苦難 與無量無邊
사리불 불견차이 변작시념 아위중생지부 응발기고난 여무량무변
佛智慧樂 令其遊戱
불지혜락 영기유희
舍利弗아 佛見此已하시고
사리불아 부처님이 이러한 것을 보고 나서는, 이러한 상황을 중생들의 이러한 상황을 보고 나서는
便作是念호대 我爲衆生之父라
곧 이러한 생각을 하대. 나는 중생의 아버지다 말이여.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어요.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런데 마음을 이렇게 바꾸어가고 이렇게 훌륭한 성인이 되니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요.
내가 아까 이야기한 대만의 그 스님도, 증엄스님이지 증엄스님. 증엄스님도 뭐 옛날에 처음에 태어나서, 그런 생각은 했더라구요. 자기 하신 말씀에보니까. 그 모든 사람들이 다 바구니들고 시장에 가서 장을 봐오잖아요.‘야 저 바구니들고 나도 시장에 가서 장을 봐오면은 그런 그 보통 아낙네가 돼야 된다 말인가?’이런 고민은 했어. 그리고는 중이 됐어. 그리고는
그리고 지금은 그 바구니에 대한 자기 어릴때 생각을 또 하는거야.‘나는 세상 사람들을 다 담는 큰~ 바구니를 장만했다.’그게 자기 마음이다 이거야. 자기 마음. 어릴때 출가하기 전에는 세상의 그 아낙네들처럼 가서 장을 봐가지고 그 장 본 물건을 담아오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지금은 온 천하 사람들을 내 이 큰~ 바구니. 마음의 바구니, 자비의 바구니에다가 다 담게됐노라고 이렇게 말을 해놨어요. 자기 법문에
참 근사한 사람아닙니까? 그 불교가 그렇게 사람을 만들어요. 특히『법화경』그 스님 다른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없어.『법화경』을 그렇게 지독하게 공부했더라구요. 번역도 하고 그랬어요.
일본에『법화경』불교가 대단하잖아요. 일본은 70%, 80%까지가『법화경』불교입니다. 그래서『법화경』해석이 좋은게 여러 수백 가지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 스님도 그때에 벌써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분이라 그래노니까 일어를 잘 알아가지고, 총명한 아가씨였어. 그래가지고 일어를 다 공부를 해가지고 일본어로 된 좋은 번역본을 중국어로 번역을 한 그런 경우도 있고 하더라구요.
이런 생각을 하대. 나는 세상의 아버지다. 중생의 아버지다.
應拔其苦難하고 與無量無邊佛智慧樂하야
응당히 꼭 당연히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다 뽑아주고 뽑아내고 한량없고 가이없는 佛智慧의 즐거움을 주어서. 與자는 뭐 요즘 무슨 증여한다. 증여세할 때‘여’자 이 여자써요. 준다 이 말이여. 줄 여(與)자여. 더불 여자도 되지만 준다는 뜻입니다. 한량없고 가이없는 부처님의 지혜의 즐거움을 주어서
令其遊戱호리라
그들로 하여금 遊戱 거기서 佛智慧 부처의 지혜의 즐거움을 가지고 즐겁게 놀도록 내가 해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당신은 부처가 됐으니까‘하~ 이 경지 이런 밝은 지혜의 눈을 가진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조건을 가지고 있어. 불성(佛性)이라고 하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모두 이것만 일깨워줄 것만 같으면 전부 나같이 될텐데 왜 그렇게 못하는가?’이게 안타까워가지고 그렇게 되도록 해주는거야. 그렇게 하겠다. 나는 아버지가 돼서 아들들에게 자식들에게 전부 그렇게 하는게 당연한거다. 이런 말이지.
79 舍利弗 如來復作是念 若我但以神力及智慧力 捨於方便 爲諸衆生
사리불 여래부작시념 약아단이신력급지혜력 사어방편 위제중생
讚如來知見力無所畏者 衆生不能以爲得度 所以者何 是諸衆生
찬여래지견력무소외자 중생불능이위득도 소이자하 시제중생
未免生老病死 憂悲苦惱 而爲三界火宅所燒 何由能解佛之智慧
미면생로병사 우비고뇌 이위삼계화택소소 하유능해불지지혜
舍利弗아 如來復作是念하대
사리불아 여래가 다시 또 이러한 생각을 하대
若我但以神力及智慧力으로 捨於方便하고 爲諸衆生하야
내가 만약에 내가 다만 神力과, 아주 뛰어난 신통력과 지혜의 힘으로써 방편을 버리고 중생들을 위해서
讚如來知見力無所畏者면
여래가 가지고 있는 그 知見. 지혜란 뜻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견과 힘과, 여래의 힘과 또 여래의 無所畏 여래가 두려워하는 바가 없는 그런 것들을 만약에 찬탄한다면은,“아 부처는 이런 거야. 부처의 능력은 이런 것이야.”라고 그것만 찬탄한다면은
衆生不能以爲得度리라
중생이 능히 이것으로써 제도를 얻지 못하리라. 그 말이요. 그것만 가지고 계속 부처님 경지만 가지고 찬탄하면은 제도를 못하는 거요.
그러니까 내가 이제 그 증엄스님 이야기도 할때 늘 염려스러운게 있어요.‘그~ 나는 감동하는데 그 스님 이야기가 혹시 먹혀들지 아니하고 거기에 오히려 반감을 일으키면 어쩌나?’하는 그런 염려가 내 늘 들어. 이사하게, 들면서도 나는 감동을 하니까 하고 싶어서 하는 거요. 하고 싶어서 하지만은 그렇게 이제 반감이 들 수도 있다 이거여. 반감이 들면 오히려 안한이만 못하지.
여기 부처님도 그걸 염려한 거야.“아 부처의 경지는 이런거야. 부처의 지혜는 이런거야.”力과 無所畏 이런 것만 가지고 자꾸 부처의 경지만 이야기하면 중생들이‘아이구 그건 뭐 부처의 이야기지. 우리는 제도를, 그건 우리에게는 해당이 안된다.’이 생각을 하는 거죠. 이것으로써는 제도를 얻지 못하리라.
所以者何오 是諸衆生이 未免生老病死와 憂悲苦惱하고
까닭이 무엇인고? 모든 중생이 生老病死와 憂悲苦惱를 면치못하고
而爲三界火宅所燒어니
삼계화택에서 타고 있는 바가 되거니. 고통속에서 빠져있다 이거여.
何由能解佛之智慧리오
무슨 까닭으로써 능히 부처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참 정말 부처님의 마음이, 배려하는 그 마음이 넓어요. 중생을 배려하는게 그리고 부처님 지혜만 이야기하면은, 우리는 지금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뭐 불교 성불이니 무슨 수행이니 무슨 그 사경이니 무슨 경전공부니 무슨 뭐『법화경』이 아무리 좋다한들, 아 지금 먹고 살기 바쁘고 한데 뭘 그런 걸 이야기하느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이겁니다. 사실 그렇거든
그러나 공부하러 온 사람들은 벌써 그런 수준은 넘어섰어. 그러니까 이제 어느정도는 수준이 올라섰으니까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다 뭐 실천은 못해도 먹혀들기는 한다 말이야. 안 그러면 이거 참 불교라고 하는 것이 이야기하기가 곤란한 종교에요. 곤란한 종교라.
그래서 부처님도 꾀를 낸 거요. 말하자면 방편을 쓴 것입니다. 부처님 지혜만 가지고 당신 수준의 이야기만 하면은 절대 안된다 하는 것을 아주 철저히 알았어요. 왜냐? 중생들 수준보니까 지금 먹고 살기도 바쁜데, 여기에는 그 먹고 사는 이야기보다는 고통, 고통받는 것이 첫째 문제니까 그 고통을 해결해주는 방법부터 이야기해줘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겁니다. 그래서
80 舍利弗 如彼長者 雖復身手有力 而不用之 但以慇懃方便 勉濟諸子
사리불 여피장자 수부신수유력 이불용지 단이은근방편 면제제자
火宅之難然後 各與珍寶大車 如來 亦復如是 雖有力無所畏
화택지난연후 각여진보대거 여래 역부여시 수유력무소외
而不用之 但以智慧方便 於三界火宅 拔濟衆生
이불용지 단이지혜방편 어삼계화택 발제중생
爲說三乘 聲聞辟支佛佛乘 而作是言
위설삼승 성문벽지불불승 이작시언
舍利弗아 如彼長者가 雖復身手有力이나
사리불아 저 장자가, 저 장자가 비록 몸과 손에 힘이 있긴하지만은
而不用之하고 但以慇懃方便으로
그것을 쓰지를 않고 그 힘을 쓰지 않고 다만 이 은근한 방편으로써, 은근한 방편으로써
勉濟諸子火宅之難然後에 各與珍寶大車인달하니라
모든 아들들이 화택의 難에서, 화택의 환란에서 면하게 힘써 면하게 한 연후에사 각각 큰~ 수레 그것도 온갖 보배로써 잘 꾸민 그렇게 훌륭한 수레를 준 것과 같이, 저 앞에서 그런 이야기 먼저 있었어요.
如來도 亦復如是하야 雖有力無所畏나 而不用之하니라
그래도 또한 다시 그와같아서 비록 힘과 無所畏가 있기는 있지만은 그것을 쓰지를 않고, 그런 신통력을 쓰지를 않고
但以智慧方便으로 於三界火宅에 拔濟衆生하야
다만 지혜방편력으로써 삼계화택에서 중생들을 일단 拔濟 뽑아서 건저 내가지고서 그러기 위해서 이제
爲說三乘인 聲聞辟支佛佛乘하리라하고 而作是言하대
삼승을 위하야 삼승을 설하는 성문, 벽지불, 불승을 설하리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이런 생각을 하대
여기에서 성문, 벽지불, 불승했는데 이 佛乘에는 문제가 있는 용어다 그랬어요. 여긴 보살승(菩薩乘)이라고 들어가야 딱 맞는데 두 번 그런 대목이 있어요. 요 밑에도 또 금방 나옵니다. 성문, 벽지불, 보살 이런 수준의 불교를 가르쳐야 되겠다라고 하고 이런 생각을 하대
81 汝等 莫得樂住三界火宅 勿貪麤弊 色聲香味觸也 若貪著生愛
여등 막득락주삼계화택 물탐추폐 색성향미촉야 약탐착생애
則爲所燒
즉위소소
汝等은 莫得樂住三界火宅하고
汝等은 즐겁게 三界火宅에 머물지 말고, 지금 불나고 있는 이 집에 머물지 말고
勿貪麤弊인 色聲香味觸也하라
麤弊인 저 色聲香味觸 이런 것에 탐하지 말고 말라.
若貪著生愛면 則爲所燒리라
만약에 그것을 이제 色聲香味觸 이런 것에 탐착하고 애착을 낼 것 같으면은 곧 불타는 바가 되리라.
그러니까 너무 어떤 명예, 물질 그 여기 이제 나와있네요. 眼耳鼻舌身 色聲香味觸 그러니까 안이비설신을 대상은 색성향미촉이거든요. 그것만 어떻게든지 그저 해볼라고 잘해볼라고 그~ 뭐 수술을 여러 수백 번하고 色 요건 또 그것도 있지만은 내색(內色)에는 그게 해당되고 그 다음에 외색(外色)은 뭐 집이니 온갖 것 물질이니 온갖 우리가 수용하고 있는 모든 물질이 전부 색에 해당됩니다. 내색은 우리 육신중에, 육신의 사대(四大)중에 내사대(內四大)라고 해가지고 육신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또 聲 香 소리도 좋은 소리, 칭찬하는 소리. 뭐 비난하고 충고하는 소리는 안들을려고 하고 아주 칭찬하고 아주 잘했다고 하는 그런 소리나 들을려고 향기도 좋은 향기만 맡을려고 맛도 좋은 맛 나는 것. 촉감도 아주 몸에 아주 촉감이 좋은 것 그리고 또 뭐 더운 거는 뭐 도저히 못견딘다 해가지고 저 에어컨 펑펑 틀어놓고, 이게 전부 觸에 해당되는거요. 내 몸에 말하자면 거슬리지 않도록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 지금 어지간히 그렇게 돼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제 貪着하고 生愛 애착을 내지요.
그래서 그런데 그만 빠져버리면 그 외에 것에 눈을 돌리지 못합니다. 그게 큰 문제에요. 사람이, 물론 뭐 먹고 자고 기본적으로 의식주는 필요하죠. 그러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식주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면은,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됐다면은 보다 더 다른 차원의 인생에 눈을 떠야 되요. 그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경공부를 하고 절에도 다니고 사경도 하고 또 뭐 불교적인 것이 아니면은 다른 문화적인 것에 눈을 뜨잖아요. 문화적인 거 그것도 역시 종교적인 차원하고 비슷하거든요. 그건 의식주하고 또 다르다구요. 의식주가 해결된 뒤라.
그 어떤 사람들은 어떤 예술에 심취한 사람은요. 정말 지지리 못사는데도 예술에 심취한 사람들이 또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상당히 존경스러운거요. 어떻게보면, 이제 그런 마음으로 이제 불교공부도 하고 하면은 이제 상당한 위치에 오를 수 있죠. 그래서
82 汝速出三界 當得三乘聲聞辟支佛佛乘 我今爲汝 保任此事
여속출삼계 당득삼승성문벽지불불승 아금위여 보임차사
終不虛也 汝等但當勤修精進 如來以是方便 誘進衆生
종불허야 여등단당근수정진 여래이시방편 유진중생
汝速出三界하야 當得三乘聲聞辟支佛佛乘이어다
汝等은 속히 삼계에서 벗어나서 마땅히 三乘 삼승인 聲聞 그리고 辟支佛 그다음에 佛乘 요것도 菩薩乘이라 해야 옳습니다. 뒤에 보살승이라고 나와요. 앞에가 계속 보살승이 나왔는데 여기 두 곳에 이렇게 불승이라고 돼있습니다. 아마 보살승이라고 할 것을 이렇게 했나봐요. 불승을 얻으며 얻을지어다. 마땅히 이런 삼승을 얻을지어다.
我今爲汝하야 保任此事하노니 終不虛也니라
내가 지금에 그대를 위해서 이 일을 책임지고 보증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그 말입니다. 여기서 保任此事라고 하는 말은 마침내 허망한 것이 아니다. 이건 내가 책임진다 말이여. 결코 허망한 것이 아니다. 이런 말입니다. 믿고 공부만 하면 된다 이거여.
뭐 한참 經공부하고 절에 다니다‘이건 무슨 소득이 있을까?’그거 그렇게 의심들때가 있거든요. 사경도하면 영험있다는데 좀 하다가 의심들고 뭐 잘 안써지고 꾀가 나거든요. 그러면 그만 그때부터는 이제 의심이 들고 하기 싫어지는 거라. 그 부처님도 그 생각이 들어서 保任此事 이 일에대해서 내가 책임진다. 보증하고 책임진다 이 말입니다.‘終不虛也니라’결코 허망한 게 아니다 이 말여. 종교적인 이 일.
참 내가 그전에 저 신륵사에 좀 살 때 거기에 어떤 그 절에 오는 어떤 거사님하고 북한서 이제 나왔는데, 여주니까 북한 사람들 더러 있드라구요. 어떻게 하면 그 사람에게 불교를 이해시킬까하고 몇 달을 그 이야기를 해도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거야. 보고 듣고 먹고 의식주 이것 이외에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거라.“그 불교 그 마음, 마음하는데 그것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고, 몇 달을 이야기했어요. 사람은 좋아가지고 절에 잘와서 절에서 스님들하고 이야기도 잘 나누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이해가 안되는가봐? 이런게
내 참 그 늘~ 참 내 자신의 법력도 안타깝고 그 분의 어떤 그 마음도 안타깝고 그런 생각을 해서 못잊고 있습니다. 우리가‘줄탁동시(啐啄同時)’그런 말 있어요. 그 저기 저 병아리가 그 알을 깨고 나올때 안에서 이제 다 이제 그 부화가 다 됐어요. 그럼 안에서 꼬로록 소리가 나요. 그게 啐이야. 그러면 어머니는 그 소리를 가만히 귀기울여 듣고 있어야 되요. 그거 놓쳐버리면 큰일나요. 놓쳐버리면 그 안에서 죽어버리는 거야. 꼬로록 소리가 날 때 이미 병아리가 완전히 병아리가 다 됐다는 뜻이라. 그럴때 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탁 찌어져야돼. 그래서 공기를 넣어줘야돼. 그래 啐啄同時란 말이거든, 동시에 이뤄져야 된다. 그런 말입니다.
그 모르죠? 잘. 꼬로록 소리 나자마자 바로 찌어줘야돼. 이제 그래야 공기를 삽입시켜줘야 거기 공기를 마시고 이제 살아나는 거요. 그러면 딱 공기만 넣어주면 지가 깨고 나가. 일일이 안 깨도 돼요. 공기만 넣어주면은 그냥 그때부터는, 만약에 그 시간 놓쳐버리면 거기서 이제 숨 못쉬고 죽어버리고 또 그 시간이 안됐는데 쪼으면 어떻게 돼? 덜 영글었는데 이건 그냥 완전히, 그거 나와서 아무쪽에 쓸모없이 그냥 죽는거잖아. 그래 생명이라는 게 이렇게 신비한 것입니다. 신비하고 또 그만치 귀중한 거야. 알고보면은
그 啐啄同時라고 이게 이제 가르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연대가 맞아야 된다. 그래 특히 이제 선가(禪家)에서,선가에서 참선을 깊이 한 사람과 선지식이 그것을 잘 살펴가지고 그래 이제 한 마디 딱 던져주면 그때 탁 눈을 뜨는거죠.
그 전에 어떤 스님이 열심히 좌선하고 있어. 좌선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까 영글었거든, 그래 그 앞에 가가지고 기왓장을 가지고 서서히 이렇게 갈았어. 소리를 자꾸 내니까 시끄럽잖아요. 그 스승인데 저걸 자꾸 가는거야. 기왓장을 자꾸 가니까 이제 제자가 공부하는데 방해를 하니까“스님 거 뭐하고 있습니까?”“아 이거 갈아서 내가 거울만들려고”“아 기왓장갈아서 거울된다는거 나 생전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그러자 옳다 됐다하고“나는 좌선해서 성불, 부처된다는 거 듣도 보도 못했다.”이러거든, 그 말 한 마디에 탁 깨친거요. 그게 이제 그 스님이 영글어있을때 해야지 영글지도 안았는데 그런 소리하면은 이게 완전히 패장이 되버리는 거라.
그러니까 병아리가 병아리 다 되기도 전에 그냥 쪼아버리면 그냥 물되가지고 스르륵 흘러버리고 마는 그대로 썩어버리고 만다고, 참 세상에 그런 신비스럽고 묘한 일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 것도 우리가 불교공부하니까 그런것까지 아는거죠.
保任하노니 終不虛也니라. 이거 믿으세요. 이 일을 내가 책임지고 보증하니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
汝等但當勤修精進이니
汝等은 다만 마땅히 부지런히 닦고 정진할지니. 그러니까 불교공부하고 사경하고 경읽고 하는 거 이거 정말 의식주에만 관심있는 사람들은 이게 이해가 안되는거라.‘그거 뭐할려고 하는고?’참 그 어떻게 할 길이 없어요. 스스로 그게 이제 정신이 이렇게 열려야지.
如來以是方便으로 誘進衆生호라
여래는 그래서 방편을 써가지고서 衆生들을 유혹한다 이거여. 중생들을 유혹해서 나아가게 하노라.
83 復作是言 汝等當知 此三乘法 皆是聖所稱歎 自在無繫 無所依求
부작시언 여등당지 차삼승법 개시성소칭탄 자재무계 무소의구
乘是三乘 以無漏根力覺道禪定解脫三昧等 而自娛樂 便得無量
승시삼승 이무루근역각도선정해탈삼매등 이자오락 변득무량
安穩快樂
안온쾌락
復作是言하대 汝等當知하라 此三乘法은 皆是聖所稱歎이며
또 이런 말을 하대. 汝等은 마땅히 알아라. 이 삼승법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이죠. 삼승법은 다 성인들이 모두 稱歎하는 바다.
사실 삼승법을 칭찬하는 게 아니거든요. 아닌데‘칭찬하는 바다.’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自在無繫라 無所依求니
자유자재해서 속박함이 없다. 얽힘이 없다. 더 이상은 이제 의지해서 구할 바가 없다. 삼승법만 구하면은 성문, 연각, 보살만되면 더 이상 구할 바 없단 말이여. 그걸로 끝이다. 졸업이다. 이렇게 말한거요.
乘是三乘하야 以無漏根力覺道禪定解脫三昧等으로 而自娛樂하면
이 삼승을 올라타서, 세 가지 수레에 올라타서 無漏 샘이 없는 출세간 법입니다. 샘이 없는 것. 그 다음에 根 오근, 力은 오력, 覺은 칠각지, 道는 팔정도 그 다음에 禪定, 解脫, 三昧等으로 스스로 이것을 가지고 즐긴다.
해탈과 삼매와 선정, 팔정도, 칠각지, 오력, 오근 뭐 거기다『법화경』읽는거, 사경하는거 또 절에 와서 절하는거. 그 법당에 와있기만 해도 즐겁잖아요. 이건 전부 의식주하고는 관계가 없는거야. 의식주하고는 관계가 없는 이런 아주 기가막힌 즐거운 세상. 정말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궁극적으로 우리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그런 그 길이 있다구요. 이것으로써 즐기도록 즐기게 될 것 같으면
便得無量安穩快樂하리라
곧 샘이 없는 無量 한량없는 편안하고 즐겁고 快樂 즐거운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三乘 이야기에요. 아직은 중간이죠. 중간, 방편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거야. 내가 여러 수천 번 이야기하지만은, 어린아이 우는 아이를 달랠려면은“호랑이 왔다.”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거죠. 호랑이한테 큰일난다 말이야. 이렇게 하는거죠. 그와 마찬가지로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은 일단 괴로움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이야기를 해가지고 거기서 고통에서 벗어나게 그렇게 이제 말하자면, 고통은 문제로 삼지 않도록 눈을 높여주는 거죠. 고통은 문제삼지 않도록 눈을 높여 주는거라.
고통은 다 있어요. 있는데 그것을 문제 삼느냐? 안삼느냐? 그 차이입니다. 고통이 없어진게 아니에요. 다 고통있습니다. 몸뚱이 가지고 있는데 고통 없을리가 있습니까? 그런데 고통을 문제 안삼아. 보다 더 높은 차원에 사는 사람은 고통 그거 문제 안삼는 다구요. 뭐 저기 잘못먹고 잘못입고 하는 거 전혀 문제 안삼아. 차원이 다르니까 차원이 다르니까. 그렇게 아셔야돼요. 우리 불자들은 거기에 긍지와 자부를 가지셔야 됩니다.“아이구 난 떨어진 옷 아무 상관없다. 나는 뭐 전세방에 살아도 아무 상관없다. 사람이 어디 그게 다냐.”보다 더 높은 차원의 가치 거기에 눈을 뜨면은 그 사실은 크게 그게 구애될 바가 없습니다.
불자들은 불교공부를 조금만 이제 하면은 거기에 대한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얼마나 큰 재산입니까? 100평 아파트에 살아도 내 허기지고 배고픈데, 전세방에 살아도 아무렇지도 않아.‘아 이『법화경』이 좋은데 오히려 뭐 그까짓거 뭐’얼마나 큰 재산입니까? 이건 뭐 수천억 재산 아니에요. 수천억 재산이야 이게. 그 다음에 의식주 최소한의 그냥 먹고 입고 잘때만 있으면 끝이야. 그 다음에 나는 더 이상 구할 필요없다야. 그 사람에게는 수천억 재산보다도 더 큰거야 이게. 불교공부가, 그런 길이 있습니다.
잘 살면서『법화경』공부 잘하면 그건 더 좋지. 더 좋지만은 그건 이야기할건 없는 거요.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한 단락이 끝나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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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知足)이 第一富라...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제일의 부자다. 고맙습니다. _()()()_
我今爲汝(아금위여)하야 保任此事(보임차사)하노니 終不虛也(종불허야)니라.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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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今爲汝하야 保任此事하노니 終不虛也니라 ...고맙습니다 _()()()_
若我但以神力及智慧力으로 捨於方便하고 爲諸衆生하야 讚如來知見力無所畏者면 衆生不能以爲得度리라..만약 내가 뛰어난 신통력과 지혜의 힘으로서 방편을 버리고 중생들을 위해서 여래의 지견과 여래의 힘과 여래가 두려워하는 바가 없는 그런 것들을 찬탄한다면 중생이 능히 이것으로써 제도를 얻지 못하리라...화풍정 님! 수고하셨습니다.._()()()_
啐啄同時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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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 덕분에 공부 잘 하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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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_()_
知足이 第一富...........
啐啄同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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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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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보았읍니다
고통은 다 있어요. 있는데 그것을 문제 삼느냐? 안삼느냐? 그 차이입니다. ...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2번째 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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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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