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숙이와 커피샵에 앉아 오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 만나면 하는 이야기야 늘 그렇지만
경숙이와의 대화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간의 이야기와 여상을 나와 재수를 하고 대학들어간 이야기...
기대하고 들어간 대학생활이란게 그냥 바쁘기만 하다는 이야기...
난, 결혼한 줄 알았어. 여자들은 보통 일찍 결혼하잖아.
"어머. 선생님도...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예요?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잖아요. 저도 하고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학교마치고 결혼하고 애낳고 키우고 살림살이하고 남편뒷바라지하고...
저희엄마가 아빠한테 하시는 모습을 보면 결혼은 여자의 무덤이란 말이 맞아요."
왜?
"저희엄마도 학창시절에 꿈이있고 미래의 소망이 있는데
부모님 성화에 결혼하셨거든요. 그걸로 끝이죠, 모...
저랑 동생 두명낳고, 애들 키우고 아빠 뒷바라지 하시고...
저도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결혼하면 저렇게 밖에 안되겠구나
하는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그러니 그러한 단순히 여자로서만 살아가는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 결혼같은거 안하겠네? 혼자사는 요자들도 많은데 그것도 괜찮지...
"그런건 아니구요. 물론 언젠가는 해야할테지만, 그냥은 하기 싫어요."
참, 내가 생각해도 경숙이를 만나 한다는 이야기가 결국 결혼으로 이어졌다.
말주변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대책도 없이 결혼이야기는 할 건 뭐람.
경숙이는 생각이 확고했다.
아직은 대학을 다니는 중이고 학교공부하느라 바쁜 지경이라
사랑이니 연애니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한다.
학교졸업 후에는 유학을 갈지, 대학원을 갈지 고민중이라고만 했다.
결혼은 한참 후의 일이라고...
경숙이가 느닷없이 묻는다.
"그런데 선생님은 결혼하셨어요?"
아니, 아직...
"어머. 왜요? 전 결혼하신 줄 알았어요. 결혼하신다는 소문도 들었고.."
엉? 그래? 그건 아니고, 그런 소문이야 소문일 뿐이지, 뭐.
"그렇군요. 선생님 사귀는 분은 안계세요? 제가 좋은 여자분 소개시켜드릴까요?"
아냐. 여자는 무슨. 언젠가 좋은 여자 만나겠지, 뭐.
경숙이는 나에 대한 생각도 아니, 남자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었다.
아직 학교를 다니니 그러려니 하였고 공부를 더하려는 계획이 있었다.
생각의 틀이 다르고 방향이 다른 여자아이에게 나는 여전히 남자가 아니었다.
더이상 할이야기도 없고 명분도 없고 계속 시큰둥한 이야기만 나누다보니
경숙이와의 만남이나 이야기도 지루하고 따분하였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피기보다 옛제자와 스승이 만나 그간의 안부인사를 나누는
만남의 광장이 되어버렸다.
서로에 대해 생각할 이유가 없어졌고
커피를 타마시려 버너에 끓인 물이 가스가 떨어져
커피물이 끓다가 만 꼴이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남들보기에 그럴싸한 모습이 하다도 없이
다소 썰렁하고 후줄근하게 생긴 모습이며
정착되지 않은 생활이며 자조적인 생각하며
나를 진지하게 생각들게끔 할만한 준비가
나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아뭏든 경숙이와 시간나면 또 만나자는 싱거운 말을 남기며
그러면서 가슴 한구석에 뚫리지 않은 허전함을 남긴 채
헤어졌다.
무슨 말을 해야하는데 생각이 나지않았다.
구약성경에 보면 천상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천상에 하느님과 그의 천사가 있는데 그가운데 악마의 무리가 있다.
악마의 우두머리 중에 사탄이란 자가 있는데 하느님과 사탄간의 언쟁이 벌어진다.
하느님과 사탄은 욥이란 사람을 두고 말한다.
하: 네가 욥이란 자를 아느냐? 나에게 충직한 자니라.
사: 그럴리가요? 하느님이 잘해주시니 마지못해 그러는거죠.
하:너는 여전히 나를 못믿는구나.
사: 당연히 못믿죠. 하느님이 그에게서 그의 재산과 가족들을 거덜내 보세요.
욥이 하느님을 믿겠는지요.
하:그려. 니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면 우리 내기를 할까?
사: 무슨 내기요?
하:욥이 죽기까지 나에게 충성을 할지 말지 말야.
네가 말하듯이 내가 욥에게 재산을 많이 주고 잘살게 하니까
나에게 충실한 지 아니면 마음이 착해서 그런지 네가 시험해봐라.
단, 그의 생명을 빼앗지는 마라.
이렇게 해서 사탄이 욥을 몹시 괴롭혀서 하느님을 떠나게 하려고 했는데
결국에 사탄의 시련이 실패로 돌아갔고 욥은 하느님께 충실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중세유럽에 민간설화로 정착된 것이 "파우스트"이다.
이때 악마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 메피스토텔레스인데
고등학교때는 하루에 그책을 독파하였고
대학시절엔 중세영어로 된 책을 읽었다.
(처음에 만들어진 것은 영국의 작가인 크리스토퍼 말로의 "파우스트"이고
나중의 것은 괴테의 "파우스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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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경숙이의 떠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영 가셔지지 않는 그을음이 가슴 한켠에 번지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늘이 뻥 뚫린 느낌.
경숙이는 대학졸업 후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러더니 그해 5월에 결혼했다. 애가 셋...
벌써 13년이나 되었으니 큰 애가 지금쯤 12살...
풋!
싱거운 웃음이 나온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마음과 몸이 피폐해졌고 영혼마저 무너져 내릴 거 같았다.
나를 잘 아는 지인이 이번에 사람들이랑 백두산에 가려고 하는데 안가겠냐고 하기에
며칠을 생각하다가 그러마 했다.
6박 7일간 백두산 여행을 하였고 그때 북경에서 "리 화"와 "까오 양"을 만났다.
계속 이어집니다.
첫댓글 그렇게 되었군요
ㅎㅎ 경숙이도 현재의 사모님은 아니었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