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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행13:22-23)
이스라엘 국기를 기억하시죠? 가운데에 ‘다윗의 별’이 있지요. 과거나 현재나 다윗을 그만큼 추앙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위대한 다윗을 22절에서 이렇게 설명하세요.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다윗을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다”고 간단히 소개하세요. 헬라어 원문과 영어 번역본에 의하면, “내 마음을 뒤따르는 사람이라”(I have found David a man after my own heart) 기록해요. 신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뜻, 당신의 생각을 다 이루기 위해, 하나님 마음을 뒤따르는 하나님 마음에 맞는 인간 다윗을 선택하셨던 것이죠.
부러운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기도가 절로 나와요. “하나님 저도 다윗 같은 사람 되고 싶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한없이 기쁘도다!’ 이런 하나님의 감격이, 저를 향해서도 터져 나오기를 원합니다. 신의 생각을 다 이루어 드리는 인간으로 살고 싶습니다.”
물론 다윗도 완벽하지는 못했어요. 하나님 마음에 맞추어 살려고 애를 썼지만, 실수도 했고 죄도 범했어요. 밧세바라는 한 여인을 범하기도 했고, 우리아라는 한 남자를 죽게도 했었어요. 자식 농사도 순탄치 못했지요. 장남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범했고, 이에 앙심을 품은 다말의 친 오빠 압살롬이 이복형 암논을 살해했어요. 심지어 그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몰아내기 위해 쿠테타도 일으켰지요. 집안에 바람 잦을 일이 없었어요.
이렇듯 부족 투성이고, 허물 투성이었으나, 그래도 하나님 눈치를 보면서 욕심을 접었어요. 그릇 행할 때가 있으면, 하나님 마음에 들기 위해, 눈물로 용서를 구했구요. 하나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허물을 감추지 않았고, 욕심을 고집부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이스라엘의 별, 다윗의 별이 되게 하셨어요.
오늘 권사님 네 분께서 은퇴를 하십니다. 삶의 우여곡절이 많으셨고, 고단하셨고, 신앙의 흔들림도 있으셨어요. 하지만, 결국엔 지금까지 믿음을 지키고, 병석에서도 하나님 마음에 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하시고 계세요.
가정에서 교회에서 희생으로 섬기다가, 은퇴하시는 권사님들을 보면, 한희철 님의 「감나무」 시가 생각나요. 「그 많은 꽃잎 떨어뜨리고도 이만큼 열매를 맺었어요. 감꽃 수두룩 떨어지고 감나무 한그루에 그 많은 감이 맺혔나니... 그 고운 꽃잎 아깝지 않을 수 있을까만 떨어뜨리고 나니 푸르고 앙징스런 감이 열리나니...」
은퇴하시는 권사님들께서는 하나님 눈치 보고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삶을 사시기 위해, 청춘의 꽃잎 떨어트렸어요. 세상 낙의 꽃잎도, 편안함의 꽃잎도, 떨어트렸어요. 눈물의 꽃잎도 수없이 떨어트렸지요. 그래서 푸르고 앙징스런 감과 같은 열매들을 맺으셨어요. 가정과 교회에 그 열매들이 농익어 홍시들이 되어 가족들과 성도들을 행복하게 하고 있어요.
그러기에 이분들을 가정의 별로, 우리 교회의 별로 세워질 것을 기대해요. 그러나 기억하셔야죠. 직분에는 은퇴가 있지만 사명에는 은퇴가 없다는 것을...
은퇴하시는 모든 분들이 계속 가정과 교회를 위해 사명자로 살아서, 저들의 가정과 우리 교회에서, 윤숙자의 별, 최종선의 별, 배문희의 별, 김길자의 별로 더욱 빛나시길 축원 드려요.
그리고 9분이 임직을 하십니다. 본문에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때, 하나님 마음에 맞아서라고 했지요. 여기 임직자 9분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 마음에 맞아서 세워지는 것이죠.
그러기에 축하드려요. 인간적으로 보면, 안수집사가 되고 권사라는 직분을 얻는 것이, 축하받을 일이 아니에요. 십자가의 혜택만 받는 맘 편한 속물(俗物)로 살다가, 십자가를 져야 할 속물(贖物)이 되어야 하기에 도리어 마음 아픈 일이예요. 그런데 축하드리는 것은, 안수집사, 권사는 하나님 마음에 맞아야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한 인간이 신의 마음에 맞았다면, 축하받아도 넉넉히 크게 축하 받을 일이죠.
혹시 ‘설마 내가?’ 생각하시나요? 혹 성도님들도 그리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다윗이 왕으로 세워질 때를 생각해 볼까요? 하나님께서 이새의 가문에서 왕을 선택하시려고 선지자 사무엘을 이새의 집에 보내셨어요. 사무엘은 이새의 여러 아들들을 살피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만한 아들을 찾았어요. 맨 먼저 맏아들인 엘리압을 보았어요. 잘생기고 풍채가 좋은 사람이었지요. 사무엘은 ‘이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감탄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었어요.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하셨어요. 사람 마음에는 들었지만, 하나님 마음에는 안든다는 것이죠.
그리고 나서 일곱 아들을 다 보았는데도,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무도 택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도 택하지 않으세요. 아무리 급해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세요.
능력을 따지고, 외모를 따지는 기준이 까다로워서가 아니예요. ‘그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중심에 있는가? 변방에 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가? 하나님을 이용할 자인가?’ 를 따져요.
Love(사랑한다)와 Like(좋아한다)에는 차이가 있죠. 등산가는 산을 사랑하지만, 광산가는 산을 좋아해요. 등산가는 산을 사랑하기에 아끼고 가꿔요. 그러나 광산가는, 산에서 금을 캐고 나면, 산을 버리고 떠나요.
하나님을 좋아는 사람은 힘들고 괴로우면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더 붙들고 교회를 더 아끼고 가꿔요. 그래서 주님도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길 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로 물었지, “네가 나를 좋아하느냐?”로 묻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뽑힌 사람이 다윗이예요. 다윗의 아버지는 다윗은, 능력도, 권위도 없는 막내라서, 왕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하고 들에 나가서 양이나 치라고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이 들판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다윗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 마음에 맞았고, 다윗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을 알았기 때문이죠.
여기 임직하시는 분이 안수집사님 권사님으로 뽑혔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죠.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우리 교회 집사님, 권사님으로 뽑지 않으셨어요. 교회가 계획을 했어도 뽑지 않으셨어요. 선거를 했어도, 교회 일꾼이 부족해서 급해도 뽑지 않으셨어요. 분명히 기억하세요. 여러분은 하나님 마음에 맞아서 세워지는 분들이세요.
바라기는 끝까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 되세요! 끝까지 하나님을 Love하세요! 36절을 볼까요?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기록해요. 숨질 때 까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었다고 증언해요.
임직 받으시는 분들! 임직 받고 나서 중간에 변질되지 마시길 바래요. 더러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가룟 유다가 그랬어요. 가장 아름다운 것이 썩으면 가장 흉한 법이죠. 제자 유다가 변질되자, 가장 흉한 자가 되었죠.
그러나 여러분 모두는 끝까지 하나님 마음에 맞추어 끝까지 아름다운 임직자들이 되시길 소망해요.
그리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인기 얻으려고 하지 마세요! 목사의 인기도 아니요, 친한 그 사람의 인기도 아니예요. 오직 하나님의 인기를 얻으십시요! 주의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소리에 흔들리지 마세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가 아니예요. ‘목사님이 어떻게 생각할까?’도 아니예요.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어야 해요.
야구선수가 타석에 올라서면 제일 먼저 누구를 봅니까? 감독을 보죠. 감독의 지시에 주목해요. 자기 마음대로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아요. 아무리 잘 치는 타자도 자기 감독 싸인을 보고 해요.
우리 모두 그런 신앙의 선수들이 되시길 바래요. 그러면 끝까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그 일꾼들이 되어 주십시요!
성도님들께 한국 교회사의 한 이야기를 하면서 권면 드려요.
경동제일교회에 성이 엄 씨인 영수가 있었어요. 영수는 지금의 안수집사 직분이예요. 이 분의 직업은 마부였는데, 철종의 사촌인 경평군의 맏아들 이재형 왕손을 모시고 다니면서 전도를 했어요. “나으리 예수 믿으시지요” 왕손이 빈정거렸어요. “예수를 믿으면 너 같은 상놈이 양반이라도 되느냐?” 엄영수가 대답했어요. “예수 믿는 도리는 그런 게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마부 노릇을 더 잘해야 합죠.” 여기에 감동을 하고, 먼저 믿은 부인의 권유도 있고 해서 복음을 믿게 돼요.
그러던 중 왕손이 자기 집 옆에 있는 인사동의 승동교회 부흥회에 가게 됐어요.
그런데 거기에 마부 엄 안수집사도 와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 사방에서 교인들이 모여왔었어요. 왕손이 너무 반가운 나머지 엄 안수집사의 손을 붙잡으며 ‘형님’하고 불렀어요. 세상에 왕손이 천민 마부의 손을 붙잡고 ‘형님’이라고 부른 거예요.
엄 영수가 놀라서 말을 하지 못하자, 왕손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예수 안에 서 우리는 다 형제가 아닙니까? 엄 영수가 나보다 연상이시니 형님이라고 부른 것이 옳지 않습니까?” 그 왕손 이재형은 나중에 승동교회의 목사가 되었어요.
성도 여러분! 임직 받으시는 안수집사님, 권사님들을 신분과 직업에 관계없이 그저 주 안에서 존중해 주시길 바래요. 주 안에서 손 붙잡아 주시고, 어깨동무 하시고, 형제자매로 살아 갈 때, 행복한 교회 될 줄로 믿어요.
말씀을 마쳐요.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1:11) 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요. 예수님께서 아직 아무런 기적도, 말씀선포도, 업적도 이루신 것이 없었는데도 이 음성을 들려주셨어요.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그의 뜻을 이루었거나 이루지 않은 것에 상관없이, 예수님 그저 ‘하나님 당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기뻐하시고 만족하셨어요.
이제 하나님의 아들로써 온갖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거쳐,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까지 순종해야 하는 예수님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려주고 싶으셨던 음성은 “그가 누구인지”그의 정체성을 알려주고 상기시켜주는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세례를 받고 난 뒤, 예수님께 들려올 목소리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사람들이 판단하는 음성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목수의 아들, 예언자, 선 생님”이었어요. 심지어는 “마귀의 자식”이었어요.
예수님 주위에 있는 모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사랑하는 제자들과 그의 형제누이들까지도 그가 진정 누구인지 알아주고 믿어주는 이들이 없는 가운데, 예수님이 끝까지 부름 받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나는 하나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 임을 믿었기 때문이예요.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에 대한 신뢰를 확신했기 때문이었어요.
복음을 믿는다는 것, 일꾼이 된다는 것은, 내가 죄인이라는 깨달음을 넘어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고 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예요.
이 세상의 삶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내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나 사명에 자신이 없을 때에도,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딸이다. 너는 내가 기뻐하는 자다”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믿고 의지할 수 있으면, 세상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세상이 나를 어떻게 몰아가도, 용기와 힘을 얻게 돼요.
우리 성도님들, 특히 임직자들, 모두 다, 누가 뭐래도, 무슨 일이 있어도, 영혼에 써레질이 되어지고, 마음에 쟁기가 파고드는 아픔이 생겨도,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자녀이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들임을 잊지 마십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세요. 좋은 성도, 좋은 일꾼들이 되실 줄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