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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지 절경속의 식당에는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들리게 마련이다. 대통령 일행이라고 어디 예외이겠는가. 초대 이승만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식당문을 열게 된 북한산성의 금강산장, 박정희 대통령을 면전에 두고 욕바가지를 퍼부었던 전주의 콩나물해장국집 욕쟁이 할머니, 서울의 교보문고 뒷켠 어느 빈대떡집은 지금도 ‘박대통령의 청와대’로 들어가던 그 맛 그대로의 빈대떡으로 손님들을 맞고 있다. 어느 대통령은 돌미나리 겉절이에 매료되어 계속 그 음식을 찾았다는 덕유산 덕유산장의 조춘옥 선생 이야기도 있다.
또 다른 한 대통령은 청주 상당산성 용봉탕을 드시다가 용봉탕보다 김치에 더 반해 버렸다고 한다. 그 후로 그 김치는 청와대 식탁에 올랐다는 일화를 남겼다. 그 대통령의 비서진은 또 다른 한 식당에서 낭패를 당했다. 하산길 대통령 점심을 위해 식당 한 켠을 막아 달라고 요청했는데, 식당 여주인은 자신의 집을 찾아오는 ‘손님 모두 똑 같은 왕’이라 그렇게는 할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지금은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한 가지 결론은 자라용봉탕을 주문했다는 그 경우 하나만을 빼고는 대통령들이 즐겼다는 음식이 모두 평범하고 소박했다는 사실이다.
♣ 예술과 사람의 향기 은은한 들풀민박
서울에서 제암산을 가자면 광주나 순천을 거치게 된다. 어느 쪽이나 비슷한 거리고 시간상으로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순천쪽으로 잡았다. 꼭 만나 보고픈 사람이 있어서였다. 순천 철도산악회 박종성(朴鍾聲) 회장이 바로 그 분이다. 산에서 만나 산친구가 된 사람이다. 박 회장은 제암산 자락 보성 출신인 회원 박채옥(朴彩玉)씨를 소개해 주었다. 취재길 반은 해결된 셈이었다. 보성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채옥씨와는 형 아우하는 사이였다. 덕분에 참 좋은 집들을 찾았다.
‘들풀민박’(061-852-0698). 간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집이다. 제암산 자연휴양림 아래 저수지 밑에다 집을 지어 놓았다. 파란 잔디가 깔린 넓지 않는 정원 한쪽에 ‘삶 어우러지기’라는 조각품이 서 있다. 집주인 선형수(宣炯秀·40)-병식(炳植·34)씨 형제 중 동생의 작품이다.
서울과 광주의 미술대학에서 한국화와 조소학을 공부한 형제가 고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작은 이상향을 조성하고 있는 곳이다. 동생의 부인 서미라(徐美羅)씨 역시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다. 집안 안살림을 총괄하는 형수 김미리(金美里)씨는 아들 ‘민(民)’이라는 이름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한다. 아빠가 작명한 이 이름에는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자는 뜻을 담았다고 했다. 이들 가족들의 사람내음을 물씬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 가족들은 형님인 형수씨가 설계해서 지은 찻집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잠자리를 내주고 있다. 예술의 향기에 짙은 사람의 내음까지 맡을 수 있는 찻집에는 은은하게 고전음악이 흐르는데 그만 주저앉고 싶어진다. 앞으로 제암산 능선이 바라다보이는 3천여 평 땅에다가 녹차나무 울타리를 치고 체험학습장과 조각공원을 꾸미는 것이 이들 가족의 꿈이라고 한다.
그 형에 그 아우라고 했던가. 형제의 힘이 합해지면 못할 것도 없으리라. 동생은 대학강단까지 뿌리치고 이 일에 뛰어 들었다고 한다. 머지않은 날에 이들의 꿈이 바로 현실이 되어지리라. 그리고 그 날이 오면 제암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이 이루어 놓은 예술의 향기 그윽한 이상향에서 세속에 지친 심신에 위안을 받게 되리라.
민박시설로는 취사가 가능한 민박용 방이 4개다. 50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고, 주차에도 전연 불편함이 없다. 제암산 정상까지는 1시간 반 정도면 오를 수 있는 거리다. 이용했던 손님들의 권유에 따라 민박집 간판을 세운다고 했다.
♣ “녹차 마시고 가세요” 녹차천국 차마실다원
18번 국도는 봇재를 넘어야 하는데, 이 고갯마루에는 봇재주유소가 있고 그 옆에 보성명차를 재배하는 ‘차마실다원’(061-852-0540)이 있다. 보성명차를 재배하는 차마실다원은 여느 다원과 달리 우리 고유의 전통 수제차를 만든다. 덖음차(부조차)를 섭씨 250~300도 정도로 가열된 가마솥에서 덖고, 짚 멍석에서 비비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수제차다.
차마실다원은 30여 년 전부터 부엽토가 토양의 밑거름이 되어 있던 야생의 땅을 갈아 농약을 일체 쓰지 않는 친환경 유기재배 녹차를 생산해 내는 집으로 유명했다. 다원 옆에는 무료시음장과 제품전시 및 판매장을 만들어 놓았다. 녹차향에 젖어 마음껏 녹차를 마시고 나오는데 돈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녹차천국임을 실감케 하는 다원이다.
♣ 돼지들도 녹차를 마시는 차목원
차려내는 대표음식이 녹돈생삼겹과 녹돈주물럭이고 보면 음식재료인 돼지가 녹차를 마신다는 말이다. 이곳 사람들은 ‘녹차를 먹인 돼지고기’라고 하지만, 돼지의 입장에서 보면 ‘녹차를 마시는’ 것이다. 차목원의 불고기백반도 녹차불백이고 수제비도 녹차수제비다. 그 뿐만이 아니라 소주도 녹차소주다. 찬 바람이 나면 떡국도 내놓는다는데, 그것 역시 녹차떡국이란다.
사진촬영을 마치고 식탁에 앉았는데 집주인 유경희(兪慶熙·45)씨는 “수고하셨다”며 콜라 한 잔을 권한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서 녹차가 들어 가지 않은 것은 이 콜라와 사이다밖에 없다”며 웃었다. 녹돈생삼겹 6,000원(기본 3인분), 녹돈주물럭 6,000원, 녹차불백 8,000원, 녹차수제비·녹차떡국 각 5,000원, 녹차소주 3,000원.
18번 국도에서 차목원으로 들어가는 300여m 삼나무 숲길이 환상적이다.
♣ 바닷가 토담집에도 녹차가 넘친다
보성에는 은빛 모래와 100여 년 된 울창한 송림이 우거진 청정해역 율포 해수욕장이 있다. 이곳에는 지하 암반해수와 녹차를 이용한 해수녹차탕과 해수풀장까지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20여 곳 횟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런 가운데 ‘녹돈음식점’ 간판들이 눈에 들어오고, 또 한 곳 녹차 해수탕 작은 길 건너편에는 오곡녹차밥 ‘토담‘(061-852-9808)집 간판이 유달리 눈에 띈다. 우리 나라 어느 곳에 녹차로 오곡밥을 짓는 곳이 또 있을까?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없는 집이다.
♣ 바다경치 아름다운 소바우식당
▲ 오곡녹차밥을 전문으로 하는 율포 해수욕장의 토담
이 건물 4층은 ‘소바우식당’(061-853-0055)이다. 아마 보성에서는 바다 경치가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가장 깨끗하고 위생적인 일식집일 것이다. 시설은 큰 도시의 고급 일식집 수준이지만 음식값은 딴 판이다.
이곳 해수욕장에 있는 횟집들 중에는 전어를 전문으로 하는 집들이 많다. 전어는 가을철에 가장 맛있고 이곳 해역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어종이다. 고기맛이 좋아 주머니 돈을 생각하지 않고 먹게 된다고 해서 돈 전(錢) 자의 전어가 되었다고 한다. 회나 무침으로도 먹고 구이로도 먹는다.
전어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전문점으로는 등대식당(061-852-8614)과 행낭횟집(061-852-8072)이라고 알려져 있다.
♣ 제암산악회의 참새방앗간 싱싱회마을
바로 안내해 준 곳이 군청 앞에 있는 ‘싱싱회마을’(061-863-8555). 그곳에는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제암산악회 회원들의 회식이 펼쳐지고 있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소주잔이 몇 순배 돌았다.
1984년에 창립한 제암산악회(회장 김충석)는 해마다 5월 초순 남도인의 5월 축제인 제암철쭉제를 개최하고 있다. 32명의 회원으로 올 봄까지 열두 차례나 이 축제를 치른 제암산악회는 지난 8월에는 제암산 철쭉평원에다가 철쭉제단까지 세우는 장한 일까지 해냈다. 외지에서 제암산악회(061-862-7762)로 연락하면 제암산 산행만이 아니라 장흥군에 관한 모든 것을 자세히 안내해 주고 있다.
싱싱회마을은 제암산악회 회원들의 참새방앗간이었다. 장흥 앞바다 청정 해역 득량만에서 건져올린 횟감들이 옥호 그대로 ‘싱싱’한 집이다. 집주인 강기원(45)씨가 강진수협 중매인 27호라 이 집에서 쓰는 고기들은 유통과정 없이 바다에서 바로 들어오는 자연산들이다. 음식값이 싸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겠다.
싱싱회마을에 싱싱회천국이다. 이 지역을 잘 아는 남도사람들이 “장흥에 가면 싱싱회마을에 들리세요”라는 노래말을 흥얼댄다고 했다. 그 이유를 알 만했다.
하산주 한 잔은 장동산장에서
광주나 순천쪽 버스편이 쉽게 닿는 지점, 장동면 배산리에서 지척의 거리인 이 집은 하산길 코스로 택하기에 안성마춤이다. 배산리는 장흥과 보성의 중간지점이자 경계지점이다. 음식 역시 하산주 한 잔에 해단식 음식으로 마춤이라도 한 것 같다.
오리고기는 예로부터 고혈압, 중풍, 동맥경화 등 순환기 성인병의 예방과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온 식품이다. 오리 고기의 이러한 특징은 허한 곳을 보충하고 생활에 활력을 더해 주는 것으로 즐겨 먹어왔다.
장동산장의 약오리 요리에는 이름 그대로 15가지나 되는 약재와 식재가 들어간다. 내장을 드러낸 오리배 속으로는 표고버섯이 대표로 들어간다. 장흥은 표고버섯의 고장이다. 황기, 당기, 감초, 개피, 백봉령, 생강이 들어가고 마늘, 밤, 대추, 은행, 다시마도 따라 들어간다. 찹쌀, 녹두, 검정콩이 통오리 배속에서 합쳐지면 이것을 솔잎 위에 얹고 솔잎으로 덮는다. 여기에다가 소주를 붓고 압력솥에 넣어 1시간 이상 삶아서 식탁 위로 올린다. 좋은 음식이 될 수밖에 없는 조리 과정이다.
이렇게 만든 오리 한 마리면 네 사람이 먹어도 모자라지 않을 분량인데, 35,000원을 받고 있다.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이유가 충분한 집이다. 지금의 장소에서 11년째, 여수에서 10년 전통을 쌓은 집으로 음식솜씨는 친정어머니 박성자(57)씨가 딸에게 전수했다고 한다. 600평 대지 위에 식당건물 70평을 지어 놓아 주차문제로 신경쓸 일은 없다.
그리고 집주인 모녀는 이 집과 이 지역의 물맛을 자랑했다. 오염원이 전연 없는 물을 마시는 자신들의 행복을 그 누가 알랴마는 수도물을 마셔야만 하는 대도시 사람들이 안타깝다고도 했다.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woochon69@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