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증산종단사 3판 태극도(太極道)부분에 기록될 내용
태극도(太極道)에서는 정산(鼎山)이 독립운동가인 김혁(金赫)에게 도(道)를 받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극도(太極道)의 주장이 증산계열(甑山系列)에서는 광범위하게 받아들여 졌습니다. 태극도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사(丁巳 1917) 윤 2월 초에 용인(龍仁)사람 오석(嗚石) 김혁(金赫)이 찾아왔다. 김혁은 정산의 부친과 호형(呼兄)하는 동지(同志)로서 만주에 망명한 독립군(獨立軍)의 자금모집책(資金募集責)으로 순회하면서 매년 정초(正初)에 들리더니 금년에는 본국순회로 늦어진 것이었다. 김혁은 정산이 정진하는 공부의 내용과 앞으로의 계획을 묻고 정산 부자에게 아래와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지난 섣달에 군자금(軍資金)을 모집하기 위해 본국 정읍(井邑)에 갔다가 이치복(李致福)을 만나 그 교조(敎祖) 증산(甑山)의 교법(敎法)을 들었읍니다. 그의 말로는 지금 우리의 독립운동도 상제(上帝)인 증산의 공사(公事)에 의한 천지도수(天地度數)의 법방(法方)으로라야 성취될 수 있으며 국가 인민도 그 진법(眞法)의 수도(修道)를 통하여야 광구(匡救)될 수 있다고 하므로 나도 그 도문(道門)에 참예(參詣)하였으니 형님 부자분께서도 입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眞經全書 26쪽)
정산은 그 자리에서 부친께 말씀드리고 누이 조봉귀(鳳貴), 종제 조길룡(吉龍)을 데리고 입도하기로 하였다. 김혁은 세 사람에게 3일간 목욕재계케 하고 많은 전수(奠需)를 장만하게 한 다음 노고산(老姑山) 공부방에서 입도식(入道式)을 거행하였다. 이 날이 윤 2월 10일, 양력 4월 1일 축시(丑時)였다.
그런데 정말 이 주장이 사실일까요?
일제 강점기 무력항쟁을 주도한 단체는 다름아닌 대종교(大倧敎)였으며 청산리 전투 김좌진 장군 및 초기 임시정부인원 상당수가 대종교(大倧敎)분이었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김혁(金赫) 역시 대종교(大倧敎)이었습니다.
1898년 6월 22일 대한제국무관학교에 입학하여 1900년 1월 7일 졸업하고, 동년 1월 19일 육군 참위(參尉)로 임명되었다. 대한제국무관학교 제1회 졸업생이다. 경운궁(현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에서 개최된 졸업식은 고종황제가 대원수 자격으로 참석하여 졸업생에게 직접 졸업장을 수여하는 등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1900년 7월 23일에는 친위 제1연대 제1대대에 부임하였다. 1907년 8월 1일 군대 해산 당시 정위(正尉)였다. 1907년 군대 해산으로 해직된 후 만주로 건너갔다. 스승인 맹보순과 향리의 일가친척인 김학조(金學祖)가 만주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10년에서 1913년경에 대종교를 신앙하면서 구국의 길을 모색하였다. 1914년 만주 안둥현(安東縣)(현 중국 단둥시)으로 가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하며 이곳저곳을 다녔다. 같은 해 7월 하순 예대희(芮大囍, 청도 출신), 홍승국(洪承國, 천안 출신) 등과 함께 지안현(輯安縣) 통고우(通溝)에서 서북방으로 3리 떨어진 도절령(刀折嶺) 기슭 동포 집에서 중국 화폐를 위조하여 군자금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1914년 4월 29일 대종교 참교(參敎)가 되었고, 1917년 11월 11일 지교(知敎)에 이르렀다. 1919년 국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여기에 참가한 후, 1919년 5월 만주 류허현(柳河縣)으로 갔다. 동년 8월 백두산 서남쪽 펑티엔성(奉天省) 푸쑹현(撫松縣) 하북(河北)에 있는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여 부단장으로 1920년 7월까지 활동하였다. - 자료출처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https://search.i815.or.kr/dictionary/detail/print.do?id=3890
일본과 무력항쟁을 주도하던 대종교(大倧敎)인이 1917년에 대종교 지교(知敎)가 되었는데 1917년에 정산(鼎山)에게 증산(甑山)의 도(道)를 전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다들 아시는 이야기겠지만 정산(鼎山)은 이치복(李致福) 성도님에게 도(道)를 받았습니다. 그것을 숨기기 위하여 아무 연관도 없는 독립운동가 김혁(金赫)님을 차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태극도(太極道)의 행동은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노력하시다 산화하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정산(鼎山)을 돋보이고자 독립운동가를 욕보이고 없는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혁(金赫)님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대종교(大倧敎)분을 만나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태극도(太極道)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조국을 위하여 독립운동하시다 산화하신 대종교 분들에게 노래 한 곡 바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qwUyLSQu84
첫댓글 늘 감사드리며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