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우 경기장의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장소.
그곳에서 다시 원기와 활력을 회복한다고 한다.
자신만의 피난처, 안식처를 의미한다고...
류시화는 종교나 영성관련 책을 많이 번역하고, 또 자신의 글도 쓴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원제:새로운 지구)'도 번역했다고 알고 있다.
그의 산문집 '새는 날아 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의 케렌시아 한편을 듣고, 역시 류시화 다운 좋은 글임에 공감을 느낀다.
누구나 각자의 케렌시아가 있다고 하는데,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끄달리거나 흔들리지 않을 피난처를 찾았는가?
깨달은 이 붓다는 피난처(의지할 곳)를
바라밀다. 저 언덕을 건넌 곳.
피안으로 비유를 들었다.
현실에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어떤 사람에게 의지하여 함께 있을 때, 집처럼 편히 쉴 수 있는 장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을 피난처나 안식처로 여긴다.
이것들은 물론 일시적인 안식처일 것이다.
종교에서는 극락, 천국등 영원한 안식처를 상정하여 영원한 안식을 구한다.
내가 마음공부를 하는 목적은 그 영원한 안식처를 분명하게 확인하고 안식처에서 자유와 행복,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붓다는 열반전 마지막 가르침으로, 열반 이후에 제자들이 '자귀의 법귀의(자기에게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라)하라'고 했다.
붓다 사후 제자들이 의지할 곳(안심입명처)를 알려 주신 것이다.
그 뜻을 내 나름 해석을 해보면 예수가 나는 곧 진리요 생명이요 길이다.라고 한 의미와 상통하는 듯하다.
자기자신이 바로 진리임을 깨닫고 진리와 함께 살아가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안심입명처, 영원한 안식처.
자연처럼.
본래 스스로 그러한 자기의 본성을 바로보고 그것에 의지하여 사는 것.
바로 이것!
본래 그러한 자기의 본성을 분명히 보니 견성이요!
본성에 따라 그냥 사니 성불이로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