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대전대성고
@ 창단 - 1971년
@ 해체 - 1973년
@ 우승 - 없음
@ 준우승 - 없음
@ 연도별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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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
감독 |
대통령배 |
청룡기 |
황금사자 |
봉황대기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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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
조종식 |
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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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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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
조종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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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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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
조종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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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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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탈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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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 지명&입단선수 명단
74 정성만 (좌좌/P/성균관대-한전(78)/삼미(83년 지명외)-롯데(87)/87년은퇴)
@ comment
대전에서 잠시 창단되었다가 채 3년을 못채우고 해체된 학교로 해체의 원인을 설명하자면 고교야구의 고질적인 병폐에 대해 피치못하게 언급해야 할 듯 합니다..
어느 지역의 예선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각지방도시의 명문팀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텃세가 분명 작용하게되고, 이는 해당지역의 협회가 주관하는 지역예선전에서 특히 심하게 나타납니다... 협회의 임직원도, 심판진도 특정고교출신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비록 대전고는 충남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야구에 대한 투자가 활발한 명문팀이기는 하지만 과거 이러한 지역사회의 특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었고 이러한 병폐가 결국 곪아 터져버린 사건이 73년도 대성고 심판폭행사건입니다...
71년 창단맴버들이 그대로 3학년이 되었던 그해, 청룡기에서도 대전고를 제치고 예선을 통과했듯 분명 이때만큼은 대성고의 전력이 대전고를 앞서 있었습니다... 황금사자기 충남예선전에서도 초고교급투수였던 정성만의 위력적인 투구에 대전고는 7회까지 단 한개의 안타도 뽑아내지 못하던 상황에서 2회를 남겨놓고 이 경기의 심판들은 그릇된 모교사랑이 발동하면서 한가운데 들어오는 공마저도 연신 볼로 판정하며 노골적인 편파판정이 시작되었고 결국 3:0의 일방적인 스코어였던 경기는 4:3으로 역전되고 말았습니다...
경기를 마치는 순간 감정이 폭발한 대성고의 선수중 한명이 심판을 밀어젖혔고 너나할 것 없이 주전선수 모두가 가담하면서 결국 있어서는 안될 심판집단폭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주동자들에 대한 구속과 같은 중징계는 피할 수 있었지만 불똥은 대성고 야구부의 해체로 이어졌고 3학년선수들은 모두 옷을 벗게 되었습니다만 다행히 실력을 인정받았던 투수 정성만과 뒤에 장충고-성균관대 감독으로 유명해지는 유상호는 대학에 진학해서 야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폭행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던 1.2학년들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당시 박철순이 2학년생중 한명이었습니다.. 박철순은 부산이 고향으로 대성고로 전학온 상태였는데 팀의 해체로 인해서 세번째 학교였던 배명고에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지역예선에서의 이러한 불공정판정은 남아있다고 합니다.. 어른들의 부당하고 정치적인 논리가 부디 학생선수들의 미래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