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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유도회총본부/서울시본부/서초지부/도봉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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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및 시조 스크랩 황진, 서경덕, 임제 백호
오병두 추천 0 조회 291 11.12.30 14: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황진이, 그 두 얼굴의 이름

 

황진이의 생몰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황진이와 교유했던 인물들의 기록을 통해 1520년대에 태어나 1560년대에 죽었다는 설과 중종 6년(1512년)에 태어나 중종 36년(1541년) 30살의 나이로 요절했다는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이처럼 엇갈리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별 의미가 없다. 황진이라는 이름은 조선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또관습화되어가던 당대(當代)의 시조에 파격적인 표현으로 활력을 불어넣은 시인으로, 과감한 일탈을 통해 제도와 인습에 대항한 당대의 신여성으로서 신화적인 권력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 열다섯에 이웃마을 선비를 상사병에 빠지도록 만들어 죽음으로 내몰고, 생불(生佛)로 추앙받던 지족선사를 파계시켰으며, 고고한 대학자 화담 서경덕을 유혹한 일화 등 야사는 관능적인 명기(名妓)로서의 황진이를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허균(《성옹식소록》), 이덕형(《송도기이》), 이긍익(《연려실기술》), 김천택(《청구영언》), 유몽인(《어우야담》) 등은 황진이가 당대의 선비와 뭇 남성을 사로잡은 명기일 뿐만 아니라 고려속요를 집대성한 학자이자 문(文)과 음(音)을 조화시킨 시인, 살신성인으로 빈민구제에 나선 사회활동가로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을 재단하는 태생적 운명의 굴레를 벗고 허위와 가식이 득세하던 시대를 이방인으로 살며 파격적인 일탈행위로 폐쇄적인 신분제도를 조롱했던 조숙한 근대인으로서 황진이의 신화적인 색채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운명의 굴레를 벗어난 자유혼의 상징

 

연산군 시절, 왕의 폭정 속에 기생 ‘진현학금’은 왕의 노리개로 발탁되어 한양으로 향한다. 하지만 진현학금은 스스로 눈을 멀게 하여 연산군의 마수로부터 벗어난다. 이후 진현학금은 거문고 연주에 매진하고, 황 진사는 비록 맹인이지만 타고난 미색과 고혹적인 매력을 지닌 그녀를 사모하게 된다. 황 진사와 진현학금은 깊은 사랑을 나누지만, 두 사람은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이별을 한다. 진현학금은 황 진사의 핏줄인 ‘진’을 맡기고 홀홀히 유랑을 떠난다. 세월이 흘러 진이 혼기에 이른다. 진의양모인 신씨 부인은 양반 댁의 참한 도령을 진의 신랑으로 점찍고 혼사를 준비하지만, 그 무렵부터신씨 부인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결국 신씨 부인은 죽고, 진의 혼사는 파기되고 만다.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 진은 양반가 규수의 신분에서 천기 소실의 여식으로 전락하고, 이후로 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갈 것을 결심한다. 기생이 된 진은 송도뿐만 아니라 한양과 평양에까지 명성을 드날리게 되고, 황진이를 돌보는 옥섬은 황진이와 첫날밤을 치를 상대를 찾아 일종의 경매를 내거는데….

 

황진이 본질적 자유혼의 삶을 살고 간 여인

 

일명 진랑으로 불리며 기생으로서의 이름 명월이다. 개성에서 출생하여, 중종 때 진사의 서녀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익혀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고,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자 기생에 투신, 문인, 유생들과교유하며 탁월한 시재(詩才)와 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이라 불리던 천마산 지족암의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破戒)시켰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사제관계를 맺었다.

 

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정을 나누고 벽계수碧溪守와 깊은 애정을 나누며 난숙한 시작(詩作)을 통하여 독특한 애정관을 표현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다. 작품으로 《만월대 회고시滿月臺懷古詩》《박연폭포시朴淵瀑布詩》《봉별소양곡시奉別蘇陽谷詩》《영초월시初月詩》 등이 있다.

 

저는 천하의 남자를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자애할 수 없으니,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죽거든 금수도 관도 쓰지 말고 

옛 동문 밖 물가 모래밭에 시신을 내버려서

개미와 땅강아지, 여우와 살쾡이가 내 살을 뜯어먹게 해 

세상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경계 삼도록 해주세요.

 

-황진이 유언-

 

● 잣나무 배   <황진이>


 


 


저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잣나무 배
몇 해나 이 물가에 한가로이 매였던고
뒷사람이 누가 먼저 건넜느냐 묻는다면
문무를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

小栢舟(소백주)

汎彼中流小柏舟 幾年閑繫碧波頭 後人若問誰先渡 文武兼全萬戶侯
범피중류소백주 기년한계벽파두 후인약문수선도 문무겸전만호후

* 세월이 흐른 뒤, 황진이가 자신의 첫사랑을 생각하며 지었을 법한 시이다.


 


 


 


 


 


 


 

 

 


 


● 반달을 노래함   <황진이>


 


 


누가 곤륜산 옥을 깎아 내어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
견우와 이별한 후에
슬픔에 겨워 벽공에 던졌다오

詠半月(영반월)

誰斷崑山玉 裁成織女梳 牽牛離別後 愁擲壁空虛
수착곤산옥 재성직녀소 견우이별후 만척벽공허

* 이 시는 초당(草堂) 허엽(許曄, 1517~1580)의 시인데 황진이가 자주 불러 황진이의 시로 오인되고 있다는 학설도 있다.


 


 


 


 


 


● 산은 옛 산이로되... <황진이>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손가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 것은


 


 

* 황진이 자신을 청산에 비유하여 변치 않는 정을 노래하고 있다.


 


 

 

 


 


● 청산은 내 뜻이요…  <황진이>


 


 


청산(靑山)은 내 뜻이요 녹수(綠水)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 황진이 자신을 청산에 비유하여 변치 않는 정을 노래하고 있다.


 


 


 

 

 


 


●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 외로운 밤을 한 허리 잘라내어 님 오신 밤에 길게 풀어 놓고 싶다는 연모의 정을 황진이만의 맛깔난 어휘로 노래하고 있다.


 


 


 


 


● [황진이와 화담 서경덕] 마음이 어린 후이니…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 화담 서경덕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
월침 삼경(月沈三更)에 올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 황진이


 


 


* 그리운 정에 떨어지는 잎 소리마저도 님이 아닌가 한다는 화담의 시조에 지는 잎 소리를 난들 어찌하겠느냐는 황진이의 안타까움을 전한다.


 


 


 

 

 


 


● 청산리 벽계수야…  <황진이>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황진이와 벽계수와의 이야기는 서유영(徐有英,1801~1874)의 <금계필담(錦溪筆談)>에 자세히 전한다.


 


 


-황진이는 송도의 명기이다. 미모와 기예가 뛰어나서 그 명성이 한 나라에 널리 퍼졌다. 종실(宗室) 벽계수가 황진이를 만나기를 원하였으나 ‘풍류명사(風流名士)'가 아니면 어렵다기에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 방법을 물었다.
이달이 “그대가 황진이를 만나려면 내 말대로 해야 하는데 따를 수 있겠소?”라고 물으니 벽계수는 “당연히 그대의 말을 따르리다”라고 답했다. 이달이 말하기를 “그대가 소동(小童)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가지고 뒤를 따르게 하여 황진이의 집 근처 루(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나와서 그대 곁에 앉을 것이오. 그때 본체만체하고 일어나 재빨리 말을 타고 가면 황진이가 따라올 것이오. 취적교(吹笛橋)를 지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일은 성공일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오” 했다.
벽계수가 그 말을 따라서 작은 나귀를 타고 소동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들게 하여 루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한 곡 탄 후 일어나 나귀를 타고 가니 황진이가 과연 뒤를 쫒았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가 동자에게 그가 벽계수임을 묻고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를 읊으니, 벽계수가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다 나귀에서 떨어졌다.
황진이가 웃으며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랑일 뿐이다”라며 가버렸다. 벽계수는 매우 부끄럽고 한스러워했다. 한편 구수훈(具樹勳, 영조 때 무신)의 <이순록(二旬錄)>에는 조금 달리 나와 있다.

-종실 벽계수는 평소 결코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해왔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황진이가 사람을 시켜 그를 개성으로 유인해왔다.
어느 달이 뜬 저녁, 나귀를 탄 벽계수가 경치에 취해 있을 때 황진이가 나타나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를 읊으니 벽계수는 밝은 달빛 아래 나타난 고운 음성과 아름다운 자태에 놀라 나귀에서 떨어졌다.


 


 


 

 

 


 


● 어져 내 일이야… <황진이>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어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 이별의 회한을 노래한 것으로 황진이가 시조의 형식을 완전히 소화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 시조이다.


 


 


 

 

 


 


● 奉別蘇判書世讓(봉별소판서세양)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 <황진이>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霜中野菊黃(설중야국황)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랭)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 소세양이 소싯적에 이르기를, “여색에 미혹되면 남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황진이의 재주와 얼굴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는 친구들에게 약조하기를 “내가 황진이와 한 달을 지낸다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자신이 있네. 하루라도 더 묵는다면 사람이 아니네”라고 호언장담을 하였다.
그러나 막상 송도로 가서 황진이를 만나보니 과연 뛰어난 사람이었다. 30일을 살고 어쩔 수 없이 떠나려 하니, 황진이가 누(樓)에 올라 시를 읊었다. 이 시를 듣고 소세양은 결국 탄식을 하면서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더 머물렀다.
이 때 황진이가 읊은 시가 바로 <봉별소양곡세양(奉別蘇陽谷世讓)>이다.


 


 


 


 


● 別金慶元 (별김경원) 김경원과 헤어지며  <황진이>


 


 


三世金緣成燕尾 (삼세금연성연미) 삼세의 굳은 인연 좋은 짝이니
此中生死兩心知 (차중생사양심지) 이 중에서 생사는 두 마음만 알리로다
楊州芳約吾無負 (양주방약오무부) 양주의 꽃다운 언약 내 아니 저버렸는데
恐子還如杜牧之 (공자환여두목지) 도리어 그대가 두목(杜牧)처럼 한량이라 두려울 뿐.


 


 


 

 

 


 


● 朴淵瀑布 (박연폭포)  <황진이>


 


 


一派長川噴壑? (일파장천분학롱) 한 줄기 긴 물줄기가 바위에서 뿜어나와
(용추백인수총총) 폭포수 백 길 넘어 물소리 우렁차다
飛泉倒瀉疑銀漢 (비천도사의은한) 나는 듯 거꾸로 솟아 은하수 같고
怒瀑橫垂宛白虹 (노폭횡수완백홍) 성난 폭포 가로 드리우니 흰 무지개 완연하다
雹亂霆馳彌洞府 (박난정치미동부) 어지러운 물방울이 골짜기에 가득하니
珠?玉碎徹晴空 (주용옥쇄철청공) 구슬 방아에 부서진 옥 허공에 치솟는다
遊人莫道廬山勝 (유인막도려산승) 나그네여, 여산을 말하지 말라
須識天磨冠海東 (수식천마관해동) 천마산야말로 해동에서 으뜸인 것을.


 


 


* 황진이가 자신을 포함한 송도삼절의 하나로 꼽을 정도로 사랑한 박연폭포. 송도의 기생이었던 황진이는 물론 이곳을 자주 방문하여 풍류를 즐겼을 것이다.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유려한 표현은 박연의 장관을 짐작케 한다.
박연폭포는 현재 개성시 개풍군(開豊郡) 천마산(天摩山) 기슭에 있다.


 


 


 


 


 


 


● 滿月臺懷古 (만월대회고) 만월대를 생각하며  <황진이>


 


 


古寺蕭然傍御溝 (고사소연방어구) 옛 절은 쓸쓸히 어구 옆에 있고
夕陽喬木使人愁 (석양교목사인수) 저녁 해가 교목에 비치어 서럽구나
煙霞冷落殘僧夢 (연하냉락잔승몽) 연기 같은 놀(태평세월)은 스러지고 중의 꿈만 남았는데
歲月嶸破塔頭 (세월쟁영파탑두) 세월만 첩첩이 깨진 탑머리에 어렸다.
黃鳳羽歸飛鳥雀 (황봉우귀비조작) 황봉은 어디가고 참새만 날아들고
杜鵑花發牧羊牛 (두견화발목양우) 두견화 핀 성터에는 소와 양이 풀을 뜯네.
神松憶得繁華日 (신송억득번화일) 송악의 번화롭던 날을 생각하니
豈意如今春似秋 (기의여금춘사추) 어찌 봄이 온들 가을 같을 줄 알았으랴


 


 


 

 

 


 


● 松 都 (송 도) 송도를 노래함  <황진이>


 


 


雪中前朝色 (설중전조색) 눈 가운데 옛 고려의 빛 떠돌고
寒鐘故國聲 (한종고국성) 차디찬 종소리는 옛 나라의 소리 같네
南樓愁獨立 (남루수독립) 남루에 올라 수심 겨워 홀로 섰노라니
殘廓暮烟香 (잔곽모연향) 남은 성터에 저녁연기 피어 오르네


 


 


* 황진이는 옛 고려의 수도인 송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송도를 중심으로 살았다. 남아 있는 몇 편 안 되는 황진이의 시 중에 두 편이 송도를 노래한 것이다.


 


 

 

 


● 相思夢 (상사몽) 꿈   <황진이>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訪歡時歡訪? (농방환시환방농) 내가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願使遙遙他夜夢 (원사요요타야몽)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로중봉)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 이 시는 김안서 작사, 김성태 작곡으로 <꿈길에서> 라는 제목의 가곡으로 만들어졌다.


 


 


 

 

 


 


● 서경덕의 시조


 


 


*<성옹지소록>에 보면 황진이가 거문고를 즐기는 모습이 나온다.

-황진이는 성품이 소탈하여 남자와 같았으며 거문고를 잘 타고 노래를 잘 불렀다.
-평생에 화담 선생을 사모하여 반드시 거문고를 메고 술을 걸러 선생의 거처에 가서 한껏 즐기다가 돌아가곤 했다.

*서경덕 또한 거문고를 즐겼으며, 거문고에 대한 몇 편의 시를 남기고 있다. 그의 성리설은 우주의 근원과 현상세계를 모두 '하나의 기(一氣)'로 파악하였는바, 그는 이 하나의 기를 '태허(太虛·우주 생성 이전의 상태)' 개념으로 표출하고 '선천(先天)'과 일치시켰다. 모든 현상세계가 생성되어 나오는 동정(動靜) 생극(生克)의 계기는 이 하나의 태허 속에 내포되어 있으며, '기'가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그는 '이(理)'를 '기'의 위에 두기를 거부하고 '기'가 생성 작용하는 '후천(後天)'의 현상세계에서 그 정당성을 잃지 않게 하는 자기통제력으로 파악하였다.

즉 '이'는 '기를 주재하는 것'이라 하여, '이'를 '기'의 한 속성으로 한정한 것이다. 그가 <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글>과 <줄 있는 거문고에 새긴 글>을 나란히 지었던 것도 바로 소리 없는 가운데 소리를 듣는 음악의 본체와 소리 속에서 음률의 조화를 즐기는 음악의 응용으로, '태허―선천과 동정―후천'의 구조로 이루어진 그의 기철학적 세계를 생생하게 암시해주는 것이다.


 


 


 


 


 


無絃琴銘(무현금명) 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글 <화담 서경덕>

 

 

 


1.
琴而無絃, (금이무현) 거문고에 줄이 없는 것은
存體去用. (존체거용) 본체(體)는 놓아두고 작용(用)을 뺀 것이다.
非誠去用, (비성거용) 정말로 작용을 뺀 것이 아니라
靜基含動. (정기함동) 고요함(靜)에 움직임(動)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聽之聲上, (청지성상) 소리를 통하여 듣는 것은
不若聽之於無聲, (불약청지어무성)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같지 못하며,
樂之刑上, (악지형상) 형체를 통하여 즐기는 것은
不若樂之於無刑. (불약악지어무형) 형체 없음에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樂之於無刑, (악지어무형) 형체가 없음에서 즐기므로
乃得其 , (내득기 ) 그 오묘함을 체득하게 되며,
聽之於無聲, (청지어무성) 소리 없음에서 그것을 들음으로써
乃得其妙. (내득기묘) 그 미묘함을 체득하게 된다.
外得於有, (외득어유) 밖으로는 있음(有)에서 체득하지만,
外得於無. (내득어무) 안으로는 없음(無)에서 깨닫게 된다.
顧得趣平其中, (고득취평기중) 그 가운데에서 흥취를 얻음을 생각할 때
爰有事於絃上工夫 (원유사어형상공부) 어찌 줄(絃)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가?


2.
不用其絃, (불용기현) 그 줄은 쓰지 않고
用其絃絃律外官商. (용기현현율외관상) 그 줄의 줄소리 밖의 가락을 쓴다.
吾得其天, (오득기천) 나는 그 본연을 체득하고
樂之以音. (락지이음) 소리로써 그것을 즐긴다.
樂其音, (락기음) 그 소리를 즐긴다지만,
音非聽之以耳, (음비청지이이)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요,
聽之以心. (청지이심)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彼哉子期, (피재자기) 그것이 그대의 지표이거늘
曷耳吾琴. (갈이오금) 내 어찌 거문고를 귀로 들으리?

琴銘(금명) 거문고에 새긴 글 <화담 서경덕>

1.

鼓爾律, (고이율) 그대의 가락을 뜯으며
樂吾心兮, (락오심혜)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諧五操, (해오조) 여러 가지 곡조를 고르되
無外淫兮 (무외음혜) 밖으로 지나치진 않는다.
和以節, (화이절) 강단으로써 조화시키어
天其時兮, (천기시혜) 날이 가고 사철이 바뀌듯하며,
和以達, (화이달) 통달함으로써 조화시키어
鳳其儀兮. (봉기의혜) 봉황새도 법도를 따라 춤추게 한다.

2.

鼓之和, (고지화) 그것을 뜯어 조화시킴으로써
回唐虞兮, (회당우혜) 요순시대로 돌아가며,
滌之邪, (척지사) 사악함을 씻어냄으로써
天與徒兮. (천여도혜) 자연과 융화되는 사람이 된다.
操?洋, (조아양) 높다란 소리?넓은 소리를 타지마는
人孰耳兮. (인숙이혜) 그 누가 귀담아 듣겠는가?
繁而簡, (번이간)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有如味兮. (유화미혜) 간략한 데 뒷맛이 있느니.


 


偶吟(우음) 우연히 짓다 <화담 서경덕>


 


殘月西沈後(잔월서침후) 잔월도 서쪽으로 진 뒤에
古琴彈歇初(고금탄헐초) 오랜 거문고 타기를 비로소 쉬네
明喧交暗寂(명훤교암적) 밝고 소란함과 어둡고 적막함이 섞이니
這裏妙何如(저리묘하여) 이 속의 오묘함이 어떠하냐

 


 


 

 

 


 


● 청초 우거진 골에... <백호 임제>


 


 


* 황진이의 임종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백 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이다. 평생 황진이를 못내 그리워하고 동경하던 그는 마침 평안도사가 되어 가는 길에 송도에 들렀으나 황진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절망한 그는 그길로 술과 잔을 들고 무덤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다음의 시조를 지어 황진이를 애도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조정의 벼슬아치로서 체통을 돌보지 않고 한낱 기생을 추모했다 하여 백호는 결국 파면을 당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임종을 맞게 된다.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내가 이같이 좁은 나라에 태어난 것이 한이로다" 하고 눈을 감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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