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0. 03. 15
전라좌수영 5관 5포(임진왜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휘하 각 군 편제(이순신 장군)
구분 | 지역 | 지휘관 | 관할구역(현재 지명) |
5관(육지행정구역) | 순천도호부 | 부사(종3품) | 여수시, 순천시 일원 |
광양현 | 현감(종6품) | 광양시 일원 |
낙안군 | 군수(종4품) | 보성군 벌교읍, 순천시 낙안면 |
보성군 | 군수(종4품) | 보성군 일원 |
흥양현 | 현감(종6품) | 고흥군 일원, 여수시 삼산면 |
5포(수군행정구역) | 방답진 | 첨사(종3품) |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
사도진 | 첨사(종3품) | 고흥군 영남면 금사리 |
여도진 | 만호(종4품) | 고흥군 점암면 여호리 |
녹도진 | 만호(종4품) |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
발포진 | 만호(종4품) |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 |
▲여도진 현재의 모습
임진왜란 때 수군기지(지휘관 정4품의 만호의 장수가 지휘함)
▲다리건너 쪽이 여도 진 만호 성(오늘날의 모습)
▲가까이서 본 여도진 만호 성 전경
▲발포 만호 성(이순신 36세 때, 만호로 부임 근무 한 곳)
▲이순신 장군이 훈련원봉사(權知訓練院奉事)로 한성에 재직 중 자신의 친구를 훈련원 참군으로 추천하는
병조정랑 서익(徐益)의 요청을 거절했다.
▲발포 만호성 성곽
그 뒤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군관으로 9개월 복무 그 뒤 36세가 되던 1580년 7월에 전라도 발포(鉢浦)의
수군만호(水軍萬戶- 종4품)로 전근되었다. 발포(鉢浦)는 현재의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이다.
▲이순신 장군의 발포 수군 만호 재직 중 전라좌수영의 오동나무를 베기를 거부하다가 전라좌수사 성박(成博)의 미움을 받았
다.
성박은 군관을 시켜 거문고를 만들기 위해 관사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오게 했지만,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나라의 재산인 나
무를 벨 수 없다 하여 이를 거절했다. 그후 성박(成博)은 후임자 이용(李庸)에게 이순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을 남겼고, 후임
전라좌수사 이용(李庸)은 일단 이순신을 밉게 보았다.
이용은 좌수영 관하의 다섯 포구인 발포, 여도, 사도, 녹도, 방 답 진을 점검하였다. 이때 다른 4개의 포구 이탈자는 문제 삼지
않았고, 이순신은 이를 알고 다른 4개포구의 결과를 조사하여 보고하려 하자, 이용의 부관들은 이 사실을 알려서 이용(李庸)
은 즉시 장계를 회수하였다.
▲이용은 그의 근무성적을 최하로 매겼는데, 전라도 도사(都事)로 재직 중이던 조헌(趙憲)은 고과내용을
보자 부당한 처사라며 항의하여 수정하게 했다.
▲나중에 이순신의 인물됨을 알아본 이용은 생각을 바꾸어, 함경남도 남병사로 전근한 뒤, 1583년
이순신을 자신의 군관으로 추천하여 같이 동행하기도 했고, 건원 보 권관으로 천거하기도 하였다.
▲1582년 1월 발포만호로 재직 중일 때 서익이 군기 경차관으로 고흥군에 왔다. 이때 서익은 발포진을
찾아가 군기보수 불량이라는 이유로 이순신을 파직시켰다.
▲그러나 5월에 전라감사 이광의 부관 및 조방장이 되었다. 1583년 함경남도병사 이용의 추천을 받아
남병사의 군관이 되었다가, 1583년 8월 건원보 권관으로 천거되어 나갔다.
▲그 후 북방 국경 지대인 함경도로 가서 여진족 방어를 맡았으며, 1586년(선조 19년)에 사복시 주부
가 되었고, 이어 조산만호(造山萬戶) 겸 녹도 둔전사의(鹿島 屯田事宜)가 되었다. 녹둔 도 전투, 첫
번째 백의종군.
▲근년에 새로 심은 오동나무
▲흥양현 읍성
이순신을 비방하는 터무니없는 말들이 전라감사 손식(孫軾)의 귀에 까지 들어갔다. 전라도관찰사 손식(孫軾)은
발포만호 이순신을 혼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흥양현 동헌(예전 고흥군청자리) 에 들려 발포에 있는 이순신을
불러올린다.
도착한 이순신에게 발포진의 진서(陣書)에 대해 강독(브리핑)을 하게 한다. 그러자 이순신은 막힘없이 발포진의
방어배치와 주변지형, 방어 계획까지 상세히 설명을 하자, 다음은 진도(陣圖)를 그리게 한다. 붓을 들고 종이 위
에 발포진(鉢浦陣)의 지형과 물길, 그리고 진의 배치 등의 진도를 상세히 그려낸다.(鉢浦萬戶城 진도)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전라도관찰사 손식은 “어쩌면 이렇게 정밀하게 그리는가?” 하면서 이순신의 조상을 물
어 보고는 “내가 처음에 알지 못했던 것이 유감이오.” 말한 뒤 그 뒤로는 정중하게 대우했다고 한다.
▲여기 발포만호성에서 근무한 것이 훗날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전라 좌수사)업무에 많은 도움
이 되었다고 한다.
출처 : 전통의명문 경주이씨종친회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