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먼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다 놓은 비신의 재질을 분석해야 한다.
특히 이 비신 석재가 북한산 일대, 게 중에서도 현재의 비봉 암석과 동일한 석재인지를 판별할 필요가 있다. 만약 북한산 일대, 특히 비봉 근처 어디라면 그 채석장 흔적도 분명이 있을 것이다.
저번 2월에 내가 둘러본 느낌으로는 일단 비봉 꼭대기 근처에서 채취한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채석장 흔적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는 암석학 지질학자들과 동반하면 금방 끝나는 게임이다.
2. 비신의 모자 혹은 머리에 해당되는 제액(題額)을 찾아야 한다. 형식이나 그 내용 및 그것이 선 위치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공통성을 지니고 있는 황초령 마운령비 중 어느 것인지 기억이 확실치 않으나 제액 부분이 남아있고, 다른 무엇보다 현존 북한산비에도 제액이 있었음을 추찰할 수 있다.
3. 제액은 김정희 글로 보아 이미 조선후기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듯한데 누군가가 삶아 먹었을리는 만무할 터. 틀림없이 비봉 계곡 어딘가에 쳐박혀 있을 것이다. 아마 굴러떨어질 때 충격 때문에 몇 조각 났을 것이다. 굴러떨어질 만한 곳은 두 계곡 정도가 된다. 북쪽으로는 절대로 굴러떨어질 수 없다.
4. 비봉 일대를 암반을 정밀조사해야 한다. 앨범란에 김태식이 박힌 진흥왕 유지 사진에서 보듯이 비신이 박힌 부분에는 고의적으로 돌을 깎아 단을 만들었다. 현재 육안으로는 2단 정도가 확인되거니와 이것을 원래 암반에다 붙인 결과일 리는 만무한 법. 깎아서 만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 부분을 어느 만큼 깎았는가?
5. 지리적 특성을 정밀히 조사해야 한다. 마침 저번 등반에 내가 나침반이 없어 측량을 못했으나
비신이 박힌 방향은 어떤가? 아마 내 짐작으로는 비신은 앞면과 뒷면이 각각 동서로 놓였던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명문이 적힌 비면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었던가?
동쪽이 아닌가 하는데, 동쪽이라면 틀림없이 日神을 염두에 두었을 것다.
남북을 향하고 있다면? 생각해볼 사항들이 많다.
6. 비봉 일대 암반을 정밀검사하면 이상한 문양이 더러 발견된다. 게 중에는 근현대인들이 남긴 흔적이 분명한 경우가 많거니와 하지만 고풍스런 맛을 풍기는 경우도 있어 이에 대한 주목이 촉구된다
7. 석굴도인 : 북한산비문에 의하면 진흥왕은 오르는 길에 석굴에서 도인을 만났다고 했거니와
이를 두계는 승가사라고 했거니와, 이를 해명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 비봉으로 올라갈 수 있는 등반로는 모조리 적발해 나가는 일이다.
석굴에서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다. 틀림없이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적극 유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