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병현과 김정환은 휘문고등보통학교 선후배다. 또 일본미술학교(동경 우에노미술학교[上野美術學校] 전신)에서도 응용미술과 무대미술을 전공한 선후배이자 친구다. 1920~30년대 당시 목판화 작업을 한 조각가 장발(1901~2001)이 휘문고보의 미술 교사였음을 보면 스승인 장발 영향을 받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이병현이 구사하는 일 획의 단칼 맛은 장발과 유사하다. 그리고 그런 사제 간 인연은 1948년 장발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설립할 때 이병현을 도안과 교수로 초빙하였고, 그가 타계하자 1954년 김정환을 다시 응용미술과 교수로 초빙한 것으로도 연결된다. 또 당시 괄목할 목판화를 남긴 화가 이병규(1901~1974)가 유학에서 돌아와 1927년 휘문고보
에서 교사 생활을 할 때, 이병현이 그의 목판화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었을 거다.
이병현은 1911년생으로 소학교 시절부터 같은 동네에 살던 유명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윤희순(1906~1947)의 지도를 받았고(『植民地期朝鮮における創作版画の展開(6)-朝鮮人美術家による日本の創作版画の修得とその展開について』 , 辻(川瀨) 千春(TSUJI (KAWASE), Chiharu), 名古屋大學博物館報告), 휘문고보 시절엔 미술 교사였던 장발에게 수학했을 것이다. 이들은 당대 유명 작가들이다. 이어서 이병현은 1931년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일본미술학교로 유학, 1934년에 도안과(도화과)를 졸업하고 이 해 제13회 선전 서양화부에 〈송이(松荋)〉란 제목의 풍경화로 입선했다. 이 시기(1933)에 이병현은 일본에서 김정환과 함께, 앞서 언급한 윤희순과 서양화가 김종태(1906~1935)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교유했다고 전한다.
이병현은 휘문고보 시절 이미 목판화 작가로도 활동했다. 1930년 서울에서 활동 중인 일본 화가를 중심으로 「조선창작판화회」((「조선창작판화회」는 1930년 1월 경성에서 창작판화잡지인 『스리에(すり繪)』(도판 24)를 발간했다. 크기는 22.6×15.3㎝로 도쿄의 취홍원(翠紅苑)화방에서 인쇄한 등사판이다. 일본작가 3명의 단색 목판화를 본문에 붙여넣었다. 한국 작가로는 김창섭(金昌), 김철학(金喆學), 이병현(李秉玹)이 회원이었다. /// 한편 “‘창작판화’라는 용어는 일본에서의 순수미술 판화운동을 말한다. “‘창작판화’는 모든 제작 과정을 작가가 혼자 하는 것을 표방했다. 창작판화 및 창작 판화운동은 메이지 시대 후반에 나타나 쇼와(昭和) 초두에 절정을 맞이한 일본의 예술운동으로서 판화를 독립한 미술의 한 장르로 간주하려는 것이었다. 창작판화는 1904년 야마모토 카나에(山本鼎)가 문예지 『묘죠(明星) 7호에 발표한 〈어부〉를 최초의 작품으로 여기고 있다. 창작판화운동의 특징으로 ‘서양미술로부터의 감화’ ‘스스로 그리고, 새기고, 찍는’ 회화적 판화표현을 들 수 있다.” / 중일 판화운동의 상호영향에 관한 고찰-루쉰(魯迅) 목각(木刻)운동과 전후 일본의 민중판화운동을 중심으로, 후지무라(이나바)마이, 동북아시아문화학회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료집, 2015.11.)가 결성되고 동인지인 판화잡지 『스리에(すり繪)』(도판24)를 발간했었는데, 이병현은 그 창립전에 〈프랑스 인형〉이란 제목의 단색 목판화 외 여러 점을 출품했다고 경성일보(1930. 3. 18)에 보도되어 있다. 또 이 기사를 쓴 경성일보 미술기자이자 목판화도 제작한 다다 기조(多田毅三)는 이병현의 작품을 논하는데, 유일한 조선인인데도 높은 수준을 보여서 “이병현은 동인들의 자존감을 올려준 작가 중 하나다”라고는, 이어 “이병현의 작품 중 〈프랑스 인형〉은 단색판화임에도 특별한 게 있다”라며 상찬했다.
이병현은 연극무대 작업도 했는데, 1938년 낭만좌(浪漫座)란 신극단체의 연극 〈햄릿〉과 〈죄와 벌〉의 무대장치가 그것이다. 1938년이면 동료이자 절친인 김정환이 일본에 유학 중이라,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이병현이 김정환을 대신한 것이라 여겨지는 대목이다. 아무튼 이병현은 1940년 이후에는 주로 산업디자인 영역에서 선구적 활동을 하면서 1945년 해방이 되자 한홍택등과 더불어 「조선산업미술가협회」를 창립하고, 1946~49년 조선산업미술가협회전시에 참가했다(도판25). 194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초대 도안과 교수를 거쳐 1950년 39세 이른 나이에 작고한다. 이병현의 자료가 유난히 없는 것은 그의 요절 때문에 제대로 된 기록이 남지 않아서 그런 듯싶다.
1912년생인 김정환은 1935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7~39년에 일본미술학교 응용미술과에 입학해서 무대미술을 전공했다. 본래는 서양화가를 꿈꿨는데 대중들과 가까이 할 수 있는 무대미술을 선택했다. 1931년에 휘문고보에 입학했으나, 입학 전인 1929년 YMCA 근처에 배우인 김용규와 영화감독 심영이 개업한 다방 멕시코(도판26)의 실내 인테리어를 화가 도상봉, 구본웅, 사진가 이해선 등과 함께 설계 및 시공을 했다. 그리고 1932년 극예술연구회의 전속 극단인 실험무대에서 공연한 고골리 원작의 〈검찰관〉 무대를 김인규와 함께 제작하고 조명을 담당했다. 1933년 일본에서 최승희의 무용 공연에서 소품과 무대 등에 도움을 주며 일본에서도 무대미술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다가 1937년 일본미술학교에 입학하고, 그해 동경에서 일본 작가와 함께 회화작업으로 2인전을 개최했다. 1939년 이후 일본 동보영화사(東寶映畫社)의 미술과 촉탁, 1940년 귀국하여 조선연예주식회사와 조선악극단의 미술부장, 예원좌ㆍ약초악극단ㆍ반도악극단ㆍ신생극단ㆍ황금좌 등에서 악극 및 무용극 장치를 담당했다. 광복과 더불어 서울무대장치소를 개설하여 운영하는 한편, 연극과 영화 양쪽에 활동의 폭을 넓혔다. 1958년 명동의 유명한 문화다방인 동방살롱을 경영했고, 1961년 드라마센타 설계 참여, 이해랑과 「이동극장」 운동, 중앙국립극장 무대과장, 서울시 문화위원 등을 역임하여 우리나라 무대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미술인ㆍ교육자(1954~1960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ㆍ영화 아트디렉터ㆍ국회의원, 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했다. 뛰어난 그림 솜씨로 많은 무대와 전통의복 등의 스케치와 200여 점의 회화작품을 남겼다.
4. 문화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없는 듯 있고 또 있으면서도 없는 듯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과는 달리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열악한 문화적 인식과 인프라가 미비한 문화예술계에서도 변방이었던 판화나 드로잉 장르는, 활동은 있었으되 공기처럼 잘 포착이 되지 않는 분야였다. 개화기를 거치면서 서구 문물의 유입과 일제 강점으로 인해 전통과의 단절로 그 양과 질이 모자랐고, 또 기록 또한 미비해서 그 실체를 확인하기가 어려워서다. 게다가 이병현과 김정환처럼 순수미술 전공자가 아니고, 짧은 기간 판화로 활동하다가 본인의 전공 분야로 간 사람의 궤적은 미술사에서 좀처럼 기술도 거론도 되지 않는다. 물론 전문 화가나 판화가가 아닌 이들의 작업이 당시 장발이나 이병규, 최영림의 조형적 수준에 당연히 미치지 못해서 주목도가 낮았겠지만, 『LE IMAGE』나 『성벽』의 삽화, 『해송동화집』 『시인부락』 『지오선』과 같은 주목도 높은 책의 장정이나 삽화 활동은 장르를 넘나드는 다원적 문화로 기능한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100여년 전 당시 우리의 문화적 삶을 증명하는 역사적 유물이자 책을 아끼는 인문적 태도와 미감은, 지금도 여전히 가치가 있으니까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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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한일 근대미술가들의 눈 “조선에서 그리다”』 / POLA ART FOUNDATION
•『植民地期朝鮮における創作版画の展開(6)-朝鮮人美術家による日本の創作版画の
修得とその展開について』, 辻(川瀨) 千春(TSUJI (KAWASE), Chiharu), 名古屋大學博
物館報告
•『중일 판화운동의 상호영향에 관한 고찰-루쉰(魯迅) 목각(木刻)운동과 전후 일본의 민중판화운동을 중심으로』, 후지무라(이나바)마이, 동북아시아문화학회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료집, 2015.11.
•『모던디자인-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 국립현대미술관, 2022.
•『한국연극이면사』, 이두현과의 대담, 국립문화재연구소, 도서출판 피아, 2006.
•『한국영화총서』, 한국영화진흥조합, 1972.
•「문헌 김정환 연구」, 김흥우, 『연극학보』 10ㆍ11합집, 동국대학교, 1978.
•『3인의 무대미술가: 김정환, 장종선, 최인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 집, 국립예술
자료원, 2012.
•『한국연극의 거인 이해랑-이동극장운동, 무대미술가 김정환』, 주간한국.
•『포스터-시대를 비추는 그래픽디자인의 총아』, 2008 9. 25-10. 31, 근현대디자인박물관
모디움(MODEUM).
•『한국그래픽디자인의 여명과 잡지 표지 디자인』, 블로그 나비공간, 2004.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