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가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나 다섯 살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고 선천 방어사로 있던 조부 김익순이 반군에 투항함으로써 그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역적의 집안으로 전락되어 멸족을 우려한 부친이 형과 함께 그를 곡산으로 보내 노비의 집에서 숨어 산다
여덟 살에 조정의 사면으로 집으로 돌아오나 그 가족들이 온전히 터 잡고 살 곳이 있겠는가. 여주, 가평, 평창을 거쳐 영월에 정착을 해서 집안을 다시 일으켜보려는 모친의 후원에 힘입어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글공부에 힘쓴다.
나이 스물, 결혼한 그 해, 운명을 다시 바뀌게한 시골에서의 백일장을 보게 된다. 과제는 "가산군수 정시의 충성을 찬양하고 역적 김익순의 죄를 한탄하라". 그는 조부를 규탄하는 명문으로 장원에 급제하나 할아버지를 팔아 입신양명하려고 한 자신에 부끄러움을 느껴 글공부를 포기하고 농사를 지으며 은둔생활을 한다.
그러나 신분 상승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지만 부패한 과거제도에 실망을 하고 어느 세도가의 집에서 식객으로 지내던 중 그의 출신 성분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제도권 진입을 포기하고 스물다섯에 기나긴 방랑의 길에 들어선다.
방랑 초기에는 지방 토호나 사대부 사람들과 교유하면서 나름대로의 품위를 유지하나 세상인심이 한결 같을 수는 없는 것. 그는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고 서민들 속에 섞여서 날카로운 풍자로 상류사회를 희롱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읊으며 일생을 보낸다.
1863년 3월 29일, 그의 나이 쉰일곱, 마침내 전라도 동북 땅 적벽강 흔들리는 배에 누워 기구했던 한평생을 회고하며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일생을 마감하고 떠난다. 그의 시신은 차남인 익균이 거두어 영월군 하동면 노루목에 외로웠던 육신을 모셔 놓았다. 영월 와석리에 그의 생가터와 묘지가 있으며. 광주 무등산에는 그의 詩碑가 있다.
김삿갓
2. 김삿갓의 사상
김삿갓의 방랑 생활은 출발 동기부터 불평객과 반항아의 색채를 띠고 있다. 그것은 그가 가명(假名)을 김란(金란)이라 하고 난고(蘭皐) 외에 이명(而鳴)이라는 호(號)로 불리고 (스스로를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여겨 : 무애자 註) 머리에 삿갓을 쓴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명(而鳴)은 중국 서적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있는 불평이명(不平而鳴)이라는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그의 불평과 반항은 계급적 몰락에서 오는 개인적 입장에서 시작되었으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폭 넓은 사회 경험을 함에 따라 세계관과 사회관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즉 조선 왕조에 대해 은근히 반대의 감정을 표시한 것은 물론 봉건 질서와 제도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였으며 빈부의 차가 심한 사회적 불합리를 저주하고 양반 귀족들의 죄악과 불의, 거만, 허식을 증오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중년을 넘으면서 점점 더 심해졌다.
그의 사상에 이러한 변동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폐족이라는 계급적 지위, 종의 집에서 자라난 유년 시기의 성장 과정, 또는 일생의 방랑생활이 말해주는 불우한 사회적 처지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이유로 그가 살던 조선 말기의 사회환경과 시대특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불행한 사람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깊은 동정을 표시하고 만인이 갈망하는 벼슬을 포기함과 동시에 당시 봉건 질서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그 사상과 태도 속에는 멸망과 붕괴에 민중들과 사회의 시대적 기운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사상에서 가장 중심적인 경향은 강한 의분과 정의감에 기초한 반항 정신과 풍자정신이었으며 인도주의로 받침되는 평민 사상이었다. 이 외에 자유분방함, 노골적인 연애감정, 낙천성과 풍부한 유머, 개개 사물에 대한 실사구시(實事求是)적인 관심 등의 경향도 있으나 그것은 부차적인 의의를 가지거나 중심 사상의 간접적이며 우회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그의 사상과 결부하여 몇 가지 특징을 말한다면
첫째, 이러한 사상 경향의 심도와 강도가 매우 철저하고 강렬했다. 일생 동안 방랑생활을 하는 중 그의 아들이 세 번이나 찾아와서 귀가를 간청하였으나 끝까지 돌아가지 않은 점, 모친이 계신 외가가 있는 마을을 지날 때는 들러서 직접 만나지는 않고 산에 올라가 나무하러 온 아이들에게 안부를 묻고 갔다는 이야기, 친구 정현덕의 주선으로 왕의 사면을 받고 벼슬 받을 기회를 거절했다는 사실 등에서 그러한 특성을 볼 수 있다.
둘째, 사상 경향의 표현 방법과 형태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였다. 우선 방랑 생활 자체가 불평과 반항의 한 표현이었다. 그 이전의 많은 반항아들 역시 이 방법을 취했으니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일생을 방랑객으로 지냈고 봉건체제에 반항했던 허균(許筠)도 강원도, 경기도 등을 방랑하다가 발각되어 사형을 당하였다. 괴이하고 광적(狂的)인 행동도 반항의 한 표현방법이었다.
황오(黃五)의 녹차집(綠此集)에는 '하루는 정현덕이 내게 편지를 보내오기를 천하 기남자(奇男子)가 있는데 한번 가 보지 않겠는가 하기에 같이 가보니 과연 김삿갓이더라. 사람됨이 술을 좋아하고 광분하여 익살을 즐기며 시를 잘 짓고 취하면 가끔 통곡하면서도 평생 벼슬을 하지 않으니 과연 기인이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석우는 해장집(海藏集)에서 '과거장에 들어가되 어떤 때는 수십 편을 짓고 나오고 어떤 때는 한 편도 안 짓고 나오니 그 광태가 이와 같더라.... 과거장 밖의 술집에서도 그의 이름을 사랑하나 그 광태를 무서워하여 술을 모조리 먹어도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라고 그의 기행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또 상대방을 공격할 때는 큰소리로 웃어주기도 하고 풍자와 재담으로 비꼬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취하였다. 이것은 일반 대중이 그와 그의 예술을 사랑하는 요인이 되었으며 일부 양반들도 그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한편 즐겨 쓴 삿갓 역시 변형된 투쟁 무기였으니 보기 싫은 당시 사회와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의 사상적 표현이었다. 김삿갓은 조부를 탄핵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죄인이라기보다는 사회정치적인 각도에서 보면 봉건적인 지배 계급에 대한 반항아였다.
-실천문학사 발행 <김삿갓 풍자시 전집> 에서 발췌
김삿갓 김병연 시인의 표준 영정
3. 방랑시인 김삿갓(金笠)의 시편들
본명은 김병연(1807~1863, 향년 56세) 조선 25대 철종 때의 방랑시인. 본은 안동.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삿갓에 죽장을 짚고 조선 팔도를 방랑하면서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을 개탄, 조롱하는 시들을 많이 남겼다. 그의 뛰어난 시편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몇 편을 골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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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산골 완고한 백성이 괴팍한 버릇 있어
문장대가들에게 온갖 불평을 떠벌리네.
종지 그릇으로 바닷물을 담으면 물이라 할 수 없으니
소 귀에 경 읽기인데 어찌 글을 깨달으랴.
너는 산골 쥐새끼라서 기장이나 먹지만
나는 날아 오르는 용이라서 붓끝으로 구름을 일으키네.
네 잘못이 매 맞아 죽을 죄이지만 잠시 용서하노니
다시는 어른 앞에서 버릇없이 말장난 말라.
하늘은 멀어서 가도 잡을 수 없고
꽃은 시들어 나비가 오지 않네.
국화는 찬 모래밭에 피어나고
나뭇가지 그림자가 반이나 연못에 드리웠네.
강가 정자에 가난한 선비가 지나가다가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드렸네.
달 기우니 산 그림자 바뀌고
시장을 통해 이익을 얻어 오네.
*** 이 시는 모든 글자를 우리말 음으로 읽어야 한다.
천장에 거미(무)집 / 화로에 겻(접)불 내
국수 한 사발 / 지렁(간장) 반 종지
강정 빈 사과 / 대추 복숭아
월리(워리) 사냥개 / 통시(변소) 구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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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함경도 북청에서
내노라 하고 살면서도 인색하기 짝이 없는 정풍헌(鄭風憲)의 신축 瓦家 당호를 써준 이야기
貴樂堂 귀락당
글자 뜨대로 새기면 ‘귀하고 즐거운 집’이란 뜻인데, 거꾸로 읽으면 ‘당락귀’가 되어 흔히 하는 말로 당나귀 정씨를 놀려 먹는 당호가 되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정풍헌은 노발대발했다가 글씨가 워낙 명필인데다 당호를 새로 쓰자면 돈푼께나 또 들여야 하는 게 아까워 그대로 걸어두기로 했다나 어쨌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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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함경도 단천에서
글 잘 한다고 소문 난 당시 20세의 노처녀 가련(可憐)과의 첫날 밤, 그 첫 방사(房事) 후에 썼다는 시 한 수.
毛深內闊 모심내활
必過他人 필과타인
털(陰毛) 아늑하고 속이 휑한 걸 보니
필시 누군가 지나간 자취로다
이에 글 잘하는 그 가련이 그 자리에서 쓴 답시
後園黃栗不蜂折 후원 황류은 불봉절하고
溪邊楊柳不雨長 계변양류는 불우장이라
뒷동산 누런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절로 벌어지고
시냇가 수양버들은 비 없이도 절로 크지 않느뇨?
그러니까‘사정을 모르면 가만이나 있어라, 이 양반아.’ 아마 이런 말뜻이 될 듯...
여기서 밤송이는 남성, 수양버들은 여성을 상징 함.
(아래의 글을 보면 가련이 기생의 딸이었음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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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생 가련에게(可憐妓詩 가련기시 )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안락성 안에 날이 저무는데
관서지방 못난 것들이 시 짓는다고 우쭐대네.
마을 인심이 나그네를 싫어해 밥 짓기는 미루면서
주막 풍속도 야박해 돈부터 달라네.
빈 배에선 자주 천둥 소리가 들리는데
뚫릴 대로 뚫린 창문으로 냉기만 스며드네.
아침이 되어서야 강산의 정기를 한번 마셨으니
인간 세상에서 벽곡의 신선이 되려 시험하는가.
*벽곡은 신선이 되기 위해 곡식을 먹지 않고 수련하는 방법.
*안락성에서 안락하지 않게 밤을 지냈음을 풍자했다.
내 앉은 모습이 선승 같으니 수염이 부끄러운데
오늘 밤에는 풍류도 겸하지 못했네.
등불 적막하고 고향집은 천 리인데
달빛마저 쓸쓸해 나그네 혼자 처마를 보네.
종이도 귀해 분판에 시 한 수 써놓고
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마시네.
요즘은 시도 돈 받고 파는 세상이니
오릉땅 진중자의 청렴만을 내세우지는 않으리라.
*진중자(陳仲子)는 제나라 오릉(於陵)에 살았던 청렴한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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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훈장 (訓長 훈장)
김삿갓은 방랑 도중 훈장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훈장에 대한 그의 감정은 호의적이지 못해서 얄팍한 지식으로 식자(識者)인 체하는 훈장을 조롱하는 시가 여럿 있다.
세상에서 누가 훈장이 좋다고 했나.
연기없는 심화가 저절로 나네.
하늘 천 따 지 하다가 청춘이 지나가고
시와 문장을 논하다가 백발이 되었네.
지성껏 가르쳐도 칭찬 듣기 어려운데
잠시라도 자리를 뜨면 시비를 듣기 쉽네.
장중보옥 천금 같은 자식을 맡겨 놓고
매질해서 가르쳐 달라는 게 부모의 참마음일세.
산골 훈장이 너무나 위엄이 많아
낡은 갓 높이 쓰고 가래침을 내뱉네.
천황을 읽는 놈이 가장 높은 제자고
풍헌이라고 불러 주는 그런 친구도 있네.
모르는 글자 만나면 눈 어둡다 핑계대고
술잔 돌릴 땐 백발 빙자하며 잔 먼저 받네.
밥 한 그릇 내주고 빈 집에서 생색내는 말이
올해 나그네는 모두가 서울 사람이라 하네.
*풍헌(風憲)은 조선 시대 향직(鄕職)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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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환갑 잔치 (還甲宴 환갑연)
환갑 잔치집에 들린 김삿갓이
첫 구절을 읊자 자식들이 모두 화를 내다가
둘째 구절을 읊자 모두들 좋아하였다.
셋째 구절을 읊자 다시 화를 냈는데
넷째 구절을 읊자 역시 모두들 좋아하였다.
푸른 산 그림자 안에서는 사슴이 알을 품었고
흰 구름 지나가는 강변에서 게가 꼬리를 치는구나.
석양에 돌아가는 중의 상투가 석 자나 되고
베틀에서 베를 짜는 계집의 불알이 한 말이네.
*사슴이 알을 품고 게가 꼬리를 치며, 중이 상투를 틀고 계집에게 불알이 있을 수 있으랴.
허망하고 거짓된 인간의 모습을 헛된 말 장난으로 그림으로써 당시 사회의 모순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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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구월산가
去年九月過九月 지난 해에도 구월에 구월산을 구경하고
今年九月過九月 올해도 구월에 구월산을 구경하니
年年九月過九月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구경한다
九月山光長九月 구월산 경치가 언제나 구월이로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哀愁(애수)가 녹아있는 이 감상적인 詩情(시정)은 구태여 몇 번이고 의식적으로 되풀이 쓰인 숫자 九 때문에 담담한 觀照(관조)로 승화되어 있다. 이처럼 비개성적인 숫자의 사용은 해학적인 효과를 얻은 표현상의 기교에 끝나지 않고 無限(무한)과 有限(유한)에 관한 객관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한 주제의식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으로 뒷받침되어 서정적인 詠嘆(영탄)이 밝은 達觀(달관)의 시세계에로 까지 끌어올려져 있는 것이 아닐까. 영원한 햇수, 즉 무한집합에 있어서는
1, 2, 3,4.....라고 셈하는 것, 또는 大小.長短(대소.장단)을 비교한다는 것 따위는 의미가 없다. 이러한 무한과 유한에 대한 어떤 철학적인 성찰이 이 詩句(시구) 속에 담긴 것 같다.
(어느 수학자의 사이트에서...)
4. 탑골공원 노재의가 들려주는 <방랑시인 김삿갓 이야기> 1
--인터넷 사이트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혼자 읽기 아깝다는 생각에 옮겨 봅니다.
-무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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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 탑골공원 이야기꾼 노재의가 방랑시인 김삿갓에 얽힌 이야기를 시리즈 형태로 구연한 것이다. 득의의 구연종목 가운데 하나로, 청중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이 이야기는 인물에 얽힌 전승으로서의 전설적 성격과 재미있는 이야기로서의 민담의 특성을 함께 갖추고 있다.
----------------------------- 김삿갓(1) - 강원도 경치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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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김삿갓이라구 허는 분이 에 어띃게 표시가 되느냐면 지금으로부터 8년 전에 말이죠, 저 전라도 무등산 밑이서 쉰둘 나이로서 객사했다느만요 그분이, 그런디 그 객사한 그 장소에다서 그 후손들이 거기다서 비문을 하나 세얀대요. 그분이 기구허게, 기구헌 운명에 파란만장한 생애를 전국에 누비구 댕기다서 기구허게 객사한 그 장소에다서 그 후손들이 거기다 비문을 하나 세야는디, 그 비문을 세는디, 그때 돈, 지금으로부터 8년 전에 신문 난 거 보니까, 그때돈 삼백육십만원인가 걷어가지구서요 비문을 셌대요 그 장소에다서. 세는디, 그 비문 뒤에는 무엇이 올라갔냐면 그 방랑시인 김삿갓이라구 허는 분이 에 그 강원도에다가서 술 읃어먹은 것이 거기 올라갔다느만요, 술 읃어먹은 것. 술 읃어먹은 것이 거기 올라갔는디, 거기 어띃게 술 읃어먹은 것이 올라갔냐면...
[잠시 구연을 중단하고 옷을 벗는다]
그 그분이요, 그 분이 아마 때가 여름이었던가 이렇게 강원도를 가니까요. 강원도 가니깐 강원도 학자들이 저 십이폭 차일을 쳐놓고 이렇게 그 저 자리를 깔아놓구 깨끗하게 모시옷을 입고 앉아서 술을 먹구, 시를 하나 읊으면은 시가 완성되면 그 저 술 한잔씩 먹구 그러드래요. 그런디 그 술이 무슨 술이냐면요, 저 한산 소곡주라구 100일만에 뜨는 술인디, 아 그 술이 이렇게 뜨면 느른하니 향기가 그윽하구 아 그런 술을 먹어가면서 이렇게 그 저 학자들이 강원도 경치를 글자 몇 자에다서 표시하구 헐라구 했다서 또 이것이 안 되면 찢어버리구 또 쓰고 이렇게 놀더래요.
노는디 방랑시인 김삿갓이요, 거기를 지나가다서 어 배도 고프고 그러니깐요. "아이구 저기 가서 술이나 한 잔 얻어먹어야겠다."구 허구서 지나가다서 방랑시인 김삿갓이라는 분이 어 삿갓을 쓰고 가다서 삿갓을 마루 밑에다 이렇게 늤대요. 늫구서 그냥 가서 그 학자들보구서 술 한 잔 달라 그러니깐요, 그 학자들이 술을 안주더래요. 안 주면서 뭐라구 말하냐하면요, "여기는 애 학자들이 글자 몇 자에다서 강원도 경치를 표시하구서 그것이 완성되면 술 한 잔씩 먹구허는 디지 지나가는 길손이 그냥 술 얻어 먹는 디가 아니라구." 술을 안 주더래요.
그래서 그 왜 안 주면 우리 같으면 그냥 나와야 헐틴디요, 어 이 사람은 에 그냥 달라구 이렇게 엎드려 있다 이 말예요. 어 그러니깐 애 그 학자들이 그 술 달라구 하는 사람보구서 뭐라구 말허냐면 "당신 글이나 뱄냐구? 글이나 뱄냐"구 그런단 말예요. 그래서 그러니깐 이 사람이요, 글 뱄다 소리도 않구요, "그냥 술이나 한 잔 달라"구 하니깐요, 그 학자들이 재차 글이나 뱄냐구 물어보더래요. 그 옛날에는 글 뱄냐구 그래서 글 뱄다구 그러면 축에 넣지만 글 안 뱄다구 허먼 그거 이렇게 처녀(?)루 늫거든요. 아 그런디 글을 안 뱄다구 허니깐 말이지, 글 뱄다 소리도 않구 안 뱄다 소리두 않구 그냥 술이나 한 잔 달라구 헌다 이거예요.
아 그러니깐 그 학자들이 당신 또 글 뱄냐구 물어보더래요. 그래서 어 이 사람이 뭐라구 말했냐면요, 글 뱄다 소리도 않구. "글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 말을 종이다 쓰면 글이 아니냐"구 허니깐, "그렇지." 그러드라 이 말이야. "그러면 내가 말허는 거 쓰라"구, 그 술 달라구 하는 사람이 그러니까요. 그 학자가 이렇게 지필묵을 잡더래요.
잡으니깐 그 술 한잔 달라구 허던 사람이 뭐라구 말허냐면요, 이렇게 물어보드래요. "아 글자 중에 저 소나무라고 하는 글자가 있냐구?" 그러니깐 "아 소나무 송(松)자가 있다"구 그러드라나. 그러니깐 "그 소나무 송자를 두 자를 또 쓰라"구 허드래요. 그리구 또 두번째는 "글자 중에 그 잣나무라고 하는 글자가 있냐"구 물어보니깐 "아 잣나무 백(栢)자가 있지" 그러드래. 그러니까 "그거 두 자만 쓰라"구 그랬대요. 그래 썼다거든요. 썼더니 고 다음엔요 "이 바우라는 글자가 있냐"구 물어보더래요, 술 달라구 허는 사람이. 그래 "바우 암(岩)자가 있지" 그 두 자만 쓰라구 그러드래요. 그래 두 자 썼대요. 그랬더니 "그 글자 중에 요렇게 돌아간다는 글자가 있냐"구 물어보더라나요. 그래서 아 돌아간다는 도로 회(回)자가 있으니깐 그거 한 자를 쓰라 그러드래요. 그래서 썼다거든요.
쓰구 인저 지필묵을 욂겨 놓구서요. 어 인자 뭐라구 말허냐면 에 "글자 중에 이 산이라는 글자가 있느냐"구 물어보더래요. "뫼산(山)자가 있지" 그러니깐 "그 두 자만 또 쓰라"구 그러드래요. 그래서 쓰니깐요, 인자 지필묵을 옮겨 놓구서요, 고 다음에는 에 저 "물이라는 글자가 있냐"구 물어보드래요." 물, 물이라는 글자가 있냐"구 그러니깐 아 "물수(水)자가 있지" 그러니깐 "그 두 자만 쓰라"구 그러드래요. 아 그랬더니 고 다음에는 "저 이곳 저곳이라는 글자가 있냐"구 물어보드래요. 그래서 "이곳 저곳이라는 곳처(處)자가 있지" 그러니깐 "그 두 자만 쓰라"구 그러드래요. 썼다거든요. 썼더니 "글자 중에 기묘하다는 글자가 있냐"구 믈어보드래요. 그래서 "기특 기(奇)자가 있지." 그러니깐 "그거 한 자만 쓰라"구 그러드래요.
그러구서 술 달라구 한 사람이요, 입을 싹 다물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 걸인이 불러준 대로요, 그 받아쓴 사람이 읽어 봤어요. 읽어 보니깐 거기 뭐라구 썼냐면 거기 이렇게 썼더래요. 저 '송송백백암암회(松松栢栢岩岩回), 산산수수처처기(山山水水處處奇)' 이렇게 썼더래요. 이게 무슨 소리냐면요. "소나무 소나무, 잣나무 잣나무. 바우가 있구 요렇게 돌아가구. 또 산산, 산산마다 물이 쫄쫄쫄 나오고 이곳 저곳이 기묘허다"고 이렇게 썼단 말예요.
그래서 강원도 학자들이요, 그 백일주를 갖다 놓구서 먹어가면서 아침부터 강원도 경치를 쓸라구 그렇게 써도 완성치를 않아서 버리구 버리구 했는디 아 그 술 한 잔 달라구 하는 사람이 어 불러준 대로 쓰구서 읽어보니깐 거기 뭐 강원도 경치가 다 들어가구 뺄 것두 없구 늘 것두 없구 아래 위가 딱 맞는단 말예요. 그러니깐 그 강원도 학자들이요, 에 술을 한 잔 퍼주드래요. 그 술 한 잔 퍼주니깐 술을 한 잔 먹구서요. 가는디 그냥 가는게 아니라 마루 밑에서요, 삿갓을 끄내서 쓰고 가니깐 그때사 그 강원도 학자들이 말야. 술 달라 그럴 때는 걸인인 줄 알았는데 아닌게 아니라 삿갓을 쓰고 가는 것을 보구서 아 방랑 시인 김삿갓이라는 것을 알구서 "아구 김삿갓 선생님을 몰라보구 이랬으니 놀다가시라"구 그랬는디 그 분이 그냥 갔대요.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8년 전에, 방랑시인 김삿갓이 객사한 전라도 무등산 기슭에 비문을 세는 그 장소에가 비문 세는디 그것이 올라갔대요 비문에.
그런데 지가 나왔으니까 이 학생이 자꾸만 그걸 얘기해 달라구 해서 외람되게 나왔는디 저 뭐이냐면 그 분이요, 노비라도 좀 보태쓸까 그래서요, 저 베를 이렇게 지구 댕기다서 팔러 댕길라니까 안 팔려서요, 안 팔리고 해가 진다 이 말예요. 그러니깐 어디가 자야 할텐디 뭐 잘 디두 없구. 그 서당방에 가서요, 서당방 훈장 보구서 "나 좀 하루 저녁 재워달라"구 그랬대요.
그랬더니 훈장이 떡 보더니 뭐라구 말허냐면요 "아, 보니깐 장사, 장사친디, 그 장사치는 객주집이나 주막거리서 자구 가는 디지, 여기는 학자들이나 오다가다서 잠깐 쉬어 가는디지, 그 지나가는 장돌백이가 자구 가는 디가 아니라"구. 거절헌다 이 말이에요. 그래 이 사람이 거절하면 나와야 헐틴디요. 그냥 이렇게 베를 지구서 훈장보구서 좀 하루 저녁 재워 달라구 이렇게 허구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깐 훈장이 뭐라구 말하냐면요 "글을 뱄냐"구 물어보더래요. 옛날에는 글 뱄냐구 물어보는게 요새로 말할 것 같으면 아마 공부했냐 소리인 모양이죠. 글을 뱄냐구 허니깐 글 뱄다 소리두 않구. 베를 지고 있는 거 보니깐, 훈장이 보니깐 앙껏두 몰르는 무식쟁이 같은디 말이지. 저것이 뭐 글을 뱄으랴 그러구서 어 인자 있는디. 선생이 보니깐 글을 안 뱄어. 글을 안 뱄으니깐 저런거나 지고 다니고, 장돌백이.
아 그런디 글을 뱄냐구 그러니깐 글 뱄다 소리두 않구, 아무 말도 않구서요. 우리 같으면 그냥 안 된다면 나오는디 말이지, 이 사람은 떡허니 서설라무니 그냥 지구서 재워달라구 엎드려 있으니깐 말이지. 선생이 글 뱄냐구 또 물어봤다 이 말여. 글 뱄다 소리두 않구, 뭐라구 말허냐면 선생보구서 "그 운자나 좀 불러보쇼." 그런단 말야 선생보구서요. 선생이 가만히 생각하니깐 운자라고 하는 것은 학자나 하는 소리란 말야. 근디 보니깐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쟁이 같은 것이 운자 불러 보라구 그러니깐 건방지다 이 말이여. 방자허구 말여. 지가 뭐 아는 것 같이 말이지.
그러니깐 선생이 말짱 무시했어, 이걸. 무시허구서 운자를 불러보라구 그러니깐 말이지, 거 운자 다른 걸 부를 거 없구 그러니깐 그 사람이 말이죠, 그 사람이 지구 있는 것이 베를 지구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선생이 그놈 허는 것 좀 볼라구요. "베포(布)" 자를 불렀단 말야, 베 포. 불렀더니 이 사람이 뭐라구 말허냐면요. "사승오승육승포(四升五升六升布?)" 그런단 말여. 이게 베 망(?)을 얘기하는 모양이야.
그러니깐 선생이 말이지, 어 그 대꾸를 허니깐 말야. 저놈이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쟁이 같은디 말야 대꾸를 하니깐, 운자는 한 번 불르면 안 부르는건데 그놈 하는 것 좀 볼라구 두 번째도 또 '베포' 자를 불러봤거든. 어 그랬더니 이놈이 뭐라구 말허냐면 어 그때는 "함흥이래고래포(咸興以來古來布?)" 그런단 말야. 함흥서 그 옛날에 많이 나왔던가 "함흥이래고래포" 그런단 말야.
그러니깐 두 번이나 '베포' 자를 불렀으니깐 세번째는 '베포'자 불르는 거 아닌디 그 놈 허는 것 좀 볼라구 말이지,.선생이 '베포' 자를 또 불렀어요, 세번채도. 아 그랬더니 그 적에는 이 사람이 뭐라구 말허냐면 "허다운중기어포(許多韻中豈語布)" 허구 많은 운자 중에서 어찌 기(豈)자, 어찌 베포자만 불르냐 이 말이여. "허다운중기어포" 그런단 말여. 허구 많은 운자 중에서 어째서 베포자만 불르냐 이 말이야. 그렇게 그 선생보구 그런단 말여.
그러니깐 그 선생이 말이지, 그 허는 것 좀 볼라구 네번채도 또 '베포'자를 또 불러봤단 말여. 내가 보면 아무 것도 몰르는 것이 운자 불러보라니깐 아주 건방진 놈이라구 무시한 거요 이게. 그랬더니 그때는 끄트머리를 뭐라구 말허냐면요 "선생소학단지포(先生素學但只布?)." 선생은 오직 아는 것이 단지 베포자밖에 몰른다 이 말이여. "선생소학단지포." 그러니깐 아 그때서 선생님이 "주무시구 가라"구 해서 자구 갔대요 거기서요.
그 하나 또 허먼 뭐 있냐며는, 그 분이 말이지 어디 들어갔냐면, 이렇게 댕기다서요, 댕기다서 여기 자리, 돗자리 깨끗한 거 깔구 아주 모시옷 깨끗하게 입고 있는 선비들이 노는데 들어가서요, "나 좀 하루 저녁 재 달라"구 그랬단 말여. 아 그랬더니 그 우리도 싫어 기분이. 아닌게 아니라 시커먼 놈이 의복도 드럽게 입고 그런 놈이 자고 가겠다구 들어와서 재 달라구 그러면 나보텀도 기분 나뻐요. 지금이나 예나 사람 마음은, 사람 살아가는 이치는 같은 것인디. 우리도 기분 나쁠거여. 아 근디 깨끗하게 입고 선비들이 노는데 말야, 시커먼게, 아닌게 아니라 객지에 댕기다 보먼 의복 빨지도 못하구 씻지도 못허구 이러니깐 남루하게 되는 거예요 그거. 그래 "나 좀 재 달라"구 그러니깐 말야, 선비들이 가만 보니깐 아 뭐 거지 같은 것이 와서 재달라 그러니깐 끔찍하단 말야.
그러니깐 거기서 선비가요, 글씨를 쓰더래요 거기다. 뭐라구 쓰냐면 "여지하산오 감리봉황군(汝之何山烏 敢璃鳳凰群?)" 그러드라나. "니가 어떤 산에서 굴러 먹는 까그매길래," 까매귀가 시커먼거 아뇨 시커먼 거? "어떤 산에서 굴러먹는 까그매길래 감히 봉황이 노는 데를 들어왔느냐?" 이렇게 쓰더래요. 그러면서 지필묵을 던져주더래.
그러니깐 이 사람이 지필묵을 받아가지구서요. 거기다 뭐라구 쓰냐면 이렇게 쓰더래요. 방랑시인 김삿갓 쓰기를 뭐라구 쓰냐면 "아본청천학 오락노아군(我本靑天鶴 誤落鷺鵝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이런 소리나느만. "나는 본래 높은 하늘에서나 이렇게 지내구 느덜 옆에는 드러서 가지도 않았다." 이 말이여. 근디 오락노하군. "내가 높은 하늘에서나 놀던 학인디, 내가 가세가 불길해가지구설라므니 따오기 무리에 떨어졌다."구 이렇게 말허드래요. 이게 무슨 소리냐면요, "옛날에는 내가 니들 옆에는 드러워서 가지도 않했는디 말이지, 그러구서 높이 노는 학이었다" 이 말이여. 그랬는디 내가 따오기 무리에 떨어졌다"구 허니깐 말이지, 그 선비들이 자구 가라구 그래서 자고 갔대요.
그런디 그 분이 말이죠. 그 분이 어디를 갔냐며는 옛날에는 말이지, 저 전국을 누비구 댕기는디 어디를 갔냐면 저 평안북도 어디를 갔다느만요.
갔더니 그 동네에는 무슨 일이 있냐면요. 저 처녀가 추물이 되서 시집을 못 가는디 옛날에 처녀가 시집 못 가구 죽으면 처녀 죽은 귀신이라구 무서운 귀신이래요. 그렇다구 저 시집이나 보내구서 저거 늙어 죽어야 헐텐데 저거 시집도 못가구 처녀 늙어 죽인다구 저거 어떻게 허냐구서 김삿갓을 장개를 들어주더래요. 그래서 김삿갓이 여자하고 하루 저녁 자게 됐다느만요.
자게 됐는디, 자구서 뭐라구 말했냐면요. 그 여자보구서 그 여자 병풍에다 뭐라구 쓰냐면 "모다공활 필유인적(毛多孔闊 必有人跡)"이라구 말했대. 보니깐 "이 구녘도 크고 털도 많구 말야, 그러니깐 여기는 틀림없이 지나간 사람이 있다"구 이렇게 썼다누만요.
그랬더니 그 여자가 그 말 대꾸로 뭐라구 말했냐면 이렇게 쓰더래요 그 여자가. "후원황율은 불봉타(후원황율은 불봉타)"라. 그래 이 남자가 무슨 소리냐면, 에 그 여자를 데리고 자 보구 구녘도 크고 털도 많구 이런 걸 보니깐 반드시 이게 숫처녀가 아니고 헌처녀더라구 이 소리거든요. 그러니깐 여자가 그 소리를 듣더니 뭐라구 말하냐하면 이렇게 말허드래요. "후원황율(後苑黃栗)은 불봉타(不蜂墮)" 라 이 말이야. "후원에 있는 밤나무에는 말이지. 밤이 벌이 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밤이 벌어져서 알밤이 나온다." 그러니깐 내가 이렇게 구녘이 크구 털도 많은 것은 말이지.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연으로 이렇게 됐다구.
여자가 그러면서 뭐라구 말허느냐면 "계변양류(溪邊楊柳)는 불우장성(不雨長成)" 이라구 말여. "갱변에 있는 버드나무는 비가 안 와도 자라는 거라"구. 그러니깐 내가 이렇게 구녘도 크고 털두 많은 것은 말이지, 지내가는 사람이 있어서 그러는게 아니라 이게 자연으로 이렇다구 그 여자가 답변했다구 그런 것두 얘기라구 또 거기에 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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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5) - 진정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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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디 한 번인가는 그 사람이 어디를 갔냐면요, 저기를 갔대요. 저 북쪽에 한 오천석 하는 사람네 집에 가서 하루 저녁 잘라구 들어갔더니요. 들어갔더니 그 오천석 하는 사람이 그 걱정이 있어서 수심이 가득하더래요. 그래서 "왜 걱정이 있냐"구 그러니깐요. 그 오천석 하는 사람이 뭐라구 말허냐면 우리 사춘덜이 뭐라구 말하냐면 "이놈아 너만 아버지 묘를 잘 써서 잘 살어?" 그렇다구 "작은 아버지 묘를 우리 아버지 묘 위에다서 그냥 묘를 파구서 포개서 관을 갖다 썼대요. 그래서 이걸 파가라구 그래도 안 파가구 그래서 걱정이 된다"구 이렇게 얘기를 하드래.
그래서 그걸 진정서를 내두 뭔가 저짝 편이는 멕혀들어가지두 않구 그렇다구 걱정을 하드래. 그러니깐 이 방랑시인이 거기 자러 들어갔으니깐 말이지. 아닌게 아니라 하루 저녁 유할라구 그랬으니깐 그냥 말 수 없어서 "진정서를 내가 써 줄테니까 지필묵을 가져오라"구. 그래서 그러니깐 그 지필묵을 가져오더래요. 그래서 지필묵을 갖다 주는 걸 가지구 썼어. 써서 관가에다 내라구 해서 관가에다 냈어요.
내니까 관가에서 썩 보니까요. 거기는 뭐라구 썼냐면 이렇게 썼드래. 이게 묘가 어떻게 들어가냐면요, 이 아주머니하고 형하고 사이에 두 내우간 들어간 뒤에 그 묘를 그냥 포개서 관을 갖다 썼으니깐 이게 누가 썼냐면 이 참 시동생이 들어간 거예요. 아주머니와 형 사이에 시동생이 들어간 거란 말야 이게. 근디 그걸 갖다 뭐라구 썼냐면요 "부자모자지간(父者母者之間)에 장수재(長首在)라도 부모불안(父母不安)인데, 형자수자지간(兄者嫂者之間)에 장수재(...) 형수심리야(兄嫂心裏也)" 이렇게 썼드라나요. 그러니깐 이게 무슨 소리냐면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 저 수염이 길구 대가리 큰 자식이 들어가도 어머니 아버지가 마음이 불안한건데 형수와 형 사이에 대가리 큰 시동생이 들어갔으면은 형수의 마음이 얼매나 불안하겄냐" 이렇게 썼드래요.
그래서 그렇게 쓰니깐 그것이 묘를 그 진정서 들어가설라무니 파라구 해서 파줬대요. 그래서 그 집이서는 밥 값허구서나 그렇게 해서 나왔다구 허는 사람이 김삿갓 얘기가 있는디.
아 그런디 그 분이 말이죠. 그 분이 어디를 갔냐면 저 강원도 유점사를 갔다누만요, 저 김삿갓이. 갔는디 배는 고파 죽겄구 말야, 저 유점사 가면 배는 고프니깐 뭐 좀 얻어 먹으랴구 거기를 갔대요.
갔는디 아닌게 아니라 행색이 초라하구 말야, 이런 사람이 씻지도 못하구, 속에 뭐 (...) 있으면 뭘해. 씻지도 못허구 의복도 빨아 입지도 못허구 이렇게 허구서 가니깐 말이지. 가니깐 거기서 어 배는 고파서 밥 얻어 먹으러 간거유 그게. 뭐 좀 얻어먹을라구.
가니깐 학자덜이요. 학자들이 이렇게 글을 짓고 또 이짝편에서는 말이지, 또 그 유생들이 이렇게 앉아서 글을 짓구 그러드래. 그래서 이 사람이 들어가서 말야, 앙껏도 몰르는 체하고서 옆에 앉았다서 주지보구서 배고프다구 뭐 먹을 것 달라구 했으면 되는디, 어 이 사람이 속에 아는 것도 있구 하니깐 말야, 그 유생들과 그 스님들이 쓰는 글을 보구서요, 이렇게 올려다보고 또 이렇게 내려다보고 야차(?) 뭐 높구 이렇게 한 모양이라. 그러니깐 그 주지라든가 그 유생들이 가만히 보니깐 말야, 앙껏두 물르는 아주 거지 같은 것이 와서 말야, 아는 체하고 뭐 허니깐 말야 어 그 바짝 무시했어요 이걸.
그래서 주지가요, 주지가 "저거 국문이나 알까. 국문도 몰르는 것이 저거 아는 체한다"구서 저 국문 타자 줄을 대면서 '타' 그랬단 말야. 그랬더니 이 사람이 국문이나 알까 해서, 국문 타자 줄이나 대꾸할까 허구설라무니 거 주지가 '타' 했대. 그러니깐 이 사람이 뭐라구 말허냐면, 저 절에 가면 기둥이 대개 붉으타면서? "네 기둥 붉으타." 그러드라나. 그래서 그러니깐 또 주지가 '타' 허드래. 타 허니깐 "나그네 시장타." 그랬다누만. 그랬더니 세 번째 또 '타' 하더라나. 그러니깐 이 사람이 뭐라구 말했냐면 "느들 인심 사납타." 그랬다나요. 그랬더니 그때는 말이죠, 글씨 쓰는 자격을 주더래요. 지필묵을 주더래. 지필묵을.
지필묵을 주는데, 아 지필묵을 주는데요, 이렇게 주는 걸 가지구서요 이렇게 쓰는디요, 뭐라구 쓰냐면은, 그 여기 첫번째, 첫번째 줄에 뭐라구 쓰냐면은, "승수원원한마랑, 유두첨첨 좌구심, 성령동정영동정, 목야국숙낙백중" 이렇게 썼다누만.
이게 무슨 소리냐면 그 저 승수원원한마랑(僧首圓圓汗馬囊)이란 건 말여, "그 중놈들 머리 박박 깎고 쭉 앉은 것은 말이지, 땀난 말불알 같다"구 이렇게 얘기했다누만요. 그리고 또 유생들이요, 상투 뾰족뾰족하고 족 앉은 것은 유두첨첨좌구신(儒頭尖尖坐狗腎) "상투 뾰족뾰족하고 쭉 앉은 것은 개가 앉어서 자지 나온 것 같다"구 말이지. 그러구서 성령동령영동정, "중놈의 목소리는 말이지, 빈 가마솥에 말방울 떨어지는 소리같이 우람하다"구 말여. 아 그러면서 고 다음에는 말이지. 목야국숙낙백중, "그 중놈의 눈깔은 말이지, 흰 죽에 검은 콩 떨어진 거 같다"구 이렇게 말했대요.
아 그랬더니, 그렇게 해서 유점사를 기분 나쁘게 해서 말이야, 그렇게 유점사 가설라므니 그것이 그 사람이 아마 맹길은 글이래요 그게.
그리고 이 사람이 어디를 갔냐하면, 에 인자 그 옛날에요, 옛날에 이 서울에는 말이죠. 서울에는 전국에서 공부를 많이 해가지구서요. 서울이 와서 어디 문하생으로 있구, 어디 영상집이나 문하생으로 있게되면요. 거기서 고을살이 하나도 얻구 그러니깐요. 전국에 공부해가지구설라무니 전국에서 해가지구서 서울로 와서 어 인자 출세길을 위해서 있다 이 말이야. 아 그러는디 이 서울에 그러니께 학자들이 쭉 깔렸단 말이에요.
쭉 깔렸는데 아침마다요, 아침마다 여기 서울 거리를요, 서울 거리를 어지필묵을 가지구 댕기면서 말이죠, 뭐라구 말허냐면 저 "글을 때우쇼. 글을 때우쇼."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글을 때우쇼"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니깐... 그게 무슨 소리냐면요, "네것들 뭐냐 이 말이여. 내가 고쳐주지 않으면, 고쳐주지 않으면 완전한 글이 안 된다"는 얘기예요. 그러면서 어 밤낮 아침마다 "글을 때우쇼. 글을 때우쇼.' 지나가는 사람이 있거든.
그러니깐 그 어떤 학자가 가만히 생각하니깐 말이지. 이 서울이 감히 어디냐 이 말이야. 전국에서 공부를 많이 해가지구서 서울에 학자들이 짝 깔렸는디 말야, 여기에 와서 '글을 때우쇼, 글을 때우쇼.' 지나가는 놈이 있으니깐 말야, 그거 얼마나 방자한 놈이냐 이 말이야. 그러니깐 아 이분이 말이지, 듣는 사람이 '오 저놈 저게 무슨 소리냐 하면 네놈것들 다 나만 못하다는 얘긴데 내일 아침에 저놈을 좀 시험 좀 해줘야겄다' 이 말이여.
그래서 어떤 분이 글을 두 줄을 써서 그걸 만들어 놨대요. 맨들었는디 어떻게 만들어 놨냐면 이렇게 만들어 놨다누만. 저 한강 같은데 가면요, 물이 저기서 직선으로 나오다서요, 직선으로 나오다서 이렇게 저기서 물이 직선으로 오다서요, 오면은 이 산을 휘엄(?)한다 이 말예요, 물이. 직선으로, 물줄기가. 그래서 산을 (..)하다서요, 산에서 바우가 나오면 바우를 뚫지를 못하고서 그 바우머리를 돌구간다 이 말이여. 그걸 갔다서 뭐라구 만들어놨냐면요, 물이 돌을 뚫지를 못해서 돌머리를 돌고 간다고 "수난천석석두회(水難穿石石頭廻)"라구 써놨대요. '수난천석 석두회'라구. "물이 돌을 뚫지를 못해서 돌머리를 돌구 간다"구. 요렇게 써놨는디 아닌게 아니라 아무리 봐도 고칠 때가 없구. '오 내일 아침에 말이야, 그놈 지나갈 적에 그놈 불러서 그놈 보구서 이걸 내놓구서 그놈 골탕먹여야겠다'구. 그러구서 그걸 내놨는디 또 하나는요, 또 하나는 뭘 썼냐면 이걸 써놨다누만요. 저기 "산불도강강산립(山不渡江江山立)"이라. 한강 같은 데 가면요 이렇게 강둑에 산이 이렇게 서 있거든요. 근디 이게 무슨 소리냐면 "산이 강을 건너가지 못해서 강둑에 섰다"구, '산불도강강산립'이라구 이렇게 써놨단 말여. 아 '산불도강강산립' 이라구 써 놓으니깐요, 써 놓으니깐 아닌게 아니라 아무리 봐도 고칠 데가 없다 이 말이야.
아 그러는디 그, 그러니깐 내일 아침에 그놈 "글을 때우쇼" 하고 지나가면요 그 두 가지를 내놓구서 고쳐 달라구 할 판인디 아무리 봐도 고칠 디가 없단 말야. 내일 아침에 그놈 "글을 때우쇼, 글을 때우쇼" 지나가는 놈 골탕 좀 멕여야겠단 말여. 우리가 봐선 아무리 봐도 고칠 때가 없으니깐 말여, 그놈 내놓구서 골탕 좀 멕여야겠다구. 그 둘을 만들어 놨대요.
맨들어 놓구서 이렇게 고다음날 기다리니깐요, 아닌게 아니라 "글을 때우쇼, 글을 때우쇼." 지나가는 사람이, 누구냐면 방랑시인 김삿갓이 그랬어요. 지나가니깐요 하인을 시켜서 불러 들였단 말여. 불러들이니깐 왔어요. 오니깐 아니 첫째 여기 저 돌이, 물이 돌을 뚫지 못해서 돌머리를 돌고 간다구 '수난천석석두회'라는 걸 갖다 먼저 내놨어요. 이거 아무리 봐도 고칠 디가 없구. 그래서 이거 내놓으니깐요. 그걸 떡 보더니요, 이 분이 뭐라구 말허냐면요 "아 그거? 그거 '어려울난(難)' 자를 빼고 거기 장차는 뚫을 수 있다구 '장차장(將)' 자를 늫라구" 그러드래요. 가만히 보니깐 아 그게 낫겄단 말여. 고쳐 줬어요, 그거. 근디 이짝 편이 그 산이 강을 건너가지 못해서 '아니불(不)'자, 이렇게 보더니 " '아니불' 자를 빼구 산이 강을 건너갈 욕심이 섰다구 '욕심욕(欲)' 자를 넣으라구" 그러드래요. 그 두 자를 고쳐줬어요, 그렇게. 그게 누구냐면 방랑 시인 김삿갓이에요. 그게요. 그래서 고쳐주구 갔다구 그러는디요.
그 분이 인저 여러가지 얘기가 있겠지만, 한번은요. 한번은 이렇게 그 만석꾼 집이 가서 어 저 어떻게 잘 대접이라도 받구 밥이라도 좀 얻어 먹을라구 만석꾼 집을 찾아갔어요.
만석꾼 집을 찾아갔더니 아 만석꾼이 수심이 가득해 가지구 나오드래요. "그 왜 당신 수심이 가득해 가지구 나오냐"구 허니깐 말이지, "우리 3대독자 외아들이 내일 모레 관가에서 사형을 집행당한다" 이 말여. 그런디 "그래서 주인네가 불행한 일을 당하겠길래 우리 집이 매일 식객이 한 50명씩 끓었었는데 엊저녁에 전부 갔다" 그런다 이 말이여. 그래서 어 그렇다구 그렇게 얘기해요. 그래서 그 방랑시인이 아닌게 아니라 그 집이 밥 얻어 먹으러 들어갔는디 아닌게 아니라 식객들이 다 떠나구 어 떠나구 만석꾼 집에 들어갔는데 하룻밤을 잘라구 들어갔드래요.
들어갔는디 거기 식객들이 매일 한 50명씩 끓었었는데 전부 다 떠났다구 그러드래. 왜 떠났냐니깐 주인네가 3대독자 외아들이 관가에 가서 사형을 집행당한데요. 그래서 왜 그러냐니깐 "자기 아들이 지난 2월달에 위아래집 애하고 싸움했는데 그 위아래집 애가 시름시름 앓다가 9월달에 죽었다" 이거야. "9월달에 죽었는디 에 그 사람을 때려 죽었다구 해서 우리 아들이 때려 죽였다구 해서 관가에 가서 살인자는 사(死)라구 해서 사형을 집행당하게 됐다"구. 그래서 "그러면 당신이 그렇게 억울하면은 진정서라도 써서 써서 내야 할 거 아니냐?" 그러니깐 "아이구 진정서를 썼다서 화근이 미치면 어떻게 허느냐"구. 그렇게 얘기를 하는 중인디. "에 그나저나 내가 당신네 집에 들어왔으니깐 내가 진정서를 하나 써줄테니깐 내보라"구. 그러니깐 그 주인네가 아무 말도 안 해서 그 하루 저녁 잘라구 들어갔으니깐 진정서를 써줄라구 이렇게 써서 줬다나. 줬더니 그걸 관가에다 냈대.
관가에서 썩 보더니 거기 뭐라구 썼냐하면 거기 이렇게 썼더래요. '오비어이월 이락어구월, 오비죄야 병지고야(烏飛於二月 梨落於九月 烏飛罪耶 病之故耶)' 이렇게 썼드래요. 그게 무슨 소리냐면 에 "지난 2월달에 까그매가 날아갔는데 배는 9월달에 떨어졌다" 이 말이야. "배 떨어진거 허고 까그매허고는 관계가 없다." 이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냐면, 다시 말하면 무슨 소리냐면 "얘가 2월달에 싸움해서 9월달에 죽었으니깐 맞어죽은 게 아니고 자연사다." 이 말이야. 그 맞아죽은 거면 2월달에 싸움했으면 3월달이나 4월달에 죽어야 그게 맞아죽은 것이지. 9월달에 죽은 것은 자연사다 이 말이야. 그렇게 하니깐 관가에서 걔애를 나줬대요.
놔주니깐, 그러면은 예가 인저 관가에서 나줬으니깐 얘가 나왔는디, 아 나왔으면은 그 주인이 방랑시인 김삿갓보구서 "당신이 진정서를 잘 써 줘서 우리 아들 살아 나왔다"구 치하를 하구 그랬어야는디, 아 치하를 않구 뭐라구 말허냐면 "당신이 진정서를 잘 써 줘서 나왔어? 우리 아들이 죄가 없어서 나왔지." 그러드래요. 그러니깐 그러면서 나가라구 해서 내쫓았대요. 밥 얻어 먹을라구 진정서를 잘 써서 그집 아들까정 내주구 그랬는데도 나가라구 그래서 쫓겨나왔다 이 말이야.
나와서 이 사람이 에 인자 배가 고파서 밥을 못 읃어먹게 생긴 판인디 나가라구 쫓겨나와서 동네 어귀까정 밀려나왔어요. 저 밥 얻어먹을라구 진정서까정 써서 그 아들까정 내주구 그랬는디, 동네 어구까정 왔는디 배는 고프고 그래서 지내가는 노파가 지나가서 노파보구서 "아이구 나 배고파 죽겄는디 할머니 나 밥 좀 맥여달라"구 그러니깐 그 노파가 "우리 집이는 밥은 있기는 있는데 악식 보리밥이라" 이 말이여, 쌀밥이 아니구. "아이구 아무 밥이던지," 배고프면 다 맛있어요, 그래서, "보리밥이라도 달라"구 그랬더니, 데리구 가서 보리밥을 주는디 배고팠던 차니깐 보리밥도 맛있게 먹는단 말야.
그런디 맛있게 먹는디 그 집 자부가 오더니 "아이구 우리 아들은 맞어죽고 저 부잣집은 배경이 좋아서 사람 때려 죽이고도 나오고 아구 억울해라." 허면서 가슴을 치고 우는디 보니깐 어떻게 밥을 얻어먹어도 또 맞아 죽은 집이 와 얻어먹게 됐대. 그래서 그 집이서도 밥 먹구서 그냥 말 수 없어서 진정서를 써 줬대요 또.
진정서를 써 줬는데, 진정서가 관가에 가서 펴보니깐, 그 집이서 진정서를 쓸 줄 모르니깐 진정서를 써 줬어요. 펴보니까 거기 뭐라구 섰냐면 이렇게 썼드래요. "이장타장 장부절파기 이도할수 수불흔어사(以杖打帳 帳不折破器 以刀割水 水不痕魚死)." 이게 무슨 소리냐면 "이런 긴 장대로, 이 단장으로 포장을 내리쳤는디 그 포장은 구녘이 없는디 그 속에 있는 그릇은 깨졌다." 이거여. 그러니깐 (?)을 먹어 죽었다는 얘기여. 그리구 "칼로 물을 벴는디 물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이 말여. "웂는디 그 속에 있는 고기는 모두 죽었다" 이 말이여. 그러니깐 맞아서 (?)을 먹어 죽었다 얘기여.
그래서 걔를 또 잡아갔대요. 그렇게 해서 잘했으면은 그 애도 안 잡아가고 그랬을텐디 그렇게 해서 죽을 사람을 늤다 냈다 할 수 있는 거니깐 이렇게 글이라는 것이 역시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렇고 귀신 붙은 거라 이 말이야.
그런디 한 번인가는 이 사람이 어디를 갔냐면은 저 첩첩산중을 가게 되는디 인제 객지에서 살게 되면 첩첩산증이고... 근데 이 사람은 그 밤중이구 밤은 깊고 이렇게 되면은 그게 그게 걱정이 옛날에는 밤중만 되면은 짐승이 많아서 사람 물어 죽이는 것이 있었거든.
그러니깐 걱정이란 말여. 밤이 산중이구 밤은 깊구 주위는 (...) 그걸 갖다서 "산심야심객수심(山深夜深客愁深)." "산도 깊구", 깊을심자, "또 밤도, 밤야(夜)자 밤도 깊었다" 이 말야. 그리구 또 "나그네 수심도 깊었다." 이 말야. 그래서 산심 야심 객수심 하면은 그 세마디가 인저 들어가구,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 허면 달밤에 눈 오는 날 같은 거 표시하는 거구.
그러는디 한 번은 이 사람이 어디를 갔냐면은 첩첩산중으로 가다 보니깐 집도 없구, 민가도 없구 이런 덴디 얼매 가다 보니깐 수심이 가득해가지구 가다 보니깐 어떤 그 저 민가가 있드래. 민가가 있어서 거기 가서 민가 있는 디 가서 "하루 저녁 자자"구 주인을 불러내니깐 아무두 없구 젊은 여자가 나오드래. 젊은 여자가 들오라구 그래서 들어갔더니 저녁도 해주구 이것 저것 줘서 요기도 잘 얻어 먹었는디.
"아 이렇게 큰 집이 왜 젊은 여자만 있냐" 그러니깐 "우리 남편은 사냥을 가면 일주일 있다두 들어오구, 열흘 있다두 들어오구 그런다"구 그러드래. 그래서 "그러면 나하구 자자"구 해서 그 여자하구 그 날 밤에 정을 좀 논자구 해설라므니 논게 됐다면서.
근디 한밤중쯤 되니깐 그 서울역에 기차 들어오는 소리같이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드래. 그래서 저게 무슨 소리냐니깐 "우리 남편이 지끔 50리 바깥에 들어오는 소리라"구 그러드래. 그런디 그 본부인이 본남편이 온다구 허드래도 여자를 끼구 있다서 그것도 놀 수가, 비장부(非丈夫) 같구 그래서 바짝 끼구 있었대. 그랬더니 월매 있더니 벼락치는 소리가 들려서 "어디까정 왔냐"니깐, "저기 문간께까정 왔다"구 그러드래. 그래서 문간께 왔다구 그래서 여자를 꼭 끼고 있었대.
그랬더니 그 본남편이 와서 문을 확 여는데 보니깐 막 그냥 눈이 자동차 헤드라이트같이 생기구 어 그냥 저 팔뚝 하나가 전기선대 같구 이런 사람이 문을 열어보더니 여자는 집어 던져버리구 김삿갓을 한짝 손으로 잡아설라무니 이렇게 결박을 짓드래. 결박을 짓더니 이 남자는 칼로 찔러서 죽여도 아깝다구 하면서 단도를 빼더니 숫돌을 갖다놓구 칼을 갈더래. 갈면서 "이런 자는 말야 살점을 점점 뗘 죽여야 한다"구.
그래서 이 남자가 가만히 생각하니깐, 김삿갓이 생각하니깐, 여기서 참 기구한 운명에 파란만장한 생애를 모조리 끝낼 것 같구 그러니깐 그 남자보구서 "내가 여기서 죽어가는디 최후로 내가 말이나 한 마디 남겨놓고 가야겄다"니깐, "이 놈아 뒈질 놈이 무슨 말이냐"구 그러드래, 처음에는. 근디 "내가 글이나 한 줄 써 놓구 죽어야겠다"구 그러니깐 말이지. 에 처음에는 거절하더니 그 험상궂게 생긴 사람두 거기에 글 좀 들은 것이 있던가 그러라구 그냥 지필묵을 갖다주구 쓸 수 있는 분위기를 주드래.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는디 인자 지필묵을 갖다 주구서 "니가 하고 싶은 얘기 있다니깐 쓰구 죽으라"구 이렇게 지필묵을 처음에는 거절하더니 갖다 줘서 쓰라구 허는디
김삿갓이 뭐라구 말했냐면 "그래도 글이라고 하는 것은 주인네가 운자(韻字)는 불르야 헐 거 아니냐"구 그러니깐, "네놈이 뭐 네 맘대로 쓰라"구 그러니깐 말야. "그래도 글이라는 것은 운자가 있는 것이니깐 운자는 주인네가 불르야 헐 거 아니냐"구 하니깐 "네 맘대로 쓰라"구 하더니 뭐라구 말허냐면 "네 놈이 내 집에 왔으니깐 '올래(來)'자로 허라"구 그러드라나. 그러니깐 뭐라구 말허냐면 "도화이시난만개(桃花已時爛漫開?) 하니 탐화광첩분분래(探花狂蝶紛紛來) 라"구 이렇게 쓰더래. 그러면서 "차화수재번화지(此花誰栽繁華地) 절자불비종자비(折者不非種者非)" 이렇게 말을 허드라나. 그게 무슨 소리냐면 이 소리라누만. "도화꽃이 만발했으면은 봉첩이 오는 것은 하늘의 이치다" 이 말여. 그리구 "여기 이쁜꽃이, 이쁜꽃을 사람 손 닿는 번화지에다 심은 자가 누구냐?" 이 말이야. "이걸 꺾은 자가 죄가 아니구 심은 자가 죄라"구 말여.
그렇게 허면서... 허니깐 아닌게 아니라 "꽃이 피었으면은 봉첩이 오는 것은 천지 이치구, 이쁜 꽃을 번화한 손 닿는데다 심었으면 반드시 누가 꺾어가게 돼있다" 이거야. "그런디 꺾은 자가 죄가 아니구 심은 자가 죄라"구.
아 주인네게다설라무니 이거 책임을 넹겨 뒤집어씌우는디 주인네가 그걸 가만히 보더니 "야 글이 잘 됐다"구. "우리 술 한 잔 먹자"구 허드래. 그래서 거기서 살아나왔대요.
이게 말이지, 이게 워띃게 돼서 이 얘기가 나왔냐면 서기 1811년, 1811년. 1811년이 언제냐면은 이조 23대 순조 11년예요. 그 적에 홍경래 난이라는 게 있어요. 저 홍경래란 때 그 김익순이가... 그 가산군수는 홍경래를 끝까장 그냥 대적하구 김익순씨는 그렇게 대적을 안 허구서 나중에... 김익순씨가 누구냐면은 저 이 방랑시인 김삿갓의 할아버지예요. 그 할아버지구, 김익순씨의 아들은 에 김한근이거든. 김한근이구 김한근이 밑으루는 여기 저 병연이 방랑시인 김삿갓이 병연이요, 병연이구, 병연이 형은 병호구.
그런디 에 홍경래 난때 이 김익순씨 저 이 병연이 할아버지지 그러니깐. 병연이 할아버지가 반역으로 몰렸어요. 그래서 안동김씨 60년 세도 때 삼족을 멸하는디 멸하지는 않구 저 이렇게 생명은 부지하게 됐었거든. 그래가지굴라무니 그 나중에 그 절손허게 되니까 자부가 나중에 하인의 집안으로 피신해 댕기다서 강원도 영월 가서 있게 됐어요. 강원도 영월가서 있게 됐는디 그 어머니가 김삿갓 어머니가 그 할아버지 얘기두 안 했어.
안했는디 한 번인가는 병연이가 나라에서 상을, 강원도에 백일장이 있어서 거기서 시험을 쳐서 상을 타 왔다구 그런단 말야. 그러니깐 그 상을 타왔다구 베 두 필하구 타왔다구 그러니깐 그 어머니가 "거기 문제가 뭘로 났더냐"구 물었어. 그러니깐 '김익순죄 통어천 가산군수 충열사' 뭐 이렇게 놨다구 그러니깐 말이지, 그 어머니가 그 소리를 듣더니 돌아서서 아들이 장원해 왔다구 허먼 기쁠텐디 돌아서서 울구만 있으니깐 아들이 "어머니 왜 내가 이렇게 시험을 타왔는디, 이렇게 상을 타가지구 왔는디 왜 그렇게 슬퍼 우시냐"구.
그러니깐 그 어머니가 그때사 "자기가 그 아버지가 김한근인데 자결하구 김익순이는 할아버진디 그렇게 돼서 벼슬도 못하는 입장에 니가 그걸 했다는디, 그 김익순씨가 그 할아버진디 그 할아버지를 글로 쳐가지구서 상을 타 가지구 왔다니깐 이게 하도 기구해서 내가 운다"구 그러니깐 말여. 그때부터 방랑 시인 김삿갓이 하늘도 못 보고 할아버지를... 옛날에는 저 불효하면 저 불효하면 아주 그냥 저 제일 나쁜 놈이였는디, 그 할아버지를 글로 또 쳤어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불효하구 하늘도 못 보고 이런다"구. 방갓을 쓰구선 그때부터 방랑시인으로 댕기게 되서 이렇게 된 거거든.
그런디 홍경래 난만 안 났으면 아 이 사람도 안동김씨 60년 세도 속에 잘 살 수 있는 사람인디, 아주 참 아까운 사람이 그렇게 할아버지가 잘못되는 걸루 옛날에 그렇게... 저 요새 같으면 그런 게 없는디.
5. 그 밖의 자료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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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金炳淵)이 삿갓을 쓰고 방랑시인이 된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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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 11년(1811년) 신미년에 홍경래(1780-1812)는 서북인(西北人)을 관직에 등용하지 않는 조정의 정책에 대한 반감과 탐관오리들의 행악에 분개가 폭발하여 평안도 용강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홍경래는 교묘한 수단으로 동지들을 규합하였고, 민심의 불평 불만을 잘 선동해서 조직한 그의 반란군은 순식간에 가산, 박천, 곽산, 태천, 정주 등지를 파죽지세로 휩쓸어 버리고 군사적 요새지인 선천으로 쳐들어갔다.
이 싸움에서 가산 군수 정시(鄭蓍)는 일개 문관의 신분이었지만 최후까지 싸워서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한편 김병연의 조부 김익순(金益淳)은 관직이 높은 선천 방어사였다. 그는 군비가 부족하고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음을 낙심하다가, 날씨가 추워서 술을 마시고 취하여 자고 있던 중에 습격한 반란군에게 잡혀서 항복을 하게 된다.
김익순에게는 물론 그 가문에도 큰 치욕이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하지만 국법의 심판은 냉혹하여서, 이듬해 2월에 반란이 평정되자 김익순은 3월 9일에 사형을 당하였다. 그 난리 때 형 병하(炳夏)는 여덟 살, 병연은 여섯 살, 아우 병호(炳湖)는 젖먹이였다.
마침 김익순이 데리고 있던 종복(從僕)에 김성수(金聖秀)라는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 황해도 곡산에 있는 자기 집으로 병하, 병연 형제를 피신시키고 글공부도 시켜 주었다. 그 뒤에 조정의 벌은 김익순 한 사람에게만 한하고, 두려워하던 멸족(滅族)에는 이르지 않고 폐족에 그쳤으므로 병하, 병연 형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김병연의 가족은 서울을 떠나 여주, 가평으로 이사하는 등 폐족의 고단한 삶을 살다가 부친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홀어머니 함평 이씨가 형제를 데리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로 이주하였다.
김병연이 스무 살이 되던 1826년(순조 32년), 영월 읍내의 동헌 뜰에서 백일장 대회 시제(詩題)인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을 받아 본 그는 시상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는 그의 젊은 피는 충절의 죽음에 대한 동정과 찬양을 아끼지 않았고, 김익순의 불충의 죄에 대하여는 망군(忘君), 망친(忘親)의 벌로 만 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추상같은 탄핵을 하였다. 김병연이 이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날, 어머니가 그 동안 숨겨왔던 집안의 내력을 들려 주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명문거족이었다. 너는 안동 김씨의 후손이다. 안동 김씨 중에서도 장동(壯洞)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세도가 당당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들을 장동 김씨라고 불렀는데 너는 바로 장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네가 오늘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 세워 욕을 퍼부은, 익자(益字) 순자(淳字)를 쓰셨던 선천 방어사는 네 할아버지였다. 너의 할아버지는 사형을 당하셨고 너희들에게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느라고 제사 때 신주를 모시기는커녕 지방과 축문에 관직이 없었던 것처럼 처사(處士)로 써서 너희들을 속여 왔다... ----
병연은 너무나 기막힌 사실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반란군의 괴수 홍경래에게 비겁하게 항복한 김익순이 나의 할아버지라니...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이 조부를 다시 죽인 천륜을 어긴 죄인이라고 스스로 단죄하고, 뛰어난 학식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집문당 발행 <방랑시인 김삿갓 시집>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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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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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爾世臣金益淳 鄭公不過卿大夫 일이세신김익순 정공불과경대부
將軍桃李농西落 烈士功名圖末高 장군도리농서락 열사공명도말고
詩人到此亦慷慨 撫劍悲歌秋水溪 시인도차역강개 무검비가추수계
宣川自古大將邑 比諸嘉山先守義 선천자고대장읍 비저가산선수의
淸朝共作一王臣 死地寧爲二心子 청조공작일왕신 사지영위이심자
升平日月歲辛未 風雨西關何變有 승평일월세신미 풍우서관하변유
尊周孰非魯仲連 輔漢人多諸葛亮 존주숙비노중련 보한인다제갈량
同朝舊臣鄭忠臣 抵掌風塵立節死 동조구신정충신 저장풍진입절사
嘉陵老吏揚名旌 生色秋天白日下 가릉노리양명정 생색추천백일하
魂歸南畝伴岳飛 骨埋西山傍伯夷 혼귀남무반악비 골매서산방백이
西來消息慨然多 問是誰家食錄臣 서래소식개연다 문시수가식록신
家聲壯洞甲族金 名字長安行列淳 가성장동갑족김 명자장안항렬순
家門如許聖恩重 百萬兵前義不下 가문여허성은중 백만병전의불하
淸川江水洗兵波 鐵甕山樹掛弓枝 청천강수세병파 철옹산수괘궁지
吾王庭下進退膝 背向西城凶賊脆 오왕정하진퇴슬 배향서성흉적취
魂飛莫向九泉去 地下猶存先大王 혼비막향구천거 지하유존선대왕
忘君是日又忘親 一死猶輕萬死宜 망군시일우망친 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 此事流傳東國史 춘추필법이지부 차사유전동국사
대대로 임금을 섬겨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鄭公)은 경대부에 불과했으나
농서의 장군 이능처럼 항복하지 않아
충신 열사들 가운데 공과 이름이 서열 중에 으뜸이로다.
시인도 이에 대하여 비분강개하노니
칼을 어루만지며 이 가을 날 강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예로부터 대장이 맡아보던 고을이라
가산 땅에 비하면 먼저 충의로써 지킬 땅이로되
청명한 조정에 모두 한 임금의 신하로서
죽을 때는 어찌 두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
태평세월이던 신미년에
관서 지방에 비바람 몰아치니 이 무슨 변고인가.
주(周)나라를 받드는 데는 노중련 같은 충신이 없었고
한(漢)나라를 보좌하는 데는 제갈량 같은 자 많았노라.
우리 조정에도 또한 정충신(鄭忠臣)이 있어서
맨손으로 병란 막아 절개 지키고 죽었도다.
늙은 관리로서 구국의 기치를 든 가산 군수의 명성은
맑은 가을 하늘에 빛나는 태양 같았노라.
혼은 남쪽 밭이랑으로 돌아가 악비와 벗하고
뼈는 서산에 묻혔어도 백이의 곁이라.
서쪽에서는 매우 슬픈 소식이 들려오니
묻노니 너는 누구의 녹을 먹는 신하이더냐?
가문은 으뜸가는 장동(壯洞) 김씨요
이름은 장안에서도 떨치는 순(淳)자 항렬이구나.
너희 가문이 이처럼 성은을 두터이 입었으니
백만 대군 앞이라도 의를 저버려선 안되리라.
청천강 맑은 물에 병마를 씻고
철옹산 나무로 만든 활을 메고서는
임금의 어전에 나아가 무릎 꿇듯이
서쪽의 흉악한 도적에게 무릎 꿇었구나.
너의 혼은 죽어서 저승에도 못 갈 것이니
지하에도 선왕들께서 계시기 때문이라.
이제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고 육친을 버렸으니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리.
춘추필법을 너는 아느냐?
너의 일은 역사에 기록하여 천추만대에 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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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평생시 蘭皐平生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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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獨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독자상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
尤人不可怨天難 歲暮悲懷餘寸腸 우인불가원천난 세모비회여촌장
初年自謂得樂地 漢北知吾生長鄕 초년자위득락지 한북지오생장향
簪纓先世富貴人 花柳長安名勝庄 잠영선세부귀인 화류장안명승장
隣人也賀弄璋慶 早晩前期冠蓋場 인인야하농장경 조만전기관개장
髮毛稍長命漸奇 灰劫殘門飜海桑 발모초장명점기 회겁잔문번해상
依無親戚世情薄 哭盡爺孃家事荒 의무친척세정박 곡진야양가사황
終南曉鍾一納履 風土東邦心細量 종남효종일납리 풍토동방심세양
心猶異域首丘狐 勢亦窮途觸藩羊 심유이역수구호 세역궁도촉번양
南州從古過客多 轉蓬浮萍經幾霜 남주종고과객다 전봉부평경기상
搖頭行勢豈本習 口圖生惟所長 요두행세기본습 구도생유소장
光陰漸向此中失 三角靑山何渺茫 광음점향차중실 삼각청산하묘망
江山乞號慣千門 風月行裝空一囊 강산걸호관천문 풍월행장공일낭
千金之子萬石君 厚薄家風均試嘗 천금지자만석군 후박가풍균시상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빈髮蒼 신궁매우속안백 세거편상빈발창
歸兮亦難佇亦難 幾日彷徨中路傍 귀혜역난저역난 기일방황중로방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
내 평생을 돌아보니 너무나 가슴 아파라.
짚신에 대지팡이로 천 리 길 다니며
물처럼 구름처럼 사방을 내 집으로 여겼지.
남을 탓할 수도 없고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어
섣달 그믐엔 서글픈 마음이 가슴에 넘쳤지.
초년엔 즐거운 세상 만났다 생각하고
한양이 내 생장한 고향인 줄 알았지.
집안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고
꽃 피는 장안 명승지에 집이 있었지.
이웃 사람들이 아들 낳았다 축하하고
조만간 출세하기를 기대했었지.
머리가 차츰 자라며 팔자가 기박해져
뽕나무밭이 변해 바다가 되더니,
의지할 친척도 없이 세상 인심 박해지고
부모 상까지 마치자 집안이 쓸쓸해졌네.
남산 새벽 종소리 들으며 신끈을 맨 뒤에
동방 풍토를 돌아다니며 시름으로 가득 찼네.
마음은 아직 타향에서 고향 그리는 여우 같건만
울타리에 뿔 박은 양처럼 형세가 궁박해졌네.
남녘 지방은 옛부터 나그네가 많았다지만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몇 년이나 되었던가.
머리 굽실거리는 행세가 어찌 내 본래 버릇이랴만
입 놀리며 살 길 찾는 솜씨만 가득 늘었네.
이 가운데 세월을 차츰 잊어 버려
삼각산 푸른 모습이 아득하기만 해라.
강산 떠돌며 구걸한 집이 천만이나 되었건만
풍월시인 행장은 빈 자루 하나뿐일세.
천금 자제와 만석군 부자
후하고 박한 가풍을 고루 맛보았지.
신세가 궁박해져 늘 백안시 당하고
세월이 갈수록 머리 희어져 가슴 아프네.
돌아갈래도 어렵지만 그만둘래도 어려워
중도에 서서 며칠 동안 방황하네.
*난고는 김삿갓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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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아래의 글 맨 끝에 있는 <평생시>를 보면 윗글의 맨 앞에 다음의 연이 빠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아마도 아래의 자료가 더 정확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무애자.
[---내 삿갓은 물우에 떠다니는 빈배와 같은것
한번 쓴 뒤로 40년을 쓰고다녔도다
삿갓은 본디 목동이 소에게 풀을 뜯길 때 쓰는것이요
어부가 갈매기와 더불어 고기잡이할 때 쓰는것이여라
술에 취하면 난 삿갓을 꽃피는 나무가지에 걸어놓았고
흥이 절로 나면 삿갓을 풀고 루각에 올라 달구경했다
세상 속인들의 의관은 다 겉치레에 지나지 않지만
내 삿갓은 사나운 비바람이 불어쳐도 아무런 걱정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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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 북한 사이트의 <북한 詩>코너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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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2-01-07 10:27:20 조회수 243
작품소개 : 방랑시인 김삿갓
행길엔 물좋은 비웃드름을 진 어물장수들과 패랭이에 보짐을 진 천민들, 갓에 도포입고 술띠 두른 량반자들, 인총들의 행색은 각각이였다. 해안을 가까이한 곳이라 길바닥까지 비린내가 슴배였다.
물이 낡기전에 몇마리의 비웃이라도 더 팔아보려고 어물군들이 성급한 걸음발을 옮기는데 그들 앞에 한가해 뵈는 한 삿갓쟁이가 걸어간다. 행인들은 비좁은 길에서 느릿걸음을 걷는 객이 도대체 어떤자냐 싶어 지나칠 때마다 힐끔 옆을 돌아본다.
두드러진 관골에 짜르기도 하고 길기도 한 턱수염, 때국이 흐르고 허름한 홑것중치막… 등에는 오라로 붓대가 삐죽 내민 배랑을 멨다. 얼굴의 눈이며 코는 삿갓을 푹 눌러쓰고 있어 잘 볼수 없다.
허, 그 삿갓쟁이… 선비인듯한 량반이 타고 가는 하늘소의 견마를 잡은 눈 큰 녀석이 어처구니 없다는듯 그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갈로 만든 삿갓은 눈오고 비올 때, 간혹 해빛을 가릴 때도 쓰군 하지만 지금은 눈비는커녕 동산에 해가 겨우 솟는 아침이라 오히려 따스한 해빛을 맞자 하는데 해를 가리는 삿갓을 썼으니 하는 소리이다.
삿갓,… 이 과객은 하루이틀, 비 오고 눈 올 때만이 아니라 노상 일년 열두달, 거의 한생토록 머리에 삿갓을 얹고 다니는 사람이다. 삿갓은 그의 이름이기도 하고 행장이기도 하다. 그러하니 행인들의 이러한 놀라움쯤은 지금껏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흔히 있는 일이라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본명은 김병연 (1807-1863년), 자는 성심이요 호는 란고인 그는 본래 서울사람으로 스무살에 과거에서 장원하였으나 그만 삭탈당하였다.
그것은 그가 여섯살때 조부인 김익순이 성천부사로 부임되였다가 홍경래 농민폭동군에게 투항하였다는 죄명에서였다. 하여 [패족]의 자손인 그는 그날로부터 스스로 자기를 '하늘을 쳐다볼수 없는 죄인'(실은 더러운 세상을 보지 않겠다고 삿갓을 썼다.)이라 이르며 일생을 집을 나가 산수를 즐기며 방랑하였다.
그는 뛰여난 시재로서 량반벼슬아치들을 야유, 풍자하는 시를 쓰며 평생을 흘러보냈다. 본명을 대면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고 <삿갓 쓴 걸인량반>하면 규방내인들과 삼척동자까지 다 아는 방랑시인, 인생시인, 풍류시인, 강개시인, 파격시인, 언문시인, 풍자시인, 력사시인 김삿갓!… 이러한 김삿갓이기에 그가 가는 곳에 시와 노래와 웃음과 해학이 없을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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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 온통 단풍에 붉게 타던 어느해 가을에 있은 일이다. 어느 날 백운동 골안의 마하연대청에는 어려서부터 이 암자에서 사는 중과 속세에서 방랑생활을 하는 김삿갓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였다.
중은 누구보다도 금강산에 대한 애착을 가진 대사로서 시를 짓는데서도 한다 하는 문장가들보다 못지않은 재간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말을 뗀 것은 김삿갓이였다.
제가 듣건대 대사는 시를 잘 짓기로 소문이 났는데 소인에게 글짓기내기를 할 수 있는 영광의 기회를 주었으면 더없이 기쁘게 생각하겠습니다.
정 그렇게 소원이라면 그대가 제기한 글짓기내기에 응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조금이라도 헛소리를 하여 저 신령스러운 금강산을 털끝만큼이라도 욕되게 한다면 나는 당신의 이빨을 빼버리겠소. 이러한 약속 밑에 나와 시를 다툴 각오를 가지셨는지요?
대사의 말씀대로 아무리 글재주가 비상하다 한들 어떻게 한수의 시에 저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을수 있겠소. 저는 다만 대사가 금강산을 누구보다 몹시 사랑하고 귀중히 여긴다고 하기에 저 역시 금강산을 보면 볼수록 뜻깊은 심정을 억제할수 없어 이 두 마음을 합쳐 글을 짓는다면 혹시 좋은 시가 나올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이 말을 새겨 듣고 보니 김삿갓이 과연 뜻하는 바가 있는지라 대사는 곧 그가 청하는 글짓기내기에 응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대사와 김삿갓 사이에 글짓기내기가 시작되였다. 시는 먼저 금강산의 이름난 곳들을 많이 알고 있는 대사가 전구를 떼고 김삿갓이 대구를 하는 식으로 이어나갔다.
대사
이른아침 립석봉에 오르니
구름은 발아래에 생기고
삿갓
저녁에 황천강의 물을 마시니
달이 입술에 걸리더라
대사
사람의 그림자는 물속에 잠겨있어도
옷은 하나도 젖지 않았고
삿갓
물속에 청산을 오르고내렸어도
다리는 하나도 아프지 않네
대사
산에서 돌이 굴면
천년이 걸려야 땅에 닿을듯 하고
삿갓
산이 한자만 더 높으면
손이 하늘에 닿을듯 하여라
대사
가을구름이 만리에 뻗었으니
흰 고기비늘이 겹쌓인것 같고
삿갓
천년묵은 고목의 뻗친 가지는
사슴의 뿔이 높이 솟은듯 하구나
대사
청산을 돈을 주고 샀더니
구름은 공으로 얻고
삿갓
맑은 물가에 다달으니
고기는 저절로 모여드누나
대사
절벽은 비록 위태롭게 솟아있어도
그우에서 꽃이 웃는 경치가 좋고
삿갓
양춘은 비록 아름다와도
새는 슬피 울며 떠나가누나
대사
물은 절구공이가 되여
절벽을 내리찧고
삿갓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가 되여
청산을 재여간다.
대사가 연해연방 불러대여도 삿갓이 거침없이 대답을 하는데 그것이 앞뒤가 꼭 맞을뿐아니라 그 뜻이 하도 깊어서 신기할 정도였다.
대사는 마침내 글짓기내기를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아끼던 마지막 구절을 떼였다.
달이 희고 눈이 희니 천지가 다 희고
삿갓이 제꺽 그 뜻을 알아차리고 끝을 맺었다.
산이 깊고 물이 깊으니 나그네 수심도 깊다.
대사는 김삿갓의 마지막 구에는 더구나 감동되여 입을 딱 벌렸다. 대사가 김삿갓의 비상한 재주에 감복하여 말없이 그를 쳐다보는데 삿갓도 중을 마주보다가 아니 왜 바라보기만 하십니까. 이발을 빼버리기엔 아직 이르지 않습니까? 하고 빈정대며 웃으니 대사가 기쁨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고?
김삿갓이올시다.
오라 김삿갓! 소문에도 시에 귀신이라 하더니만 이제보니 그대는 과연 시의 신선일세. 80평생에 당신같은 적수를 만난것은 오늘이 처음이요.
참말 유쾌하구려. 아직도 젊은 나이니까 앞으로 리태백이 될 거요. 그러나 너무 재주를 믿고 정신을 게을리해서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니 그 점을 새겨두시오.
대사는 진정으로 말하였다.
그들 둘은 뜻깊은 상봉을 계기로 좋은 시벗이 되였는데 김삿갓은 금강산을 찾을 때마다 그 중과 함께 지내면서 조국의 자연을 노래한 많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2
김삿갓이 칠보산 구경을 작정한지는 오래전부터였다.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가 '원생고려국'하여 '일견금강산'이라 한 천하명승 금강산은 한해에 두 번도 가고 세 번도 가군 했지만 칠보산은 아직 한 번도 다녀오지 못하여 늘 속을 앓고 있었다. 신선이 빚었다는 그토록 아름답고 기이한 칠보산을 못보고 내 어찌 이 나라의 아름다움을 다 안다하리오. 삿갓은 봄이 접어들자 벼르어오던 이 행차길에 훌 나서고 말았다.
함관령
북방의 봄은 4월도 이르다 한다. 음지엔 눈이 희슥하고 초목은 종종 추위에 떨기도 한다. 그래도 양지쪽을 보면 봄은 왔노라고 점점이 핀 진달래가 외로운 과객을 반긴다. 백화만발한 한양을 지나쳐온것이 한달전이니 북방은 남방보다 절기가 한달은 늦는셈이다.
구부러든 지팽이를 내여짚으며 김삿갓은 생면부지의 처지에 본읍의 사또랍시고 거드름을 피우는 원에게 굽실거리고싶지 않았다. 지금껏 방랑길에 무슨 모욕인들 안당했으랴. 못되면 주막이고 뭐고 다음 고을까지 내처 가면 그만이다
원: 그러하니 네가 정녕 칠보산구경을 간단 말이렸다?
김: 그러하오이다.
원: 이눔! 대체 너같은 눔이 칠보산이 어디에 붙었는지 알기나 하느냐!
김: 칠보산 구경을 떠나는 과객이 어찌 그 위치를 모르겠소.
원: 허 그눔 말버릇 한번 고약하다. 그래 네가 칠보산을 진정 어느 만큼이나 아느냐?>
김: 객이 알건대… 칠보산으로 말하면 이 세상의 온갖 보물인 칠보를 모아놓는 산으로서 출생간지는 이 나라 조종의 산인 백두산악과 더불어 동해중의 울릉도와 함께 한날한시에 태여났음을 알리오…
원: 이눔, 그래 산도 생일이 있단 말이냐?
김: 사람은 지어미품에서 떨어진 날이 생일이요 산은 땅속에서 솟은 날이 생일이지요.
원: .......
원은 말문이 막혔다. 더 말해보았댔자 이런놈에겐 코나 떼우기 십상이다. 칠보산의 위치쯤은 물론이요 산의 높이며 생일까지 풀어대는 이놈이 누구일가? 암행어사… 요즘 어사또가 떴다는 말은 못들었다. 그럼 신선이 아닐가.
허나 세상에 걸인 신선이 있다는 말도 들은적 없다. 원은 이것으로 끝맺으면 뒤말이 생기리라 생각하고 잠시 세모눈을 굴린 다음 그에게 주막을 잡아주라고 뒤따르던 군노배에게 명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동헌으로 되돌아갔다. 김삿갓은 그러한 원의 모습을 보고서 입안에서 야유조의 글줄이 뱅글뱅글 맴도는 것을 북방의 첫인사가 그럴수도 있는지라 산수를 둘러보며 시 한수를 읊조리였다.
함관령, 사월에도
북청군수 추워하네
진달래 겨우 이제야 피니
봄도 령 오르기 힘이 드나봐
한편, 원은 발편잠을 못들었다. 명색이 사또라는 게 걸인 량반에게 야유를 당했으니 잠이 올리 만무했다. 래일아침이면 북청군수의 이야기가 또 하나의 일화로 되여 세상에 파랑새처럼 날아다닐 것이다.
<예-익.>
벙어리처럼 눈알만 굴리고 있던 례방이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 좋은 수가 났소이다.>
<좋은 수?!>
례방은 여우웃음을 지으며 제 꾀를 이야기했다….
잠시후에 례방이 힘꼴이나 쓰는 사령 두엇을 데리고 주막으로 갔다.
원도 슬금슬금 주막으로 갔다.
례방이 주막문을 부시고 돌입하니 김삿갓은 세상모르게 곯아 떨어져 있었다.
눈이 불량한 사령이 달려들어 김삿갓을 깨워 일으켰다.
이놈! 듣거라. 네놈이 거짓걸인인체하며 자기를 김삿갓이라 자처한다니
당장 즉석에서 시 한수를 짓거라. 그러되 반드시 <눈>을 가지고 짓도록 해라.
만약에 못짓기만 하면 이놈! 너는 오늘밤이 네 목 떨어진 제사날인줄이나 알아라!>
술은 말로 들이키는 그였건만 잠자리에 들기 전 거퍼 마신 술기운으로 골이 떼끈거린다. 아닌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건 홍두깨가 아니라 칼날이다.
시 한수에 목숨이 왔다갔다 할판이라 삿갓은 더 딴생각없이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흰눈을 가지고 시를 지으라니 원놈의 얕은수가 빤히 알리였다. 삿갓은 별로 생각하는 품도 없이 시를 줄줄 내리엮었다.
하늘왕이 죽었는가
인간왕이 죽었는가
일만나무 푸른 산이
몽땅 상복을 입었구나
래일아침 둥근해가
조상을 오게 되면
집집마다 처마들이
눈물 뚝뚝 흘리리라
그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 뒤방에서 몰래 엿듣고있던 원은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말았다.
"이젠 됐소?'
김삿갓은 이 한마디를 하고 몰려드는 졸음에 못이겨 다시 잠들었다…
원생원
김삿갓이 북관의 문인 마천령을 넘어 어느 한 고을에서 묵고있을 때였다. 저녁이 늦어 발길 닿는 집에 찾아들어가 하루밤 묵을것을 청하니 주인은 선선히 응해주었다.
"이 루추하여 과객을 들이기 민망하나 탓하지 않는다면 어서 들어오슈."
마음 무던해보이는 주인의 뒤를 따라 방에 들어서니 집안사람들이 모두 반겨맞아주었다. 아래방엔 칠순이 된다는 로파와 맨상투바람의 집주인, 비녀도 못찌르고 둘둘 말아 트레머리를 한 그의 안해… 그리고 층층이 자라는 다섯아이가 있는 적지 않은 가솔이였다. 바람벽에 패랭이가 걸려있는것으로 보아 짐승도살을 업으로 삼는 백정이거나 아니면 행상짐을 지여나르는 천민일시 분명하였다.
잠간후 주인아낙네가 송구스레 들여오는 상우를 보니 물인지 죽인지 분간 못할 멀건 죽그릇, 산채나물 한종지, 메주장단지가 전부였다.
삿갓은 빙긋 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아주머니, 옛날에 거문고의 명수인 백결선생은 옆집에서 치는 떡방아소리를 부러워하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둥기당당 가락을 울렸다는데 내 이제 이 죽그릇을 놓고 시 한수 읊을테니 들어보시겠소?"
아이들이 먼저 좋아라 손벽을 쳤다. 칠순로파도 남정도 안해도 화기에 찬 얼굴로 삿갓을 바라보았다. 삿갓은 언젠가 남도지방을 방랑하며 지은바있는 시를 읊었다.
허줄한 소나무밥상에
덩그렇게 놓인 죽 한그릇
하늘빛과 구름그림자가
그속에 비쳐 떠돌고있네
주인은 죽이 멀겋다고
제발 미안해하지 말라
나는 푸른 산모습이
물속에 비끼는걸 좋아한다네
…
반평생을 남의 집 문전을 두드리며 삼천리 방방곡곡의 안 가본 데 없지만 백성들의 생활이란 모두 하나같이 피나는 가난뿐이다. 방금 죽그릇을 두고 우스개 시구를 읊었지만 이 집 녀인의 가슴에선 피눈물이 흘렀으리라…
다음날 아침, 삿갓은 해가 중천에 솟아올랐을 때 옆집 원생원의 솟을대문을 세게 두드렸다.
전날 원생원의 고약한 심보에 대해 들은바 있는지라 한번 혼쌀 내주리라 속다짐하고 있었던 이였다. 하인아이의 뒤를 따라 넓은 사랑채에 이르니 어젯밤 진탕망탕을 부리던 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요염스런 기생들도 아직 돌아가지 않은채 있었다. 이 집의 주인이라는 원생원은 하관이 빠르고 턱끝에 염소수염을 기른자였다.
생원이 옆자리에 앉은 좀상들을 차례로 서진사, 문첨지, 조석사라고 알려주었다. 모두들 향촌에선 떵떵 으르는 자들이라 삿갓을 향해 너는 어떤 놈이냐는 태도였다. 삿갓은 자기는 칠보산 구경을 가는 과객으로 이 집 담장을 지나치다가 시회를 가지는것 같아 나도 시 한수 짓고 가자는 생각이 들어 대문안으로 들어섰다고 말해주었다. 허름한 삿갓쟁이의 입에서 시소리가 나오자 모두 코웃음을 쳤다.
"보소 걸인량반, 여기에 흰눈같은 선지에 당향먹을 듬뿍 갈아놓은 연적이 있으니 어서 일필휘지하여 시 한수 짓소그려."
" 지으면 술 석잔이고 못지으면 뺨 석대다." 잰내비상통의 원생원이 비양거렸다.
"허, 달 건지러 간 리태백이도 술을 마시고서야 시를 썼다는데 술 한동안 내놓고 시를 쓰라니 여긴 모두 바지저고리들만 모였소?" 곧 대접이 들어오고 동이채 들어부은 술이 찰랑찰랑 넘쳐났다.
삿갓은 옷자락을 걷어붙이고 대접 한그릇을 꿀럭꿀럭 맹물삼키듯 마셔버렸다.
모두들 눈이 뚱그래졌다.
"어 술맛 좋다!"
삿갓은 옆에 벗어논 배랑에서 굵다란 붓대 하나를 쑥 뽑아 한웅큼에 거머쥐고 좌중의 시선이 쏠리는속에 대붓을 들어 백설같은 종이우에 시를 적어나갔다.
필체는 그야말로 룡이 서리고 범이 도사린것과 같은 '용반호거'요 높은 봉우리우에서 굴러내리는 바위돌같은 '고봉투석'이였다.
일출원생원
황혼문첨지
묘과서진사
야출조석사
(해가 떠오르면 원숭이가 들에 나오고 해가 지면 모기들이 처마에 모이누나
고양이가 지나가니 쥐새끼는 간곳없고 밤드니 벼룩이 자리에 나와 들입다 쏘누나.)
김삿갓은 붓끝을 휘둘러 뗀 다음 허공중을 향해 "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글뜻을 몰라 어리둥절해있는 원생원을 향해 "자! 이만하면 술값은 후히 치른셈이니 이 과객은 또 가리다."
하고 소리친후 성큼성큼 대문을 빠져나갔다.
"으하하!"
"하하하!"
뒤미처 토방아래 머슴, 하인들까지도 이 시의 뜻을 얘기 듣고 가가대소를 했다. 신도 미처 꿰지 못한 원생원이 동구밖에까지 뛰여가 보았으나 그 즈음 김삿갓은 잘코사니야하고 길주목 경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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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 명천
김삿갓은 길주고을이 한눈에 내려보이는 둔덕에 올랐다. 오래간만에 땀이 밴 삿갓도 벗고 푸른 잔디우에 앉았다. 봄바람이 가늘고 화창하게 불어와 잔머리털을 날리며 부채질을 했다.
예서 칠보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흰구름에 싸인 저 멀리 산발 그 어디에 아름다운 명산이 숨어있으리라.
"읍호가 길주라…"
삿갓은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호가 그럴듯하다.
길주라 하였으니 사람 좋고 물 좋고 모든 게 다 좋다는 뜻일러라… 삿갓이 흥타령까지 부르며 들어선 고을은 전혀 딴판이였다.
김삿갓은 문득 한 어물장수와 구레나룻의 엿장수가 돈흥정 끝에 피를 흘리며 싸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였다.
돈이란 천하 어딜 가나 환영을 받는고나 이것만 있으면 나라도 흥하고 가세를 떨친다지 갔다왔다 왔다갔다 성질 본래 이러하니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까지도 맡았다네
삿갓은 시를 적은 종이를 구경군들이 제일 잘 바라보이는 곳에 찔러놓고 자리를 떴다. 서산으로 거의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솟을대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허가촌이란 동리에 들어섰다.
허가, 허할 허자라 그러니 모든 것을 승낙한다는 허가이렷다.
하지만 여섯 번이나 대문을 두드렸으나 모두 똑같은 대답을 받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배에선 쪼록소리가 연방 들려왔다. 길주서 명천까지 온 삿갓은 박달령 밑 어전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이곳 역시 읍호가 명천이고 촌호가 어전이나 삿갓은 또 푸대접만 받았다. 명천이라면 밝은 개울이란 뜻일 텐데 부역에 지치고 기아에 주린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밝지 못하고 어전이라는 데서 겨우 밥 한끼 얻어 먹었는데 물고기고장의 이름을 가지고도 상에는 물고기 그림자도 없으니 이건 모두 빈 이름 뿐이였다. 삿갓은 길주 명천의 읍호를 다시 음미하며 혼자소리로 시를 읊었다.
길주 길주 불길주
허가 허가 불허가
명천 명천 인불명
어전 어전 식무어
그는 휘청거리며 가던 길을 계속 했다.
3
평생시
천하명산으로 이름높은 금강산, 묘향산, 구월산, 평양의 대동강, 개성의 박연폭포, 안변 풍연정, 안주 백상루 등 조선팔도 안가본데가 없고 간 곳 마다에 시를 안 남긴 적 없는 호방한 방랑시인 김삿갓이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산의 푸른빛도 구름 속에 저물고 있던 어느 날 강참봉과 술을 나누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다음과 같이 자기의 삿갓과 평생의 운명을 시로 읊었다.
내 삿갓은 물우에 떠다니는 빈배와 같은 것
한번 쓴 뒤로 40년을 쓰고 다녔도다
삿갓은 본디 목동이 소에게 풀을 뜯길 때 쓰는 것이요
어부가 갈매기와 더불어 고기잡이할 때 쓰는 것이어라
술에 취하면 난 삿갓을 꽃피는 나무가지에 걸어놓았고
흥이 절로 나면 삿갓을 풀고 루각에 올라 달구경했다
세상 속인들의 의관은 다 겉치레에 지나지 않지만
내 삿갓은 사나운 비바람이 불어쳐도 아무런 걱정없다
새도 짐승도 제집이 있는데
나는 한평생 홀로 쓸쓸히 떠돌았네
짚신과 대지팽이로 천리길을 걸었고
물, 구름처럼 이르는 곳을 내 집으로 삼았도다
팔자가 이러하거늘 하늘에 원망해서 무엇하랴
흘러가는 세월속에 내 마음만 아플 뿐이네
나도 유복한 가문에서 태어났고
한북의 땅은 내가 자란 고향이었네
구슬갓끈을 늘인 초상은 대대로 부귀의 인물이었고
꽃다운 장안에서도 이름높은 문벌이었네
이웃사람도 나를 옥같은 귀동자라 칭찬하며
장차는 꼭 장원급제하리라 축하해주었네
하지만 자라서부터 운명은 점점 기구해져
재더미가 된 페족잔문은 상전벽해로 변하였네
의지할 친척도 없는 몸에 세상인정은 야박하고
가족은 통곡 끝에 망하고 말았구나.
남산 새벽종소리에 신들메하고 집 떠난 나는
이 나라 팔도를 안간 곳 없이 돌아다녔네
마음은 아직도 타향 땅에서 머리를 박은 여우와 같고
궁박한 신세는 울타리에 뿔이 걸려 버둥대는 염소와 같네
남쪽고을에는 옛날부터 오가는 나그네가 많다지만
쑥, 부평초 같은 이 몸이 얼마나 많은 풍상을 겪었는가?
머리를 흔드는 버릇이 어찌 타고난 내 본성이랴만
입을 놀리며 밥 빌어먹는 재주만 늘었네
아까운 세월을 그런 일로 다 보냈고
그리운 삼각산은 아득히 멀기만 하네
강산을 따라가며 두드린 대문은 천만집에 달하였고
풍월행장은 빈 주머니만 남았다네
천금을 가진 가문의 만석군 자식이
세상의 인심을 다 맛보며 다녔다네
이 몸이 거지신세여서 늘 속인들의 멸시를 당하지만
해가 갈수록 희어지는 머리가 더욱 서글프구나
아! 고향에 돌아가기도, 타향에 머물기도 어려워
멀지 않은 여생을 길가에서 헤매며 보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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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미션투데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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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이 하루는 해가 저물어서 더 이상 길을 갈 수가 없었다.
마침 큰 집이 눈에 띄어 그 집에 가서 하룻밤 유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집주인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여기는 여관이 아니니 저 건너 객줏집으로 가 보시오"
그러자 그는 궁금하다는 듯이 주인에게 이 집에서 몇 대나 살아왔는지 물었다.
16대를 계속해서 살아왔다는 주인의 대답을 듣고서 그는 또 물었다.
"그럼 그 16대가 지금 다 생존해 계시는가요" 주인은 대답했다.
"그야 다 세상을 뜨셨지요"
김삿갓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도 살다가 언젠가는 갈 것이 아니겠소.
따지고 보면 당신도 나그네요, 나도 나그네입니다.
그러니 같은 처지에 하룻밤만 쉬어 갑시다"
집주인은 재치 있는 그의 말을 듣고서 하룻밤 유숙하도록 허락했다.
예부터 인생은 길 가는 나그네라고 했다.
잘 살아도 한 세상이요, 못 살아도 한 세상일 뿐이다.
세상 부귀와 영화의 집착보다는 섬기고 나누면서 사는 삶이 참다운 삶이 아닐까.
꽃 비 내리는 날 (Korean Traditional Instrumental Music)
[명상음악] 숲 - 새벽 발걸음 ("Forest" - Music for Meditation)
해금 조혜령 -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