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권사님 병원 심방
정 권사님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트럭이 받은 것이다. 그래서 교인들과 함께 영월 푸른 사랑병원으로 향했다. 마차에서 차를 꺽어서 영월로 향했다. 조금 멀지만 문곡 삼거리를 지나 영월로 갈 것인지 아니면 길이 조금 험해도 분덕재를 넘을 것인지 의견이 갈렸다. 그래도 빨리 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고개를 넘기로 했다. 마차가 친정인 이 집사님은 한참 지난 흑백필름을 돌리셨다. 친정어머니가 엿을 고아서는 그것을 머리에 이고 이 분덕재를 넘어서 영월 장을 가셨다는 것이다. 이 험하고 높은 고개를 그것도 머리에 이고 어떻게 넘었을까!
“내가 우수운 이야기 하나 할까요?” 이 집사님이 말씀을 이으셨다.
“예전에 탄광촌 사택이라고 해야 뭐 별거 없었어요. 부엌 하나에 방 하나 그런데 거기에 시어머니 시 아버지 순주들까지 한 방에서 잤단 말이에요.”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니! 한 집도 아니고 한 방에서 어떻게 살아요?”
집사님은 좀 기다려보라는 손짓을 하더니
“그런데 애는 어떻게 생기냐면요”
그러시더니 웃으신다. 뒤에 타신 권사님들도 먼저 웃으신다. 나만 모르는 이야기인가 보다. 아니면 다들 경험이 있으시던지.
“쌀독에만 가면 남편이 잡아 당기는거에요.”
그러더니 다들 배꼽을 쥐신다. 만약 지금 젊은 우리들보고 시부모와 한 방에서 살아야 한다고 하면 어떨까?
회동에서도 평창에 나가려면 재를 두 개나 넘었다고 한다. 아침에 물 한 사발 마시고 머리에 잔득 이고 평창에 갔다고 돌아오면 새벽에 길을 나서도 저녁 다시는 되어서야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면 마지막 고개 앞에서 힘이 없어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는 떨어지려 하고 하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재를 넘었다는 이야기도 몇 번 들었다.
“참 이 고개를 차를 타고 넘어가니 얼마나 호강하는 거야”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병원에 도착을 했다. 심각한 외상은 없어서 안심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성도님들 모시고 운전할 때는 주로 병원 심방인 것 같아요. 여기 앉아 계신 분들 중에서도 찔리는 분들 있으시잖아요? 앞으로는 우리 병원 말고 좋은 곳으로 놀러 다녀요.”
지난 주에는 장례식을 치렀다. 내일은 또 엄 권사님을 모시고 강릉 현대 아산 병원에 다녀와야 한다.
성도님들이 조금만 건강하시면 참 좋겠다. 그래서 교회 오는 것이 힘들지 않고 예배 하는 시간이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병원 심방 말고 정말로 함께 소풍을 다녔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