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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 호수의 성모님
때는 마리아 몽소승천 축일 날, 나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소도시 비젠에서 나와 자연 형태 그대로인 훌륭한 산책길이고 눈요기가 좋은 스위스 서쪽 끝에 있는 발렌 호수에 갔습니다. 작은 배에 올라 맑고 햇볕으로 물결이 반짝이는 검푸른 물 위를 노를 저어갔습니다. 주변에는 높고도 경사가 급한 어마어마한 바위벽으로 둘러싸인 호수였습니다; 북쪽의 언덕에는 거대한 바위벽으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발자국들이 있었지요. 가벼운 바람으로 발렌 호수의 잔물결이 흔들거리는 광경과 주변이 회색 벽으로 둘러있는 것도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주변에는 순전히 거대한 바위뿐 작은 덤불도 없었고 다만 폭포 소리만 귓가를 스치는 소리와 맹금류가 날면서 내는 날카로운 소리 외에는 조용한 곳이었지요.
뒤편 동쪽에는 정말로 제왕의 위엄이 서린 멀리 높이 솟아오른 글라르너ㅡ알프스가 눈더미와 빙하가 들판처럼 산세를 갖추고 있었지요. 나는 배를 호수 앞쪽에 튀어나온 절벽 쪽으로 돌렸습니다. 그곳에는 작은 숲처럼 몇몇 작은 전나무와 앉은뱅이 소나무들이 구부린 채로 그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깎아지른 절벽 앞에 있는 작은 배를 보았습니다. 한 젊은 부인이 힘차게 노를 저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뭉치의 풋내나는 클로버 위에 3살에서 4살쯤 된 꼽슬머리의 아이가 앉아있었고, 그 아이의 밝은 은빛처럼 빛나는 웃는 모습과 환호하는 소리는 마치 음악 소리처럼 느껴졌습니다. 붉은색의 클로버꽃을 넘실거리는 물 위에 뿌리는 아이의 엄마는 아마도 26쯤 되어 보였습니다.
“안녕하세요”하고 그녀는 나를 향해 인사를 했습니다. 나는 낡은, 그녀의 배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녀는 곧바로 노를 거두고 배 위에서 두 손을 바위 모서리를 잡고 배를 멈추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곳에 내리려는 것은 아니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내리기에는 무모한 행동이었고, 또한 한 발자국 앞으로 튀어나온 험준한 바위와 파도가 바위벽에 부딪히는 상황에 저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배가 날카로운 바위에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아이의 생명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었지요.
“아니요,” 젊은 부인은 정색하며 대답하였고, “이 장소에 해마다 성모님 날에 노를 저어왔고, 그동안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저를 보호하셨지요.”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배 안에서 녹색 잎에 꽃으로 장식한 둥근 화환을 꺼내 바위 한구석에 모셔있는 성모상에 걸었습니다. 그 성모상은 수면으로부터 네 발자국 정도 높이의 한구석에, 추측건대 근래에 모셔둔 성모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모상은 색깔이 밝고 선명하며 주변의 비바람으로 오랜 세월을 거친 회색 바위와는 대조가 되었습니다. 화환을 고정한 후 그 부인은 곧바로 나에게 맡겨놓았던 메모를 받아 배 위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합장한 뒤 짧은 기도를 올렸습니다: ‘생각하소서. 지극히 착하신 동정녀 님, 당신께 의탁하며 도움을 청하는 자를 저버리셨다는 것을, 지금껏 듣지 못했나이다…….’
나는 엉겁결에 모자를 벗고 그 단순한 기도에 함께하였습니다. 그 부인은 그저 흔히 바쳤던 기도를 단순 소박하게 꾸미지도 않았고 미사여구도 보태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눈물이 나도록 감동하였습니다. 마치 우리 조각배를 중심으로 끝없이 높은 청금석 같은 창공이 반원을 그리면서 호수 주변의 험준한 바위벽들은 마치 성모상을 제단 삼아 거대한 대성당의 기둥처럼 줄지어 서서 하늘을 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부인은 다시 노를 잡고 익숙한 솜씨로 힘차게 배를 뒤쪽으로 빼내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요.
“잠시만” 나는 말을 걸면서, “그냥 새삼스러워서 때문만은 아니고, 특별히 성모상과는 무슨 사연이 있으신가요?”
“정말, 신사분께서 듣기를 원하신다면…. 사연이 있지요.” 하고 덧붙여 말하였습니다. “저 위에 뮬렌호른 동네에 제가 일을 하고 있지요. 그곳에서 반 시간 정도 기다리신다면, 귀하께 그 사정을 말씀드리지요, 오늘은 게다가 일요일이니까요.”
우리는 각기 배를 저어 원래 출발했던 것으로 되돌아가 전후 사정의 이야기를 듣고 요약한다면:
담쟁이 덩굴이 온통 뒤 덥힌 뮬렌호른 작은 집은 조각가의 아버지와 부인, 피아 라는 처녀의 집입니다. 그들은 어둠의 그림자로 온 식구가 근심에 쌓여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한숨과 한탄을 하는가 하면, 아버지는 몇 달째 손목 때문에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손목에 가해지는 은근한 고통과 씨름하고 있지만, 그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취리히에서 대출을 받은 것이 상환 기일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들은 어려운 처지에서 절약하여 생활했어도 빚을 청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돈을 대여한 금융인에게 상환 기간을 연장해줄 것을 신청했지만, 이제는 그 가족이 사는 단 한 채의 집마저 빌린 돈 때문에 경매에 처할 위기가 된 것입니다.
성 안나의 축일 날, 피아는 아침 일찍 성당에 가서 마음속에 있는 고통을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여왕께 의탁하고 그들의 절망, 가까이는 늙으신 부모님을 보호해주시길, 그리고 우리 곁에 항상 함께하시길 빌었습니다. 그녀가 성당에서 나오자, 성당 골목에서 한 낯선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보기에도 점잖은 신사였고 얼굴은 창백했으며, 긴 블론드의 수염을 한 남자였습니다. 그녀 가까이 다가와 ‘호수를 한번 건너보고 싶은데 누구에게 배를 빌려야 할까?’ 하고 물었습니다.
피아는 “안녕하세요. 배를 타고 싶으시다면, 우리가 해 드릴 수 있어요. 저희 아버지를 불러드릴게요. 배의 키는 제가 잡아드리지요.”
피아는 키가 크고 건장한 체구에 얼굴은 그늘져있는 낯선 남자와 아버지와 함께 호수로 갔습니다. 피아는 키를 잡고 있었고 배는 잔잔한 물 위를 순조로이 떠가고 있었지요. 손님은 아침에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배와 잔잔히 물결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즐거운 드라이브는 아니었습니다. 흔히 손님이 넓은 세상과 웅장한 산맥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면, 큰 숨을 들이켜면서 즐거운 노래도 하고, 노 젓는 것과 박자도 맞추어 밝은 웃음소리와 물결이 배에 부딪치는 소리에도 흥이 나기 마련인데, 그는 노래와 즐거운 모습도 없고 창백하고 정색을 한 얼굴의 이방인이었습니다. 밝은 여름날 아침, 밝은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고, 어떤 기쁜 기운이 싹트기 전에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아무도 한마디 말도 없는 무거운 침묵과 배 위로 흐르는 더위만 깔려 있었지요.
고기 잡는 새들이 높은 곳에 날다가 화살처럼 내리꽂는 모습들, 가끔 순식간에 펄떡이는 송어를 잡아 날카로운 부리로 쪼아 반쯤 먹다가 떨어뜨리는 것들을 보면서 그는 약간의 웃음기를 띄우면서 씁쓸하게 중얼거렸습니다. “여기서도 싸움과 추적이 있구나”
잠시 후 그는 “이 호수의 깊이는 얼마나 되지요?” 하고 물어왔습니다.
“장소마다 다르지요. 백 미터, 장소에 따라 이백 미터 쯤” 하고 아가씨는 대답했습니다.
“어디가 제일 깊은가요?”
“저쪽, 바위벽 근처이지요”
”그쪽으로 갑시다“
피아는 키를 잡고 그쪽으로 배를 돌렸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째서 깊은 신음을 내십니까? 하고 이방인도 부드러운 말투로 물어왔습니다. “어디 아프게 눌리십니까?”
“아, 네, 말하기는 거북하지만, 당신들처럼 부자나 행복한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렵지요. 나는 이미 환자이고, 내가 밥을 굶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처지이고, 내일이면 상환기한이 되고, 내 집이 날아갈 형편에 놓여 있는데….”
이방인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프랑 때문에 그렇게 불행합니까? 경멸하는 듯한 말투로 말하면서 “돈이 없는 것보다 더 큰 아픔이 있다면요? 당신은 부자들은 이해를 못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배를 이쪽에 대시지요.” 하고 그는 시계와 그 옆에 지갑을 앉아있던 자리에 놓으면서 “내가 죽은 다음에 그것들을 가져요” 하는 것입니다.
“죽는다고?!, 당신은 정말로 그러리라는 것은 아니지요……?”
“맞아요, 그래요, 아무도 나를 말릴 수 없어요!” 그 말투는 거칠고, 위협적이고, 명령조였습니다. 피아는 아버지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은 신앙을 갖고 계시지 않는가요?” 하고 피아는 물었습니다.
그 이방인은 차갑게 묻는 그녀를 돌아보면서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한때는 그랬지만….” 하고 무감각 적인 어투로 말하였습니다.
“모르세요? 당신이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고, 자살은 심판대에 우선으로 간다는 것을요?
이러한 냉철한 기류가 오간 뒤에 그는 피아를 비웃듯이 힐끔 쳐다보며 “네, 당신은 그 신앙을 꼭 잡으세요. 나는 너무 늦었지요! 아가씨”
이방인은 갑자기 끓어오르듯, - 양심‘ 그의 생명은 분, 초를 세는 동안, 아버지와 딸과 두려움에 쌓인 이방인, 그들은 그를 위해 하루를 보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말수가 적은 그가 말을 꺼내더니, “나도 한때는 독실한 신앙이었다오. 더구나 내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셨을 때, 약속까지 했는데, 즉, 날마다 성모송을 하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려고 기도를 했지요. 아마도 습관적이겠지만….”
“그것은 정말 잘하셨네요!” 하고 피아는 대답하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그것을 계산하실 거예요”하고 덧붙여 말하였습니다.
“하느님?, 하느님은 없어요!” 이방인은 소리를 크게 외치고는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호수는 그를 삼켜버렸습니다. 배는 출렁거렸고 뒤집힐 것만 같았습니다. 피아는 날카로운 외마디 소리와 함께 불행한 사람을 삼켜버린 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딸아, 언덕 쪽으로 고정해라!” 피아는 키를 잡고 바위에 고정하자마자, 그 순간 아버지도 물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버지……!” 엄청난 놀람과 고통의 시간이 몇 분인지 흘렀을 때, 그 시간은 끝없는 것처럼 느꼈을 때……, 물 위로 머리 하나가 보이고 또 하나가;
피아는 오른팔을 뻗어 끌어 올리려 아버지 옆을 갔을 때, 아버지는 배의 측면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고, 다른 왼손에는 무거운 짐을, 즉 이방인을 잡고 있었습니다.
“조심해, 피아야, 우리 모두 죽을 수 있다. 언덕 쪽으로 배를 몰아라” 호수면 밑에는 솟아오른 바윗덩이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발을 더듬어 땅을 짚을 수 있었고, 어렵게 정신 잃은 남자를 배 위에 올릴 수 있었고, 본인은 배 앞머리에서 배 위로 올라올 수 있었지요.
“피아야, 집으로 빨리 가자. 물이 너무 얼음장같이 차다.”
반 시간 후에 뮬렌호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은 장시간 마사지를 한 후에 눈을 뜨게 되었고 점차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지요. 이방인은 조각실에 있는 동안 그의 옷을 정원 햇빛에 내어 걸었습니다.
“몸 상태는 괜찮습니까? 잠이 도움이 되었겠지요.” 이방인은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나는 벌써 죽었을 텐데….”
“아십니까, 어째서 하늘이 당신께 구원을 내리셨는지를?”
“그럼, 그 이유를 아시나요?”
“예, 당신은 어머니의 유언을 간절히 받아들이고 날마다 성모송으로 기도를 올리셨지요.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당신을 어둠 속으로 보내고 싶지 않으셨지요.” 피아는 미소를 띠면서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방에 걸려있는 성모상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아가씨의 아버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나 때문에 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하셨는데요”
“아버지는 열이 있어 침대에 누워 계세요. 아버지께서는 배의 노를 젓느라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는데, 그랬다가 갑자기 빙하의 찬 물 속으로 뛰어들었으니까요. 그러나 괜찮아지실 거예요.”
“훌륭하신 아버님께서 나 때문에 아프시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내가 지은 죄를 곧 제대로 된 방법으로 갚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떤 보상을 바라지 않아요. 내 아버지가 하신 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그리하셨을 거예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이웃사랑에서 나온 것이지요.”
“훌륭한 분입니다. 그 가르침을 채우려 한다면 실행할 때 조금이라도 부족함 없이 행해져야 하겠지요. 아가씨의 아버님께서 내일까지 꼭 갚아야 한다는 채무에 대해 말 좀 해주십시오”
“그렇지만, 그래도….”
“그렇다 하지 말고, 피아씨, 취리히의 그 남자의 이름이라도 말해 주세요, 그 일은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그 이방인은 발렌 호수 근처의 조용한 마을, 생명의 은인 가족과 손을 맞잡으며 감사의 인사와 함께 헤어졌습니다. 다음 날 채무 상환에 대한 요구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8일 후에 빈으로부터 뮬렌호른의 아가씨 앞으로 편지가 왔습니다.
“귀하와 귀하의 가족 여러분께 마음속에 있는 감사를 다시 한번 올립니다! 7월 27일의 슬픈 대혼란이 마음속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저는 나 스스로 모든 것에서 정신을 차리고 과거의 구속과 냉담 상태를 깨 버렸습니다. 나는 이제 행복합니다! 약간의 돈을 동봉합니다; 호수에서 저의 구조를 했던 그 절벽 사이에 성모상과 함께 두었습니다.”
젊은 부인이 나에게 들려준 성모상과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얼마 전에 선종하였고, 피아는 어느 여름날에 들렸던 멋진 남자와 결혼을 해서 이제는 어엿한 부인입니다. 마리아 축젯날 그녀는 절벽에 모셔져 있는 성모상에 화환을 봉헌하고, 그녀를 위한 선한 분들을 위해 아베마리아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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