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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바뀌었어요” 부도로 폐허로 변했던 한보철강(현 현대제철 당진공장. 사진좌)이 완전 정상화(사진 우) 이후 새 공장으로 변모했다. |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1997년 1월23일. 한보철강의 부도소식이 세상에 전해졌다. 투자규모 5조원대의 거대 철강회사가 차입경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하루 아침에 침몰한 것. 한보철강의 부도는 우리나라 철강산업과 국가경제를 뒷걸음질치게 했다. 한보그룹 22개 계열사에 이어 삼미.진로.해태.대농,기아 등이 연쇄 부도로 쓰러졌으며, IMF가 불어닥쳤다.
충남 당진의 철강단지 역시 철근공장 등 일부 설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고철더미로 전락했다. 이로 인해 한보철강 근로자들은 삶의 터전과 함께 꿈과 희망까지 송두리째 잃어버렸고, 지역경제는 파괴됐다.
그로부터 10년. 우여곡절 끝에 옛 한보철강을 인수한 현대제철은 지난해 10월 당진공장을 완전 정상화했다. 부도 여파로 가동이 중단됐던 A열연공장을 2005년 정상화 한데 부도로 공사가 중단됐던 B열연공장 마저 지난해 10월 정상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당진공장의 정상화는 부도로 삶의 터전을 잃었던 철강맨들에게 새로운 삶의 꿈과 희망을 되찾게 해 줬으며, 당진이 제2의 철강도시로의 도약하는 데 디딤돌이 되고 있다.
◇폐허에서 벗어나 쇳물이 콸콸 = 지난 18일 오후 현대제철 당진 A지구에 위치한 열연공장. 이날은 공교롭게 설비점검이 실시되는 목요일이어서 공장이 가동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전기로와 연속주조기, 균열로, 압연기 등 모든 설비의 가동이 멈춰있었기 때문이다.
당진공장 신승주 홍보팀장은 “매주 목요일이면 설비점검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정기점검만 아니면 제강공정부터 압연공정까지의 전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날은 설비보수를 위해 잠시 가동을 멈춘 것이지만, 이 공장은 무려 7년여 동안 가공이 멈춰 있었다. 1995년 6월 첫 가동에 들어갔지만, 회사의 부도로 가동 3년여만인 1998년 6월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400여명에 이르던 근로자들도 일자리를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신 팀장은 “당시 원재료인 철스크랩 가격이 너무 올라 열연코일 제품을 출하할 때 10만원권 수표 한 장씩을 덤으로 끼워 출하하는 격이었다”면서 당시 공장 가동이 중단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이처럼 가동이 중단됐던 이 공장이 회생의 길을 찾은 것은 2004년 10월 현대제철이 한보철강을 인수하면서부터이다. 한보철강 인수와 함께 A열연공장 정상화 작업에 들어간 현대제철은 인수 후 9개월, 가동이 중단된지 약 7년여만에 이 공장을 정상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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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 현대제철은 90%의 공정에서 공장건설이 중단된 B열연공장의 정상화에 착수, 지난해 10월 B열연공장마저 정상화에 성공했다. 한보철강을 인수한 지 2년만에 당진공장을 완전 정상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현대제철은 한보철강 부도 10년이 되는 올해 A열연 135만t, B열연 200만t 등 총 335만t의 열연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A지구에 자리한 철근공장에서는 철근제품 중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13mm 규격의 철근생산이 한 창이다. 단일 철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이 공장은 한보철강 부도 이후에도 생산을 계속했을 정도로 높은 생산성과 수익성을 자랑한다.
철강맨의 꿈과 희망도 되살려 = “전기로에서 쇳물을 끊여내는 것이 꿈이었는데, 한보철강 부도로 그 꿈이 산산조각 났다. 이제 정상화된 현대제철에 입사했으니, 일관제철소에서 쇳물을 끊여내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겠다”
현대제철의 당진공장 정상화는 한보철강 부도로 삶의 터전과 철강맨으로서의 꿈을 잃어 버렸던 이들에게도 새로운 꿈과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한보철강의 부도 여파로 공장을 떠났다 지난 15일 재입사한 C과장(38). 지난 1995년 3월 대학 졸업과 함께 당시 공격적인 투자로 주가를 높이던 한보철강에 입사한 그의 꿈은 엔지니어로서 자신이 건설에 참여했던 B열연공장에서 쇳물이 나오는 것을 보는 것.
그러나 그의 꿈은 한보철강의 부도로 산산조각이 났다. 2000년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우여곡절 끝에 2001년 재입사했지만, 2003년 또 다시 쫒겨나다시피 회사를 떠났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많은 마음 고생을 했다. PC방, 컴퓨터대리점, 갈비집 등 개인사업에 손을 대 꽤 돈을 모으기도 했지만, 젊은 시절 가졌던 철강맨으로서의 꿈을 접기가 쉽지 않았던 것.
이에 그는 2006년 1월 협력회사인 G사에 입사했고, 1년여만인 올 1월 마침내 정상화된 현대제철에 정식 직원으로 돌아왔다.
그는 “현대제철에 재입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한 것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었다”면서 “이제 전기로에서 못다 이룬 꿈을 일관제철소에서 꼭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당진공장이 정상화되면서 C과장처럼 재입사한 한보철강 출신은 약 100여명. 그는 “예전 현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 대부분은 아직까지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면서 “일관제철소가 완공되면 그들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제2의 철강도시로 도약 = 현대제철의 한보철강 인수 이후 당진군도 제2의 철강도시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현대제철을 비롯해 동부제강, 현대하이스코, 환영철강, 휴스틸 등 5개 기업이 연간 1천85t의 철강제품을 생산, 포항에 이어 제2의 철강도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또한 2004년 12월에는 평택항에 속했던 당진항이 ´평택.당진항´으로 법정 명칭이 바뀌고 제1종 지정무역항으로 거듭나면서 지난해 말 현재 15만t급 1선석 등 7개 선석 1천30만t의 처리 능력을 갖춰, 대 중국 물류 중심의 항만으로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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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경제지표도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당진군에 따르면 주민등록 인구는 2003년 11만7천명까지 감소했던 것이 지난해 말 12만7천여명으로 1만명 이상 증가했으며 지역 경기 회복을 대표하는 요식업소 수도 1996년 954곳에서 지난해 말 2천378곳으로 배 이상 크게 증가했다.
당진군청의 예산 규모도 한보철강 부도이전 1천516억원(1996년)에서 지난해의 경우 3천269억원으로 늘었다.
이를 바탕으로 당진군은 오는 2008년 시 승격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지난해에만 105개 기업을 유치하는 등 한보철강 부도 이후 꼭 10년만에 당진이 새로운 산업.항만도시로 재도약하고 있다"며 "2008년 시(市) 승격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