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빈폴, 세계의 빈폴로 간다!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75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중국 경제개혁의 상징적 도시인 상하이 푸둥(浦東) 지구 최대 백화점인 팔백반(八佰伴)백화점. 이 백화점은 작년 매출이 상하이 지역 백화점 중 1위를 차지했으며, 중국 전체에서도 항저우(杭州)의 대하백화점에 이어 매출 순위 2위다. 대하백화점이 서울의 롯데백화점 본점처럼 여러 개의 별도 건물이 모여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단일 건물 백화점으로는 상하이 팔백반백화점 매출이 중국 전역에서 1위인 셈이다. 이 백화점 1층에는 아르마니, 제냐, 휴고 보스, 코치 등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해 해외 유명 백화점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전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이 백화점에서도 한국 상품들은 선전하고 있다. 특히 남성 캐주얼의류 시장에서는 국내 토종 브랜드 빈폴(BEAN POLE)이 1~2위를 다투고 있다. 작년 매출 기준으로 이 백화점의 남성 캐주얼 1위 브랜드는 프랑스 캐주얼 브랜드인 라코스테. 2위는 근소한 차로 제일모직의 빈폴, 3위는 이랜드의 스코필드가 차지했다. 2, 3위 브랜드 모두 한국 제품들이 차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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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광복동 빈폴 플래그십 스토어. 플래그십 스토어는 빈폴의 6개 서브 브랜드 제품 모두를 판매, 빈폴의 전체 콘셉트를 보여주는 매장이다. / photo 제일모직
국내 고급 캐주얼의 대표 브랜드인 빈폴이 중국에 진출한 것은 2005년. 팔백반백화점의 빈폴 매장이 빈폴의 중국 진출 1호점이다. 이곳에서 만난 팔백반백화점 남성의류 담당인 자오 슈후아 부장은 “빈폴은 올 상반기 매출이 예년보다 특히 높아, 올해 전체 매출로는 라코스테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팔백반이 2005년 ‘고급화’를 콘셉트로 리뉴얼할 때 들어와 빈폴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구축해온 것이 중국 소비자들에게 고급스런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빈폴은 이곳을 포함해 중국 전역에 25개 매장을 갖고 있으며, 모두 백화점 내 입점해 있다.
폴로 뛰어넘는 고급브랜드 이미지 구축
한국보다 비싼 가격 불구 중국 매니아 늘어
팔백반백화점의 자오 슈후아 부장이 특히 높이 평가하는 빈폴의 장점은 재구매율이 높다는 점이다. 현재 이 백화점 빈폴 매장 매출의 65% 이상을 고정고객이 차지하고 있다. 빈폴을 한번 사간 사람이 다시 빈폴을 사가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설명이다. 경쟁 브랜드인 라코스테의 경우, 고정고객 비중은 빈폴보다 훨씬 낮은 40% 남짓이다. 현재 중국에서 판매되는 빈폴 제품 대부분은 한국산이다. 한국에서 생산된 수입품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같은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한국보다 20~30% 가격이 비싸다. 물류비용, 관세 등이 붙기 때문이다. 이처럼 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빈폴 캐주얼’ 매장은 내년부터는 ‘빈폴 남성’ ‘빈폴 여성’ 등 2개 매장으로 나눠야 할 정도로 중국 소비자 반응이 뜨겁다. 제일모직 상하이법인의 빈폴 담당 남기조 팀장은 “빈폴의 중국 내 소비자 반응은 폴로, 토미 힐피거 등 글로벌 브랜드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고급 브랜드로 인식돼 있다”며 “중국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덕분에 ‘한류(韓流) 효과’도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빈폴 탄생 20주년을 맞는 해로, 이미 중국 내 빈폴 매장에도 빈폴의 상징인 자전거의 ‘바퀴살’을 새 로고로 한 20주년 한정 상품들이 고객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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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상하이 최대 백화점인 팔백반백화점의 빈폴 매장. / photo 제일모직
작년 매출 4000억, 국내 단일브랜드 최고
해외 유명 브랜드들도 국내시장에선 완패
1989년 ‘트래디셔널 캐주얼 브랜드’를 표방하면서 출범한 빈폴이 올해로 ‘스무 살’ 성년이 됐다. 20년 동안 해외 브랜드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빈폴은 ‘한국 패션의 자존심’이라 불릴 정도로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다. 빈폴은 현재 Men’s, Ladies, Kids, Jeans, Golf, Accessory 등 6개의 서브 브랜드 형태로 제품이 나오고 있다. 작년 한 해 빈폴의 매출은 4102억원. 흔히 빈폴의 경쟁 상대로 얘기되는 브랜드들의 매출이 1000억~2000억원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빈폴은 국내 고급 캐주얼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패션시장에서 대형 브랜드를 지칭하는 ‘메가 브랜드’를 구분하는 잣대로 연간 1000억원의 매출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남성복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5대 브랜드인 갤럭시, 로가디스, 마에스트로, 캠브리지, 맨스타 등의 매출도 각각 1000억~2000억원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매출이 4000억원 이상인 빈폴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토종브랜드 빈폴은 해외 고급 캐주얼 시장의 대표주자들을 국내에서 압도적인 매출 차이로 눌러 ‘국민 브랜드’로 불리고 있다. 빈폴은 캐주얼 시장뿐 아니라 국내 의류업계 전체에서도 단일 브랜드로는 최대 매출을 기록 중이다. 빈폴은 2002년에 매출 2000억원을 돌파한 이후, 3년 만인 2005년에 3000억 원, 다시 3년 뒤인 2008년에 4000억원 고지를 점령함으로써 한국 패션시장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영국풍 트래디셔널 스타일 시대 열어
이건희 차녀 이서현 상무 글로벌화 주도
빈폴이 국내 최고의 패션 브랜드로 성장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디자인 중심 경영을 들 수 있다. 1989년 빈폴이 세상에 나왔을 때, 한국 패션업계에서 트래디셔널 스타일 브랜드는 생소했다. ‘트래디셔널 스타일’이란 스코틀랜드의 옛 수도였던 에든버러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통과 신사도를 계승하는 영국의 상류사회, 그들의 로열 패밀리적인 가치관과 생활관습을 반영한 패션을 말한다. 빈폴은 해외 수입 브랜드인 폴로와 함께 트래디셔널 캐주얼 시장을 만들어갔다. 기본 피케 티셔츠(코르덴처럼 가로나 마름모로 짠 면직물로 깃이 있는 셔츠)와 치노 팬츠(면바지)를 중심으로 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실루엣과 얼굴 색에 어울리는 컬러를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품질이 안정된 1990년대 중반에는 빈폴만의 독특한 패턴개발을 통한 디자인 차별화에 더욱 초점을 맞추었다. 현재 의장등록까지 돼 있는 빈폴 고유 패턴은 베이지, 그린, 와인, 네이비 컬러를 조합한 패턴이다.
빈폴은 디자인의 글로벌화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작년 11월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에 빈폴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그리고 루이비통, 랄프로렌 등 글로벌브랜드 디자인 디렉터 출신의 비아트 아렌스를 영입, 빈폴 디자인의 글로벌화를 꾀하고 있다.
빈폴의 브랜드 가치경영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상무가 주도하고 있다. 이 상무는 회사 전반의 미래전략이나 각 브랜드의 상품기획방향을 관장하는 기획담당 임원으로, 빈폴의 전반적인 대수술을 조용히 진행해왔다. 뉴욕에 디자인 연구소를 설립하고 최고 수준의 외국 디자이너를 영입한 것도 이 상무였다. 2002년 제일모직에 부임한 이 상무는 최고 성적을 내고 있는 빈폴을 통해 패션 전문경영인으로서의 경영능력을 자연스럽게 인정 받은 셈이다.
빈폴은 패션 스타들을 모델로 기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이미지에 맞는 아이템을 선정, 직접 디자인과 제품 홍보에 참여시키는 콜라보레이션(협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빈폴은 올 가을 빈폴 진의 대표상품 ‘셀틱 진(일명 담비진)’과 빈폴 액세서리의 ‘담비백’을 선보였다. 이효리를 잇는 ‘패션 아이콘’인 가수 손담비를 진(Jeans)과 백(Bag)으로 표현한 것이다. 담비진은 다리가 길어 보이는 슬림한 실루엣에 특수 스트레치 소재를 사용, 착용감을 높였고, 직접 사람이 핸드워싱(손으로 씻어 탈색한)한 프리미엄 진이다. 뒷주머니에는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로 무늬까지 새겨 넣었다.
스타들이 디자인·제품 홍보에 직접 참여
손담비 백, 김민희 백 등 스타라인 화제
빈폴은 담비진에 앞서 2008년에는 민희백(연예인 김민희 스타일의 가방)을 내놓음으로써 유명인을 활용한 스타라인을 시작했다. 연예인을 모델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 성격에 맞는 모델을 찾고, 또 그 모델의 스타일에 맞는 제품을 새로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나간다는 전략이다. 제일모직 마케팅팀 김종학 팀장은 “셀레브리티(유명인) 활용 전략은 그들의 성공한, 차별화된 이미지와 스타일을 브랜드에 투영한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전략”이라며 “장기적으로도 브랜드 로열티와 가치 향상에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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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빈폴 매장에서 빈폴 탄생 20주년 전시회가 열렸다. / photo 제일모직
빈폴의 콜라보레이션 대상이 유명 연예인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빈폴은 트래디셔널의 본고장인 영국에서도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옥스퍼드대학(1133년 설립)과 손잡고, ‘빈폴 옥스퍼드 라인’을 내놓았다. 빈폴은 옥스퍼드대학의 대표 문장(紋章)을 비롯, 단과대 문장 9개, 스포츠클럽 문장 6개 등 총 16가지의 다양한 문장을 이용한 ‘옥스퍼드 라인’을 선보였다. 상품군으로는 올 봄·여름 시즌에 남성 캐주얼 티셔츠를 내놓았으며, 가을·겨울 시즌에는 머플러, 모자 등으로 아이템을 확대할 계획이다. 빈폴 키즈에도 옥스퍼드 문장을 채택한 캐주얼 티셔츠, 야구모자를 출시했으며 캐주얼 가방, 타이와 머플러, 장갑, 양말 등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빈폴 맨즈의 김수정 책임디자이너는 “옥스퍼드대학의 문화와 건축물을 보고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트래디셔널에 대한 디자인 영감을 받았다”며 “럭비, 조정 등 운동을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과 단과대학별로 문장(Emblem)과 로고를 중시하는 그들의 정신을 빈폴의 디자인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제일모직 상하이법인 이종범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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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매장 25개… 내년엔 100개까지 늘려 5년 후면 중국서도 대표 브랜드로 성장할 것”
제일모직 상하이법인 사무실에서 만난 이종범 상무는 “내년을 빈폴의 중국 시장 확대 원년으로 삼겠다”며 “내년 한 해에만 빈폴 매장을 중국 전역에 100개 이상 열겠다”고 말했다.
올해가 빈폴의 중국 진출 5년째로 5년 동안 만든 매장이 25개인데, 내년 한 해에 네 배 많은 100개 이상 매장을 열 복안은.
“빈폴은 서브 브랜드로 빈폴 남성, 빈폴 여성, 빈폴 골프, 빈폴 키즈 등 6개 아이템을 갖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 빈폴은 통합 매장 형태로 운영 중인데, 이를 3~4개 서브 브랜드로 분리할 방침이다. 다시 말해 빈폴 매장 1개가 들어있는 백화점에 3~4개로 빈폴 매장을 세분화할 생각이다. 이럴 경우 25개 매장이 100개로 불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상하이, 베이징 위주로 입점했는데, 앞으로는 중국 전역에 빈폴 매장을 입점시킬 방침이다.”
팔백반백화점의 경우 작년에 토미 힐피거가 퇴출됐고, 폴로도 올 8월에야 입점했다. 빈폴이 중국에서 5년째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비결은.
“중국 소비자들도 ‘빈폴이 한국에서 세계 1위 고급 캐주얼 브랜드 폴로를 이긴 브랜드’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한류 바람도 도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 중산층의 인구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소비력이 한국보다 높다는 점도 ‘고급 캐주얼’을 지향한 빈폴의 전략과 잘 맞아떨어졌다.”
빈폴이 중국 이외 국가에 진출할 가능성은.
“내가 답변할 성격의 질문이 아니지만 ‘홍콩, 싱가포르 등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얘기하는 중국 바이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중국 빈폴의 향후 5~10년 후 비전은.
“넉넉하게 잡으면 10년, 짧게 보면 5년 후에는 빈폴의 한국 실적보다 중국 실적이 더 좋을 수 있다고 본다. 매출 규모뿐 아니라 이익률, 브랜드파워 면에서도 중국이 앞설 수 있다. 물론 빈폴의 중국 비즈니스가 계획대로 순항한다는 전제하에서다. 이쯤 되면 ‘한국에서 잘 팔리는 물건, 수입해서 파는 시스템’ 갖고는 곤란할 것이다. 중국시장을 겨냥한 별도의 상품기획, 중국 현지에 디자이너를 두고 철저한 제품개발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접은 라피도가 중국에서는 선전하고 있는데.
“라피도는 1998년에 중국에 진출했다. 현재 중국 전역에 150개 매장을 갖고 있다. 스포츠웨어 브랜드인 라피도는 나이키, 아디다스 등과의 차별화를 위해 중국 시장에서 ‘패션성’을 가미한 ‘패션스포츠 브랜드’로 거듭났다. 가격도 고가 정책을 썼다. 이런 블루오션을 개척한 덕분에 중국에서 제법 성공을 거두었다. 앞으로 400개까지 매장을 늘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빈폴 탄생 스토리
직원 깜짝 아이디어로 ‘자전거 타는 신사’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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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폴(BEAN POLE)이 탄생한 1989년은 우리나라가 86 아시안게임, 88올림픽 등 대규모 국제행사를 막 치른 뒤였다. 전세계인이 한국을 찾아 올림픽을 즐기는 동안 국내 패션시장도 급격히 팽창했다. 잇따른 세계적인 축제를 통해 한국인들도 ‘삶의 질을 중시하는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를 미리 예측한 제일모직은 고급 캐주얼시장 진출을 기획, 빈폴을 출범시킨 것이다.
제일모직은 빈폴 론칭을 준비하면서 브랜드 네임과 로고 개발을 일본의 세계적인 광고회사인 덴츠(DENTSU)에 의뢰했다. 덴츠가 제안한 ‘BEAN POLE’은 제일모직 내부의 수차례 회의 끝에 ‘4+4의 영어단어 숫자’ ‘1+1 구조의 한글 모양’이라는 안정된 구도, BEAN(콩)과 POLE(장대), 합치면 콩줄기(bean pole)가 콩이 많이 나는 미국 보스턴의 고풍스럽고 전통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고 이것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트래디셔널’과 잘 맞아떨어지는 점 등을 감안, 브랜드 네임으로 최종 결정됐다. 그러나 로고는 쉽게 결정짓지 못했다. 덴츠가 제안한 로고 중에는 마땅한 후보가 없어, 당시 제일모직 디자인실장이 고심 끝에 영국 신사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힌트를 얻어 ‘신사와 자전거’를 접목한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앞바퀴가 크고 뒷바퀴는 작은 자전거를 타는 신사를 형상화한 빈폴의 로고는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주간조선>상하이 = 박순욱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