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 호랑이
김붕래
제 작은 서재에는 부적처럼 나란히 그림 두 점이 걸려 있어 멍하니 무료할 때마다 나를 일깨워 줍니다.
한 점은 중국 제자로부터 받은 관운장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조남용 명인이 그린 <송하호작도(松下虎鵲圖)>입니다.
임인년 새해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호작도를 책상머리에 놓아두고 호랑이와 친구나 해야 하겠습니다.
조 화백의 <송하호작도>에 그려진 호랑이는,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 속에 나오는 효자를 등에 태우고 산을 넘거나, 신선을 모시고 다닌다는 우리와 친근한 그런 영물입니다. 민화 속 호랑이의 눈은 영악하다기 보다는 정겹습니다.
네 발톱은 그냥 흰색으로 뭉툭하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어금니는 날카롭게 뻗어 있어 백수의 왕자(王者)임을 증명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호축삼재(虎逐三災)라 하여 정초에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붙여 놓고 재앙을 멀리 하기도 했습니다.
범이 지켜주는 삼재는 풍재 수재 화재로터 오는 재난을 뜻하기도 하고 전쟁 질병 기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요새 극성인 코로나에도 영험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양가집에서는 시집가는 신부 가마뚜껑 위에 호랑이 가죽을 덮어 재액을 예방하기도 했습니다.
삼인검(三寅劍이란 칼도 있었습니다. 寅年, 寅月, 寅日에 벼린 칼입니다. 선비들이 멀리 출타할 때 품에 지니고 길을 나서면 범의 양기가 잡스러운 것들의 침입을 막아준다는 신기한 칼을 범의 해에는 많이 만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전통에 기인해서일까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호돌이 마스코트가 인기를 끌었고,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때는 백호 마스코트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판소리 한마당 <수중가>중에서 <범 내려온다>의 유려한 절창처럼 새 해에는 우리가 비록 새우잠을 자더라도 호랑이처럼 한번 크게 포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송하호작도>에서 까치와 호랑이는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새끼 호랑이와 대칭으로 보여주는 까치는 호랑이를 친숙하게 만들어 줍니다. 노송 가지 사이로는 기쁜 소식을 지니고 날아드는 까치처럼 호랑이 새끼 네 마리는 정겹기만 합니다. 범이 악귀를 물리치는 산신령의 심부름꾼이라면, 까치는 신의 자비로운 말씀을 전해주는 전령사입니다.
길게 꼬리를 드리운 호랑이 상하좌우로 까치 네 마리와 새끼 호랑이 네 마리 - 도합 아홉마리의 상서로운 짐승이 늘 푸른 소나무를 배경으로 어울려 있습니다. 소나무는 대나무 매화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라 기림을 받고, 십장생의 하나라고 칭송하기도 합니다. 추위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군자의 덕을 지닌 나무가 노송이며, 세월이 흐를수록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지닌 나무 중의 군자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가지를 늘이고서 범과 까치의 은신처가 돼 줍니다.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노송 주변으로는 불노초도 돋아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 것이 틀림없습니다.
호랑이와 까치가 어울린 숫자 아홉은 황제의 숫자입니다. 이 세상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로 이루어 졌는데 이 삼재가 세 번 되풀이되는 가장 완전한 숫자가 9입니다. 새끼 호랑이들은 밍크 숄을 두른 듯 부드러운 노란 색을 하고 있습니다. 어미 호랑이의 검은 줄무늬는 노란 바탕색을 더욱 극대화시킵니다. 노란 색은 황제를 상징하고, 방위로는 중앙이고, 오행(五行)으로는 토(土-대지)에 해당합니다. 흙이란 우리가 디디고 살아가는 굳건한 삶의 현장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어울려 벽사(辟邪)와 길상(吉祥)의 세계로 송하호작도(소나무 아래 범과 까치)는 상상의 외연을 넓혀갑니다.
호랑이에 대한 기록은 우리 역사 곳곳에 생활과 연결되어 나타납니다. 고려 때는 강감찬 장군이 인왕산 호랑이를 꾸짖어 물리쳤다 하고, <삼국유사> ‘김현감호’ 조에는 신라 청년과 호랑이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같은 <삼국유사> ‘고조선조’에는 곰과 범이 나란히 사람이 되고자 했다는 기록이 보이기도 합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 사신도에는 서쪽을 지키는 백호가 그려져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7세기에 나왔다는 <관자>(관포지교로 유명한 관중이 저술한 책)라는 책에는 천하의 보물이 일곱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가 조선의 비단무늬 호피(虎皮)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라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는 바다의 왕자 고래와 함께 대륙을 주름잡던 호랑이도 여러 마리 새겨 있는 것으로 보아 호랑이와 우리 민족은 영욕을 함께한 동반자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일제 치하에 씨가 말랐던 호랑이는 1986년 미국에서 호돌이 호순이 한 쌍을 분양해 오면서 다시 그 고고성을 듣게 되어 지난해에는 ‘아름. 다운. 우리. 나라. 강산’의 이름을 가진 다섯 마리가 태어난 것을 필두로 전국에 54마리가 퍼져 나갔으니 이것은 국운 상승의 조짐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산은 아무리 높아도 거기에 사람이 살거나 사찰이 있으며 그와 함께 호랑이의 이야기도 곁들여집니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은< 송하호작도> 속의 호랑이도 희망에 대해 우렁차게 포효하며 소심한 저를 잘 지켜줄 것이라 믿어 봅니다.
<격암유록>으로 유명한 조선 명종 때의 남사고 선생은 <산수비경>이란 글에서 우리 한반도의 지형을 포효하는 호랑이에 비유했습니다. 평안북도 동북면과 함경북도 동북면의 툭 튀어나온 곳은, 만주 대륙을 향하여 발톱을 세운 호랑이의 앞발이고 그 중간의 백두산은 범의 코입니다. 그리고 포항의 호미곶(虎尾串)은 이름 그대로 호랑이의 꼬리입니다. 금년 호랑이해에 호랑이 지형을 한 한반도에 커다란 행운이 찾아와 국운이 번창할 것을 기대해 봅니다.
동물학자인 서울대 오영창 교수님에 의하면 범은 꼬리를 이용해 몸의 균형을 잡으며 희로애락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또한 꼬리를 움직여 뒤따르는 무리를 지휘한다 하니 호미곶이 위치한 포항, 영일만 일대는 우리나라 최고의 길지임이 분명하니 금년 호랑이해를 맞이하여 기쁜 소식이 이곳으로부터 들려오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이 기쁜 소식을 호랑이와 노닐던 <송하호작도> 속의 까지가 전해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첫댓글 https://youtu.be/SmTRaSg2f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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