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7인의 차기작④] ‘이층의 악당’ 손재곤, “삶의 허무와 불안에 대한 이야기 ”
이번에도 우울증? 이번에야말로 우울증!
“어떻게 된 게 죄다 우울증이야. 우울증! 주부도 우울증! 수험생도 우울증! 연애 못하는 것도 다 우울증이야, 우울증!” 전작 <달콤, 살벌한 연인>(2006)의 대우(박용우)가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서를 받아 나오면서 신경질적으로 외치는 소리다. 한층 차분한 손재곤 감독의 입을 거치면 그 소리는 이런 말이 된다. “몇 년 사이 ‘우울증’이라는 말이 정말 흔해졌다.
유명인들이 사업 실패나 이혼으로 우울증을 겪었다는 식의 기사가 쏟아지고 연예인들이 너도 나도 TV 토크쇼에 나와 ‘우울증에 빠진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보통 사람들 역시 그런 감정에 더 민감해지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뭉뚱그려 우울증이란 말로 부르고 있는 것 같다. 그 중에는 사람이면 누구나 살면서 느끼는 회의도 끼어 있는 게 아닐까.” <이층의 악당>은 <달콤, 살벌한 연인>보다 직접적으로 그 문제를 다룬다.
<이층의 악당>에서 연주(김혜수)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도통 잠을 잘 수 없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기분을 느껴 신경정신과를 찾는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맨 처음 시나리오는 일이 잘 안 풀리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달콤, 살벌한 연인>과 비슷한, 아기자기한 코미디였다고 할까. 그런데 <이층의 악당> 시나리오를 쓸 때 내가 나이 든다는 사실에 민감했다. 3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던 시기라. 그런 느낌들이 시나리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결국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삶의 허무와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코미디가 됐다.”
특별한 한석규, 잘 통하는 김혜수
바로 그 점이 한석규와 김혜수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깔깔거리며 볼 수 있는 코미디지만 그 아래서,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맞닥뜨리는 우울을 건드리니까 주인공들이 처한 현실에 공감하겠다고 하더라.” 서른다섯 살의 연주(김혜수)와 그의 딸 성아(최지우)의 집 2층에 창인(한석규)이 소설을 쓰겠다며 세를 얻어 들어와 수상쩍은 일을 벌이던 중 연주 모녀와 묘하게 얽히고설킨다는 이야기는 그렇게 제 주인을 만났다.
“매일 촬영장에서 한석규와 만나는 요즘도 가끔 숙소에 돌아와 ‘오늘 내가 한석규랑 뭘 한 거지? 내까짓 게 뭐라고? 내가 정말 한석규랑 영화를 찍고 있단 말이야?’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한국 영화를 열심히 봤을 때가 한석규가 최고의 배우로 막 떠오르던 때였다. <서울의 달>(MBC, 1994)과 <초록물고기>(1997)의 한석규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석규’ 하면 나는 아직도 청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을 그릴 생각이다.”
손재곤 감독에게 한석규가 특별한 배우라면 김혜수는 잘 통하는 배우다. “김혜수는 이 영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다. 김혜수를 만나 이야기하면서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몇 년 동안 풀리지 않던 부분이 김혜수를 만나고 나서 단번에 풀렸으니까. 그만큼 영감이 풍부하고 직관이 뛰어난 사람이다.” 세 사람의 찰떡같은 호흡 때문일까? 지난 6월 3일 촬영을 시작해 어느새 반 넘게 찍은 <이층의 악당>은 벌써부터 11월 극장가를 노리고 있다.
속마음을 간질이는 코미디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평소에는 점잖기만 하던 대우가 혀를 집어넣는 키스에 열광하거나 유치하게 신경질 내는 모습은 사실 들키기 창피해서 그렇지 우리 모두의 속마음이었다. 코미디가 속마음을 간질이면 우리는 킬킬거린다. 손재곤은 자신의 코미디를 스스로 이렇게 정의한다. “우울증을 다룰 때 그걸 정면으로 다루면 비웃음을 당할까 겁이 나서 장난하듯 웃음 속에 숨기는 게 아닐까.” 어째 진취적이고 충동적이라는 ‘O형 게자리’다운 말은 아닌 것 같다. 역시 그의 말대로 혈액형과 별자리는 그다지 믿을 게 못 되나 보다. 결국 믿을 건 사람밖에 없다. 감독 손재곤의 이름 말이다.
첫댓글 "오늘 내가 한석규랑 뭘 한 거지? 내까짓 게 뭐라고? 내가 정말 한석규랑 영화를 찍고 있단 말이야?’라는 생각을 한다."
이 글에 완전 공감!~
석규님은 같이 있어도 신비스러운... 꿈만 같은 그런 분...
실제로 악수도 해봤고 이름도 직접 불러봤고 그니도 내 이름(?!^^;) 불러줬고... 그런데도 지금 누가 나한테, 그거 다 댁이 혼자 꿈꾸신 거거든요~~ 하면 "아,역시??!" 할 거 같다는...^^= 이건 내 주변 일본팬 분들도 동감이셨던!! 무진 가깝고 살가운 느낌인데 어느 순간 거리감 확실한.. 신비!! 네, 그거 영화 속 인물 하는 사람들한테 절대 필요한 품목이라 봅니다^..^~ 그쵸?! 여러분~~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