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똑같은 맛이 없다. 커피 이름은 같아도 브랜드, 커피하우스마다 맛이 제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내 입맛에 맞는 커피가 뭔지도 모르겠다. 커피 맛을 알도록 해주는 ‘커피학 개론’.
커피를 뽑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얘길 듣는다. “가장 두려운 것은 고객의 입맛이다.” 소비자 수준이 높아지면서 그 입맛도 까다로워져 더욱 맛있는 커피를 끓이기가 어렵다는 말일 거라 짐작했건만, 자세히 들어보니 오히려 그 반대다. 고객의 입맛이 점점 둔감해지기 때문이란다. 아무리 맛있는 커피를 대령해도 그 맛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곧 커피 맛을 구별할 수 있는 입맛의 소유자가 드물다는 소리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시장 규모와 소비자의 질적 수준이 반대로 흘러가는 데엔 분명 원인이 있을 터인데. ‘둘-둘-둘’로 굳어진 인스턴트커피식 입맛이 아직도 우리 입맛을 지배하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모자란다. 사람들이 커피 전문점에 가서 점심 값에 버금가는 돈을 기꺼이 지불하고 커피를 마시는 것은 인스턴트커피 그 이상을 원하기 때문이 아닌가.
사람들 입맛이 둔감해지는 이유는 아마도 맛있는 커피의 기준이 분명치 않은 탓일 게다. 그리고 세상 커피의 맛이 전부 제각각이기 때문일 게다. 똑같은 카페라테인데도 왜 집집마다 맛이 다를까? 같은 집에서 파는 커피라도 3일 전에 마셨을 때와 오늘의 맛이 왜 다를까? 심지어 원두 가루가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포장에 엄청 공을 들였다는 브랜드의 커피인데도 왜 맛이 일정치 않을까?
커피 맛은 에스프레소가 결정한다 커피 맛이 제각각인 가장 큰 이유로 에스프레소의 스타일을 꼽는다. 에스프레소는 크게 이탈리안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칸 에스프레소로 나눈다. 이탈리아에서는 최상급 아라비카 품종만 고집하지 않는다. 일반 품종인 로브스타를 10~40% 정도 섞는다. 이러면 좀더 편안한 맛을 낼 수 있다. 로브스타를 섞으면 크레마(기름)가 많아져서 커피 맛의 질감이 훨씬 부드러워지고 보디감도 풍부해진다.
전한F&C의 김영식 과장은 “라바짜(Lavazza) 커피의 경우 골드 셀렉션은 9:1, 톱 클래스는 7:3으로 블렌딩한다”면서 “이는 진하고 부드러운 맛을 살리기 위함”이라 말한다.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는 에스프레소 원액을 즐기는 사람에게 가장 알맞은 농도로 뽑아진다. 라바짜나 일리(Illy), 세가프레도(Sega Fredo) 등 이탈리아 브랜드의 에스프레소는 그 향미가 일반 에스프레소에 비해 깊고 진하다.
아메리칸 에스프레소는 약간 다르다. 농도가 훨씬 짙고 쓴맛도 강하게 느껴진다. 스타벅스(Starbucks)나 커피빈(Coffee Bean)에서 에스프레소 더블이나 트리플을 주문하면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보다 강렬한 맛이 난다. 이는 미국 브랜드가 커피를 더 강하게 볶기 때문이다. 미국인은 에스프레소 자체를 마시기보다 라테나 마키아토 등 우유나 시럽, 크림 등을 섞어 큰 컵에 마시는 ‘버라이어티 커피’를 선호한다. 희석 문제를 고려한다면 짙게 볶는 것이 당연하다.
에스프레소의 특성 때문에 잔의 크기도 다르다. 미국 브랜드의 커피잔이 10이라고 한다면 이탈리아 브랜드의 잔은 8에 불과하다. 모든 에스프레소는 7g의 잘 분쇄된 커피 가루를 이용해 정확히 7온스, 즉 30cc를 뽑는다. 똑같은 양의 시럽이나 우유를 섞으면 좀더 묽은 이탈리안 에스프레소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 카푸치노로 예를 들면, 미국에선 200cc 잔을 쓰지만 이탈리아에선 165cc를 반드시 지킨다. 현재 커피 시장은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된 상태다. 두 스타일을 섞어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한다. 물론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커피는 어찌 됐든 ‘기호식품’이니까.
가장 맛있는 커피는 신선한 커피 커피 맛에 영향을 끼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신선도다. 커피는 공기와 만나면 원래의 맛을 잃는다. 커피 회사는 자사 커피를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일리의 경우 질소압축 포장공법을 사용해 유효 보존기간을 3년으로 늘렸고, 국산 브랜드인 할리스커피(Hollys Coffee)는 생두를 수입해 국내에서 직접 로스팅을 한다. 커피빈 역시 센트럴 키친 시스템을 고집한다.
하지만 커피 업계 종사자가 주목하는 것은 캔이나 포장지를 개봉한 이후의 문제다. 일리커피를 수입하는 (주)빠리스타에스프레소의 이창훈 팀장은 “아무리 맛있게 생두를 볶고 아무리 철통같이 포장해도 공기에 노출되는 즉시 커피 맛은 변하게 마련”이라며 “각 매장의 바리스타가 커피 맛을 보존하기 위해 보관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커피 교육기관에서도 최근 들어 보관과 신선도에 관한 교육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보관을 잘한다고 커피 맛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일까? 커피 업계 종사자가 주목하는 것은 포장을 뜯은 이후다. 이는 국내 영업장의 재료 회전력과 상관이 깊다. 보통 매장으로 공급되는 원두는 1kg씩 포장되지만 국내 커피 매장 중에서 포장을 뜯은 원두 가루 1kg을 하루에 전부 소모하는 매장은 20%가 넘지 않는다. 하루에 500g도 소화하지 못하는 작은 매장도 허다하다. 결국 80%의 매장에선 맛이 변질된 커피를 판매하는 셈이다.
직접 생두를 볶는 자가 로스팅 매장이 인기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만 놓고 봤을 때 로스팅 매장이 최적의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김영식 과장은 “원두의 맛이 가장 좋을 때는 로스팅을 하고 난 2~3주 후”라고 말한다. 로스팅을 거친 원두에서 이산화탄소 가스가 모두 방출되고 또 커피가 머금은 오일 성분이 표면으로 스며 나오는 데까지는 15일 가량 소요된다. 하지만 갓 볶은 원두를 에스프레소로 뽑으면 기포가 많이 생기고 스모크 향이 덜해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로스팅 하우스는 에스프레소보다 핸드드립에 치중한다.
어려운 문제인 것만은 확실하다. 커피 맛에 관한 모든 논란은 ‘둔감한’ 사람이 ‘민감한’ 커피를 논하려는 데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불변의 진리만이 화두로 남게 된다. 알고 먹어야 최상의 맛을 누릴 수 있다는 진리. 기호식품이지만 기호식품 그 이상인 것이 커피다. 커피의 메커니즘을 안다면 ‘한 모금의 미학’에 눈을 뜨면서 좀더 맛있는 커피 한 잔이 간절해지는 것 또한 진리이니 말이다. |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앞으로도 좋은 자료 많이 올려주
좋은 정보네요..퍼갈게용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