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하얀 雪國의 제주에서
한반도 남해 상에 떠 있는 제주도는 섬이라기보다는 기후와 토양 문화까지 색다른 하나의 작은 나라 같다는 느낌이다. 갈 때마다 다른 느낌, 다른 풍광들이 여행객들의 가슴 달 뜨게 하는 한라의 품은 수 없이 나를 오라 손짓하여 그 충동에 흔쾌히 몸을 맡겼다. “무자년” 마지막 날인 2008년 12월 31일! 마침내 “2박 3일” 일정으로 기어이 기축년 새해 아침에 한라의 문을 열었다.
눈덮인 한라산을 등반('07년 1월)
<1일 차> 여행을 출발하던 날!
태화로타리에서 아내와 관광버스를 기다리던 시각은 왜 그리 더디 가던지. 갑자기 수은주를 뚝 떨어뜨린 한 해 마지막 날의 한파는 응달에서 40분가량 연착되는 버스를 화풀이로 씹으며 추위에 떨었다. 연착 이유는 한 부부가 늦었다는 것이다. 기분이 엄청 상했는데, 날씨는 또 왜 그리 춥던지. 우여곡절 끝에 2 대의 관광버스는 부산 중앙동 “연안부두”에 도착하여 대형 여객선 “설봉호”에 승선하였다.
주)설봉호 : 부산 선적 여객선 (4,166T, 정원 589명)
버스에서 먼저 관광 회사 가이드로부터 배 안이 복잡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마치 빙산에 충돌한 “타이타닉호”를 연상 시키는 이 혼잡함. 새해의 해오름을 제주에서 맞이하기 위한 관광객들이, 같은 배 편에 몰려 금융 위기로 침체한 세모의 모난 분위기마저 흔적 없이 녹여 버렸나보다. 한마디로 부산 자갈치 시장의 아침!
설봉호에서 바라본 부산시 야경(전면에 광안대교가 조금 보인다)
12월 31일 19:00시!
부산항을 출발한 “설봉호”는 선상나이트에서 저녁을 제공하였고, 곧이어 선장 이벤트로 태종대, 광안대교와 부산의 야경을 두루 구경할 수 있었다. 선상에서 광안대교 야경을 구경하니, 짧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어 “못 본 사람은 직접 가서 보세요.” 이렇게 말하는 게 나을 듯싶다. 무수히 빛나는 붉고 푸르고 혹은, 주황과 노랑으로 보석 옷 입은 빛들이 형형색색으로 바뀌며 춤추는 빛의 줄기는 가히 천국의 꿈길로 인도하는 황홀감의 극대치였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선상 이벤트의 백미는 12월의 마지막 밤을 광란의 분위기로 이끌어가는 “설봉호” 최상층에서 펼쳐진 무희들의 춤사위와 불꽃 폭죽놀이였으니까. 망망한 검은 바다. 해풍에 이따금 희뿌연 포말을 보여주는 바다 위에 거대한 몸짓으로 우뚝 선 설봉호. 갑판 위에는 살을 에일듯한 추위조차 밀어내는 무희와 사이키 조명에 열기를 돋우는 사회자의 입담이 파도로 출렁이며 다가와 이내 관객들에게 주문을 던진다. “10, 9, 8, 7……0.”까지 목이 터져라 외친 합창을 도화선으로 “펑펑펑…….”폭발음과 동시에 수직으로 치솟는 불기둥이 먼 밤하늘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이내 불꽃 우산을 피워낸다. 밤하늘에 수 만개의 꽃송이가 피어나 낙화(落花)하는 장관에 쳐다보는 사람들의 희열에 찬 표정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한 마디로 끝내주는 환상의 이벤트였었다.
공연이 끝나자 각자 배치되었던 선상 숙소인 2등 객실 “다인실”로 자리를 옮겼다. 방은 화장실이 딸려 있어 매우 좁았으며 1칸에 12명이 잠을 자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데 수속을 밟은 여행사 가이드는 이 날만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만 한다. “64명”으로 불어난 우리 여행팀의 숙소 때문에 타 여행사의 어려운 양보까지 받아낸 결과라는 데야. 별 뾰족한 수가 없을 땐, ‘빠른 체념도 삶의 지혜일 수도 있는 법이 아닐까?“ 그런데 방 안 분위기가 영 서먹서먹하다. ‘한국 사람 첫 대면에 월매나 낯을 가리던지. 무식한 것이 무기인 필자가 팔을 걷을 수밖에!’ 어디까지나 분위기 쇄신을 위한 술판의 보따리를 푸는 것이었지. 물론, 아내와 친구 R의 부인을 내세웠다.
‘이 날 참 요란했습니다.’ 필자는 詩人의 체면을 포기한 채 “19금” 농도 급의 화두로 방 안의 “4050세대”부부들의 뱃가죽에 진도 5 이상의 폭소를 선물했다. 친구 R 부부는 일행이 부른다며 수시로 선상 나이트를 들락거렸고, 24시에 타종한다는 제야의 종소리는 높은 파도로 흔들리는 배와 숙소를 가득 채운 파안대소에 묻혀버렸다. 그렇게 1일 차의 밤은 비틀대는 배와 쓰러지는 술병 속에 깊어가고…….
<2일차> 기축년 1월 1일.
여명의 시각에 눈을 뜨니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 온 바다를 뒤집어 놓는 하얀 포말이 선창에 잡혀왔다. 하지만 배는 항구에 정박하여 잠잠하기만 하다. 제주의 새해 일출은 불가능함을 인식하며, 배에서 제공하는 조식인 떡국으로 해장을 하니 눈이 좀 크게 떠지는 것 같았다.
08:00시!
설봉호에서 짐을 챙겨 내리자 조금씩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이번 여행의 총 인원 64명은 1호 차: 한라산 등반팀, 2호 차 : 산방산 팀. 이렇게 2대의 관광버스로 나뉘었고 우리 부부는 2호 차에 올라 접수 한 대로 산방산과 우도 관광 팀에 합류했다. 한라산의 신혼여행에 이어 2007년 1월에도 다녀왔기에 이번엔 산행보다 관광을 택한 터였다.
산방굴사 뒷쪽 산방산
버스가 여행지 첫 코스인 산방산 앞에 이르니, 함박눈과 싸락눈이 번갈아 오며 일행을 반겼다. 산의 초입인 산방굴사를 지나자 확 트인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형제도와 좌측 공해상의 고깃배들, 그리고 2시 방향의 송악산 너머 희미하게 마라도가 조망된다. 산방산은 중턱인 산방 굴까지만 등산이 허용되었다. 20여 분을 오르니 굴 내부에 석불을 모신 산방굴이다. 굴 입구에서 산 정상부의 깎아지른 암릉(巖陵)을 올려다보는데, 마치 내리는 눈발을 흡입하는 듯한 착시를 느끼며 백록담과 산방산에 얽힌 설화를 생각했다.
‘산방산이 한라산의 움푹 패인 백록담의 상부라는 설화’를 되뇌는데, 아내는 기이한 동굴 내부의 불상에 예불을 드린다. 이제 하산이다.
산방굴사 아래에서 산방산 팀과 단체사진을 찍고 이동하여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중식 후, 문득 다음 코스로 달리는 차 창으로 눈길을 돌리니 그동안 쌓인 눈이 참 아름다웠다. 길섶 양옆으로 더 넓게 펼쳐진 풍경들 머리에 눈꽃을 인 노오랗게 탐스러운 “한라봉” 열매들이 겨울에도 참 탐스럽게 보인다.
이곳에는 4모작도 가능하다고 현지 가이드는 귀띔한다. 사실, 이처럼 제주는 계절의 경계는 있을뿐 초목은 사철 꽃피우고 열매를 맺으니 천혜의 땅임에 틀림없다. 차창 밖으로 저렇게 눈이 내리는데도 한라산 아래의 마을 어귀에는 제주의 온화함을 나타내는 유채가 꽃잎을 피우는 걸 보면……. 지나온 산방굴사에는 수선화와 동백이 피어 있었고, 도로마다 띄엄띄엄 보이는 가을꽃인 “쑥부쟁이”도 겨울 속에서 연보라빛 꽃잎을 열고 반겼다.
차가 정차하자 이번에는 인형극 관람을 한다는 것이다. 이건 아니다 싶어 친구 R 부부와 우리는 따로 인형극이 끝나는 40분의 후에 일행과 합류하기로 하고 근처의 박물관을 구경하기로 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들어서니 전시장 앞 로비에는 정말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제주와 열대나라의 각종 조가비, 고동 등의 바다 패각류를 망라하여 실로서 꿰어 만들어 놓은 걸작을. 그것은 2층까지 틔워진 천장에 과녁 형상의 원형 테두리 따라 긴 주렴으로 드리워 놓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수 놓였기에 몇 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뒤이어 들어간 룸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나라의 전통문화, 풍속, 악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곳에서도 사진 몇 장을 더하며 시간을 맞춰 인형극을 관람한 우리 팀과 합류하는 버스에 올랐다.
박물관 로비의 조가비와 고동 주렴
다음 코스는 소인국!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안내를 맡은 여성 가이드가 제주의 기후, 풍습, 방언 등에 관하여 언급을 한다. 제주는 태풍이 와도 한라산이 사람 얼굴의 코 위치인 중앙에 자리해 바람의 반대 방향에는 파도가 잠잠하여 “십중팔구” 여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참고로 한라산의 높이는 “한번 구경 오세요!” 라고 하는 “1950(한번 구경 오십)M”를 잊지 말라는것ㅎㅎ
◎ 방언으로는
“혼저옵서예(어서 오세요)”
“펜안하우꽈? (안녕하십니까?)”
“폭삭속았수다.(수고하셨습니다.)” 이 세 가지가 기억에 남았다.
제주방언을 배우다 보니 버스는 어느새 “소인국” 앞이다. 가이드는 여기서도 40분의 시간에 관람을 마치고 다시 집결해 줄 것을 당부한다. 소인국은 세계 각국의 유명 건축물을 축소판으로 망라해놓은 것이 아닌가? 독립문, 에펠탑, 숭례문, 자금성, 대형 금동 좌불, 큰 바위 얼굴, 이스터섬의 조각물… 식견이 부족하여 다 나열하지 못하고 아내와 친구 내외의 사진 몇 장을 더 찍은 후 버스로 돌아왔다.
소인국 금동 좌불앞, 필자와 아내
다음 코스는 용두암!
용이 되고 싶어하던 백마가 한 장수의 손에 잡히자 곧바로 굳어져 용두암이 되었다는 설화의 장소이다. 목적지에 당도하니 바람에 모자가 막 날린다. 급히 기념사진 몇 장만 찍고 버스로 돌아와 “화이트 비치 급(2인 1실)”의 단체 예약된 숙소를 배정받았다.
이날, 우리가 묵은 호텔에 잠시 정전이 되었다. 하지만, 지하에 차려진 저녁식사는 좋았다. 따로 주문했다는 “생선회, 매운탕” 반찬은 뷔페식으로 나와서 그동안의 여독을 풀며 한 잔술에 금방 기분은 여행의 흥취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제주에서 기축년 새해 첫날밤을 맞이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신혼여행으로 첫발을 디딘 후 4번째 제주를 찾아온 것이다. 이 날은 R 부부가 한 잔 안 하느냐는 물음을 “일언지하”에 “오늘은 쉬자!”라고 했다. 의외인지 친구가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동안 마이 무웃다 아이가'를 속으로 삼켰다. 한 해의 첫날밤에 일찍 잠을 청하며 불을 껐다.
<3일 차> 기축년 1월 2일!
06:00시에 기상하여 세수를 하고 호텔 지하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08:00시에 여행 가방을 챙겨 관광버스에 올랐고 눈 덮인 벌판에 위치한 승마 체험장에 당도했다. 승마장에는 승마모자와 조끼를 착용한 후 두 사람씩 말을 탔으며 조교의 인솔하에 학교 운동장 넓이의 거리를 처음엔 걸어가다 반 바퀴쯤 돌자 천천히 달리며 3바퀴 정도를 도는데 승마를 처음 접하다 보니 말 안장을 얼마나 움켜쥐었던지 팔이 얼얼하였다.
다음은 몽골인 기마 곡예장!
실내 경기장에서 몽골인들이 전통음악에 맞춰 화려한 기마 복을 입은 체 등장했다. 깜깜한 실내에 강렬한 스포트 불빛을 받으며 몽골인들은
달리는 말 위에서 두 발로 서며, 물구나무선 채 달리는 등 자유자재로 기예를 부리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특히, 깜찍하고 어여쁜 몽골소녀들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다음 코스는 성읍 민족마을!
지붕에 눈이 소담히 쌓인 작은 초가 마을에 도착했다.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민속마을이다. 이곳은 해발 125m 높이에 위치하며, 마을에는 중요한 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 5채. 천연기념물인 느티나무, 팽나무. 지방문화재인 정의학교, 일관헌, 녹나무, 돌하르방, 초가 등이 보존되어 있다. 1884년 마을 전체가 중요 민속자료로 정해졌으며, 현재 이곳 주민은 타 마을로 이주가 금지된 상태였다. 마을 안에는 제주 똥 돼지를 직접 키우는 장소를 구경할 수 있었고 조랑말도 있었다. 민속마을 관람 후 중식시간에는 제주산 똥 돼지 불고기를 양껏 먹었으며 친구가 건네주는 반주인 제주 특산품 조껍데기술(일명: 조깐술)을 두어 잔 마시니, 캬~ 이 술 맛! 술 이름은 좀 거시기 하지만 걸쭉한 것이 향토의 맛을 느끼게 했다.
식사 후 찾아간 곳이 미천굴 & 테마 분재원!
이곳은 각종 분재와 야자수, 분수대, 폭포, 큰 구멍이 난 화산석, 돌하르방 등이 있었고, 무거운 물 허벅을 진 아내의 모습을 담느라 헤프닝했던 모습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미천굴은 예전에 관람했기에 시간 관계상 접기로 했다.
최종코스는 우도 관광!
마침내 성산 일출봉을 지나 성산포 항에서 카페리호를 타고 우도 관광길에 나섰다. 선상의 후미에서 바라보니 맑아진 역광의 햇살을 받으며 일출봉이 멀어지고 있다. 갑자기 어디서 날아왔는지 갈매기 떼가 가까이 날며 성화다. 아마 관광객들의 새우깡에 길들여진 듯…. 우도는 성산포 연안부두에서 바라다보이는 근교 섬이라 카페리호에 올라 대략 30분가량이면 도착하는 섬마을이다.
이곳 등대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오래된 등대(약 100년 이상)라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첫 번째 오래된 등대는 인천의 팔미도 등대(1903년 6월)라고 한다.
우도에 대해 더 알아보면, 면적: 6.03㎢ 인구: 1,752명 제주도에 부속된 가장 큰 섬으로 물소가 누워 머리를 내민 모양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우도 항에 진입하면서 찍어본 형상
검믈래(검은 모래) 해변과 “우도봉”
카페리호가 우도 항에 정박하자 일행은 마을을 지나 오름길로 이동하였고 전망대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전망대 남쪽에 있는 검믈래(검은 모래) 해변의 끝머리 상부가 “우도봉”이며 그 위에 등대가 보이고 아래에는 “동안경굴” , “후해석벽”의 기암절벽이 장관이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우도를 한 바퀴 돌아 “서빈백사”에 이르면 말로만 들었던 코발트 빛 바다가 펼쳐진다. 해안에 서면 마치 지중해에 온 느낌이 인다. 산호초가 부서져 형성된 백사장에 들어서니 부드럽게 패이는 발자국 따라 백색의 엷은 아이보리톤 질감 모래에 탄성이 절로 새 나온다. 이제껏 모든 수고가 한꺼번에 보상된다.
희열에 들뜬 우리는 하얀 산호초 모래펄에 뒹굴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빈 백사장에서(좌: 친구 아내, 우: 필자의 아내)
마음은 오래 머물고픈 데 돌아가는 배 시간 때문에 일행은 우도 항 관광안내도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곧바로 배에 올라야 했다. 파도를 가르며 성산포 항으로 돌아가는 뱃머리에 서니 점점 커지는 일출봉의 모습에 만감이 교차한다.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 제위께 감사의 마음 띄우며, 정말 아름다운 섬 제주가 영원토록 세계인의 사랑 중심에 우뚝 서기를 바라는 마음 전한다.
─ 己丑年 一月 十八 日, 제주도 기행문 淸淡 천윤우 書
♬~~흐르는 곡 Just For You(당신만을 위하여) ─ Giovanni Marradi
첫댓글 제주도고 뭐고 요즘같아서아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