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포로기행 백두대간 강원도 강릉시 삽당령-임도-930봉-벌목지-석두봉(991m)-산죽밭-송백봉(989m)-희봉(1,006m)-화란봉(1,069.1m)-닭목령-강릉시 닭목골 종주산행]11년 5월 28일
* 산행구간 : 강릉시 삽당령-임도-930봉-벌목지-석두봉(991m)-산죽밭-송백봉(989m)-희봉(1,006m)-화란봉(1,069.1m)-닭목령-강릉시 닭목골
* 일 시 : 2011년 5월 28일(토)
* 모임장소 및 출발시각 : 동서울터미널 오전 7시
* 날 씨 : 맑음(최고 18도 최저 11도)
* 동반자 : 산악회 동반산행
* 산행거리 : 16.5km
* 산행지 도착시각 : 강원도 강릉시 삽당령 오전 10시 50분 출발
* 산행후 하산시각 : 강원도 강릉시 닭목령 오후 3시 20분 도착
* 산행시간 : 약 4시간 30분(식사 및 사진촬영시간 포함)
오랜만에 백두대간을 오릅니다.
이구간은 지난 겨울에 근래 드문 눈폭탄을 맞은 강릉시 대관령에서 능경봉과 고루포기산을 거쳐 닭목재를 눈길산행하였던 구간을 계속 이어 대간산행을 하는 구간이지요.
역시 삽당령에서 석두봉과 화란봉으로 향하는 구간에도 오랜세월 힘차게 살아온 우람하고 장쾌한 소나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은 것은 강릉시 방화선을 핑계로 그 멋지고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없어졌다는 사실이지요.
산을 사랑하는 산꾼들은 너무 속이 상하지만 베어간 이들은 그것으로 출세와 부를 누리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한편 대자연은 인간이 아무리 훼손시킬지라도 왕성한 복원력으로 일부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기도 하지요.
그러나 아직 이구간에는 멋진 소나무들이 많이 남아 있어 천만다행입니다.
예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 대나무, 잣나무 등 나무들은 그 기상과 모습에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는 나무들로 숭상하며 살기도 하였지요.
특히 추사 김정희(1786-1856)는 58세의 나이인 1844년에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하면서 그린 ‘세한도(歲寒圖)’에서 갈필(渴筆)로 거칠게 붓질한 소박한 집 한 채를 중심으로 소나무와 잣나무가 두 그루씩 서 있을 뿐이어서 쓸쓸한 겨울 정취를 자아내는 절제미와 간결미 등 높은 예술적 완성도 넘친 작품을 남긴 것만은 아닐겁니다.
이는 시대의 차이를 뛰어넘어 길이길이 기리고 본받아야 할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추사는 그림의 발문을 통해 선비의 지조와 의리를 지킨 제자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준다고 밝히면서 공자의 ‘논어’ 한 대목을 인용했습니다.
추위가 닥친 뒤라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는 의미인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송백시관사시이부조자 세한이전일송백야 세한이후일송백야(孔子曰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 松柏是貫四時而不凋者 歲寒以前一松柏也 歲寒以後一松柏也)’가 그것이지요. 송백은 사철 시들지 않아 추위 전에도 추위 속에서도 한결같다고 추사는 덧붙여 선비 정신을 더 강조했습니다.
문장의 뜻이 노성하게 무르익은 가운데 슬프고도 측은한 감이 있지만 필력은 더할 나위없이 굳세고 강건해 완당의 글씨 가운데 압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글은 '세한도(歲寒圖')와 짝을 이루며 그의 맑은 기풍과 고상한 절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歲寒圖> 跋文 - 세한도 발문
“去年以晩學大雲二書奇來(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지난해에 만학과 대운의 두 문집을 보내왔고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금년에 또 우경 문편을 보내왔으니
此皆非世之常有(차개비세지상유)
이는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購之天萬里之遠(구지천만리지원)
더구나 천만리 먼곳에서
積有年而得之(적유년이득지)
구입함에 해를 두고 애써 얻었으니
非一時之事也(비일시지사야)
한때의 일이 아니 것이다.
且世之滔滔惟權利之時趨(차세지도도유권리지시초)
또한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권세와 이익만을 쫓아가거늘
爲之費 必費力如此(위지비 필비력여차)
마음과 힘을 다하여
而不以歸之權利(이불이귀지권리)
권세와 이익이 있는 자에게 보내지 않고
及歸之海外焦箤枯稿之人(급귀지해외초졸고고지인)
바닷가에 초췌하고 메마른 사람에게 보내주었도다
如世之趨權利者(여세지추권리자)
세간에 권리에만 추증하는 이들은
太史公云(태사공운)
태사공이 말하기를
‘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疏(이권리합자 권리진이교소)
권리로서 합한 자는 권리가 다하면 사람이 소원해진다고 하였다
君亦世之滔滔中一人(군역세지도도중인시)
그대도 역시 세간의 많은 사람 가운데 한사람인데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기유초연자발어도도권리지외)
초연하게 스스로 도도한 권리 밖으로 솟아남이 있으니
不以利權利視我耶(불이이권리시아야)
권리와 이익의 대상으로 나를 보지 않는가
太史公之言非耶(태사공지언비야)
아니면 태사공의 말이 틀렸는가
公子曰(공자왈)
공자가 말하기를
‘歲寒然後 知松柏之後淍(세한연후여송백지후주)
추운 겨울을 당한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뒤에 시드는 것을 알지니라 하였으니
松柏時貴四時而不淍者(송백시귀사시이불주자)
송백은 사시를 통해서 시들지 않는다.
歲寒以前一松柏也 歲寒以後一松柏也(세한이전일송백야 세한이후일송백야)
추운 겨울 이전에도 한 송백이요, 추운 겨울 이후에도 한 송백인데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성인이 특별히 찬 겨울 이후의 송백을 칭찬하였도다
今君之於我 由前而無加焉(금군지어아 유전이무가언)
이제 그대가 나에게 대하여 전이라고(권리 있을때) 더함이 없었고
由後而無損焉 然由前之君 無可稱(유후이무손언 연유전지군 무가칭)
후에도 (유배 후) 손함이 없거늘 그러나 전날의 그대는 칭찬함이 없었고
由後之君 亦可見稱於聖人也耶(무가칭 유후지군 역가시칭어성인야야)
이제 와서 그대(권세와 이익의 탁류속에 매몰되지 않는 것)는 또한 성인에게 있어서도 칭찬받을 만한 것인가
聖人之特稱 非徒爲後淍之貞操勁節而己{성인지특칭 비도위후주지정조경절이기)
성인이 특별히 겨울의 소나무를 칭찬한 것은 한갓 다른 나무보다 뒤에 시든다는 정조와 굳은 절개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역유소감발어세한지시자야)
또한 추운 겨울을 당해야 홀로 청청한데 감발되기때문이다
鳴乎 西京淳厚之世 以汲鄭之賢 賓客與之盛哀(명호 서경순후지세 이급정지현 빈객여지성쇠)
아아! 서경의 인심이 순후한 세상에 있어 금망, 정당시 같은 현숙한 이들도 빈객이 권세에 따라 성하게 오기도 하고, 쇠하게 오기도 하였으며
如下邳搒門迫切之極矣(여하비방뭉박절지극의)
한대의 적공이 대문에 방을 붙인 것과 같은 것은 세간 인심의 박절함이 극에 달한 것이 아니겠는가
悲夫 阮堂老人書(비부 완당노인서)
슬프도다! 완당노인은 서하노라"
(최동춘> “추사 세한도의 청고고아 심미의식”과 <유승국> “학술원회보”중에서
<歲寒圖> 跋文
“去年以晩學大雲二書奇來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 此皆非世之常有 購之天萬里之遠 積有年而得之 非一時之事也 且世之滔滔惟權利之時趨 爲之費 必費力如此 而不以歸之權利 及歸之海外焦箤枯稿之人 如世之趨權利者 太史公云 ‘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疏 君亦世之滔滔中一人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 不以利權利視我耶 太史公之言非耶 公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淍 松柏時貴四時而不淍者 歲寒以前一松柏也 歲寒以後一松柏也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今君之於我 由前而無加焉 由後而無損焉 然由前之君 無可稱 由後之君 亦可見稱於聖人也耶 聖人之特稱 非徒爲後淍之貞操勁節而己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 鳴乎 西京淳厚之世 以汲鄭之賢 賓客與之盛哀 如下邳搒門迫切之極矣 悲夫 阮堂老人書”
(“거년이만학대운이서기래 금년우이우경문편기래 차개비세지상유 구지천만리지원 적유년이득지 비일시지사야 차세지도도유권리지시초 위지비 필비력여차 이불이귀지권리 급귀지해외초졸고고지인 여세지추권리자 태사공운 ‘이권리합자 권리진이교소 군역세지도도중인시 기유초연자발어도도권리지외 불이이권리시아야 태사공지언비야 공자왈 ’세한연후여송백지후주 송백시귀사시이불주자 세한이전일송백야 세한이후일송백야 성인특칭지어세한지후 금군지어아 유전이무가언 유후이무손언 연유전지군 무가칭 유후지군 역가시칭어성인야야 성인지특칭 비도위후주지정조경절이기 역유소감발어세한지시자야 명호 서경순후지세 이급정지현 빈객여지성쇠 여하비방문박절지극의 비부 완당노인서“)
“지난해에 만학과 대운의 두 문집을 보내왔고 금년에 또 우경 문편을 보내왔으니 이는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천만리 먼곳에서 구입함에 해를 두고 애써 얻었으니 한때의 일이 아니 것이다. 또한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권세와 이익만을 쫓아가거늘 마음과 힘을 다하여 권세와 이익이 있는 자에게 보내지 않고 바닷가에 초췌하고 메마른 사람에게 보내 주었도다 세간에 권리에만 추증하는 이들은 태사공이 말하기를 권리로서 합한 자는 권리가 다하면 사람이 소원해진다고 하였다
그대도 역시 세간의 많은 사람 가운데 한사람인데 초연하게 스스로 도도한 권리 밖으로 솟아남이 있으니 권리와 이익의 대상으로 나를 보지 않는가 아니면 태사공의 말이 틀렸는가
공자가 말하기를 ‘추운 겨울을 당한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뒤에 시드는 것을 알지니라 하였으니 송백은 사시를 통해서 시들지 않는다. 추운 겨울 이전에도 한 송백이요, 추운 겨울 이후에도 한 송백인데 성인이 특별히 찬 겨울 이후의 송백을 칭찬하였도다 이제 그대가 나에게 대하여 전이라고(권리 있을때) 더함이 없었고 후에도 (유배 후) 손함이 없거늘 그러나 전날의 그대는 칭찬함이 없었고 이제 와서 그대(권세와 이익의 탁류속에 매몰되지 않는 것)는 또한 성인에게 있어서도 칭찬받을 만한 것인가 성인이 특별히 겨울의 소나무를 칭찬한 것은 한갓 다른 나무보다 뒤에 시든다는 정조와 굳은 절개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또한 추운 겨울을 당해야 홀로 청청한데 감발되기때문이다
아아! 서경의 인심이 순후한 세상에 있어 금망, 정당시 같은 현숙한 이들도 빈객이 권세에 따라 성하게 오기도 하고, 쇠하게 오기도 하였으며 한대의 적공이 대문에 방을 붙인 것과 같은 것은 세간 인심의 박절함이 극에 달한 것이 아니겠는가 슬프도다! 완당노인은 서하노라"
(최동춘> “추사 세한도의 청고고아 심미의식”과 <유승국> “학술원회보”중에서
세한도는 제주도 유배 중에 있던 1844년, 58세의 추사가 아끼는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4∼1865)에게 그려준 서화합벽(書畵合璧)의 명품으로, 국보로 지정된 작품입니다. 우선은 그 후 이를 가지고 북경에 가서 청나라 명사 장악진, 오찬, 조진조, 반준기, 반희보, 반증위, 풍계분, 왕조, 조무견, 진경용, 요복증, 오순소, 주익지, 장수기, 장목, 장요손 등 16명에게 제찬(題贊)을 받아왔지요.
이중에서 반증위의 제찬시를 봅니다.
김정희군은 해외의 영재.
일찍 성대한 명성을 들었네.
성대한 명성이 훼손을 입어.
속세 그물에 걸리고 말았네.
도도히 흐르는 속세를 보고.
누가 선비의 청백을 알리.
풍진 속을 서글피 생각하다가.
일찍이 현명한 친구인 즐 알았네.
고상한 의리는 시종 돈독하여.
날씨가 추워져도 약속을 변치않았네.
저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본성을 같이 굳게 지키네.
이 시들지 않는 성질을 묘사하여.
두터운 정에 보답하오.
우선선생의 부탁을 받아 반증위쓰다.
우선(1803-1865)의 이름은 상적(尙迪)이며 자는 혜길(惠吉)입니다. 우선은 그의 호이지요. 본관은 우봉(牛奉)으로 용모 태도가 세상을 초탈한 사람처럼 표일하고 준수하였으며 기질은 봄바람처럼 따사로왔답니다. 또 그의 정신은 가을바람처럼 맑았으며, 문채와 풍류에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답니다.
우선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완당을 염려해 때때로 예물을 보내어 정성껏 그의 마음을 위로하고 완당의 추배 생활이 4년째 되던 헌종 9년(1843년). 우선은 친히 북경에서 계미곡(桂未谷)의 "만학집(晩學集)"과 운자거(運子居)의 "대운산방집{大雲山房集)"을 구해 멀리 떨어져 있는 완당에게 보내 귀양살이의 무료함을 달래주었답니다.
우리도 백두대간 산행중 직접 어루만지며 보는 가장 멋진 소나무군락일 수도 있는 소나무들을 감상하시며 그 기상과 조상의 얼을 되받아 건강과 행복을 누리시지요.
강원도 강릉시 삽당령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