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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07년 8월 19일
*** 산행지; 응봉산 (경북 울진, 강원도 삼척 위치)
*** 코스; 덕구온천- 원탕- 정상- 삼거리- 제2용소- 제1용소 -덕풍
*** 소요시간 ; 중식 포함 10시간
*** 참석자; 이시관, 최용화, 송기봉, 이혜연 ( 이상 4명 )
2007년 8월 18일 밤 11시 조금 넘은 시각 안내 산악회 버스는 우리를 태우고 밤길을 달린다. 버스에 몸을 맡긴 채 몸은 어느 덧 이리저리 쏠리고 그러다가 하루를 넘겼다.
그렇게 몇 년을 두고 고대하던 응봉산 (鷹峰山) 가는 날이다. 응봉산은 강원도 삼척과 경북 울진에 걸쳐 있는 산으로 울진쪽에서 보면 비상하는 매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매봉산이라고도 불린다. 해발 1000m가 되지 않지만 양쪽에 계곡을 끼고 절경을 숨겨 놓고 있다. 대중교통으로의 접근성이 좋지 않고 서울에서 워낙 먼 오지라서 쉽게 발길이 가지 않지만 6년 전 갔던 기억이 나를 깨워 큰 마음 먹고 나섰다. 이번에는 지난 번과 반대로 덕구 온천에서 덕풍 계곡 방향으로 타기로 했다. 아무래도 체력 소모나 소요 시간에서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일행은 단출하게 4명. 사실 10시간 정도 산행이라는 말에 겁을 먹고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까 봐 선뜻 나서지 못한 사람도 있으리라. 인원이 움직이기에 적당해 좋다. 거기다 모두 한다면 하는 확실한 멤버 아닌가.
오전 4시 10분 경 버스는 덕구 온천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간단한 준비를 마치고 4시 20분 랜턴 불빛을 따라 움직인다. 우리는 뒤쪽에 가기로 했다. 후미에 가면 다른 사람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느라 피곤하지도 않고 한갓져서 좋다. 낮이 많이 짧아졌는지 해가 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하기는 입추가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 서늘한 새벽 공기와 물소리가 우리를 반기는데 앞사람들은 무슨 마라톤이라도 하나? 하루 10시간 산행이면 속도 조절을 해야 할텐데 초장부터 내뺀다. 쫓아가다가는 시작부터 절절 매겠군. 우리 나름대로 속도를 맞추어 가도록 해야지.
사방은 아직도 칠흑같이 어두운데 매미는 온힘을 다해 울어댄다. 마지막 여름을 장식하는지 물소리에 섞여 들리는 매미 소리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얼마나 날개를 비벼대야 그런 소리가 날까? 때로는 소리만으로도 온 몸을 던지는 듯한 절규를 느낄 수가 있다.
별에서 소리가 난다.
산 냄새 나는 숲 속에서 또는
마음 젖는 물가에서 까만 밤을 맞이할 때
하늘에 별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자작나무의 하얀 키가 하늘 향해 자라는 밤
가슴 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낸다.
김재진의 < 가슴 아픈 것들은 다 소리를 낸다 > 중에서
입구에 서 있는 입간판을 랜턴 불빛에 비추어 보고 유난히 많은 다리에 붙은 이름을 살펴 본다. 물론 다리 이름의 기억은 차치하고 그렇게 많은 다리가 전에도 있었나 갸우뚱 하며. 금문교, 서강대교, 하버교, 노르망디교, 청운교 백운교 등등 세계에서 아름답다고 소문난 다리 이름을 붙이고 같은 재질에 그 모양을 본떠 만들어 놓았단다. 분명히 전에는 본 적이 없는 다리이다. 그 많은 다리 이름과 모양을 기억할 수 없지만 울진군에서 꽤나 신경을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아니라면 사진 몇 장 찍어두면 좋았을 것을...
처음부터 최용화 사장님은 쭈욱 앞서나간다. 그 동안 체력 관리를 잘 하신게지. 오랜만에 나왔다고 걱정을 태산같이 하시더니만 엄살이었구만요. 나는 그 뒤를 쫓아가는데도 헉헉거린다. 아무리 새벽이라지만 그리 빨리 걸을게 뭐람. 사정없이 내려오는 땀방울이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걸 보니 오늘도 땀 꽤나 쏟겠구나.
내 뒤를 부지런히 따라오는 송부사장님은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시더니 그래도 힘을 내 걸으신다. 무박 산행에 새벽에 이렇게 걷는 것은 처음이란다. 새로운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그 느낌으로 계속 잘 가셨으면 좋겠다.
이고문님은 뒤에서 여유있게 오신다. 며칠간 해외 출장에, 회사 단합대회, 그리고 전날 골프까지 강행군을 하셔도 끄덕없는 고문님의 체력이 부럽기만 하다. 젊은 사람도 버티기 힘든 일정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소화해 내시는 성정과 건강을 타고 나셔서 참 좋으시겠다.
1시간 정도 가자 덕구 온천 원탕이 나온다. 중탄산나트륨이 주성분이라는 원탕은 따끈한 물이 뿜어져 나와 그대로 온천에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건 과장임에 틀림없다. 안내산악회 대장 말대로 아기 목욕물 수준의 온도이다. 다만 우리 나라에 외부로 뿜어져 나올 정도의 온천이 흔하지 않으니 그런 소문이 난 것이겠지.
이제 날이 훤해졌다. 분명하게 사물을 식별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마에 무언가 매달고 가는 것이 무척이나 성가신 나는 얼른 랜턴을 배낭에 넣는다. 모두들 배낭을 둘러메고 다시 한 걸음을 뗀다. 갈 길이 머니 서둘러야지.
평탄한 길을 어느 정도 가자 소로로 접어들며 경사가 심해진다. 3시간은 넘겨 걸릴 것 같은데 안내에 의하면 7시까지는 정상에 도착해야 한단다. 출발이 예정보다 20분 정도 늦어진 것을 감안해도 7시 반이면 도착해야 하리라. 전에 한번 와 보기는 했지만 거꾸로 이 코스로 내려왔고 지쳐서 속도가 느려진 면이 있으니 얼마나 걸렸는지 정확하지 않다. 기억이 가물가물해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무리 그래야 소용이 없다.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기억력을 믿을 것도 못 되고 설령 기억난다 해도 오르는 속도와는 다르니까 비교할 수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7시간 정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다리가 풀려 고생을 하는데 늦게 온다고 대선배님께 지청구를 들은 일, 얼마나 야속하고 서운하던지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이고문님께서 나를 챙겨주시며 탈수증상까지 보이는 내게 소금 대신 섭취하라며 조미김을 한 장씩 쥐어주셨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이고문님 옆에 졸졸 따라다니며 산행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후후.
아무리 새벽이라지만 땀을 많이 흘리지, 계속 오르막이라 에너지 소모는 많지... 아침 먹을 시간이 아닌데도 배가 고프다. 어느 순간 일행을 앞질러 나는 꽤 빨리 걸었다. 한동안 같은 버스를 타고온 사람만 보이더니 이제 다른 산악회 사람들도 보인다. 부산에서 왔다는 젊은 사람들은 복장도 조금은 불안하고 걷는 것도 시원찮아 보인다. 젊음이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지만 큰 산에서는 항상 겸손이 최고의 미덕이 아닐까.
오르막길에 누군가 앉아서 요기를 하고 있다. 나도 길 옆으로 약간 벗어난 곳에서 산악회에서 나누어준 백설기를 뚝 떼어 입에 넣는다. 연료가 바닥나기 전에 채워야지 아니면 전같이 고생할 수도 있으렸다. 조금 있으니 송부사장님께서 올라오신다. 나를 보시더니 본인도 무언가 먹어야 갈 수 있겠단다. 배를 채우고 나니 한결 든든하다. 물까지 배에 보충한 후 최사장님과 이고문님께서 오시는 걸 보고 다시 몸을 일으킨다.
이제 눈에 무언가 제대로 보인다. 허기도 가셨고 날도 밝았다. 능선상에 쭉쭉 뻗은 소나무가 늠름하다. 아하! 울진이니 여기도 금강송이 자라는 지역이겠구나. 그 유명한 소광리가 바로 울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 겨울 소광리 금강송 보호구역을 찾아가느라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큰 뜻을 품은 듯 의연하게 서 있던 소나무... 말이 없지만 우리에게 많은 말을 침묵으로 대신 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지. 소나무를 지나고 나자 버섯들이 모습을 보이는데 대부분이 아주 크다. 산이 크니까 버섯도 그렇게 큰 걸까? 엉뚱한 생각을 하며 비로소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었다 꺼냈다 한다.
언젠가부터 산에서 생명을 이어나가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무, 풀, 벌레, 새, 물고기 등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사진을 찍기 위해 더 빨리 가야 하고 더 부지런해져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되는 기쁨에 비하면 귀찮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 동안 참 눈뜬 봉사처럼 지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름 하나 아는 것보다 그것들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런 것들과 어울려 사는 조화로운 삶을 추구해야겠지만 항상 시작은 작은 것부터 하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면서 산행시 늘 주변을 살펴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주변 분들에게 주절주절 아는 것을 떠벌인다. 스스로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분들도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갖고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서.
가는 도중 몇 번인가 쉬면서 물을 마신다. 넉넉히 가져온다고 물 1.5L에 냉커피 0.5L를 가져왔는데 지금 이대로 간다면 도중에 바닥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오염물질이 별로 없을테니 그대로 계곡물을 받아 먹지 뭐. 혼잣말을 하며 내처 걷는다.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진다. 당장 시원해서 좋기는 한데 계속 맞으면 체온이 떨어지리라. 날씨가 참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걷는 길에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제각각이다. 비가 내리면 시원하게 맞겠다는 사람에, 맞으면 감기 걸린다는 사람에, 벌써 배낭 커버를 꺼내는 사람에... 어쩌랴. 하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여기 오기까지 일기예보 때문에 얼마나 고민하고 망설였는데 이 정도 가지고 산행을 포기하랴. 찌푸린 하늘에서 가늘게 내리던 비는 얼마쯤 가자 그쳤다. 다행이다.
멀리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걸 보니 정상이 코 앞인가 보다. 헬기장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침을 먹고 있고 바로 위 정상에도 사람들이 미처 안 온 일행을 기다린다. 오전 7시 12분 정상 ( 해발 998.5m )에 도착했다. 올라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정상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덕풍계곡 방향에서 올라오기는 시간이 안 될텐데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사람이 많았구나 싶다.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기가 싫어서 일행을 기다리는데 많이 처졌는지 영 오시지 않는다. 등산복 색깔이 비슷해 송부사장님인가 하고 반갑게 일어서 쫓아갔더니 아니다. 공연히 앉았던 자리만 빼앗겼네. 서성거리며 일행을 기다리는데 그 좋은 곳에 와서 담배를 빼어무는 사람은 무슨 심보일꼬? 피할데가 없을 만큼 사방에서 담배연기가 꼬약꼬약 피어난다. 담배 피우는 사람의 일행마저 좀 참지 그러느냐고 한 마디 하는데 아랑곳 않으니 어떠랴.
15분쯤 지나자 큰 키의 송부사장님께서 오신다. 얼른 쫓아가 힘드시냐고 하니 괜찮으시단다. 먼저 사진을 몇 장 찍고 있으니 금세 두 분이 오셨다.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밥을 먹기에는 아직 이르니 행동식으로 간단히 하고 내려가기로 하고 자리를 잡았다. 백설기와 과일을 먹으며 내려가는 길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는다.
하산이 급경사여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 전에 왔을 때 점심을 먹고 나른한 상태에서 올라가다가 그대로 길 옆 나무에 기대 누운 분도 계셨었지. 아무튼 하산이라고 방심할 일이 아니다. 여기는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산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꼭꼭 새긴다.
첫댓글 여기까지는 저도 컨디션이 괜찮았는데 말이죠. 산행기가 국어 교과서에 실린 수필 같습니다. 두고두고 읽어야 할 주옥같은 문장력은 이고문님의 끝이 안보이는 체력과 더불어 가장 부러운 항목입니다. 다음 사람은 어떻게 쓰라고...
빈 말씀이라도 감사! 그런데 잠 반납하고 새벽 4시까지 쓴 것은 인정해 주십시오.
역시 대단한 산행기임다. 문장들을 보니 제가 그때 힘들었던 기억들이 뭉클 생각남니다. 수고했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