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 2020/ 4/ 23 (목)
- 날씨 : 맑고 강한바람
- 산행코스 : 구천마을회관 - 정각폭포 1 - 폭포 2 - 폭포 3 - 치마바위 - 폭포4 - 폐광동굴 - 정각산 - 끝방재 - 미륵봉(766봉) - 실혜산 - 정승봉 - 817봉 - 도래재갈림길
- 구천산 - 706봉 - 공동묘지 - 구천마을회관 ......( 15.1km / 6시간 59분 /점심시간 20분포함)
- 난이도 : 보통 (처음 폭포 계곡치기 를 제외하면 아주편한 등로 )
- 동행 : 나홀로 산행
- 볼거리 :
1. 치마바위 좌측 골에 쏟아지는 폭포 1, 2, 3 감상 그리고 좀 더 올라 근폭포 감상
2. 정각산 가기전 폐광굴 감상
3, 정승봉에서 바라보는 영남알프스 산군 조망 (정각산에서 실혜산까지는 조망이 거의 없음)
- 정승동 마을 : 참으로 궁금한 마을 이름 이 곳?
이 곳 저 곳을 많이 검색 해봤는데 정확한 유래를 못 찾겠다. 흥미를 끄는건 " 김정승인가 유정승인가 "라는 문구....
1932 발행 밀주지의 문장 말미에 그정승유(其政丞留)라고 표현한것에서 유래되었다는 황당한 설과 조금 다른 설은 고려 공민왕때 김용이라는
정승이 반역죄로 밀성군(현재의 밀양)으로 귀양을 보냈다는 "오상출판사 이야기 고려사" 기록이 조금 더 신빙성이 있어보인다는 것이 전부다
정각산(正覺山)은 영남 알프스 산군에서 약간 밑으로 내려앉은 산이며 같은 마루금에 놓여있는 실혜산과 정승봉 구천산으로 이어지는 포근하고 푹신한 육산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 너무나도 멋진 산들이다. 정각산 이름의 유래는 이 곳에 정각사라는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 이라는데 알길이 없다. 그리고 산봉우리 모양이 솥의 손잡이 같이 뾰쪽 솟았다하여 정각산(鼎角山)이라고도 부른다.
정각산 서쪽으로는 중턱마을 승학동 뒤 주능 승학산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실혜산과 정승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며 그 너머는 영남알프스 9개 산군인 운문산, 가지산, 고헌산, 문복산이 버티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정각산 핫라인 마지막 정상인 구천산이 자리하고 그 너머는 역시 영알 산군인 천황산 (재약산 사자봉과 수미봉), 능동산을 지나 배내봉,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영축지맥이 혈맥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실헤산(혜남산), 정승봉 너머로 북암산, 문바위, 사자봉, 억산의 마루금이 선명하고 발아래 남명리 마을에서 지척인 백운산의 백호가 표효하는걸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정승봉 칼날 능선에서 바라보는 서쪽은 억산에서 흰덤봉을 거쳐 용암봉, 중산, 낙화산, 보담산, 비학산으로 이어지는 운문지맥 라인과 그 넘어 화악산과 남산이 뚜렷이 조망이 된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강한 칼바람이 불긴 했어도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구름이 분위기를 잡아 더 멋진 그림이 되었다 싶다.
늘상 홀로 산행이지만 맘은 편하고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 이제는 한몸 같이 편해져 버렸다. 나이 들수록 위험 수치는 더 하겠지만 그래도 이 시간 만은 행복하다.
산행 후 즐기는 블로그 편집도 한 몫 하기도 하고.....
대표사진 : 폐광굴에서 바라본 향로산 - 백마산
사진을 보면서 오늘 하루 피로를 풀어 본다
산행기점 / 구천마을 회관 - 구천마을 버스승강장...이 곳에 주차하고 오늘 산행 시작/ 치마바위 위 중앙 정각산
회관 앞을 지나 동네 한 복판으로 진행
나중 올라야 할 치마바위를 향해서..
마을 내려서면 좌측 들머리
다리건너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하면 들머리
골목으로 들어서서 저기 앞에 보이는 후니펜션 건물을 보고 진행..
후니펜션에서 다리건너 좌측 과수원으로 진행
그물앞 좌측으로 돌아가면..
이 곳이 산행들머리 임../위쪽 하우스로 진행 (정각산 2.39km 지점)
요렇게 돌아서 진행함
임도따라 끝까지 진행하면 치마바위 입구임
우측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후 오를 치마바위 감상하고요..
처음 만나는 폭포.. 정각산 밑이니 "정각폭포" 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맞겠다 싶은데?
우측으로 돌아 올라와 한 컷
치마바위 앞에 작은돌탑이... 치마바위 끼고 좌측으로 돌아 폭포 속으로로 진행../ 좀 위험하니 조심할 것
폭포 2~3을 감상하려면 들어가야 볼수 있으니 ..
제법 난코스 이니 조심히..
지나다 들여다 보니 끝이 안보임..
치마바위 좌측 끝자락에 내리는 두번째 폭포를 끼고 조심조심 오름
위험구간 올라와 밑으로 보고..
폭포 주변은 온통 부처손으로 덮여있다
세번째 나타나는 폭포앞에서 밑으로 보고..
세번째 폭포...감상하고 우측 난간을 잡고 오르면 로프구간이 나온다
각도를 달리해 나도한 컷 / 암벽 타는데는 코팅 면장갑이 최고 ㅎㅎㅎ
암벽을 붙잡고 올라 내려다보고..
폭포도 살짝 보이면서..
위험 한듯한 로프구간..로프상태가 어떤지 반만 믿고 조심히 진행
오르면 치마바위 / 처음 등장하는 조망 / 앞 능선이 감밭산 능선 / 우측 향로산
올라온 로프구간 쳐다보고..새로운 로프를 설치해야 될 것 같음 / 떨어지면 낭패
치마바위 위에서 치고 올라온 계곡을 바라보고..
치마바위 앞 사면을 담아보고
우측 향로산과 백마산이 얼굴을 내밀고..
폭포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좀더 진행하면 네번째 근폭포를 향해..
가는 물줄기만 외로이 흐르고..
폭포감상 후 되돌아 나와 다시 오르면 전망터가 나옴
좌측 재약산 수미봉에서 재약봉능선을 타고 향로산과 쌍봉으로.. 그 넘어 백마산..
좌측 재약산 사자봉(천황산)에서부터...
구천마을을 담아보고 ..
묘지를 가로질러 좀만 더 진행하면 폐광굴이 나옴
연철쭉이 피기 시작하네요
이렇게 진행하여 우측으로 돌아가면..
폐광굴이 모습을 들어내고..
폐광굴의 모습을 여러장 담아본다
폐광굴 내부 사진
우측에는 물도 고여 있고
백마산을 액자 같이 담아봤다
향로산과 백마산을 담고..
좌측으로 올라 진행한다
좌측에 또다른 폐광굴이 보이고..
능선에 올라 섰다 / 좌측 정각산을 보고 다시 내려 와야한다
반가운 시그널 옆에 하나 매달고 ..
정각산 정상에서 유일하게 조망되는 곳
전망터에서 정각산을 올려다보고..
정각산에서 뻗어내린 백운암능선
저멀리 가운데 左 화학산과 右 남산이 조망되고..
다시 등로를 따라 더 내려오면 보여지는 운문산 - 가지산북릉 - 가지산 - 천황산(사지봉)
좌로부터 운문지맥길을 담아보고..
오늘 진행해야할 등로 .. 미륵봉 - 실혜산 - 정승봉 - 구천산을 한바퀴 쳐다보고../ 가운데 솟은 운문산
천황산 (사자봉)에서 재약산 수미봉 라인 ../ 그 앞이 필봉 감밭산 라인
너덜길을 지나면서.. 너른바위가 나오고..
너른바위에 올라보고.. 좌로 내려선다
구천산이 눈에 들어온다
끝방재에 도착 /임도는 송백리로 가는 길이고/ 미륵봉은 묘지를 가로질러 진행..
담에는 정승동에서 한번 더 와야겠다
묘지를 가로질러서 오르면..
고사리 꽃인가?
밀성 손씨? 묘던가.. 헷갈리네 ㅎㅎ
누군가 미륵봉이라고..
갈림길이 나오고..
실혜산에 도착
정상석 너머로 문바위-사자봉이 보이고..
이 곳에서 나도 점심을 해결한다 / 등로진행시 엄청난 칼바람이 불어..속을 좀 데우기로..
문바위 - 사자봉 - 억산 - 팔풍재 - 삼지봉 - 범봉으로..그리고 운문산
지나온 실혜산
우측 정승봉 방향으로..
지나온 미륵봉에서 실혜산 능선
각도를 달리한 억산 마루금
정승봉을 향해서..
정승동을 당겨보고..
남명리에서 실혜산으로 오르는 능선 여러장을 담고..
정승봉을 바라보고..
실혜산을 쳐다보고..
정승봉에서 817봉과 구천산 능선 / 정승봉(803)보다 다음봉우리(817)가 더 높다는 사실
우측 정승봉으로..
실혜산에서 정승봉까지..
정승봉 능선 ../ 뒤는 얼음골 상부케이블카 - 사자봉 마루금
정승봉에서 구천산까지 등로
축소하여 수석으로..
정승봉 도착
운문산을 배경삼아..
진행할 817봉/구천산방향
탁 트인 영남알프스
左백운산 右능동산 조망 / 호박소터널 과 가지산터널
걸어온 능선
미륵봉에서 실혜산으로..
걸어온 정각산에서 실혜산능선
조금 더 뚜렷하게...조망
구천산을 바라보고..진행
도래재 갈림길../ 도래재에서 천황산(사자봉)으로 연결..
817봉이 정승봉으로 착각 할수 있겠다 / 앞 817봉이고 그 너머 정승봉임
이 곳을 넘으면 구천산 정상임
조망 표시 정상석이 색다르다
마지막으로 실혜산에서 정승봉을 거쳐 817봉을 지나 이 곳 구천산까지 ..
구천산을 뒤로하고 내려선곳이 706봉 삼각점
멋지게 피고있는 연철쭉..군락
이제 마지막 조망터
틈사이로 쌍봉 향로산 백마산이 들어오고..
좌로 고개를 돌리니 천황산(사자봉)이 ..
공동묘지를 돌아서 내려가고..
뒤돌아보고 .. 소나무숲에서 내려왔음
우측 임도따라 조금 진행
요렇게 진행하면서..
아침에 오른 치마바위와 정각산을 담아보고..
대나무 숲을 지나면서 날머리로 나간다
이렇게 나왔다
바로나옴 마을회관이다
오늘 산행궤적이다
오늘도 무사산행 / 산신령님 감사합니다
(참고 문헌) 영남 알프스 검색중 가져온 글 (경상일보)
◇바람 세고, 물자 풍족한 팔풍팔재라
‘대문
탐방대는 청도 솥계 무쇠솥이 밀양으로 나간 길인 팔풍팔재를 수차례에 걸쳐 넘어 보았다. 팔풍팔재(八豊八嶺)란 막다른 고을인 밀양 산내면에서 청도와 울산을 연결하는 여덟 개의 재를 말한다. 팔풍(八豊)은 물자가 풍족함을 의미하고, 팔재(八嶺)는 센 바람(八風)이 불어오는 여덟 재를 가리킨다. 팔풍팔재는 가지산 석남재, 운문산 아랫재, 범봉 딱밭재, 억산 팔풍재, 구만산 인곡재, 용암봉 오치재, 정각산 정승재, 천황산 도래재이다. 팔풍팔재를 이고 사는 주민들은 ‘여덟 골바람이 만나 인심이 후하다’거나 ‘물자가 사방팔방에서 다 모여드는 풍족한 땅’임을 강조한다.
탐방대는 이어 산 너머 있는 딱밭재(802m)를 향해 내처 걸었다. 코가 댓자로 빠지는 아흔아홉 고갯길을 오르자 딱밭재가 나왔다. 주민들은 딱밭재를 딱밭 혹은 석골고개라 부르는데, 이웃한 팔풍재를 대비고개, 범봉을 범바우라 한다. 딱밭재에서 내려와 마을에서 만난 창녕댁은 “참나물 만디 딱밭엔 나물 캐고 버섯 뜯으러 다녔다. 딱밭엔 모시짤기, 도시락치, 산미나리, 산부추, 흰치, 산작약, 솔나리가 지천에 깔렸었다”고 귀띔해 주었다.
무쇠솥 팔러 운문서 밀양으로
밀양에서 떼온 옹기는 청도로
물산 사방서 몰리는 ‘팔풍’이자
바람 도처에서 불어오는 ‘팔재’
◇천근 무쇠 솥을 지고 넘던 솥장수 길
이 태산 같은 잿길을 솥 태가꾼은 무쇠 솥을 지고 넘었다. 장골이 진 너 말치 큰 솥 안에는 서 말치 솥과 작은 솥이 들어 있었다. 솥점에서 점지해 놓은 서 말치 솥을 그들이 지고 나가는 것이다. 제 아무리 장골이라 해도 무거운 무쇠 솥을 지고 아흔아홉 고갯길을 넘으려면 초주검이었다. 팔풍장 50리, 언양장 50리, 자인장 50리로 거리는 비슷하지만 팔풍팔재 길이 더 험했다. 자인장 가는 길은 대천고개와 꼽드리고개(운문댐 수몰지구), 미아리고개를 넘어야 했고, 팔풍장은 아흔아홉 고개 팔풍팔재를, 언양장은 운문령을 넘어야 했다. 솥계 조선 솥을 써본 창녕댁은 “솥계 솥은 내가 써봐서 잘 안다. 바닥이 두껍고 닦으면 번들번들거려 좋았다”고 했다.
탐방대는 가지산과 운문산 사이의 아랫재를 걸어 올랐다. 예로부터 밀양에서 신라 경주(배너미-삼계 수리덤-경주)로 가는 지름길로, 석골사, 상운암, 표충사, 운문사를 잇는 길이라 스님들의 이용도 잦았다. 잿마루에 있던 외딴집은 사라졌고, 학심이와 심심이 합수점 인근에서 숯막을 치고 살던 산판꾼은 반세기 전에 이곳을 떠났다. 산판 나무
다음엔 밀양 산내면 가인리 봉의저수지 계곡에 있는 인곡재(555m)를 탐방하였다. 억산과 구만산에 끼여 있는 인곡재는 밀양 팔풍장과 청도 동곡장을 연결하는 장길이다. 밀양 사람들은 동곡장에서 떼어 온 옹기를 머리에 이고 이 잿길을 넘었다. 쌀이 너 말 들어가는 장독에서부터 약탕기까지 독을 이고 넘던 고개였다. 덩치가 커 나뭇가지나 돌에 부딪치면 금이 가고, 자갈 많은 잿길에서 미끄러졌다간 산산조각이 났다. 동곡 항아리를 이고 내려왔던 밀양 산내면 상양촌(붉은디기)에 사는 사촌댁(82세)은 “밀양 항아리는 무겁고 청도 항아리는 가벼워”라고 운을 뗀 뒤 “열두 말 들어가는 큰 간장 독을 그 멀리서 이고 어떻게 왔는지 몰라. 그때는 열댓 명이나 되는 식구가 한 솥 밥을 먹던 때라 항아리를 달게 썼어”라며 오소소 웃었다.
인곡재가 물물교환의 통로라면 오치재는 봉건적인 밀양·청도 사람들 간의 통로였다. 오치재는 청도 매전면, 금천면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다. 청도 금천면에 사는 사과상자
도래재는 천황산과 정각산 사이에 있는 잘록한 잿마루로, 얼음골에서 밀양 단장면을 잇는 고갯길이었다. 밀양 단장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도래재를 넘으면 샛날바람이 된다고 한다. 병풍
마지막으로 발품을 판 석남재(770m)는 가지산과 능동산 사이에 있는 고개로, 팔풍팔재 중에서 사람의 왕래가 가장 빈번했던 고개였다. 예컨대 밀양과 울산의 문화교류와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던 유서 깊은 고개였다. 부임하는 고을 원님도 이 고개를 넘어야 했고, 울산 소금미역
배성동 소설가, 김성동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