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쌓인 앙금 털어버리고 순백의 새해 맞을 준비를 하자
12월은 매듭의 달. 마음 가다듬는 한해의 끄트머리 달에 두 번째 금요일 낮 1. 보금회가 열리는 날이다. 광화문역 지하철역에서 내리면서부터 마음이 사뭇 조급해진다. 매달 겪는 일이지만 오늘은 더욱 가슴이 설렌다. 좋아하는 사람 만나기 전 그런 기분처럼. 기온이 ?1℃라는 예보여서 옷 두둑이 입었지만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의 세기로 바서 체감온도는 그 이상일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어떻다고 느끼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다. 내 생각은 온통 보금회에 쏠려 있었으니까. 오늘은 과연 몇 명이나 올까? 인사말이야 이정인 회장이 당연히 하겠지만 보금회 열기 전에 갖는 건배사는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까? 보내준다는 캘린더와 다이어리는 제시간에 도착할까?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일 온 사람 중에 캘린더와 다이어리를 챙기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긴다면? 배동만 전 회장이 삼성VIP 달력 해마다 나눠줄 때 보이지 않는 ‘챙기기 전쟁’이 문득 생각난다. 그땐 40~50명이 모인 곤 했는데... 그러고 보니 배 회장이 퇴임한 후 캘린더와 다이러리를 별도로 보금회에서 나눠주는 것은 올해가 처음인 것을.
어쨌거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해골 굴려봐야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부딪칠 수밖에. H아워 30분 전. 음식점 손님들이 하나 둘 빠져나갈 시간이다. 입구에서 아버님 뒷바라지 하느라 한동안 걸음 뜸했던 이 시대의 효자 김종오가 반갑게 손을 흔든다. 어제 보고 또 오늘 만나도 반갑거늘 오랜만의 해후니 어찌 반갑지 않으리. 보는 눈 없었다면 허그라도 했을 터. 음식점에 들어서자마자 홀에서 서빙하는 종업원들이 귀찮아 하건 말건 택배 물품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방 한구석에 할아버지 한분이 귀태 풍기며 조용히 앉아있다. 곳곳에 앉아 식사 즐기고 있는 젊은이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누굴까? 흘깃 쳐다보니 눈에 익은 얼굴이다. 김일웅. 사이버대학일로 늘 바쁜 그가 1착을 한 것이다. 올 마지막 모임이라 만사 미뤄두고 친구들 만나러 왔다고 귀뜸해준다. 고마운지고. 이런 열성회원들 있어 보금회가 지금처럼 운영되는 것 아니겠는가? 배달된 물품 내용 확인할 겨를도 없이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하나같이 완전무장이다. 겨울이, 추위가, 건강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힐끗거리는 젊은이들이 이들 할배 모습에서 자기 아버지 얼굴을 떠올렸을까?
언제나처럼 얼굴 표정들이 밝다. 그도 그럴 것이 유유자적 마음 내키는 대로, 마음 편하게 삶을 즐기고 있으니 그럴밖에. 평소 운동 열심히 해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보다 매사 긍정적적으로 사고하고 증오의 감정 버리고 마음 편하게 갖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친구들 얼굴이 그걸 눈앞에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정각 1시. 이정인 회장인 손에 무거운 다이어리를 들고 숨 가쁘게 들어온다. 전날,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서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고 총무에게 알려왔는데 그 약속 지키려고 땀 흘리며 달려온 터. 그래서 회장은 ‘책임감’ 때문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강성구 고영석 권형중 김양래 김일웅 김종오 김창석 박동진 박성배 박일두 박태원 손희광 신부길 안재홍 안창조 염갑형 원청융 유태전 이승홍 이윤국 이정우 이정인 이준용 이충표 임명성 정성영 정영웅 조웅인 진영달 채병기 최상태 최홍순(32명) -
보성53회 안창조 신임 회장이 참석해줘서 첫 번째 문제가 해결됐다. 그는 건배사에서 “일목회 회장을 맡으면서 쌓은 경험을 거울삼아 보성53회를 위해 열심히 일할 각오이니 여러분들도 협조 많이 해주기 바란다.” 고 밝혔다.
오늘은 일 년을 마무리하는 보임이라 특별 메뉴를 마련했다. 돼지고기수육 보쌈 감자전 버섯김치만두전골에 계란뚝배기를 비롯, 갖가지 밑반찬이 한상 가득하다. 물론 가격도 높다. 통상 1만1천원짜리 밥에서 오늘은 회장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통 크게 1만5천원짜리로 상을 마련했으니 총무의 간덩이는 허파만큼 커진 것이 틀림없다. 이처럼 일을 벌여놓았으니 어쩌겠는가? 회비 걷어서 곳간을 채우는 수밖에. 나중에라도 회장의 책망 들을 때 변명거리라도 마련해야 할 테니까.
보금회 1년 살림살이 내용도 보고했다. 그동안 밥사준 친구가 8명 있었고 자녀 결혼이 3건 있었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보금회원 중에 애사는 없었다는 점이다.
또한 보금회를 위해 캘린더와 다이어리를 기꺼이 보내준 *이정인(Vopak 다이어리 30부) *구제병(경인기계 다이어리 30부) *김대항(진아교역 캘린더 35부) *윤교중 (하나은행 캘린더 35부)에게 감사의 말씀 드린다. 친구 사랑 깊은 이들에게 하늘의 축복, 땅의 영광이 늘 함께 하기를 바란다.
멀리 안양 비산동에 둥지 틀고 낚싯대 물가에 드리우고 세월이 가는지 멈췄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자적 신선놀음에 빠져있는 고영석. “ 뭘 하느라 전화 안받는게냐? 이 근처에서 얼마나 헤맸는지 그 보상 어찌 갚겠느냐?” 며 인정사정없는 사람처럼 일갈한다. 그 소리가 어찌나 맵던지. 그도 그럴 것이 안성에서 종로까지 꼬박 3시간을 투자해서 왔는데 막상 장소는 가물거리고 믿었던 총무는 전화를 안 받으니...뿔나는 건 당연한 일일터. 홧김에 주먹 한 방 날리지 않고 말 한마디로 감정 자제한 건 평소 그의 수양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아마도 그처럼 인격이 높은 건 그동안 신선놀음에 도가 튼 탓이렷다?
오늘 처음 보금회에 발 내딛으며 좋은 신고식을 치렀으니 내년부터는 그의 얼굴을 자주 보게 됐다. 친구야,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밥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러 오려무나.
올해도 무탈하게 보금회를 이끌어온 이정인 회장. 그동안의 소회를 밝히는 인사말을 통해 귀찮고 부담 가는 탓으로 보성53회 회장 맡기를 꺼려하는 상황에서 회장의 소임을 기꺼이 맡아준 안창조 신임회장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우리 다 같이 협조해주기를 당부했다. 그는 또 간이 부을 대로 부은 총무를 탓하기는커녕 벌써부터 작정한 듯 연말 보금회 특식비를 기업가답게 기꺼이 내주는 아량을 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보금회 회원들은 이 같은 이정인 회장의 음덕 때문에 의리 내세우며 충성회원이 되는 것이니 이를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으리?
한동안 뒤풀이 행사로 십전대보탕 앞에 놓고 우아한 자세 취하며 세상담론 이어가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남는다. 음식점 근처에 20여명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곳, 우리 형편에 알맞은 값싸고 분위기 좋은 찻집 있으면 좋으련만... 누구 없소? 값싸고 분위기 좋고 여러명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장소 아는 사람? 내년의 화두는 단연 뒤풀이 장소 찾는 일이 될 테다.
딸랑딸랑 자선냄비 종소리며 거리의 크리스마스 풍경 슬며시 사라지면 새로운 세계가 어김없이 우리를 맞는다. 70여년 겪은 일. 그래도 가슴은 사뭇 떨린다. 모쪼록 가벼운 마음으로 올해를 보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새해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한햇동안 쌓인 마음의 앙금 훌훌 털어버리고 순백의 가슴에 새해를 담을 준비를 하자. 그리고 손 불끈 쥐고 다짐해 보자. 내가 이처럼 살고 있는 것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 총무 박 동 진